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게 알고 바르게 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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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제가 아는 동생이 어느날 연락 와서는 친구가 이상하다고 얘기를 하더래요. 그래서 들어보니까 그 친구가 굉장히 똑똑하고 말썽도 안부리고 착한 딸이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상경해서 대학교를 다니면서 부터 애가 좀 바뀌기 시작했다는 거죠. 그러더니 그 친구가 엄마랑 아빠한테 지금 다니는 교회 말고 자기가 다니는 교회로 가자더래요. 그래서 그게 왜 굳이 필요한고? 하고 부모님이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는데 알고보니 이 친구가 신천지에 완전히 빠져버린거에요. 그래서 부모님도 같이 가자고 했는데, 부모님이 같이 안나간다고 한거죠.
부모님 입장에서는 참으로 큰일이 난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단대책위원회 목사님도 만나보고 했는데, 이 친구가 너무 깊이 빠져버려서 대화가 안돼는거에요. 도저히 고쳐지지도 않고, 그러다보니 부모님이 이 친구가 자꾸 신천지에 출석을 하니까 밖을 못나가게 했어요. 그랬더니 이 친구가 경찰에 신고를 한거죠, 그랬더니 경찰이 집에 와서 부모님을 막 협박하듯이 말하더래요. 그러다가 아주 큰 코 다친다고, 알고보니까 그 찾아온 경찰도 신천지 였던거에요.
이미 부모님과 일가 친척의 연락처는 기본이고 부모님이 타는 차 사진까지 다 신천지에 정보가 넘어가서 미행도 당하고 엄청 큰 곤욕을 치뤘다고 하더라구요. 그 딸이 자기가 인생 살면서 한번도 속 썩인적 없지 않냐고 제발 자기 말좀 듣고 자기랑 같이 가자고 부모님께 막 얘기하는데, 부모님이 만약 믿음이 없는 일반 사람들이었다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아마도 그 가정 전체가 미혹되었을 지도 모를거에요.
그리고 한번은 제가 강릉에서 전도를 하는데, 한 어르신이 자기는 신천지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지금 거기로 전도하러 나가는 중이니까 일반 교회의 전도와 안내는 필요 없다 라고 하시더라구요. 여러분들은 이 두 사례를 들으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바르게 알고 바르게 행하는 믿음이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 되는 참 가볍지만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요 사도 바울의 시대에도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고 바르게 알지 못하는 성도들의 믿음으로 인해 굉장히 분노에 차 있는 것 같은 바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지금 갈라디아서가 그런 분위기 입니다.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우리는 그의 편지 내용을 통해 당시 갈라디아교회의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6절을 읽어봅시다.
6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갈라디아교회의 일부 교인은 그리스도의 은혜로 부르신 이를 속히 떠났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통해 알게 된 하나님을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식을 버렸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본문의 뜻은 떠나다가 아니라 옮기다 이동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하자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버렸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완전히 믿음을 저버리고 신앙을 떠나 잃게 되었다 이말입니다. 그리고 또한 바울은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이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합니다.그런데 이 본문을 헬라어랑 영어 성경으로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깜짝 놀랐다, 충격적이다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6절을 통해서 바울이 말하기를 너네가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믿게 되었다가 지금 완전히 신앙을 잃고, 저버리고 이단에 빠져 혼합된 복음을 믿고 따른다는 소식이 나는 정말 충격 적이다. 너무 깜짝 놀랐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어떻게 너네가 그러냐 진짜 실망이다. 속상하다. 나쁘다 이런말이 없이 바로 문제의 핵심을 탁 짚습니다. 이게 뭐냐면 다른 복음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시급하다는 거에요. 내 개인적인 속상함이나 답답함 보다 그만큼 바르게 복음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목숨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바울이 바로 단호하게 본질을 이야기 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7절을 읽어봅시다.
7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다른 복음은 바른 복음을 ‘교란’하게 하고, ‘변질,왜곡’시킵니다. 이로 인해 갈라디아 교인들은 혼란스러워하며 결국 교회를 떠나가고 있습니다. 다른 복음은 교회를 위협하는 위험한 사상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을 따르는 자는 자기뿐만 아니라 다른 성도까지 위협합니다. 아까 제가 서두에 말씀드렸던 것 처럼 가족 중에 누가 미혹되면 그 가족 전체가 큰 위험과 시험에 빠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다른 복음의 미혹을 받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항상 조심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다른 복음의 위험성을 이렇게 강조합니다. 갈라디아서 1장 8절입니다.
