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를 향한 욕구
Notes
Transcript
의를 향한 욕구
의를 향한 욕구
마태복음 5:6 “6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복이 있다. 그들이 배부를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무엇에 갈급해하고 있을까요?
교회나 세상이나 돈에 갈급해 합니다. 물질적인 풍요에 갈급해 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이유마저도 물질적인 갈급함, 육적인 갈급함을 해결하기 위해 교회를 오는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런 물질적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채우시는 필요는 말그대로 필요한 만큼의 필요입니다.
부요함이나 허영, 사치, 자랑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채워주시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에 비춰보면 우리는 이런것에 허기져하며 살 것이 아니라 의에 허기져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는 무엇일까요?
옳은 것, 바른것이라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일반적인 정의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정의보다 훨씬 더 높은 의미입니다. 정의는 사회, 문화적으로 의미를 다르게 부여할 수 있습니다.
반대편의 유럽사회나 아프리카에서의 정의와 한국의 정의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는 지역도 민족도 역사도 다르게 해석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세월이 지나도 사람이 변해도 지역이 달라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성경속에서도 아브라함때나 모세, 사도바울, 지금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의는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안에 있을때 흘러 나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통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흘려 보내주십니다.
내가 의로워지려고 해서 하나님 이제 나 의롭지요 라고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힘으로 의로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칭의라는 것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죄인이고 부족한데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안에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 여긴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떠나서는 우리에게서 의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믿음입니다. 신뢰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기대한다면 온전히 맡기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면 하나님의 요구에 순종으로 응답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 없이 하나님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한다면 잘못된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기본적으로 의를 향한 욕구가 있습니다. 무엇을 보고 의 의 욕구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까요? 그것은 억울하다는 것입니다. 왜 억울합니까? 바르게 평가받지 못할 때, 잘못되었는데 바로 잡지 않을때 억울한 마음이 생깁니다. 올바른 것을 향한 우리의 욕구가 바로 의를 향한 욕구가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중에 억울하게 대접받으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아마 한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의의 대해서 배고파하는 사람은 배 부르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올바른 것을 향한 간절한 욕구가 우리에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떻습니까? 교회든지, 기독교인든지, 목회자든지 성도든지 간에 의에 대해 무관심하고 우리안에 불의한 것이 있는데도 모른척 침묵합니다.
교회안의 불의를 우리가 침묵하고 지내오면서 얻어진것들이 무엇입니까?
교회가 위기에 빠졌고 그것보다 더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입니다.
오히려 교회안에 불의에 대해 말하고자하면 불경스럽다며 입을 다물게 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불의를 보고 침묵하게 하는 것이 불경스럽지 않을까요?
세상도 교회도 하나님의 의를 향해 배고파하지 않는 이 시대에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것들이 세워지게 해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의에 굶주린자들에게 배를 부르게 해 주신다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배부름은 성령의 충만함입니다. 의를 향한 간절함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말할 수 없는 충만함이 있습니다. 가끔 의를 쫓는 것 같은데 어느순간 나가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를 쫓았던 것이 아니라 자기 욕심을 쫓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가 아니라 자기 의를 쫓았던 것입니다. 마음에 충만함이 채워지지 않으니 재미도 없고 의욕도 없어서 오래 견디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 쫓는 사람들에게 오는 충만함은 말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 25장에서 달란트비유를 하십니다. 주인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자기 재산을 각각 능력에 맞게 맡깁니다. 주인이 돌아왔을때 맡긴 것보다 더 얻은 종들에게
“잘했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라고 말합니다.
착하고 신실한 사람들에게, 충성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주인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것입니다.
의를 향해 허기져하고 하나님의 의를 쫓기 위해 갈급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자기의에 빠지지 않고 인정의 욕구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위해 충성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들에게 하나님의 기쁨을 누릴 자격을 주십니다.
그 기쁨이 그저 한낮 맛보고 마는 기쁨이 아니라 포만감을 느끼도록 배부르게 해 주십니다.
잠언 15:9 “9 악한 사람의 길은 주님께서 싫어하시지만, 정의를 따르는 사람은 주님께서 사랑하신다.”
사랑하는 청취자 여러분, 하나님의 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에 갈급해 하십시오.
육신의 주린 배, 인정의 주린 배를 채우려는 열심만큼이나 더 큰 열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쫓아 가십시다.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우리안에 가득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