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우연이 아닙니다 2024 0519 창29: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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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29:10–20 (NKRV)
10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과 그의 외삼촌의 양을 보고 나아가 우물 아귀에서 돌을 옮기고 외삼촌 라반의 양 떼에게 물을 먹이고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12 그에게 자기가 그의 아버지의 생질이요 리브가의 아들 됨을 말하였더니 라헬이 달려가서 그 아버지에게 알리매 13 라반이 그의 생질 야곱의 소식을 듣고 달려와서 그를 영접하여 안고 입맞추며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들이니 야곱이 자기의 모든 일을 라반에게 말하매
14 라반이 이르되 너는 참으로 내 혈육이로다 하였더라 야곱이 한 달을 그와 함께 거주하더니 15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내 생질이나 어찌 그저 내 일을 하겠느냐 네 품삯을 어떻게 할지 내게 말하라
16 라반에게 두 딸이 있으니 언니의 이름은 레아요 아우의 이름은 라헬이라 17 레아는 시력이 약하고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
18 야곱이 라헬을 더 사랑하므로 대답하되 내가 외삼촌의 작은 딸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에게 칠 년을 섬기리이다 19 라반이 이르되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
20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으나 그를 사랑하는 까닭에 칠 년을 며칠 같이 여겼더라
드라마 같은 성경 이야기. 야곱이야기로 드라마를 만들면 한 50부작은 나올 것 같음. 오늘 창세기29 장을 시작으로 31장까지 야곱이 하란에 도착하여 20년 동안의 그의 탸향살이 시작. 50부작으로 따지면 20부정도 왔음.
그 이전까지는 무슨 이야기였나. 그의 탄생. 쌍둥이 형 에서. 어려서부터 성격과 어른들로부터 받는 서로 다른 기대감. 에서는 바깥 생활을 주로. 야곱은 집 안에서. 그런 어린 시절 속에서도 야곱은 복에 대한 투쟁. 야성을 놓지 않았다. 기회만 되면 형을 이겨 먹으려고 했음. 팥죽 사건이 대표적. 그리고 야곱 드라마 초반부의 절정, 엄마 리브가의 도움으로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 에서처럼 꾸미고 들어가 축복을 받는 장면. 이것이 드라마로 만들어지면, 얼마나 심장 떨리는 장면일까? 들킬까봐 두려워하면서도 축복을 사모하는 그 긴장감을 유지하는 야곱과, 분명히 목소리는 야곱인데, 몸은 에서 같아 의심하는 아버지 이삭. 그걸 지켜보는 리브가. 그리고 축복을 받고 나와 형 에서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헐레벌떡 도망가는 장면. 축복을 받았는데, 도망을 가야 하는 야곱 이야기의 2부로 들어가고, 엊그제 설교 나누면서 도망가는 야곱이 벧엘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하나님을 만났던, 루스에서 벧엘로!
그리고 이제 야곱 드라마 제20화가 시작한다.
야곱. 겨우 하란 도착.
야곱의 입장에서는 드디어 도착했음. 벧엘에서 다시 힘을 얻어, 걸어서, 마침내 하란 땅에 당도했다. 그의 길에 힘들고 어려운 여정을 엿볼 수 있다. 형에게 빼앗은 축복. 그러나 지금은 나그네의 삶이 되었다.
한 우물에서 목자들 만남. 근데 하필 그게 하란의 라반을 아는 사람들. 그리고 그의 딸 라헬이 이 우물로 오고 있다는 것이 아닌가? 우연도 이런 기막힌 우연. 드라마로 치면 얼마나 극적인 만남을 그려낼까 상상해보자. 창세기 29:11 “11 그가 라헬에게 입맞추고 소리 내어 울며”
자, 이런 야곱의 이야기를 들으니 어떠한가? 정말 드라마처럼 생생하고 긴장감 넘치지 않는가?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지 않은가?
그런 의미에서 함께 64페이지 위에 이렇게 써봅
우연이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입니다.
우연이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입니다.
사람들은 우연이라고 말함. 우연히 그렇게 됐다고 말함.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는 우연이 우연이 아님. 하나님의 계획하심, 인도하심.
하나님은 때로 극적인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아니 우리 인간이 그러한 극적인 순간, 극적인 경험을 가지지 않으면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왜 사람은 죽을 고비를 넘겨야 인생의 의미를 깨닫는고 하지 않는가? 그것이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혹은 영적이든,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고꾸라지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야곱은 장자권을 뺏고, 축복을 뺏고, 속이는 삶, 자기 힘으로 그렇게 하면 잘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나그네로, 외삼촌 집의 일하는 품꾼으로, 양치는 목자로 변화되고 훈련받았다. 또 속이는 인생에서 속임을 당하는 인생을 살았다. 무려 20년을. 외삼촌 라반은 여러번 품삯을 속였다. 심지어 라헬을 사랑하여 그와 결혼할 때에도 레아랑 먼저 결혼하게 되었다. 라반은 우리 지방에서는 아우가 형보다 앞설 수 없다라고 하면서 야곱 본인이 저질렀던, 형 에서를 앞지르려고 했던 것에 대한 뼈 때리는 경험을 하고 만다. 그렇게,, 그렇게,, 아브라함 언약인 열방을 향한 복의 근원의 아버지로서의 자리에 서기까지 하나님은 그의 인생을 훈련시키셨다.
나는 이스라엘에서 왔음. 한국으로 들어오는 거 우연이었을까? 갑자기 이스라엘이 전쟁난 것이 우연이었을까? 나도 다 말할 수 없는, 야곱과도 같은 하나님의 훈련의 시간들이 있었다. 그러한 시간들이 우연의 연속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이었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을 우리는 잘 알 수 없다. 어떻게 일을 이루어가실지 알지 못한다. 다만 예측가능한 것은 우리 인생의 방향키를 쥐신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잠언 16:9 “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우리는 길을 계획할 수 있다. 어디로 가야지. 하란으로 가야지, 그곳으로 도망쳐야지. 그러나 거기까지 가는데는 오늘 나의 한걸음이 필요하다. 그 한걸음 한걸음을 걷게 하시고 거기까지 가는데 필요한 오늘의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신 것임. 그런 의미에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다. 날마다 새로운 은혜 말이다.
그래서 날마다 인도하시는 한걸음 때문에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우연처럼 느껴지겠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걸음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우연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이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재밌는 것임. 우연같은 내 인생의 이것이 어떤식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끌어질까. 그것을 발견하는 재미말이다.
우연이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