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구원, 끝나지 않는 가슴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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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6:30~32
판교에 있는 우리들교회를 담임하시는 김양재 목사님을 잘 아실 겁니다. 김목사님은 4대째 믿는 집안의 막내딸이었고 자신도 10여 년을 교회 반주자로 봉사했지만, 진짜 크리스천이 된 것은 결혼하고 난 다음이었다고 합니다.
이분은 서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하셨고 졸업한 후에는 음대교수가 되고 싶었는데, 유복한 집안 환경과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남편이 그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서 의사인 남자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남편은 의사이고 시아버지는 장로님이고 시어머니는 권사님이니까 전부 결혼 잘했다고 그러지 않았겠습니까? 어렸을 때부터 교회 한 번도 안 빠지고 열심히 반주자로 봉사해서 하나님이 복을 주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계산은 보기 좋게 빗나갔는데요. 돈 세상 능력을 보고 결혼을 택한 김목사님의 결혼생활은 정말 혹독한 훈련이었다고 그럽니다. 목사님이 책에 쓰신 대로 읽어드리면 “시집에서의 삶은 끝없는 청소의 연속이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첫날부터 시작된 청소는 하루종일 마른걸레, 물걸레, 기름걸레를 들고 온 집안을 샅샅이 닦고 또 닦는 가혹한 노역으로 이어졌다. 엄격한 시어머니는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고, 걸레가 지나치게 물기가 많거나 말라 있으면 걸레를 바닥에 집어던지며 혹독하게 며느리를 몰아세웠다. 당시에 나는 늘 교양있는 여자로 비춰지길 원했던 내면의 욕망 때문에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고 살아내야만 했다.”
결국 김목사님은 견디다 못해 집을 가출하게 되었고요. 기도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로 시부모와 관계 회복을 이루게 됩니다. 진심으로 사랑함으로 섬기니 시어머니의 마음이 열려 서로 진실한 고백을 나누는 관계가 된 것이죠. 그런데 의사로서 왕성한 삶을 살던 남편이 갑작스럽게 간암으로 쓰러지게 되었고 아내의 전도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기도 중에 운명하시게 됩니다. 결혼과 함께 방향을 틀었던 그녀의 삶은 결혼생활 13년 만에 남편과의 사별로 또 한번 크게 방향을 틀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교회 구역예배에서 큐티 모임을 시작한 것이 이어져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아 2003년 6월 우리들교회 담임목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결혼할 때 믿음 좋은 사람을 찾습니다. 그래서 결혼할 때 “나는 믿음 하나만 있으면 돼요.” 그렇게들 말하는 청년도 보고 부모도 봅니다. 그런데 대개는 말뿐이지, 사실은 다른 조건을 보게 되더라고요.
대부분 믿음 좋다는 것을 교회 열심히 다니고, 성격이 착한 사람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생활을 열심히 하는 분들 중에 겉은 착해 보이지만 속은 완고한 사람이 많습니다. 오히려 예수 믿지 않는 사람 중에도 착한 사람은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믿음 좋은 사람이란 밝은 영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시니까.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정말 믿음 좋은 사람은 겸손하지만, 영적으로는 당당한 사람입니다. 열등감, 두려움, 염려로부터 자유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들도 그런 밝은 영을 주시길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을 믿는 사람, 내 자아가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사람은 이런 사람이 됩니다. 이것이 믿음 좋은 사람입니다.
얼마 전 흥미로운 주제의 연구조사가 있었는데요. “당신을 기독교 신앙으로 인도하거나 도움을 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라는 조사입니다. 제가 왜 흥미롭다고 했냐면, 이 통계는 여러분과 저처럼 모태신앙이거나 2, 30년 이상 신앙생활을 한 뼛속까지 기독교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가 아니라, 최근 10년 안에 신앙을 가진 회심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기독교 신앙에 처음 입문한 지 10년 이내에 사람들인 셈이죠. 누가 그들을 신앙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도와줬을까요?
