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5 수요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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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5 수요예배 설교
제목 : ‘자기부인’ (Self-denial)
본문 : 누가복음 9장 23~24절
오늘 설교 제목을 ‘자기부인’ 영어로 Self-denial로 잡았습니다. 뭔가 되게 있어보이는 제목인 것 같은데요. 다들, 설교 제목을 보셨나요? 보시자마자 한숨이 나오시거나, “오늘 어려운 이야기 듣겠구나” 라고 생각하신 분들 있으실 것 같습니다. 사실 오늘 본문, 오늘 설교는 저 스스로를 위한 설교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제가 자기 부인이 잘 안되거든요.(웃음 포인트) 제 스스로가 자기를 잘 부인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속된 말로 죽을뻔 했습니다. 저도 잘 되지 않는 걸 말씀을 전하려니, 아주 죽겠더라구요. 이 말씀을 전하기로 결정하고, 정말 고민이 많이 됐습니다. 나도 못하는 걸 어떻게 전하지,, 하면서 지금이라도 목사님께 전화해서 설교 못하겠다고 말해야되나,, 고민하고 기도하는 중에, 주님께서 전하라는 마음 주셔서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자리 섰습니다. 그래서, 오늘 이 말씀을 나누며 선포하는 저도 다시 도전해야겠다, 또 함께 나눔으로써 우리 모두가 진정 제자된 삶을 살길 원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나누려 합니다. 바라기는 이 시간을 통해 진정 내 안에 ‘내’가 비워지는 역사가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제자의 첫 관문 - ‘자기 부인’
오늘 본문은 ‘제자’의 삶에 관한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제자로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 아주 정수와 같은 말씀인데요. 오늘 말씀을 보게 되면..
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은 ‘제자’의 삶을,/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분들이 오늘 말씀을 읽을 때 /제자가 되기 위해서 /3가지의 단계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첫 번째 나를 부인하는 것, /두 번째 십자가를 지는 것,/ 마지막 세 번째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 /이렇게 세 분류로 나눠서 생각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면서/ 말씀을 깊게 묵상하다가/ 한 가지 깨닫게 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제자의 삶은 /세 가지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일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은 /하나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제자의 삶에는/ 한 가지만 매듭이 잘 지어진다면/ 나머지는 자연스레 동반됩니다. /우리가 첫 번째로 매듭지어야 하는 것이 무엇이냐면,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자기 부인을 통해 /제자의 삶이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기 부인’의 단추가 잘 맞춰지면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는 삶은/ 자연스레 우리 안에 체화되기 때문입니다.
먼저,/ ‘자기를 부인하다’라는/ 단어의 뜻을 살펴보기 원하는데요. /원문에는 ‘부인하다’를 ἀρνέομαι(아르네오마이)/라고 해서, /‘거절하다’/ ‘포기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 이 단어의 어법을 보면 / 아주 강한 / 명령적 어조를 담고 있는데요,/ 아주 직설적인 표현으로써 / 일회적으로 단번에 확! / 바뀌는 변화를 요구하는 / 단어입니다. / 거절하는 것은 / 어떠한 대상을 물리치고 / 거부하는 것을 뜻합니다. / 요구와 유혹들을 허락하지 않고 물리치는 것./ 자신의 의지와 / 뜻을 부정하는 것이 바로 / ‘부인하다’ 라는 것이지요. / 결국, /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내 삶의 주인이 / 내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 /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 우리가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선 / 우리 안에 있는 / 나의 자아가 부셔져야합니다. / 우리의 모든 것이 비워져야하죠. / 그런데, / 왜 우리가 자기 부인을 어려워할까요? / 우리가 왜 쉽게 자기 부인을 하지 못할까요? / 왜냐하면 우리 안에 내가 주인되려는 마음, / 내 소견에 옳은대로 하고자 하는 욕구들이 / 들끓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보면 / 자기주도적인 삶을 추구하거나 / 자기가 중심이 되어 사는 삶이 / 행복한 삶이라 이야기 합니다. / 그러나 그러한 삶이 / 우리를 제자로 이끌어주지 않습니다. / 말씀을 따라 살지 않고 / 내가 보기에 옳은 대로 살고, / 내 현실, / 내 경험, / 내 생각과 뜻이 더 높아진 삶으로는 / 절대로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 또한 우리 안에는 / 수많은 ‘자기’가 있습니다. / 교만한 자아, / 세상적 자아, / 음란하고, / 분노하고 / 내가 주인되려는 자아 등. / 너무나 많습니다. / 이 자아가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 막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 내 안에 심겨지지 못하게 하고, / 오히려 이겨먹으려 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 제자가 되기 위해 / 그 모든 것을 비우고 / 청산하고 / 나를 따라오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 나의 옛 자아, / 나의 것을 비워야 하고, / 나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고 / 예수님께 전부 내어드려야 합니다. / 나의 생각, / 내가 세운 목표, / 내가 나 되는 것을 / 전부 포기하고 / 예수께 나아와 죽는 것이 /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이것이 자기 부인이지요.
