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9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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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한옥자쌤
본문 눅4:23-27
예수님께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며 귀신들린 자들도 낫게 하셨다. 점점 예수님에 대한 소문들은 많은 지역에 퍼지기 시작했고 많은 인파들이 예수님을 만나보기 위해, 그분께 고침받기 위해,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몰려들기 시작한다. 마치 당시 연예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쌓이셨고, 그분이 어디로 이동하시는지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길 시작했다.
오늘 함께 봉독한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고향이던 나사렛의 어느 회당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회당’ 이라는 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우던 장소였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유대인이라면 누구든지 회당 가운데 비치된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고 그 말씀을 설명할 수 있었다.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관행을 따라서 회당을 찾아가셨고, 그 가운데 비치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낭독하셨다.
이 때 예수님은 이사야 61 장의 일부를 낭독하셨다. 그 말씀의 내용은 장차 오실 메시야의 사역에 관한 예언이었다. 장차 그리스도라는 분께서 오시게 되면, 그분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전파하실 것이고, 마음이 상한 자들을 고치시고, 억눌리고 고통받는 자들을 회복시키신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을 낭독하시고 주님께서는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의 의미는 수백년 전에 이사야가 예언했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지금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에 말이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시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셨고,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으며, 장차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서 죄로 고통받는 그분의 모든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당에 둘러앉아 이 놀라운 말씀을 듣던 사람들의 반응이 참 이상하다. 이토록 놀라운 은혜의 말씀을 들었음에도 그들은 여전히 예수님을 불신의 눈으로 처다보고 있다. 함께 읽진 않았지만 22절을 보면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라고 사람들이 웅성웅성 거린다. 못 배운 목수의 아들, 가난한 목수의 아들, 예수의 가문과 출신을 우리가 잘 알고 있는데, 저 사람이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그리스도일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 회당 공간 안에서 둘러싼 분위기가 상상이 되시는가? 중앙에 서 계신 예수님을 둘러싼 수많은 이들이 의심과 불신의 눈초리를 말이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말씀의 배경이 바로 이러하다. 이 때 주님께서는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23-24절 말씀을 보라. 이 말씀의 내용은 이렇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므로 참으로 귀한 존재이다. 그러나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있으니까. 부모는 누구이고 형제는 누구이며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를 누구나 다 알고 있으니까. 마치 전기와 물이 너무나도 귀하지만 익숙해질 때 그 귀중함을 잊어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고, 병든 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시는 예수님이야말로 얼마나 귀하신 분이신가? 그분이 행하신 이적들이 얼마나 놀랍고도 감사한 일인가? 그러나 회당에 모인 사람들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낭독하셨던 이사야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자격이 없는 죄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시고 죄와 허물로 죽은 그들을 고치시고 다시 살리시는 예수님을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예수님은 저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치기 위해 구약에 등장하는 두 사건을 이야기해주신다. 하나는 엘리야 때 일어난 사건으로 열왕기상 17 장 말씀을 보면, 당시 아합왕이 온갖 우상숭배를 저지름으로서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한 벌로 3년 6개월간 비가 내리지 않게 하셨다.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다. 그 가운데 이스라엘에 남편을 잃은 많은 과부들이 있었지만, 오직 하나님의 선지자의 말씀대로 순종했던 이방여인만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였다. 또한 엘리야에 이어서 엘리사 선지자가 활동할 당시에도 많은 나병환자들이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기던 이스라엘 가운데 많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선지자의 말을 귀하게 여겨 순종했던 아람사람 나아만 장군만이 고침을 받았다.
지금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선지자가 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마음이 굳어진 자들은 그 말씀을 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말씀을 귀기울여 듣지 않았고, 오히려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마음이 악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았다. 그 땅에 많은 과부들이 있었고, 많은 나병환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어떠한 이적도 베푸시지 않았다. 그러나 겸손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이방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통해 크고 놀라우신 일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 일들을 지켜보고 있는 자들은 여전히 마음이 굳어져 있다. 약속하신 그리스도께서 오셨거늘 저들은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성경은 이에 대하여 아주 명확하게 답을 제시한다. 요한복음 3:19 를 보면,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저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그들이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빛이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중고등부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며 부활하신 지 2천년이나 흘렀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예수님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누구나 예수님을 알긴 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낮고 천한 이 땅 가운데 내려오시고, 고난받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모시질 않는다. 이러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신화처럼 여기거나 소설 이야기처럼 여긴다.
이런 사람들에게 아무리 증거를 보여줘도 그들은 믿지를 않는다. 아무리 성경의 이야기들을 알려줘도 가볍게 여긴다. 마치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회당 안 사람들처럼 말이다. 그들에게 예수님은 자신들이 기다려왔던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낱 목수의 아들일 뿐이었다. 그러나 여러분, 성경이 그들을 가리켜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분명하게 깨달아야 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자신의 행위가 악하기 때문에, 그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빛이신 주님 대신 어둠을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다.
중고등부 여러분,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누구이신가? 이 자리의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마땅히 경배와 찬양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고 섬기고 있는가?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가? 어쩌면 당시 유대인들처럼 죄를 더 사랑하여 빛이신 예수님을 가볍게, 하찮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온갖 죄를 사랑하며 진리에 관심없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처럼 살다가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다. 저들은 마치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인것처럼 살아가고 있지만, 성경은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씀한다. 계속해서 마음이 어두움 가운데 머문다면, 계속해서 진리를 외면하고 악을 선택하며 산다면, 그 끝은 영원한 멸망이요, 지옥 뿐이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중고등부 여러분, 지금도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죄악된 습성을 따라 예수님을 믿길 거부하고 있다. 그 가운데 여러분이 믿고 고백하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지극히 선하시고 아름다우시며, 가장 완벽하시고 전능하신, 그리고 죄가 없으시지만 우리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 구약에서부터 예언되어왔던 참된 그리스도,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지금도 다스리시며, 영원토록 우리를 다스리실 우리 주님을 믿고 의지하며 더욱 사랑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