먼저 1위는 친구(20%)입니다. 어렸을 때는 친구 따라 교회 많이 오잖아요? 그다음이 부모(15%)이고 친형제나 자매가 (11%), 친척이 9%이고요. 배우자는 오히려 4%밖에 안 됩니다. 순위로만 보면 친구가 가장 높은 것 같지만, 그다음 순위를 이루는 부모, 형제자매, 친척, 배우자를 모두 합치면 40%가 됩니다. 즉 회심을 도와준 이들을 가족이라는 범주 안에서 보면 친구나 선후배 관계를 뛰어넘어서 가족이 가장 높은 비율로 나타난다는 것이죠. 이것은 전도에서 가족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서울신대 최현종 교수님의 <한국 종교인구 변동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을 보면, 개신교의 경우는 ‘가족의 권유’가 가장 높게 나왔다고 합니다. 심지어 다른 종교에서 개신교로 옮긴 이들의 경우도 가족의 권유가 44.8%나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개신교, 천주교 모두 가족의 권유가 50%가 넘는 중요한 결과입니다.
누구를 통해 회심하게 되었는지, 개신교로 개종하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유의미한 통계인데요. 그 중심에는 가족 전도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도 가족이 함께 구원받는 이야기가 참 많이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여리고성의 라합이라는 여인은 믿음으로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도와주고, 그녀는 물론 가족까지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또 예수님의 제자인 안드레는 그의 형제인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했고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는 친인척을 다 모아서 베드로에게 가족 전체가 세례를 받지 않았습니까?
이게 왜 이렇게 가능하냐면은요. 고대 사회에서 개인은 항상 가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 공동체의 전승에 따르면 오늘날과 같은 혈연중심의 직계 가족뿐만 아니라, 노예까지 포함한 확대된 가족이었어요. 그래서 주인이 세례를 받으면 노예도 세례를 받았던 것이죠. 우리는 전도라고 하면,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티슈와 전도지를 내밀고 “예수 믿고 구원받으세요!”라고 외치는 노방전도를 많이 떠올리실 겁니다. 이런 전도 방법이 일반적이지만, 성경에는 가족 전도의 사례들이 더 많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진정한 전도의 대상자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요. 그 가까운 곳에 있는 이들이 또한 가장 전도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도 중에 가장 어려운 전도가 실은 불신 가족 전도입니다. 여러분 중에 아직도 구원을 받지 못한 가족들이 있어서 기도하시는 분이 있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분명한 답을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가족 전도를 위해서 기도를 하셔도 조심하실 것은, 조급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집사님이 눈물을 흘리면서 “목사님, 언제까지 가족 전도에만 매달려야 하나요?” 하고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말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많아 보이는데, 가족이 다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가족 전도에만 매여 있는 자기 신세가 너무 처량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또 어느 권사님은 “한 사람만을 위해서 살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아깝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 남편 한 사람 때문에 내가 얼마나 세월을 기다렸는지 아십니까? 이제 나도 이만큼 늙었고 남편 구원하는 문제 때문에 내 평생을 다 허비하는 것 같은데, 정말 답답해서 미칠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이렇게 남편 구원에 매달려야 합니까?”
여러분, 바로 이렇게 언제까지 내가 가족 전도에만 매달려 있어야만 하는가 하는 조급한 마음이 성령님의 역사를 가로막고 있는 걸림돌임을 알아야 합니다. 가족 전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그것은 하루가 급한 일이긴 하지만, 꼭 기억할 것은 조급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그런 조급한 마음이 드신다면 오히려 기도를 바꾸셔야 합니다. ‘하나님, 만약에 내 남편 한 사람 구원하라고 제게 사명 주신 것이라면 제가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가 남편 구원을 위해서 평생을 살겠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을 위한 사명이 어떨 때는 자신의 인생을 허비하는 것같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깨닫고 보면 그것은 정말 귀한 사명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믿지 않는 가족에 대해 ‘다 하나님이 때가 되면 알아서 하시겠지’ 하면서 방관하시는 분들이 계시기도 했습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마16:26)’라고 말씀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알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가족 상황이 어떤가요? 부모와 자녀 한두 명으로 조촐하게 구성된 핵가족 시대는 벌써 예전 말이고요. 이제는 1인 가족, 심지어 독신들도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미국의 경우이긴 하지만, 팀켈러 목사님은 가정의 달의 설교를 할 때, 독신에 대한 주제로 설교를 했습니다. 요즘은 나이든 부부가 따로 사는 졸혼까지 생겨서 전통적 가족이 해체되는 시대 아닙니까? 이제는 가족이 과거와 같이 무조건 안정감을 주고 행복감을 주는 공간이 아닙니다. 꽤 많은 이들은 가족의 보호와 후원보다는 억압과 스트레스를 경험하기도 하고, 자식 때문에 참고 살던 부부의 인내력은 과거보다 못한 것 같습니다. 부모에 대한 자녀의 분노와 냉담은 더 심해졌고요. 가족 간의 소통과 유대감이 약화되고 있으니 가족 전도는 갈수록 힘들어지기만 하는 것 아니겠어요? 일반적인 통계이기 하지만,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부모와 함께 다니는 교회를 떠나는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합니다. 기독교 가정일수록 목회자나 중직자 가정일수록 사탄이 얼마나 많은 방해 공작을 펼치겠어요? 대단한 영적 싸움이 일어납니다.