예) 그런데 / 우리가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 / 여려분, / 이러한 ‘자기 부인’. / 이것이 정말 가능할까요? / 여러분은 어떠세요. / 지금 예수님께서 / 우리에게 던지시는 이 명령. / 기쁨으로 아멘!하고 / 곧바로 순종으로 / 옮기실 수 있으신가요? / 솔직히 말하면 /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이 / 저에게는 조금 짐처럼 다가왔습니다. / 나의 자아를 죽이는 것, / 모든 것을 비우는 것, / 목숨까지도 포기하는 것, / 뭐 하나 아멘!으로 받고 /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 / 조금은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
그런데 제가 말씀을 준비하며 / 크게 위로를 얻은 것이 있습니다. / 이 ‘자기를 부인하다’는 것이 너무나 어렵고 / 무거운 짐처럼 느껴져서 / “이 말씀을 전하지 말아야할까” / 고민하며 기도 하는 중에 / 주님께서 번뜩이는 지혜와 / 통찰을 주셨습니다. / 그것이 무엇이냐면, / 우리 다함께 빌립보서 2장 5-8절을 봉독해보겠습니다. /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제가 말씀을 준비하기 전에 / 가지고 있었던 / ‘자기 부인’의 대한 염려. / 또 짐처럼, 느껴졌던 / 이 ‘자기 부인’을 빌립보서 말씀을 통해 /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 ‘자기 부인’을 말씀하실 수 있었던 / 이유가 무엇일까요. / 바로 예수님 당신께서 먼저 / 자기를 비우시고 / 부인하셨기 때문입니다. / 예수님의 삶은 / 자기 부인으로 시작해서 / 자기 부인으로 끝납니다. / 하나님과 동등되신 분이 / 인간이 되셨습니다. / 자기를 부인하시고 / 인간이 되신 것이죠. / 거기서 더 나아가 / 주인이신 분이 / 자기를 비워 ‘종’이 되셨습니다. / 자신을 낮추시고 /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 예수님께서 먼저 본을 보이셨습니다. / 이 세상 어디에도, / 어떤 종교에도 / 주인이 종이 된 일은 없습니다. / 신이 인간을 위해 죽은 종교는 없습니다. /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 자신의 위치, / 자아, / 그 모든 것을 비우고 / 포기하셨습니다. / 주님께서 먼저 자기를 비우고 / 부인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 우리도 나를 부인하고 / 내려놓으며 / 주의 뜻에 복종할 수 있게 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 낮추사 /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이 / 쉬우셨을까요? / 하나님의 명령이니 / 곧바로 YES!하면서 / 모든 것 포기하시고 /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을까요? / 아닙니다. / 예수님에게도 ‘자기부인’은 / 절대로 쉽지 않으셨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조차 /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을 / 너무나 어렵고 /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 아주 처절하게, 뼈를 깎아가며 /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 복음서에 보면 그것이 잘 나타나 있는데요. 우리 다같이 마가복음 14장 36절을 봉독해보겠습니다.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막14:36]
여러분 / 예수님의 심정이 느껴지시나요? / 예수님의 간절함이 느껴지지 않으세요? / 여러분 / 예수님도 두려우셨습니다. / 마태복음을 보면 / 예수님께서 고민하고 / 슬퍼하셨다고 기록합니다. 예수님 역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 너무나 괴롭고 고통스러워 하셨습니다.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 자신을 부인하기 위해, / 순종하기 위해 / 아주 처절하게 눈물로 / 기도하신 것입니다. / “가능하면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고” 하나님께 아뢰며 / 땀이 핏방울이 되도록 / 전심을 다해 기도하십니다. / 밤을 새워가며 / 하나님 앞에 기도의 씨름을 하신 것입니다.
