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 다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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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7:1–10 “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5 사람이 지혜자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자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6 우매자의 웃음 소리는 솥 밑에서 가시나무의 타는 소리 같으니 이것도 헛되니라 7 탐학이 지혜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케 하느니라 8 일의 끝이 시작보다 낫고 참는 마음이 교만한 마음보다 나으니 9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10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 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
안녕하세요!
오늘은 찬양대 분들 앞에서 처음으로 이 단상에 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긴장하면서 어떠한 말씀으로 같이 교제를 할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살까.. 무엇을 바라보는 삶을 살까.. 어떤것을 들었을때 위로와 함께 한단계 진보하는 삶을 살까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읽었던 성경이 바로 전도서말씀이었습니다.
[전도서7장]은 보다 나은 삶과 보다 못한 삶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방금 읽은 말씀을 읽다보면 어떠한 단어가 반복됩니까? 낫고.. 나으며,, 나으니..나음은.. 이렇게 낫다라는 단어가 반복되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로 better than을 사용하고 있죠..
12개의 구절중에서 1절부터 12절까지 9번이나 반복되고 있음을 우리가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이게 더 나은 삶, 보다 낳은 삶이 무엇일까를 말씀을 통해서 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전도서는 누가 기록한 성경입니까? 우리가 잘알고 있는 솔로몬 왕에 의해서 기록이 되었습니다. 전도서의 시작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많이들 암송하고 계시죠..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왜 시작을 자신을 소개 할까요? 그것은 그 다음절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 입니다.
바로 다음절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렇게 다섯번 반복해서 헛되다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1장 12장을 읽다보면 해 아래서라는 단어가 반복이 됩니다. 몇번이 반복이 되냐면 30회 정도 반복이 됩니다.
이 전도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 주고 싶은것일까요?
우리가 사는 삶은 결코 나에게 만족감을 줄수가 없고 또한 기쁨도 줄수가 없다. 하지만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을 주인을 삶고 살면 나에게 만족감을 줄고 또한 보다 낳은 삶을 살수 있음을 이 전도서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보다 나은 삶은 어떠한 것을 의미할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보다 낳은 삶은 이세상을 바라보고 사는 삶이 아니라 저 세상.. 즉 천국을 바라보고 사는 삶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1–3 “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2절에 위에 것을 생각하고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보다 낳은 삶을 위해서 입니다.
그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시기 원하실까요?
처음에는 말씀을 들을때 원망을 하죠.. 하나님 너무 하시는것 아니야.. 누군가는 이러한 질문을 해요. 왜 선악과를 만들어서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거야.. 그래서 이 세상에 죄악이 들어오게 해서. 노아홍수도 일어나게 하고.. 하나님 너무 하시네..
이렇게 생각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면 이러한 반응이 나오시죠..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요.. 사랑이 무한하신 분입니다. 극락의 하나님 이십니다.
나를 가장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속성을 잘 알지 못하니깐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것입니다.
구원받기 전에는 이러한 질문들을 할수도 있죠.. 그런데 중요한것은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이러한 질문을 한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너무 하신것 아니에요.. 나에게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거에요.. 그렇게 따지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이 하는 질문과 어떻습니까? 동일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오해하니깐 이러한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기 원하십니까? 가장 좋은것을 주길 원하십니다.
이사야 48:17 “17 너희의 구속자시요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이신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너를 마땅히 행할 길로 인도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네게 유익하도록 가르치고 마땅히 행할길로 인도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신것입니다.
한절씩 살펴 보면서 우리가 교훈을 받아 보겠습니다.
1절에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방금 읽은 말씀에서 보면 무엇과 무엇을 비교를 했습니까?
아름다운 이름과 보배로운 기름을 비교를 하고 있음을 우리가 발견할수 있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 자체의 신분을 가리키던지.. 그사람 자체를 가리키지 않습니가?
그러면 보배로운 기름은요 하나의 소유물을 가리키잖아요! 여기서 말하는 기름은 보배로운 기름의 표현을 어디서 하고 있냐면요!
히스기야 왕시대때 생명이 연장이 되었잖아요.. 몇년이요 15년이 연장이 되었잖아요 그러고 나서 어떤한 행동을 했냐면 바벨론 제국에서 신하가 위문을 왔을때 궁중에 있는 모든것을 다 보여 주었습니다.
그때 보여 주었던것이 은금, 향품 그리고 보배로운 기름이라고 나옵니다. 왕중 보물창고있던 물건이었습니다.
이 보배로운 기름은 당시에 아주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무엇과는 대신할수 없습니까? 아름다운 이름과는 대신할수 없다는것입니다.
