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필요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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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처음이라는 것을 경험합니다. 처음 학교를 갔을 때 같은 것 말이죠. 그리고 그 처음이라는 것을 경험할 때 긴장하고는 합니다. 그래서 어떤 선생님의 말을 빌리면 아이들이 처음 입학 했을 때가 제일 얌전하고 조용하다고 합니다. 또,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처음 사회에 나갔을 때를 생각해 봅시다. 여기 청년들 직장인들이 아닌 친구들도 있지만 대부분 사회에 나가서 처음 직장을 다니면서 많은 자괴감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하면 나는 원래 괜찮았던 사람인데 처음 접해보는 환경으로 인해 실수하기 때문이죠. 또, 형제들 같은 경우에는 군대라는 경험을 하게 되죠. 저 번주에 주찬 청년이 군대에 입대를 했는데 제가 군대에 입대 했을 때에도 처음이다 보니 많은 기대감과 긴장, 그리고 그 안의 약간의 두려움을 안고 입대를 하였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 거의 다 군대를 경험하셨을텐데 처음 입대하면 어리버리해서 많이 혼났던 기억들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가정을 이룰 때가 있을 것이예요. 결혼을 하고 하나의 새로운 가정을 이루게 되었을 때, 이제부터는 누군가와 함께 걸어간다는 것이 너무 좋기도 하지만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나 혼자가 아니라 이제는 누군가를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를 경험하며, 그러한 경험은 처음 겪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청년들이 아직 경험해보지 않은 아이를 출산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님들은 모두 경험하셔서 하나의 좋은 기억으로 남으셨을 것이지만, 그것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결혼1년차의 저는 너무너무 무서웠습니다. 병원에서 밤을 같이 지새며, 애는 잘 나올지, 와이프는 아파하는데 어떻게 할지 몰라 했던 모습은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아직은 직접 경험하지 못한 죽음이란 것도 우리는 언젠가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그 죽음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죽음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두려워하여 불로초를 찾아 헤매고, 지금도 그것을 위해 연구하고 살아가는 인간들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처음이라는 것은 너무 좋은 단어이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무섭고 두려운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원래부터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두려워합니다. 앞으로의 일을 모르기에 그것을 알려고 무단히 애를 썼고 알기 위해 수많은 예보들을 보내고, 대비하고자 보험이라는 것도 만들었습니다. 그나마 이러한 시스템으로 경험하지 못했던 사건이 일어났을 때의 두려움과 걱정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말이죠. 그런데 수천년전 이러한 시스템의 도움 없이 이러한 일을 온몸으로 경험한 사람이 있습니다. 오늘 함께 읽은 여호수아에 대해 같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읽은 말씀은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여호수아의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갔던 모세가 죽고 하나님께서는 그 자리에 눈의 아들 호세아, 즉 여호수아를 이스라엘을 이끄는 지도자로 세우셨습니다. 여호수아는 출애굽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의 전투를 벌인 출애굽기 17장에서 처음으로 이름이 등장합니다. 여호수아는 그 이후 모세의 곁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저 멀리 가나안 땅이 보이는 모압 평지 앞에 있는 비스가 산 꼭대기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그리고 죽기 전 오늘 말씀의 주인공인 여호수아에게 안수함으로 자신의 사명을 마치고 그 이후의 일들은 여호수아에게 맡기게 됩니다. 여호수아의 입장에서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엄청난 일을 감당했던 모세 곁에서 그 많은 것들을 보았던 여호수아는 이제 모세는 없고 그 모든 것들을 혼자 감당하게 됬습니다. 성경에서는 이 여호수아가 느끼는 불안감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면 하나님께서는 3번에 걸쳐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성경에서 숫자 3은 완전한 수이기 때문에 여기서 단순하게 3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구나라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여지껏 느낄 수 없는 불안과 걱정, 두려움 가운데 빠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렇게 위로와 격려를 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인 여호수아를 하나님이 어떻게 붙잡으셔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존귀하심이 드러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제가 처음에도 이야기 했지만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수 많은 일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겪게되는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항상 처음이라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그 처음이라는 것을 통해 우리는 두려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우리 앞에 놓여있을 때, 우리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호수아와 같은 심정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당시 여호수아는 크고 많은 두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입장에서 볼 때 모세의 죽음으로 자신을 이끌어주던 멘토이자 지도자가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자신이 담당해야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많이 언급을 했습니다. 