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잘딱깔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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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어느 한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이 다급히 예수님을 찾아왔어요.
찾아온 이유는 딸이 귀신들렸기 때문입니다.
딸이 귀신 들리면 굉장히 마음이 아프겠죠.
물론 우리는 부모님이 되어본 적이 없어서
자녀가 아프다는게 대체 어떤 감정인지
헤아릴 수 없을겁니다.
내 자녀가 그냥 질병에 걸려도
굉장히 힘들텐데
귀신에 들렸다?
이건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숨막힘일겁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 여인의 스토리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처절하고 안타까운 상황에서
뜬금없는 TMI가 등장합니다.
26절 말씀 함께 읽어볼까요?
Mark 7:26 NKSV
그 여자는 그리스 사람으로서, 시로페니키아 출생인데,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예수께 간청하였다.
이 여자는 그리스 사람이며,
시로페니키아 출생이라고 합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수로보니게 여인이라고 소개합니다.
지금 딸이 귀신에 들려서
이 아이가 자신에게 피해를 입힐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힐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 뜬금없이
이 여인의 출생과 현재 거주지역이
어디인지를 소개합니다.
왜 굳이 그리스 사람이자
시로페니키아 출생이라는 정보를 기록했을까요?
그 당시 사회에서
그리스의 교육과 문화의 수준은
가장 최신, 최첨단, 최고였습니다.
이 여인은 꽤나 엘리트일
가능성도 포함한 것이죠.
그리고 시로페니키아 출생이라는 걸
기록한 이유는
이 여인이 이방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고의 문명 아래에서 자랐든
아무리 좋은 교육을 받았든
관계없이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취급을 했죠.
그 당시 문화에서
개는 부정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런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서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이
오늘 본문 말씀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하나님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자
모든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구원자이시잖아요?
그렇다면 반드시 이 여인을
사랑으로 품어주시겠죠?
분명히 그럴겁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막말과 망언을 쏟아부으십니다.
Mark 7:27 NKSV
예수께서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을 빵을 집어서 개들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
사람의 내면에 대해서
평생동안 깊이 연구하신
유진소 목사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상처를 받게 되면,
그 상처는 반드시
부정적인 행동이나 감정으로
표출되게 되어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시로
분노가 있고요
성적집착, 물질에 대한 집착을
불러일으키는 굶주린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 열등감, 죄책감
이 모든 것들은 마음의 상처가
다른 방향으로 드러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원인은
거절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군가에게 당한 거절감,
버림받은 아픔으로부터
상처는 더욱 깊어집니다.
심지어 거절감이
모든 상처의 가장 핵심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거절감은
그냥 아무한테나 받는 것이 아니라,
내가 권위자라고 여기는 존재에게
거절받고 버림받았다는
아픔을 느꼈을 때 상처가 극대화됩니다.
그리고 극대화된 상처는 반드시
누군가를 해치거나 나 자신을 해치는
부정적인 것들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께서
하시는 행동이
이 여인의 인생에
얼마나 큰 상처를 주는 일인지 모릅니다.
아빠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고 선생님도 아니고,
권위자 중에서도 가장 높은 권위자이신
하나님께서 처절하고도 간절한
한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셨던 걸까요?
예수님의 인성에 문제가 있는걸까요?
아니면 예수님이 귀신을 내쫓는게
두려우셔서 그러신 걸까요?
사실 예수님이 말 한마디만
내뱉으면 귀신쯤이야 바로 빤쓰런칠 수 있는데…
근데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개같은 너희들에게 줄 빵 없어 돌아가”
라고 말씀하신겁니다.
와 저였으면 바로 똑같이 쌍욕 때려박고
에이씨 안해! 너 뭐 돼? 라면서
승질내면서 나왔을 것 같아요.
그리고 이 여인은 지금 굉장히
간절하고 절박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 마음이 굉장히 예민해졌을 거에요.
작은 말 한 마디에도
상처받기 쉬운 상태일 것인데,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의 간절한 부탁을 거절하십니다.
그것도 아주 모진 말로 말이죠.
그런데 그때 이 여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Mark 7:28 NKSV
그러나 그 여자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개들도 자녀들이 흘리는 부스러기는 얻어먹습니다.”
예수님의 매몰찬 거절 앞에
이 여인은 굉장히 비굴하고 비참해보이는
대답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대답은
비굴함과 비참함의 대답이 아니었어요.
물론 이 여인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말했겠지만,
이 여인의 대답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정확히 꿰뚫은 대답이 되었어요.
예수님은 여인에게 테스트를 하신 것이 아닙니다.
혹은 인성이 파탄나서
여인을 긁어 놓고
“어? 긁? 긁힘? are you scratch?”
