성막을 통해 본 하나님의 내려오심 2024 0519 출25: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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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찬송가 204장 주의 말씀 듣고
출애굽기 25:1–22 (NKRV)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 하고 기쁜 마음으로 내는 자가 내게 바치는 모든 것을 너희는 받을지니라
3 너희가 그들에게서 받을 예물은 이러하니 금과 은과 놋과 4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는 베 실과 염소 털과
5 붉은 물 들인 숫양의 가죽과 해달의 가죽과 조각목과 6 등유와 관유에 드는 향료와 분향할 향을 만들 향품과
7 호마노며 에봇과 흉패에 물릴 보석이니라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10 그들은 조각목으로 궤를 짜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 높이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1 너는 순금으로 그것을 싸되 그 안팎을 싸고 위쪽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금 테를 두르고 12 금 고리 넷을 부어 만들어 그 네 발에 달되 이쪽에 두 고리 저쪽에 두 고리를 달며
13 조각목으로 채를 만들어 금으로 싸고 14 그 채를 궤 양쪽 고리에 꿰어서 궤를 메게 하며
15 채를 궤의 고리에 꿴 대로 두고 빼내지 말지며 16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둘지며
17 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 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 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22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는 성막 이야기
하나님의 마음을 발견하는 성막 이야기
성막의 이야기는 어려운 이야기처럼 보임. 그러나 이 또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향한 마음을 드러내시는 작업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읽길 원한다. 율법이 해라, 하지마라를 넘어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우리의 현실 가운데 실현되는 하나님의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었음. 마찬가지로 성막 건축과 관련한 자세한 지침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본문이다.
출애굽기의 흐름
출애굽기의 흐름
출애굽기의 전체적인 흐름은 종살이하는 것에서 예배를 향해. 파라오를 섬기는 것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이집트에서 강제로 파라오를 섬기는 건축물을 지어야 했다. 힘든 노동과 고역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한 장소를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몸과 마음을 바쳐 짓는다. 이처럼 출애굽기는 말 그대로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총체적인 삶의 변화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렇다.
에베소서 4:22–24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은 예수를 믿음으로 옛 삶, 즉 내 삶에 주인이 나였던 시절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에서 시작한다. 출애굽 백성들은 애굽의 종살이를 하는 동안, 바로의 종으로 살았다. 그러나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출애굽 하였다. 그리고 홍해를 건넜다.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죽었다는 것이다. 물에 들어가는 것은 내가 죽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은 다시 우리를 물에서 건지셨다. (바로의 애굽군대는 물에 빠져 죽었다.) 거듭난 것이다. 다시 산 것이다. 그래서 세례예식은 하나님과 믿음의 성도들 앞에 나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내가 죽고 예수로 다시 살았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출애굽기의 흐름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의 그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성막을 통해 본 하나님의 내려오심
성막을 통해 본 하나님의 내려오심
성막에 관한 내용. 성막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 그리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 그전에는 백성들이 하나님을 만나러 한 장소에 가야만 했다. 시내산. 산 꼭대기 등. 그러나 이제는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리고 한 장소에만 머물지 않으신다. 백성이 이동할 때마다 성막과 언약궤를 들고 이동하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가 고정되어 있지 않게 되었다.
당시 고대 근동의 다른 신들은 주로 산에 거주했다. 사람들보다 높은 곳. 우러러봐야 하는 곳. 이방신들은 자신들을 인간들이 사는 너저분한 세상과 구별시켰다. 그리고 피조물들을 귀찮게 여기기도 하고, 무관심하게 내버려두기도 했다. 즉, 인간과 늘 거리를 두는 존재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여호와 하나님은 그렇지 않았다. 처음에 당신을 계시할 때에는 마찬가지로 산에서 계시하셨다. 또 그의 거룩함이 인간을 죽일 수 있었기에 거리를 두셨다. 인간이 너저분하고 더러워서 가까이 오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주석에 의하면,
“하나님은 초연함과 신성한 위엄을 상징하는 산을 떠나셔서 자신의 거처를 인간 공동체의 한복판인 성막으로 옮기셨다.”
더 이상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산으로 ‘올라 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들에게 ‘내려오셨기’ 때문이다. 성막의 자세한 지침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만들어야 할 매뉴얼과 같다.
지난 목요일 새벽에 담임목사님께서 새벽에 설교해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피조물에게 당신의 형상을 부여하시고, 죄로 인해 영원히 교제할 수 없게 돼버린 불쌍한 우리를 위해, 성막에 내려오셨고, 또 화목제의 방법을 알려주셔서 피의 제사를 통해 다시 우리와 화목하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화목제로 삼으시고, 우리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실 수 있게 하셨다.
최근에 보고 있는 드라마. 더 초즌/선택받은 자들. 예수님의 사역에 관한 이야기. 그런데 지금까지 나왔던 수많은 성경 드라마, 영화와는 뭔가 다른 감동을 줌. 무엇일까, 자세히 봤더니, 그전에 드라마, 영화들은 예수님의 사역, 기적, 그 사건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그것들이 나열되어 있었음.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 사건이 벌어진 상황에 들어와 있는 인물들의 감정선에 초점을 맞추고 있음. 그러다 보니까 성경에서 인물들의 대사 한 줄이 드라마에선 어떠한 감정선으로 그 대사가 나오게 되는지 보다보니, 더욱 흥미롭고 감동이 크게 다가옴. 그게 드라마의 역할. 거기서 보면 예수님이 정말 우리네 인생에 깊숙히 들어와 함께 웃고 떠들고, 먹고 마시며 때로는 위로하고 함께 눈물 흘리신다. 세상에 그 어떤 신이 피조물의 세계에 이토록 깊이 관여하여 그들의 인생을 위로할까?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우리를 향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