여러분, 많은 경우에 자녀들이 신앙을 잃어버리게 되는 케이스는요. 친구 잘못 만나서가 아닙니다. 교회에 실망해서도 아니고요. 실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공격으로 교회와 멀어지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 놓는 거예요. 사탄은 반드시 부모와 자녀 관계를 공격해서 기독교 신앙에 환멸을 느끼게 합니다. 신앙의 유산이 전승되는 것을 차단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가정이 흔들리고 눈물과 고통이 멈추지 않게 되는 거죠.
창세기의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죄를 지은 후에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이 아담을 추궁하시자 아담은 하와를 탓하고 하와는 하나님이 지으신 뱀을 탓했습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담의 아들들은 서로 미움과 증오로 살인이 일어났고요. 아담 이후의 후손들은 가정 안에 폭력이 발생하며 점점 망가져 갔잖아요? 그러고 보면 이스라엘 최고의 성군이라고 불리던 다윗왕도 아들이 일으킨 반란으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잖아요? 요셉은 형들에 의해 노예로 팔리기도 했고요.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아버지와는 달리 우상숭배를 저지르기도 했습니다. 요한복음 7장 5절을 보면, 심지어 예수님께서도 가족들에게 의심과 불신을 받기도 하셨습니다.
이러한 성경의 기록은 가족을 전도하지 못해 고민하고 죄책감으로 힘겨워하는 분들에게 오히려 위로를 주는 것 같지 않으세요? 아무리 탁월한 목사라고 하더라도요. 자녀나 가족을 전도하지 못해서 오랫동안 애를 끓는 분들 많습니다. 저만 하더라도 제 여동생 부부가 전도대상자이거든요. 저한테는 동생 가족을 전도하는 게 제 숙제에요. 숙제. 여러분들도 숙제 있으시죠? 오늘 말씀의 제목처럼 가족구원은 끝나지 않는 가슴앓이입니다.
그만큼 가족 전도에 대한 고민은 어느 누구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자식은 물론이고 사위도, 며느리도, 또 시부모님이나 처갓집 식구 중에도 믿지 않는 분들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혹은 한때는 교회를 열심히 다녔는데, 지금은 하나님을 떠나 있는 가족도 있을 것입니다.
선교사 중에는 인도 선교사도 있고 중국 선교사도 있지만, 더 중요한 선교사가 있다는 것을 아십니까? 바로 가정 선교사입니다. 우리 가정에서 나라의 역사를 바꿀 어떠한 위대한 사람이 나올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위대한 선교사는 바로 가정 선교사입니다.