라고 망언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이란 무엇인가
이 여인을 통해서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심이었습니다.
앞으로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질 것인데,
쉽고 평탄한 길은 결코 아닐 것이다.
목이 뻣뻣하게 굳은 유대인들이
너희에게 와서
너희는 선택받은 백성들이 아니야,
하나님은 너희들을 구원하지 않으셔!
라고 말하는 순간들이 분명 찾아올 거야.
믿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세상으로부터 온갖 차별과
비하발언과 욕설을 들을 수 있어.
그런데 내가 너희들을 구원할 구원자이자
삶의 회복과 치유를 선물로 줄
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끝까지 믿어줄 수 있겠니? 라는
예수님의 의도가 숨어있었던겁니다.
여인은 그 의도에 딱 맞는 대답을 한거죠.
“예 주님, 저 개 맞습니다.
그런데 개들은 자녀들이 흘리는
빵 부스러기를 얻어먹지 않나요?
그 부스러기라도 감사하게 먹겠습니다.”
인간의 시선으로 봤을 때는
이 여인의 행동은 모든 자존심을
내던져버린 비굴하고 비참하고
한심한 모습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
이 여인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부터
하나님을 향한 굉장히 굳건한 믿음이
우러나오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쿨하게 인정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신 것 맞고,
그들을 가장 먼저 찾아오셔서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신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인정한 것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실 분이라는 것을
끝까지 믿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구원의
우선권이 있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이라 할지라도
모든 인류에게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고,
은혜로우신 분이시라는
굳건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2 Peter 3:9 NKSV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주님께서는 약속을 더디 지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여러분을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는 데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입에서
흘러나온 나는 개가 맞습니다.
그러나 개도 부스러기는
먹을 수 있지 않습니까? 라는
말 속에 믿음의 중요한 본질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베푸신다” 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오늘 우리의 삶속에 비춰봤으면 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이 살았던 시대처럼
우리는 굉장히 발달된 문화와
문명 아래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마치 하나님을 믿는 것은
이 시대에 뒤떨어진 모습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분명 있을거에요.
야! 시대가 어느시대인데
하나님? 성경? 그딴걸 믿고 사냐?
그건 지능 떨어지는 애들,
저급한 문화 속에서 자란 애들이나 믿는거야!
수로보니게 여인도
분명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을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딸이 귀신에 들리게 되자,
이 여인은 세상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해서 딸이 겪은 아픔을
해결하려고 했을 겁니다.
올림푸스 12신에게 가서
절도 해봤을 거고,
의사들도 찾아다녔을 것이지만,
결코 해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치 우리 앞에 닥쳐 있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돈을 이용하고 권력을 이용하고
명예를 이용하려고 온갖 애를 쓰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이 콧대높은 그리스 여인은
결국엔 하나님 앞에 나아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바짝 엎드렸죠. 25절 말씀 읽어볼까요?
Mark 7:25 NKSV
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자가 곧바로 예수의 소문을 듣고 와서, 그의 발 앞에 엎드렸다.
‘엎드리다’ 이 단어의 προσπίπτω
원어의 뜻에는
경외하다, 예배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삶에 문제가 닥쳐왔을 때,
이 세상 가운데서
갖가지 방법을 찾으려고
애를 쓰는 것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쓸데없는데에 시간낭비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
나아오는 것이
가장 먼저라는 뜻입니다.
매주 드려지는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도 중요하고,
매일의 삶 속에서,
나의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가장 먼저여야 합니다.
삶의 회복은 여기서부터 시작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 매달리시길 바랍니다.
모든 문제 앞에서 인간적인 생각이 앞서서
전전긍긍하고 있지 말고,
하나님께 가장 먼저 매달리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없고,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 같지도 않다고
느껴질 때가 있을겁니다.
기도해도 들어주지도 않는데
하나님 왜 믿음? 차라리 안 믿고 말어!
이렇게 생각이 들 때도 분명 있을 거에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포기하지 않는 분이시며,
우리의 삶이 반드시 회복되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하게 원하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결코 놓치 말라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인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알잘딱깔센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어떠한 억까 속에서도
절대 흔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를 욕하고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는 말들이 들려와도
하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이 세상 그 누구보다
어쩌면 나보다 더
나의 삶이 회복되기를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고,
나를 거절하시는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이 올지라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그렇게 결단합시다.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결단하고 또 결단합시다.
작심삼일짜리 결단이라면
삼일에 한 번씩, 아니 매일매일 결단합시다.
주님, 주님을 향한 믿음을
결코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이 세상이 뭐라고 한들,
내 삶에 어떠한 어려움과
유혹들이 다가온다고 한들,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주님을 끝까지 믿으며
나아갈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음을 허락하시옵소서
함께 결단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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