이름이 주는 교훈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이름.. 어떠한 이름이 아름다울까요? 본인의 이름을 한번 생각을 해볼까요?
각자의 이름의 뜻이 있을것입니다. 그 이름의 뜻이 아름다운것일까요? 어떤한 이름이 가장 아름다울지 한번 생각해보았으면 좋을것 같습니다.
가장 아름다운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일것입니다.
시편 8:1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을 하늘 위에 두셨나이다”
주여 주의 이름 온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이렇게 말씀하시잖아요..
이 말씀을 시 편8편에 몇번을 반복하십니까? 두번이나 반복을 하십니다. 감탄하면서 지금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이름이 무엇입니까? 바로 엘로힘 아닙니까? 하나님의 이름이잖아요!
창세 기 1장 1절 - 2장 4절 천지 창조 안에 엘로힘이라는 단어가 무려 32번 나옵니다. 적게 나옵니까? 많이 나옵니까?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 하나님이 무엇을 하신 것입니까? 바로 이세상을 나를 위해서 창조 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45:18 “18 여호와는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며 땅도 조성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신 자시니라 그 말씀에 나는 여호와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느니라”
사람으로 거하게 지은자.. 내가 거할수 있게 지은 자가 바로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모세가 40년 광야에서 머물다가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하나님과 대면하고 하지 않습니까?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물어 보지 않습니까? 하나님 이름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렇게 물어 보니깐 어떠한 대답을 해주십니까?
출애굽기 3:14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나는 스스로 있는자다.. 스스로 있는 여호와께서 너를 이스라엘 백성에 보냈셨다 하라 그렇게 말씀하신것입니다.
여호와 그 이름 아름답지 않습니까?
창세기 나오는 엘로힘은 천지 창조의 능력을 보여 주신것이라면, 이스라엘 백성하고 언약을 맺을때는 어떠한 이름으로 나타나셨냐면 여호와라는 이름을 나타나셨습니다.
여호와는 우리와 언약을 지키는 분이십니까? 어기신 분입니까? 반듯이 지키는 분이시지 않습니까? 여호와는 식언지 않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는 말씀이죠!
성경 여러곳에 하나님의 이름이 적어져 있는데요.. 엘 샤다이로도 적어져 있고, 아도나이라는 이름으로도 적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 돋보이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이름은 무엇입니까?
바로 아름다운 이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가장 높은 이름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21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이름의 뜻은 바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자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름답고 높지 않습니까? 그 이름에서 복음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힘들고 어렵고 낙담이 될때 우리가 생각하는 이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지 않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그는 누구입니까? 형제 자매님 각자가 생각하는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혹시 무서운 분이십니까? 하지 않은 혼내는 그러한 분이십니까?
아니면 이세상에서 어느 무엇과도 바꾸지 않을 그러한 분입니까? 우리가 신앙생활을 힘이 있기 할려면 무엇보다도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랑을 느끼는 크기만큼 신앙의 뿌리가 깊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3:17–21 “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20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21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 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게 된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떻습니까? 내가 생각하는 주님의 사랑의 넓이는 얼마큼 넓습니까? 그리고 길이가 얼마나 길어요.. 그리고 높이는 얼마다 높습니까? 깊이는요.. 얼마나 깊습니까?
각 느끼는 분량이 다 다를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씀으로 얼마나 넓고 얼마나 길고 얼마나 높고 얼마나 깊은지 알수 있지 않습니까?
어디서 알수 있습니까? 그 이름에서요.. 그리고 그 십자가에서 알수 있는것 같습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이름이면 모든것의 답이 되지 않을까요?
은혜찬송가 63장 예수 가장 귀한 그 이름 찬양이 생각이 나지 않습니까?
이렇게 예수라는 그 이름이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이름일것 입니다.
성경에 대비되는 이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사와 나사로 이야기 입니다.
성경을 한번 찾아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16:19–23 “19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20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한 부자와 나사로 둘다 죽게 되었는데 어떠한 이름이 가장 고귀한 이름이 되었습니까?
이세상에 호화롭게 주님과 전혀 상관없는 이름이 고귀한 이름이 되었습니까?
아니면 비록 이세상에는 고통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름의 뜻대로 나사로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자 라는 뜻입니다 .
그 이름대로 하나님 앞에서 순종하면서 주님을 바라보며 묵묵히 이겨 나갔던 이 나사로의 이름이 고귀한 이름이 되었습니까?