다행인 것은 성경은 결코 완벽한 가족상을 우리에게 제시하며 우리를 주눅 들게 하지 않습니다. 단지 내가 믿음이 좋으면 가족에게도 전도가 쉽게 되고 나랑 같은 마음으로 신앙 생활하는 것으로 묘사하지를 않아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은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하듯이 아무리 우리가 그렇게 열심히 기도해도 가족 전도는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뼈가 되어서도 가족에게 전도하고 싶습니다!” 이 말은 일본에서 기독교 장례문화를 선도한 비스가 납골당 채플을 설립한 분의 말입니다. 뼈가 되어서라도 가족에게 전도하고 싶다는 말에 그 뭉클한 심정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죽어서도, 흙이 되어서도 가족에게 전도하고 싶다는 말이잖아요? 여러분, 이 말을 기억하십시오. 뼈가 되어서도 흙이 되어서도 불신 가족을 전도하겠다는 바로 이 말! 여러분, 가족 구원은 내가 살아 있을 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도 계속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가 가족을 전도하는 일에서 포기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뼈가 되어서라도 우리가 모르는 내 후대까지 이어지는 것이 가족 전도입니다. 시편 78:5~7
5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의 자손에게 알리라 하셨으니
6 이는 그들로 후대 곧 태어날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들의 자손에게 일러서
7 그들로 그들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계명을 지켜서
이렇게 곧 태어날 자손에게 알게 하고 또 그 자손에게 일러주는 것이 가족 전도입니다. 복음은 우리 자녀와 그 자녀들로 계속 이어지는 거예요. 여러분, TV 드라마를 보시면 한때 원수같이 싸우던 가족이 다시 화해하는 스토리들이 많이 있지 않습니까? 가족은요. 갈등과 미움이 존재하기도 하지만, 묘하게도 에서와 야곱처럼 극적인 화해가 이루어지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 미울 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미운 가족과 행복해지길 원하기도 합니다. 이런 강력한 애증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이라는 것이죠. 그런 면에서 가족이 주는 영향력은 살아생전에 그치지 않습니다. 부모는 죽은 다음에도 자녀에게 계속 유산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죽어서도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습니다. 내 당대에 살아 있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의 자녀들은 부모의 마지막 순간을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부모의 마지막 모습보다 자식들과 함께 한 30년, 40년 세월을 더 기억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자식들에게 예수 믿는 부모로서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길 원하십니까?
자, 제가 이쯤에서 여러분들에게 질문을 한 가지 드릴게요. 가족전도가 쉽지 않다는 것은 다들 공감하실거예요. 그렇다면 가족전도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믿지 않는 남편, 자녀들, 부모 전도하는 일이 어려운 이유가 뭘까요?
이에 대해 대학생 선교단체인 CCC의 설립자인 빌브라이트 목사님은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낯선 사람을 전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이유에 대해 가족은 우리의 민낯을 다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지인이라도 가족이 아닌 이상 적나라하게 내 실체를 알지는 못하잖아요? 하지만 가족은 짧게는 한 20년, 30년 혹은 50년 넘게 내 삶의 모습 궤적을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 삶이 감동적으로 변화되지 않는 한, 말로 권하는 가족 전도는요. 설득력이 약합니다. 그래서 좀처럼 믿으려 하지 않는 가족들 때문에 실망이 되기도 하고요. 그냥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족을 구원하려면 ‘잘 전도하기보다’ ‘잘 살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반복) 왜냐하면 복음이 그야말로 좋은 소식이어야 하거든요. 복음이 좋은 소식이 아니면 생명력을 지닐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가족 전도는 내 민낯을 보여야 하는 적나라하고 어려운 전도이지만, 결코 실망해서도 포기해서도 안 됩니다. 왜냐하면 내 자녀뿐 아니라, 그들의 자녀에게도 기억과 유산으로 부모의 신앙이 이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가족 전도는 적나라한 전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원한 전도이기도 합니다.
자! 저를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가족 전도는 / 영원한 전도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부터는 불신 가족의 다섯가지 유형들이 있는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내가 전도해야 할 가족은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를 주보의 설교 노트를 참고하시면서 메모도 하시고 잘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전도하기 쉽지 않은 첫 번째 유형은 동원형입니다. 이 동원형은 교회에 나오긴 나오는데 마치 ‘동원’되듯이 부모에 의해서, 혹은 배우자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오는 이들을 말합니다. 집안에 동원형 가족들 없으세요? 몸은 교회 안에 있는데, 마음은 이미 집에 가 있어요. 그래서 진정한 신앙고백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어찌나 소극적으로 교회만 다녀주는지 열심히 많은 여러분들이 보실 때는 너무도 못마땅한 거예요.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 중에 누구도 그들을 쉽게 회심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이 아니시고는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지 못하는 거죠. 따라서 이런 동원형의 불신 가족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듣는 귀가 열리도록 우선 기도하는 일이 최우선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런 분들을 위한 신앙 교육을 제공해야 하고 가족이 직접 나서기보다는 교회 안에서 유대감을 가질 수 있는 모임에 먼저 연결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목장 모임, 신도회 모임) 다음세대의 경우는 부모님들끼리 유대감을 갖도록 하는 부모교육 같은 모임 얼마나 좋습니까?