8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그 사람이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경고합니다.여기서 저주는 말이죠. 하나님께 직접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심판은 누구도 피할 수 없고, 누구도 되돌릴 수 없는 영원한 죽음입니다. 이를 결코 가벼이 여기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면 바른 복음은 무엇일까요? 바른 복음은 바울이 8절에서 말한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입니다. 즉 바울과 사도들이 그들에게 가르친 복음이 바른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바른 복음은 교회를 교란시키는 것이 아니라 화목하게 합니다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죠. 또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존하고 유지합니다. 이것 외에 다른 복음은 없습니다. 다른 복음은 교회를 혼란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저주,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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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점
문제는 우리가 이러한 다른 복음을 분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복음으로 인해 혼란을 겪고, 교회를 떠납니다.
따라서 바른 교리를 배우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른 복음이 아니라 바른 복음을 따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바른 복음을 따를 수 있을까요?
바른 복음을 분별하고 붙잡기 위해서는 바른 성경 해석에 근거한 교리가 필요합니다. 교리는 성경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우리는 바른 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다른 복음을 분별할 수 있고, 그것을 따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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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
여러분들 위조지폐 감별사를 아십니까? 이분들은 위조지폐를 감별하기 위해서 진짜 위조지폐를 끊임 없이 연구하고 관찰하기를 계속한다는거에요. 그래서 다른 위조지폐를 보면 딱 바로 그냥 몇초만에 위조를 알아낸데요. 종이의 질감, 두께, 디자인, 인쇄상태, 가장자리, 초상화, 일련번호, 빛에 비쳐보기 등등을 하도 많이 하다보니까 진짜를 너무 깊이 알다보니 다른 가짜가그냥 물위에 뜨듯이 바로 캐치가 되는거에요. 그래서 우리는 다른 복음에 대해서 적당한 위험성과 경계성을 가지고 진짜 복음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위조지폐 감별사 처럼 우리 교리에 빠싹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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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교리를 갖기 위해서 우리는 반복해서 배워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여러분 성경을 얼마나 읽으십니까? 우리는 성경을 정말 끊임없이 반복하고 반복해서 읽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잘 안하게되죠.
그런데 신천지는 얼마나 지독하게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공부를 하시는지 아십니까? 거기는 일반 신도들이 어느 부분을 찔러도 자기들의 교리가 튀어나올 정도로 말씀을 암송하고, 또 가둬놓고 가르치고 배우고 외우고 공부합니다. 그 정도로 무장이 되어 있으니까 자신들의 교리가 아주 그냥 단단하게 세워져있는 것이죠.
그런데 가짜도 저렇게 가짜를 진짜인 마냥 달달 외우고 진리라고 믿고 당당하게 전도하는데, 우리는 진짜 진리를 믿고 있으면서도 그 진짜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알고 얼마나 자세히 배우려고 하며 얼마나 많은 말씀을 암송하고 있냐는 거죠.. 한번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을 계속해서 읽다보면 그 진리의 말씀들이 계속 쌓이다 보면 이 말씀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우리를 견고히 세워나가게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하다못해 그날 돌아올 주일에 있을 말씀을 미리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이해가 안되면 목사님을 찾아가 이게 무슨 의미인지 물어보십시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 궁금하고 이 진리의 말씀이 가득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로마서를 500번을 읽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 말씀들이 계속 쌓이면서 나를 변화시키는 경험 엄청나게 많이 했고 여러분들도 그렇게 하신다면 이런 경험 그 이상을 반드시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바른 말씀과 교리가 내 안에 쌓이는 경험을 할 것입니다.
혼자 읽기 힘듭니까? 셀에서 함께 읽어보세요. 아니면 오디오를 틀어놓고 자면서도 걸어가면서도 집안일이나 일을 하면서도 들어보세요 힘이 날 것입니다.