네 맞습니다. 나사로는 이 성경에 이름이 적어져 있습니다. 지금까지 마리아의 이름처럼 우리에게 읽혀 지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서 아니 영원히 아름다운 이름은 천국 명부에.. 생명책에 이름이 적힌 그 이름이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아닐까요?
그리고 가장 어리석은 이름.. 미련한 이름은 이세상의 것만 추구하다가 결국 지옥에 가는 영혼 생명책에 이름이 적혀져 있지 않은 이름이 가장 부끄러운 이름이 될것 같습니다.
여기 찬양대 형제 자매님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끄러운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성경에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자가 있습니다. 누구신지 아십니까? 바로 향유옥합을 드린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누구입니까? 예수님 바로 앞에서 말씀을 들었던 그 마리아 입니다. 그 말씀을 잘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
네 맞습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고귀한 지극히 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려서 그 속에는 보배로운 기름을 예수님께 드렸습니다.
마리아는 보배로운 기름보다 그 비싼 향유 보다 무엇을 선택한것입까?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선택한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러한 말씀을 하시죠.
마태복음 26:13 “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이여자의 행한 일을 기념하라고 말씀하고 계시잖아요!
수천년이 지나도 지금까지 이름이 회자되는것 않좋은 쪽이 아니라 좋은쪽으로 회자되는것 너무 아름답지 않습니까?
성경에 보면 이름이 계명해 주시는 분들 있습니다. 몇 분만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름을 지을때 그 이름속에서 너는 자라서 꼭 이런 사람이 되어라 하는 뜻을 담아 짓는 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바뀌기 까지 24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제일 먼저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부르셧고 17장 들어서서 이름을 바꾸어 주십니다.
바꾸게 될때 기준이 17장 1절 인것입니다. 바로 완전하라.. 누구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라고 하나님께서 언약을 세우신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의 주체가 하나님이며, 반듯이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을 강조 하였습니다. 그래서 성경 2절부터 8절 까지 보면 내가 .. 나 여호와가 이렇게 말씀을 6번 반복을 하신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을 아브람을 통해서 알려 주고 있는 내용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 말씀인것입니다.
비겁하게 뒤에서 머뭇거리지말고 하나님 앞으로 당당히 믿음으로 행하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
그리고 나서 이름을 계명해 주신것입니다.
그리고 사라의 이름도 역시 이때 바꾸어 주신것입니다 .
이름을 계명하고 첫번째 순종이 바로 할례였습니다.
할례는 구별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고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바로 구별인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교훈을 받을수 있습니다.
아브람의 뜻은 높은 아버지, 존경받는 아버지에서 아브라함으로 열국의 아버지로 바꾸어 주신것입니다.
그리고 사래는 나의 공주, 나의 여주인에서 사라로 즉 열국의 어미로 바꾸어 주신것입니다.
이렇게 이름을 보면 하나님이 어떻게 쓸려고 하는지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의 가정에서 어디로 넓인것입니다. 열국으로 시야를 넓힌것 이잖아요!
이렇게 하나님께서 이름을 바꾸어 주신 분들이 여러명 계십니다. 야곱을 이스라엘로 바꾸어 주셨고, 시몬의 이름을 베드로로 바꾸어 주셨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울의 이름을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름을 바꾸어 주면서 그 사람의 생애를 볼수 있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로서 믿음의 아버지라는 호칭을 받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에게 축복을 달라고 싸워서 결국은 쟁취 하지 않았습니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었잖아요!
아브라함은 믿음, 야곱은 이김, 그리고 베드로는 작은 돌이라는 이름의 뜻이지만 믿음은 굳건한 반석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울은 작은자라는 이름을 주셨죠..
이것으로 보아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으로 이세상과 이겨서 그 믿음이 굳건해 져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오실때 까지 작은자로 겸손한 위치에서 주님과 동행하는 길을 걸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맞지 않습니까?
이름을 바꾼 성경의 이름으로 이렇게 묵상을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이름을 계명을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그리스도인이라 이름을 주셨습니다. 즉 크리스챤.. 성도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사도행전 11:26 “26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그리스도를 머리로 삼은 사람들.. 즉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섬기는 사람이드리며.. 그리스도의 옷을 입을 사람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성도라는 이름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자입니까?
우리는 전도서7장1절의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다고 말씀하는 것과 같이
우리가 가진 이 이름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어떠한 비싼 기름보다는 훨씬 낫다고 지금 이야기를 하고 있는것입니다. 혹시 후회 하십니까? 내가 이 그리스도인라는 칭호를 받은게 후회되십니까?
여기에 계신 분들은 그러한 생각을 가지는 분은 없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맞죠!