두 번째 유형은 밀당형입니다. 대충 느낌이 오시죠? 믿지 않는 가족 중에 이런 밀당형들 의외로 많습니다. 교회에 나올 듯 말 듯 하면서 가족의 애를 태우는 유형이죠. 가끔은 가족의 권유에 못 이겨서 교회에 나오기도 하지만 규칙적으로 출석하거나 꾸준한 신앙생활로 이어지지는 않아요. 동원형이 대체로 교회에 등록만 되어 있고 출석도 곧잘 하면서도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라면 밀당형은 가끔 교회에 기웃거리는 수준입니다. 제가 부목사 시절에 실제로 예배를 드릴 마음은 없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교회까지 친히 데려다주시는 남편 분이 계셨거든요. 밀당하시는 거죠.
김선일 교수님이 쓴 「모든 사람을 위한 가족전도」라는 책을 보면 한 여집사님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분은 남편과 사이는 좋지만, 남편이 교회 출석을 놓고 수년째 자신과 밀당하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 남편이요. 주식투자를 하는데 수익이 생기면 그 사람 다음 주에 교회 오는 거예요. 그러다 손실이 나면 술을 잔뜩 마시고 와서 ‘무슨 하나님이 있느냐?’며 아내에게 화를 내고 따지곤 합니다. 이런 패턴이 계속 반복되니까 아내가 지치는 거죠. 그런가 하면 어떤 남편은 교회만 오면 자는 거예요. 예배 시간에 잠만 자다가 (그럼, 아내가 어떻게 해요?) 팔꿈치로 팍팍! 그러고는 뻔뻔하게 집에 와서는 목사님 흉만 보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 회심이론에 비추어 볼 때, 이런 밀당형에게는 ‘보호막’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인내의 한계를 느끼더라도 가족 간의 모임이나 신앙적 활동에 일부러 소외시켜서는 안 되고요. 교회 문화나 신앙적인 질문에 성의 있게 답해 주는 보호막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냉담형입니다. 냉담형은 기독교에 호의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정적이지도 않은 아예 관심이 없는 유형입니다. 가족들이 아무리 신앙생활을 권유해도 꿈쩍도 안 하는 분들 있잖아요? 그렇다고 또 교회를 다니는 것을 딱히 반대하지도 않아요. 다만 가족의 신앙은 나와는 무관하다는 거죠. 보통 중년 혹은 노년의 남성들에게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일수록 더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젊었을 때는 막 호랑이 같아가지고 뭐라고 한마디만 하면 막 호통만 치던 남편들도요.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게 되잖아요? 남성 호르몬이 다 빠져서 자식들이 끈질기게 전도하면 못 이기는 척하고 교회에 나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목사님, 우리 남편은 예수님이 다시 오셔도 교회 안 갈 사람이에요’ 이렇게 포기하지 마세요.
언젠가 유재석 씨가 진행하는 <유퀴즈>라는 프로그램을 보니까요. 서울대의대 출신의 레지던트들이 출연을 했는데요. 이분들 말로는 레지던트 생활이 너무 힘드니까 그냥 잠수 타버리는 동기들이 있대요. 연락도 안 되고 안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 본인들 당직이나 업무가 두 배가 늘어나니까 잠수 탄 동기를 잡으러 가는 ‘추노꾼’ 같은 동기들이 있다는 거예요. 어디 있는지 수소문해서 집으로 어디로 잡으러 가는 거죠. 유재석씨가 “굳이 그렇게 찾아갈 필요가 있느냐?”라고 물어보니까요. 며칠 잠수 탄 동료들이 병원에 그냥 돌아오려면 멋쩍으니까 일부러 잡혀 올 수 있도록 도와준다는 거예요.
여러분, 한창 교회를 등지고 잠수탔던 가족들은요. 우리가 추노꾼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그냥 교회 다시 나오려면 어렵잖아요? 어쩔 수 없이 나와주는 것처럼 되도록 그분들을 잡으러 가 주세요. 이제 인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은 자신의 판단만으로는 신앙의 세계로 돌아오는게 어렵습니다. 좀 더 믿음의 눈으로 보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거룩한 타이밍을 놓치지 마시고요. 사랑의 추노꾼이 되어 주세요.