저는 / 예수님의 인간적인 모습에 / 너무나 많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 자신을 부인하시기 위해 / 밤을 새워가며 처절하게 눈물로 기도하신 / 주님의 모습이 큰 감동으로 찾아왔습니다. /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 예수님의 눈물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처절하게 엎드리셨던 그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 그 모습을 묵상하며 힘을 얻었습니다. / 2천년 전 예수님의 이야기로만, / 무겁고 어려운 것으로만 느껴졌던 ‘자기 부인’이 / 진정 제 안에 ‘은혜’로 다가왔습니다. / 예수님을 바라보고 묵상할 때, / 비로소 ‘자기부인’이라는 것이 / 우리 안에 은혜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나를 부인하기 위해선, /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합니다. / 나의 생각과 관점으로는 / 어렵고 부담되는 것이라 느낄 수 밖에 없습니다. / 내 삶과는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집니다. / 그러나, 빌립보서 말씀처럼 / 우리 안에 예수님의 마음을 품을 때, / 진정 ‘나를 부인하는 것이 은혜로 다가옵니다. / 눈물 흘려 기도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 묵상할 때 비로소 / ’자기부인‘이 감동으로, / 은혜로, / 도전으로 /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이 시간 /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 이 ‘자기부인’을 묵상하기 원합니다. /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품고 / 자기부인을 바라볼 때 /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 바로 자기 부인은 /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 예수님은 자신을 비우시고 / 십자가의 순종을 감당하셨습니다. / 나를 비우고 내려놓고 /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 오직 예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이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 자기부인으로 인해 행해지는 것이 /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 그 십자가를 지고 / 자연스레 예수님을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이 ‘자기부인’의 표본인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독일의 ‘본회퍼’ 목사님인데요. 본회퍼 목사님은 21살에 박사 학위를 받을만큼 당시 최고의 석학이었습니다. 당시 천재 신학자로 각광을 받았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 유명한 신학교에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으로 건너간지 1년이 되던 해, 조국 독일에서 2차 세계전쟁이 터지게 되었고, 많은 이들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본회퍼 목사님은 고민에 빠집니다. 독일로 돌아가 민족을 살리고, 교회를 살리는 길을 걸어야 할지, 아니면 이곳에 남아 계속 교수 활동을 해야할지. 아주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죠. 결정을 앞두고 철야기도, 밤새 기도하는 도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이 무엇이었냐, 바로 조국 독일로 돌아가는 것이었죠. 많은 이들이 망명을 권유했지만, “동포들이 어둠 속에서 시달리고 있다. 누군가는 그들을 섬겨야 한다”라고 고백하며 독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히틀러 나치 정권에 항거하다가 감옥에서 순교합니다.
본회퍼 목사님에게 / 자기 부인은 / 바로 ‘순교의 길’이었습니다. / 본회퍼 목사님은 / 굳이 독일로 돌아가지 않고, / 미국에 남아 안락한 삶을 누리며 / 교수로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 편하게 연구하며 / 복음을 전할 수 있었죠. / 만약 본회퍼 목사님이 / 미국에 남았다면 / 명성있는 신학 교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 그러나 자신의 명예와 성취, 성공적인 목회 / 편하고 안락한 그 모든 것을 버려고 독일로 향해 / 목숨까지 아끼지 않고 ‘복음’을 전합니다. / 그리고 위대한 ‘순교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 가장 탁월한 제자도의 표본이 된 것입니다.