또한 자녀들과 자기전에 10분이라도 함께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해보십시오. 자녀가 바뀔 것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간다고 자녀가 바뀌지 않습니다. 한주에 한번 교회에 간다고 내 자녀의 마음에 말씀이 새겨지고 바른교리가 세워져서 이 위태하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믿음을 지킬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함께 해야합니다. 여러분들이 먼저 지켜야 합니다. 상식적으로 신천지도 그렇게 말씀을 달달달 외워서 그들의 교리를 수호하는데, 말씀도 제대로 읽지 않고 한주에 한두번 교회 간다고 해서 신앙이 자라길 바란다면 그것이 오히려 욕심아닙니까?
내가 바뀌면 자녀가 바뀌고 그런 가정을 통해 하나님이 복음 전도의 통로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매주 설교를 통해 배우는 성경의 핵심 가르침에 집중하십시오. 설교 노트를 활용하여 적어보시고. 그리고 공과공부 시간에 공부한 것을 가정에서 가족들과 자녀들과 함께 하면서 나누고 함께 말씀을 나누며 상기하십시오. 주일 설교, 셀모임, 가정예배 이렇게 진행하면 매일 매일 이 말씀을 읽음으로 그 바른 교리가, 바른 믿음과 신앙이 저절로 내 안에 나의 자녀들과 가족들 안에 쌓이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바른 교리를 하나씩 제자리에 둔다면 우리는 이를 자연스럽게 바르게 행하게 될 것입니다. 처음에는 어렵고 막상 실전에서는 생각도 나지 않고 혹은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실천이 잘 안 될때도 있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러나 바르게 아는 것이 계속해서 쌓이면 실전에서 정확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른 복음과 다른 소리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위조지폐 감별사 처럼 우리가 말씀의 감별사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쓰임받은 놀라운 인물을 마지막 실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사흘 만에 시글락에 이른 때에 아말렉 사람들이 이미 네겝과 시글락을 침노하였는데 그들이 시글락을 쳐서 불사르고
거기에 있는 젊거나 늙은 여인들은 한 사람도 죽이지 아니하고 다 사로잡아 끌고 자기 길을 갔더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다윗이 그들의 용사들이랑 전쟁때문에 사흘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아말렉 사람들이 쳐들어 와서 성을 불사지르고 여자들과 자녀들을 모조리 잡아 갔습니다. 정말 끔찍한 상황이 아니겠습니까? 오죽했으면 백성들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다가 그 원망의 화살을 다윗에게 돌려서 돌려쳐 죽이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참 이렇습니다. 자신들이 그렇게 따르다가도요, 자녀 문제와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한순간에 돌변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얼마나 두렵고 마음이 놀랐겠습니까? 여기서 다급하였다는 것은 완전히 둘러 쌓이다. 포위되다. 묶이다는 뜻이거든요. 그런데 다윗은 정말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인생의 수많은 반복 훈련과 역경과 배움 끝에 이런 절망적인 것 같은 상황에서도 주변을 둘러 싸고 포위하고 있는 다른 소리에 집중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힘입어 그 자리에서 바르게 배운 바를 즉각적으로 행한 것입니다. 바로 에봇을 입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게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상기하고 훈련했겠습니까? 일주일에 한번 말씀 읽는다고 한순간에 믿는 사람들 앞에 목숨이 위태롭게 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는게 가능하겠습니까? 다윗이 얼마나 애처롭게 하나님께 매달렸습니까? 얼마나 많은 시편을 쓰고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려 살았습니까?
다윗은 이렇게 수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그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삶이 하도 하도 다져지고 다져지고 다져 졌기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하거나, 다른 소리에 넘어가 자신을 치도록 내버려 두거나, 혹은 그런 소리들에 현혹되어 함께 하나님을 원망하며 내버린게 아니라, 이런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힘입어 주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뜻을 구하고 나아갈 바를 물었다는 것이죠. 그렇게 바르게 나아간 다윗의 행동을 통해서 잡혀갔던 모든 여자와 자녀들을 구출 했습니다. 이게 복음 입니다. 여러분들 만약 지금 믿고 따르던 사람들에게 목숨을 위협 받으면 그 자리에서 즉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으십니까?
다윗과 같이 바른 믿음이 쌓이게 되면, 내가 살고 남도 살리는 게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직접 걸어 가신 길이고, 죽으셨다가 살아나심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복음의 길입니다. 부디 이 생명의 잔치를 하나님이 친히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우리가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도 이제는성경의 핵심 가르침인 바른 교리를 반복해서 계속 계속 읽고 배움을 통해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