민수기 27장에서도 신명기 31장이나 34장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음 지도자는 여호수아다 라고 말이죠. 하지만 생각해봅시다. 얼마나 큰 부담감으로 다가올까요? 그리고 만약 다음 지도자로 임명을 받은 것은 괜찮지만 자신의 멘토가 사라졌다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죠. 모세가 죽었다는 것 말입니다. 어려울 때 기도로 도와줄 사람, 그리고 옆에서 지도해줄 사람, 조언을 해줄 사람. 이러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말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이 엄청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애굽왕에게 대적하여 자신들을 통솔하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자신들을 먹였으며, 지금까지 이끌어 그 가나안땅을 바로 앞에 도착하게 하였습니다. 그러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단한 사람이었고 그것은 여호수아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의 영적인 스승이자 멘토가 사라진 여호수아는 두려웠습니다. 그리고 그 위대했던 지도자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야 했습니다. 지도자의 자리는 비교를 당할 수 밖에 없는 곳이라는 것이죠. 모세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있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격려하시며 이야기 하십니다. 여호수아 1:5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굳이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고만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를 하나님께서 언급하시면서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겠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여호수아는 모세와 지극히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악함으로 인해 고통 받는 모습을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러한 완악함이 참 두려웠을 것이예요.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 말도 잘 듣지 않고 자기 자신들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했기에 전염병 사건이나, 불뱀 사건, 황금 송아지등 여러 사건들로 모세를 힘들게 했던 일들이 생각 났을 것이예요. 이럴 때마다 모세는 하나님을 붙잡고 한탄하며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았던 여호수아는 두려웠습니다.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의 말도 잘 듣지 않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잘 이끌수 있을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가질 수 없을 뿐더러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알아 볼 수 있는 곳이 1장 후반에 보면 여호수아가 백성들에게 처음 명령을 내리면서 특별히 먼저 가나안 땅을 점령하여 땅을 배분 받은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지파에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요약하면 너희는 너희가 살 땅을 점령해서 사는 것은 좋은데 나머지 지파를 위해 너희들도 무장해서 형제들을 도와 함께 가나안을 정복하자 였습니다. 그럴 때 이들이 뭐라고 대답하면 17절 말씀에 “우리는 범사에 모세에게 순종한 것 같이 당신에게 순종하려니와 오직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모세와 함께 계시던 것 같이 당신과 함께 계시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고백을 하면서 18절 하반절에 여호수아를 위로합니다. “오직 강하고 담대하소서” 라고 말이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격려했던 것처럼 두려워하던 여호수아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격려하는 장면이 나오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두려워 했던 것은 막강한 가나안 족속들에 대한 강대함이었습니다. 여러분 신학적으로 보면 뭐 두려워 할 것이 있냐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칼과 방패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의 입장이라면 두려워 할 수 밖에 없는 부분입니다. 이 때 당시 가나안 일곱 족속들은 철기 시대를 살아가고 있었으며 철병거로 무장한 나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청동기 문화에 속해 있었고 온전히 정착하지 못한 상태였기에 싸울 무기들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한 노예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무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습니다. 팩트만 놓고 본다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기존의 군대 장관과 같이 모세의 지시를 받아 전장에 나갔다면 명령에 순종하며 싸움에만 집중을 하면 되었지만 이 여호수아는 이제 군대 장관이 아닌 공동체를 이끌어가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생각할 것이 많고 고민해야 될 것,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부분까지 고민하고 염려하며 두려워하는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땅에 대한 약속을 언급하십니다. “내가 모세에게 말한 바와 같이 너희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곳은 모두 내가 너희에게 주었다” 라고 말이죠. 그렇기에 여호수아가 이러한 두려움과 걱정하는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그리고 지금 이시대에 살아가며 두려워하는 우리들에게 세번에 걸쳐 이야기를 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라고 말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강하고 담대하게 우리 앞에 닥친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3가지가 있습니다.