본회퍼 목사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 이처럼 자기 부인은 / 전적인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 나의 만족과 유익을 내려놓고 /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을 일치시키는 ‘복종’이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 그로 인해 얻어지는 결과가 무엇이냐, / 비교할 수 없는 축복과 영광이죠. / 자기 부인을 통해 우린 하나님의 축복과 영광을 체험케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4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합니다. 우리 다함께 봉독합니다.
24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이 말씀이 무슨 뜻일까요? / 간단합니다. / 나를 부인하고 / 포기하고 / 전적으로 주님의 뜻을 따라 걸어갈 때 / 우리에게 구원을 더하신다는 것입니다. / 부인은 죽는 것과 같습니다. / 나의 자아를 죽이고 / 주님을 위해 죽는 것이지요. / 너무나 부담스러운 것이라 느낄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그 전적인 포기와 비움 뒤에 무엇이 있습니까? /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습니다! / 주님께서 자기를 부인하시고 / 십자가에 달리신 후 부활하셨습니다. / 자기를 부인하셨기에, / 부활의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이처럼, / 나를 부인하고 내려놓고 / 십자가의 길을 걷는 삶에 결말은 / 바로 ‘부활’. / 영광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며 / 자기를 부인의 삶을 /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 전적으로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 내려놓고 / 주님의 뜻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 나를 부인하고 /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에, / 그 순종의 결과가 부활입니다. / 영광입니다. / 천국의 소망이 우리 안에 채워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 하나님의 뜻을 더 우선시하며 /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십시오. / 내가 없어지는 것 같고, / 사라지는 것이라 느낄 수 있습니다. / 아닙니다. / 내가 비워지고 부인됨을 통해 / 더 큰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 ‘부활’의 영광을 체험케 됨으로 / 부활의 자녀가 됩니다. / 삶의 전적인 변화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 이 변화의 은혜, 자기부인을 통하여 /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자녀, / 제자로 거듭나는 저와 여러분 되길 원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 하나님께서 제 안에 주신 감동을 나누기 원합니다. / 사실 저에게도 아직까지 부인하지 못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 이번 설교를 준비하면서 /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던 중에, / 하나님께서 / 제 안에 깊게 말씀하시는 것을 체험케 되었습니다. / 제 안에 아직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는 / ‘자기’가 있다는 것을요.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함께 나누기 원하는데,,) / 제가 아직도 부인하지 못하고 있었것은 바로 / 어떤 대상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 사람이 나에게 행했던 모진 말과 / 행동들이 제 안에 상처로 남았었습니다. / 내 안에 상처가 / 주님을 만난 후 / 주님 안에서 치유되었다고 생각했었는데, / 아직까지도 남아있어서 그분을 사랑으로 품지 못하고 / 용서하지 못하고 있던 / 저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 말씀을 갖고 주님 앞에 기도하는데 / 주님께서 말씀하시더라구요. / “동규야,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 사랑으로 품지 못하는 마음, / 전부 비우라! / 사랑하지 못하는 너의 마음 이 시간 부인하라! / 포기하라! / 내려놓으라! / 그리고 사랑으로 용서하고 품으라!”
