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성령강림주일

사랑으로 행동하기(8주)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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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실천, 성령의 열매

Notes
Transcript

Galatians 5:22–23 NKRV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1. 성령님에 대한 이해

신앙 생활을 깊게 하려고 하면 성령님에 대해 궁금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지, 성령님은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시는 지 궁금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능력이라고 보거나, 감정적 느낌이라고만 본다면, 우리의 신앙은 크게 잘못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성령님을 능력이라고만 이해한다면, 능력과 은사와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 쫓아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능력과 기적이 일어나야지만 성령의 역사라고 믿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이 함께하시는 느낌만을 바라는 사람들은, 이러한 집회에서 큰 은혜를 받게 됩니다.
“두 손들고 성령을 초청합시다. 성령님이 오십니다.”
절대로 이런한 집회 이런걸 요구하는 메신저에 반응하면 안됩니다.
성령님은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라고 해서 오시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늘 우리와 함께하길 원하시기에 우리가 초청하면 오시는 것 같이 느껴지지만, 성령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에 대한 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은 어떠한 분이신지 함께 살펴볼까요?
1 Corinthians 12:3 NKRV
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성령님이 아니시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할 수 없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고백하게 합니다.
Romans 8:26 NKRV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을 칠 때에, 신앙을 지키고 실천하며 살아갈 때에 만나는 어려움에 힘들어할 때에, 그러한 우리를 위해 탄식하시며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능력과 기적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때에 부딪히는 삶의 문제, 관계의 문제에서 굴복하지 않고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며 공감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1 Corinthians 3:16 NKRV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곳이 성전인데, 이제는 성령님께서 우리 모두와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전입니다.
우리의 삶이 성전 다워야 합니다.
나의 육체 나의 생각 나의 행동 모두 성전 다워져야 합니다.

2.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와 보겠습니다. 다른 번역으로 한번더 읽어 보겠습니다.
Galatians 5:22–23 NCTB
22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23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성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열매를 맺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 희락(기쁨), 화평(평화), 오래 참음(인내), 자비(친철), 양선(선행), 충성(진실), 온유, 절제

성령님께서 맺어주시는 열매입니다.
기적과 이적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을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과 이적이 우리를 변화시키나요?
놀랍게 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하지만, 능력과 기적이 우리를 변화시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본질은 우리를 성전답게 즉 하나님의 자녀답게 변화시키십니다.
오순절날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담대히 복음을 전하고 능력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전과 같은 성품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다혈질이던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 후에 예전과 같은 다혈질의 모습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사도 요한도 번개와 같은 성격이었지만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고백하며, 성령님의 동행하심 속에서 우리는 기적을 볼 수도 능력을 행함을 경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성령님은 우리의 성품에 열매를 맺어주십니다.
두 손들고 성령님 오시옵소서. 라고 하며 감정을 고취시키고, 먼가 느껴져야지만, 먼가 감정적으로 격동되어야지만, 기적이 일어나야지만, 성령님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을 만났다고 느껴져도, 내 성품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부분을 조심해야 합니다. 능력을 보이고 기적을 일으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감정이 격동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맺어주시는 열매가 우리에게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성령님께서 맺어주시는 열매가 격동적인 감정을 보이게 하나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기록한 사랑에 대한 내용을 살펴 볼까요?
1 Corinthians 13:1–7 NKRV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 일곱 구절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모르고, 우리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성령님을 통해 맺어지고 있지 않다면 무의미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열매가 무엇인가요?
나무가 열매를 맺고 자신을 위해서만 열매를 사용하나요? 아니면 열매를 축적하나요?
사과나무는 사과 열매를 인간에 베풉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열매, 사랑은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나요?
나를 위한 모습이어야 하나요?
누군가를 위해 그 사랑을 나누고 베푸는 모습이어야 하나요?
1 Corinthians 13:8 NKRV
8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1 Corinthians 13:13 NKRV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그리고 사도바울은 가장 위대한 신앙은 ‘사랑’이며, 능력과 기적은 사라져도 ‘사랑’은 영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중심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기준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

John 3:16–17 NKRV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께서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피조물로 오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모두가 구원 받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셔야 했습니다.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오셨기에 고통, 두려움을 모두 느끼셨습니다.
Luke 22:42–44 NKRV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지시기 전,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용기를 내야하고, 미래가 두렵다면, 지금의 삶이 고통스럽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할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용기를 얻고, 두려움을 이기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성령님의 도우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땀이 핏방울 같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결론. 사랑의 실천, 성령의 열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자신의 모든 것을 의지적으로 내어주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에 열매를 맺으신다는 것은 무엇인가요?
성령님께서 맺어주시는 사랑의 기준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감정도 실천도 없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피조물인 우리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은, 우리처럼 피곤함, 두려움, 아픔, 상처, 고통을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세상에는 수많은 구원자가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라고 당당히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아무런 힘도 없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누가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피곤함, 두려움, 고통을 모두 느끼시면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우리는 어떤 사랑보다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사랑을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가요?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에 맺어주시는 ‘사랑’은 어떤 모습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감정을 격동시키는 곳을 찾아가는 모습인가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능력과 기적이 일어나는 곳을 찾아가는 모습인가요?
이는 이단과 신사도운동가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났다면,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면,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 것과 같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예수님의 사랑을 맺어가신 다면, 예수님께서 생명다해 의지를 다해 우리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우리도 생명과 의지를 다해 사랑을 실천할 것입니다.
나를 위해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타인에게 고통을 주며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기쁘기 위해 사랑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모두 왜곡된 깨어진 사랑의 모습입니다.
타인을 돕기 위해 용기를 내며 의지를 다해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감정을 고취시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감정만 고취시키나요?
상대방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에 기뻐하는지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의지를 가지고 그 사람과 함께 하려고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신앙생활을 할 때 무엇을 바라보며 무엇을 실천해야 할까요?
감정을 고취시키는 것이 사랑인가요? 누군가를 좋아하거나 사랑하게 되면 가만히 앉아서 감정만 고취시키나요?
아니면 다가가 말을 걸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궁금해 하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면 함께 먹고 싶어하나요?
성경에서 하나님께서는 부모를 공경하고,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부부가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고, 친구를 위해 죽는 것이 최고의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소외받는 자, 가난한 자, 고통받는 자를 외면하지 말라고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나만이 가장 고통스럽고, 내가 가장 가난하고, 그렇지 않더라도 타인을 섬길 정도로 여유롭지 않다고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것을 합리화 합니다. 우리에게는 건강한 사랑의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에 열매를 맺으실 때 우리에게도 예수님의 사랑이 타나납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가 바라보지 못했던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성품이 변화되고, 우리가 바라보지 않았던 곳을 바라보게 되고, 의지적으로 바라보고 실천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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