자! 주변에 있는 분들과 한 번 더 이렇게 말씀해 주세요. “사랑의 추노꾼이 됩시다”
그런가하면 네 번째 유형은 안티형입니다. 말 그대로 교회 얘기만 나오면 공격적으로 변하고 때로는 믿는 가족을 핍박하는 그런 분들이세요. 이런 유형의 가족을 둔 성도님들은 참 힘듭니다. 주변에 안티형 가족을 둔 교우님이 계시면 많은 위로를 해 주셔야 해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안티형 가족일수록 의외로 급진적인 회심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인데요. 이런 분들은 인생의 문제들에 집중적인 에너지를 투자하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인생의 위기에 직면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갑자기 전향할 수 있다는 것이죠.
한 목사님 교회에 있었던 일인데요. 어떤 여집사님의 가정에 남편 분이 완전 안티형인 거예요. 얼마나 집요하게 아내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지 목장모임을 하려고 집에 모인다고 하면 일부러 그날은 일찍 집에 퇴근한대요. 보통 믿지 않은 남편들은 심방 오거나 목장 모임을 한다고 하면 일부러 나가시잖아요? 그런데 이분은 일부러 조퇴를 해서 거실을 독차지한다는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가족 여행을 가려는 중에 갑자기 이 남편에게 뇌졸중이 왔습니다. 생사의 갈림길에서 가족과 교인들이 함께 기도한 끝에 가까스로 회복이 되었고 이분이 투병 기간 자신의 인생과 영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게 된 거예요.
퇴원한 후에 심방을 받는데, 목사님이 예수님께 인생을 드리라고 권면을 했고 골똘히 생각하시다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아내와 가족에게 행했던 못된 언행들을 회개했다고 합니다. 앞서 거룩한 타이밍을 얘기했는데 바로 이런 케이스가 되는 거죠.
여러분, 이런 안티형 가족은 이렇게 위기를 통해서 어떤 식으로 하나님께 사로잡힐지 모릅니다. 그러니 너무도 식상한 말이지만, 인내하고 기도하고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상심형입니다. 이 유형은 과거에 교회를 다녔지만, 공동체에서 어떤 상처를 받았거나 부정적인 경험을 해서 신앙을 떠난 가족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가장 전도하기 어려운 유형일 수도 있는 게 이미 교회를 다닌 경험이 있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던 교인들의 실상도 다 알아요. 그래서 웬만한 기독교 용어나 메시지들을 들어도 좀처럼 반응이 오질 않습니다. 아마 여러분들의 가족 중에 이런 분들이 꽤 계실 겁니다. 문제는 교회만 안 나가면 좋은데 신앙을 아예 등지게 되는 게 안타까운 거죠. 어떤 경우는 믿는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행복하지 않은 유년기를 보낸 이들에게서 이러한 상심형의 유형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톰레이너라는 분은 기독교에 상심한 이들에게 너무 직설적이고 적극적인 전도는 자제하고 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경험을 한 가족이 있다면 그들의 상처와 아픔에 공감해 주고 그 사연을 진심으로 들어줘야 하고 긴 시간을 들여서 돌봄을 해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무엇보다 주의해야 할 점은, 불신 가족이 기독교에 대해 거부감을 나타낸다고 해서 그 가족이 기독교를 싫어하는 것이 곧 나를 싫어하는 것이라고 확대하여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오히려 어떻게 해야 해요? 예수님의 마음으로 섬기고 격려함으로써, 그들의 돌같이 굳어졌던 마음이 녹아내도록 마음이 열리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불신 가족 유형 5가지를 함께 살펴봤는데요. 지금 여러분들이 가장 기도하고 있는 믿지 않는 가족은 어느 유형에 속하십니까? 어쩌면 5가지가 골고루 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과 실라가 탈옥을 한 줄 알고 스스로 자결하려고 했던 감옥의 간수는 그 두 사람의 발 앞에 엎드려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에 그들이 말하길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대답을 하지 않습니까? 내가 먼저, 여러분들이 먼저 주 예수를 믿으셔야 합니다.