주님의 음성을 듣고 다짐했습니다. / 용서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했던 마음, / 모두 부인하고 포기하고 사랑해야겠다. / 이 마음을 품고 사랑하고 / 용서하려 / 매일 주님 앞에 기도하며 / 노력하고 있습니다. / 이 순종하는 것이 참 쉽지 않고 어렵더라구요, / 그렇지만 “나는 죽었습니다” 고백하며 / 주님의 힘을 구하고 / 한걸음을 떼고 있습니다. / 그러면서 제가 깨달은 것은, / 이 자기부인은 우리 안에 지속적으로, / 날마다 이뤄져야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이 마음을 품고 ‘자기 부인’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주신 큰 통찰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이 자기부인이 필요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주님이 우리에게 이 어려운 일을 명령하셨을까, 첫 번째는 당연히 ‘나’를 살리시기 위함이죠. ‘나’를 부인하지 않고는 주님의 제자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이 중요한데요.) 두 번째로는 바로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서입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의 하나됨을 위해 ‘자기부인’이 필수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자기부인의 반대가 무엇일까요? 자기긍정이죠. 김세윤 박사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죄를 ‘자기주장의지’(Self–assertive will)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자기주장의지’ 한마디로 자기 말만 맞다는 거예요. 자기 생각만 맞다는 것이죠. 자기주장의지는 나를 죽이고 공동체를 죽이는 일입니다.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다툼과 깨짐이 있는 이유는 각 사람이 '자기만 주장만'하려 하기에, ‘자기 생각만 맞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공동체는 깨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부인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를 부인하고 / 비우고 / 낮출 때 / '하나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 믿으십니까? / 그렇기에 우리는 자기부인을 실천해야합니다. 나를 살리시기 위해, 공동체를 살리기 위해 우리 안에 비움의 역사가 있어야합니다. 비움으로 말미암아 주님께서 나의 삶에 주인 되시고, 공동체가 하나 되는 역사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 -> 시간 없으면 생략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나눈 자기부인, 절대로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제자의 길은 힘들고 고된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막막하고 무거운 짐처럼 느껴지는 ‘자기 부인’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도대체 나를 비우고 부인하는 방법이 진정 무엇일까요. 어떻게 나를 부인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감사하게도 우리 주님께서 바울을 통해 해답을 주셨습니다. 우리 다함께 갈라디아서 2장 20절을 봉독합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할렐루야! / 이것이 자기 부인의 핵심입니다. / 사도 바울은,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말합니다. / 지금 사도바울 자신이 / ‘입’으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 어떻게 자기 부인할까 고민하다가 / 탄성을 자아나며 / 스스로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 바로 자기 부인의 방법은 /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 나 자신도 죽었음을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 주와 함께 죽었음을 인정하고,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간 / 우리 가슴의 손을 얹고 / 이렇게 한번 고백해보겠습니다. / ‘나’는 /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 (자신의 이름을 넣어서) / ‘나 황동규는 /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 여러분 믿으십니까? / 우리의 힘으로는 나를 부인하고, / 나의 자아를 죽이지 못합니다.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 우리가 자기 부인의 길을 걷는 방법은 오직, /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음을 / ‘아멘’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나도 죽었음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 이렇게 고백할 때, 진정 자기 부인, /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이 / 실제가 되리라 믿습니다.
여러분, / 예수님께서 처절하게 눈물로 / 자기를 부인하시고 / 십자가에 길을 걸으신 것을 / 기억하십시오. / 그 은혜, / 주님께서 눈물로 먼저 보이신 자기부인. / 우리도 닮아가기 원합니다. / “나는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완전히 죽었음”을 인정하고 / 선포하며 / 순종의 길을 걸으십시오. /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 이미 우리 안에 완성하신 일입니다. / 주께서 이미 우리 안에 이루셨습니다. / 이제 우리가 해야할 것은, / 믿고! / 선포하고! /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여러분, / 내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라는 것을 인정할 때 / 자기부인이 시작됩니다. / 하나님 앞에 두 손 드는 것, / 하나님께 내 인생의 짐을 내려놓는 것이 / 자기 부인의 시작입니다. / 이 시간, / 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 내가 쥐려고 했던 모든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길 소망합니다. / 포기하고 / 내려놓고 /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 / 우린 자연스레 자기부인을 통해 / 주의 제자로 거듭납니다. /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사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 현재 여러분이 부인하지 못하고 있는 ‘자기’는 무엇입니까? / 어떤 것이 여러분이 제자가 될 수 없게 / 가로 막고 있습니까? / 이 시간 완전히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 주님보다 높아져 있는 그 모든 것들, / 주님 앞에 드리십시오. / 그리고 주님의 뜻에 전적으로 / 순종, / 복종하십시오. / 주님께서 먼저 자기부인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 그 순종을 기억하며 / 우리도 자기부인의 길을 걷기 원합니다.
오늘 기도할 때, / “예수님, 나는 죽었습니다” /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습니다” / 믿음으로 고백하는 역사가 나타나길 원합니다. / 날마다 삶 속에서 이 고백이 우리 안에 터져나오길 원합니다. / 바라기는, 온전히 나를 비워내고, 나를 죽여서, / 순종함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주의 자녀들로 거듭나서 / 주님 앞에 섰을 때, /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 듣는 귀한 주의 제자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