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받으시는 가정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또 두 번째 소리가 있으되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하더라
이방인은 복음을 듣고 성령을 받고 세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여졌다. 고넬료와 그의 식솔들은 새로운 사람이 되었으며, 베드로는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편견을 벗어버림으로 한층 더 변화되었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하나가 되었으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1. 베드로는 자신의 신념과 사상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넬료의 집으로 갔다.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자기 양심의 가책과 함께 동족의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체면과 주위의 비난을 무릅쓰고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 그러한 삶은 결코 쉽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2. 오늘날 해외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가 많이 있다. 선교사는 다른 언어와 이질적인 문화와 적응하기 쉽지 않은 생활방식 등으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는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그러한 차이로부터 오는 어려움을 견뎌 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복음을 듣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여러 지역과 여러 나라에 선교사로 나가야 하며, 이미 나가 있는 선교사를 위해 날마다 기도해야 하고, 그들을 향한 재정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3. 고넬료는 말씀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멀리 있는 베드로를 초청하여 말씀을 들었고, 성령을 체험했으며, 세례를 받았다. 그런 후에 베드로에게 며칠 더 머물면서 말씀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하였다. 성령이 임하시고 세례를 받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이 세우신 말씀 교사로부터 많이 배워야 한다. 우리는 얼마나 말씀을 배우고 싶어 하는가? 우리에게는 훌륭한 말씀 교사가 있는가? 우리 자신은 다른 사람에게 훌륭한 말씀 교사인가?
누가에게 있어 고넬료의 군대적 지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와 그의 가솔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들이었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자들에 대한 그의 기부와 빈번한 기도가 보여 주듯이, 고넬료의 헌신도는 이례적인 것이었다
사용된 언어는 희생제사의 향이 하나님께 상달됨을 나타내는 용어로, 브루스(Bruce, Book, p. 216)는 고넬료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서 희생제사적인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언어는 이미 이런 의미에서 전통적인 것이 되었고(시 141:2; 토빗서 12:12; 빌 4:18; 히 13:15), 여기에 반영된 것은 레위기 2:2에 대한 직접적인 암시라기보다는 그 전승이다(Bruce가 주장한 대로).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11:15) 이러한 진술은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 사이의 구별이 모호해진 것을 보여준다. 고넬료 사건은 “사도행전 2장에 오순절 사건과 같다.” 어떻게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베드로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11:17) 어느 누가 하나님의 일을 반대할 수 있을까? 그 어떤 신실한 유대인들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역사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일찍이 사도행전 5:38–39에 가말리엘은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 예루살렘교회 역시 베드로의 말에 이제야 동의한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11:18) 이런 표현은 초기 교회의 신학이 사회학적 환경을 이긴 것을 보여준다.
베드로는 자신이 설교를 시작할 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신 것에 대해서,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라고 말한다(15절). 이것은 성령이 유대인에게 임하신 것처럼 이방인에게 임하셨다는 뜻이다. 베드로는 이방인에게 성령이 임하신 것을 통해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편견이 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는 이어서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라고 말한다(16절). 이것은 1:5에 언급된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다(참고. 눅 3:16). 따라서 베드로는 이방인에게 성령 강림이 일어났음을 확신했다. 한편,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들을 교회의 회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상징한다. 따라서 베드로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하나의 교회에 가입되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