첫번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3절 말씀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리고 모세에게 약속하신 땅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너희가 밟는 모든 곳은 모두 주었다”고 미래완료형으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약속을 신뢰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는것. 이 두가지가 같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아갈 수가 없어요. 아니 나아가지 않아요. 믿지 않은 것을 굳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 약속을 실천해 나가는 것. 이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약속을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입니다. 민수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불뱀에 물렸을 때, 장막에서 나와 장대에 달린 놋뱀을 보기만 하면 나을것이다 라고 말했을 때, 그것을 믿고 실천한 사람들은 그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아니 구원 받았다. 여호수아의 원래 이름인 호세아. 그 뜻은 구원입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의 뜻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 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분을 믿고 나아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지만 나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과연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라고 말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신뢰한다고 하지만 그 약속을 굳게 믿고 실천해야 하는가라고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두번째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모세가 위대한 지도자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섬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대면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에 보면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라고 선언하십니다. 하지만 유일하게 모세만 하나님과 대면하여 말하는 것 처럼 표현하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라고 말이죠. 그만큼 모세는 하나님과 친밀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가운데 여호수아도 함께 있었습니다.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모세가 하나님과 친밀하게 있었던 것을 여호수아는 알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5절 말씀에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라고 말이죠.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라고 말이죠. 여러분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믿음을 함께 지켜나가는 사랑하는 동역자들도 있지만 위대한 지도자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그리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와도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을 때 우리 앞에 닥친 것들을 능히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율법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7절 말씀에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말씀에는 경중이 없습니다. 특히 크리스챤들이 착각하는 것들이 몇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말씀에는 경중이 없고, 또한 죄에 경중이 없다는 것입니다. 죄는 죄입니다. 작은 죄, 큰 죄 이런거 없습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거는 지켜도 될만하니까 하고, 이거는 어려우니까 건너뛰고, 이것은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지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8절 말씀에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제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우리의 입에서 말씀이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 그것을 우리가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캠퍼스 사역을 하면서 가르친 청년들에게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침에 보고 자기 전까지 생각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내가 하나님의 말씀이 내 가운데 항상 있게 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내가 그것들을 지켜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평탄하게 될 것이며 형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 형통이란 잘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잘됨이 아니라 영적인 잘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 이름의 형자가 “형통할 형”자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삶은 쉽지 않은데 하나님의 이끄심을 많이 느끼시게 하기 위함인 것 같습니다. 이러한 형통한 삶으로 이끄실 때 우리는 우리 앞에 놓은 걱정과 두려움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에게 있었던 두려움은 여전히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특히, 이 시대의 수 많은 청년들이 느끼는 두려움 중 하나는 내가 교회에서 나의 시간을 보내면 다른 친구들에게 뒤쳐진다는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에서 보내는 시간이 커지면 커질수록 내 친구는 사회에서 수많은 스펙을 쌓고 앞서나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 시대의 청년들이 주일에만 잠깐 예배 드리고 그 이상의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두려워하며 세상 사람들과 동일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청년들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들은 수많은 두려움에 쌓여 있습니다. 모세가 살아있던 시기의 여호수아는 자신에게 시키는 일만 했습니다. 자발적인 헌신이 아닌 수동적인 헌신과 제한적인 일들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가운데 내가 모든 것을 헌신해야 할 때 그 앞에 있는 두려움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헌신하고 또한 하나님께 나의 삶과 시간과 모든 것을 드려야 하는 헌신의 때를 맞이하게 될 때 오는 두려움을 우리는 극복해야 합니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수많은 두려움과 걱정 어려움이 우리 앞에 놓여 있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라고 말이죠.
말씀을 마무리 하겠습니다. 저는 우리 청년들 뿐만 아니라 성도님들 모두 주어진 상황은 모두 다 다르지만 정말 두렵고 떨고 있는 상황 가운데서 이겨내야 한다고 다시 한번 도전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황을 뛰어 넘어 2천년전에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사랑하는 은혜숲교회 청년들, 그리고 성도님 여러분.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어떤 환경 가운데서도 강하고 담대하게 극복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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