17세기 유명한 청교도 설교가인 리차드백스터 목사님의 [참 목자상]이라는 책에서 아주 유명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목사가 목회 잘하는 길은 목사 자신이 예수님 잘 믿는 것이다.”
여러분, 가족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예수님 안 믿는 가족 전도하는 길이 무엇이냐? 권사인 내가, 장로인 내가, 집사인 내가 교회에서만 잘 믿는 것이 아니라, 가정에서도 예수님을 잘 믿으면 됩니다. 먼저 믿은 내가 예수님을 잘 믿으면 되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전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며 잘 살아가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전도는 눈으로 보여줘야지 귀로 들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남편에게 아내에게 또는 아이들에게 부모에게 형제에게 꼭 예수님 믿으라고 구원받으라고 전도하면 “너나 잘하세요!” 하는 말을 들을 수도 있는데, 이것이 성령님의 음성일 수 있는 거예요. 내가 예수님 잘 믿으면 그 사람도 반드시 예수님 믿게 되어 있습니다.
특히 아내들은 절대로 말로 남편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아무리 설교해도 듣지 않고 남편 마음은 더 굳어지는 것 아닙니까? 어떤 부인이 도무지 자기 말로는 안 되니까 기독교 방송을 집에서 크게 틀었대요. 그것이라도 듣고 변화 받으라고. 그랬더니 남편이 아예 집을 안 들어오려고 한답니다. 방법을 잘못 택한 것입니다. 사이가 가까울수록 설교하는 말은 오히려 잘 통하지 않습니다. 듣고 변화시킬 수 없는 가족은 보여주는 길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 믿지 않는 가족들은 예수님을 먼저 믿은 우리를 본다는 거예요. 가족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의 사건입니다. 그 말은 우리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것인데, 우리가 하려고 하니까 오히려 성령님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전도가 다 그렇지만, 불신 가족을 전도하는 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불신 가족을 삶으로 전도하려다 보니까 내가 진짜 예수님 믿는 사람이 되어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다 예수님 믿는 가족들인 것 같아도 아직도 진정으로 거듭나지 못한 가족들이 있지 않습니까? 가족 구원은 끝나지 않은 가슴앓이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진짜 예수님 믿는 사람이 되면 거기서부터 해결됩니다.
2년 전에 분당우리교회에서 만든 불신 가족을 전도축제에 초청하기 위해 만든 영상이 있습니다. 짧은 영상이지만, 내가 전도하고 싶은 가족에게 어떻게 진심을 전할 수 있을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상
❙합심기도
여러분, 잠깐 눈을 좀 감아보시겠습니까? (반주)
저도 그렇고 여러분들도 마지막 숙제가 있습니다. 여러분들 가족 중에 누가 주님 앞에 나와야 하나요? 한때 교회생활 열심히 했던 상심형의 자녀들입니까? 여전히 돌같이 굳은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안티형의 배우자인가요? 부모님이신가요?
우리가 다들 너무 바쁘게 사니까 ‘알아서 하시겠지’라는 마음으로 방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너무도 조급하고 답답한 마음이 드십니까? 그 조급한 마음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세요. ‘주님, 제가 먼저 예수 잘 믿고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길 원합니다. 저에게 평안의 밝은 영을 주시옵소서. 믿지 않는 내 불신 가족에게 거울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여러분, 가족 전도는 영원한 전도입니다. 끝나지 않는 가슴앓이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진심어린 마음을 전하세요. 영상에서처럼 ‘사실 내 마음은 우리가 같이 예수님을 믿고 행복해지길 원해’ 그 마음을 전해 보세요. 이 시간 오늘 말씀 기억하시면서 끝나지 않는 가슴앓이 같은 내 불신 가족을 위해 그 이름 불러가며 합심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침기도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주님,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은 예수 믿는 우리를 먼저 보게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있는 가족의 구원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한 일 인줄로 믿사오니, 가족 전도는 영원한 전도이며 먼저 믿은 내가 가정 선교사임을 알고 끝까지 그 영혼을 위해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면서 예수님을 잘 믿는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멀지 않을 때에 반드시 주님 앞에 나와 함께 예배하며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은총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리며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찬송가 620장 결단의 찬양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가족 전도는 영원한 전도임을 알고 예수님을 잘 믿으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도하길 소망하는 우리 성도들 머리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히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