우리는 앞에 수식어는 형제 자매님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자 아닙니까? 바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지금 어디에 적혀져 있습니까?
이사야 49:16 “1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의 이름이 지금 주님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는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들을 가졌습니까? 놀랍지 않습니까?
방금까지 이름에 대해서 한번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이름을 바꾸어 주심으로 우리가 그 신앙의 인물을 다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기억되는 이름과 기억되지 않은 이름에 대해서도 알아 보았습니다.
또한 성경에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여인에 대해서도 알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알아보았습니다. 나의 이름에 대해서요.
나는 그냥 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하나로 만족 하십니까? 만족 하신다면 그 이름을 가진 자로서 우리는 그 이름에 걸맞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자로서의 삶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아름다운 이름을 가질려면 어떠한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바로 믿음으로 행하는 충성된 삶을 살아야 할것입니다.
마리아도 주님이 들려주는 말씀을 듣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행했던 행동이 바로 향유 옥합을 부은 행동이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생기면 그 다음에 하는 행동이 무엇일까요? 바로 은혜의 보답입니다. 그것이 충성입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과거도 있지만 현재의 삶도 있는것입니다.
과거에는 비록 주님을 위해서 살지 못했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까지 주님을 곁에서 이렇게 말씀을 듣는것 너무다 주님이 주신 큰 은혜 아닙니까?
그렇다고 과거에 매여 있으면 않되겠죠..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현재를 살면서 우리는 미래의 삶을 기대 하면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오늘의 충성이 내일을 결정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현재 를 성실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의 보답이 제가 충성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충성이라는 뜻은 헬라어로 피스토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주인 앞에서 변함없이 충성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피스토스에서 영어에 피스톤이라는 단어가 나왔습니. 피스톤이 무엇을 합니까? 자동차 엔진을 구동하기 위해서는 이 피스톤이 일정하게 꾸준이 움직여야 출력이 나옵니다.
우리도 주님의 일을 이렇게 피스톤 처럼 꾸준이 움지이는 것이 바로 충성입니다.
우리가 꾸준이 움직일수 있는 원동력이 무엇일까요? 바로 믿음의 바탕에 있는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충성이 나올수 없는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바탕위해서 합당하게 반응하는 것이 바로 성실이고 충성인것입니다.
충성된 누구누구 그러한 이름을 우리가 얻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남아야할 아름다운 이름이 될것입니다.
아직은 내일은 오지 않았습니다. 맞습니까? 우리에게는 무엇만 있습니까? 오늘만 있는 것입니다.
그럼 내일의 주인은 누구 입니까? 바로 하나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임재함을 느끼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운 이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찬양대 형제 자매님은 어떠한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그러한 이름으로 기억될려면 내일보다는 오늘의 나에게 맡겨진 직분에 충실히 하는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내일 부터 잘해야지 그 말보다는 오늘 이라는 시간에 최선을 다해야 겠다는 마음으로 봉사에 임한다면
주님은 이러한 칭찬의 말씀을 하실것입니다.
마태복음 25:21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
내가 10달란트를 남겼든지, 5섯달란트 남겼든지, 2달란트 남겼든지.. 남겼다는것이 중요한것입니다. 어제의 모습과 오늘의 모습이 같다면 않되겠죠.
그 모습은 우리에게 합당하지 않을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에게 맡겨진 직분, 나에게 맡겨진 봉사에 성실히 해야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되기 위해서 말이죠.. 그리고 우리가 저 천국에서 칭찬을 받아야죠.. 책망을 받으면 않되지 않습니까?
우리가 잘할고 있는 다윗의 족보에 올라간 이방여인 그것도 모압여인 룻은 무슨 일을 성실히 하다가 보아스와 결혼하게 되었나요!
성실히 이삭을 줍다가 보아스를 만나게 되었고 결혼하게 되었지 않습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이 봉사, 이 직분이 어디에 기록되어 있을까요?
말라기 3:16 “16 그 때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 피차에 말하매 여호와께서 그것을 분명히 들으시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와 그 이름을 존중히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행실을 주님이 아십니다. 그리고 여호와 앞에 있는 기념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열심을 내어서 충성을 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아름다운이름을 가진자로서의 삶인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이름을 묘비에 기록한다면 나의 일생을 기록한다면 어떠한 이름으로 남기를 원하십니까?
각자의 이름 앞에 수식어가 붙는다면 어떠한 이름이 붙을까요? 한번 곰곰히 생각해 보는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전 도서1장 1절을 통해서 우리가 교훈을 받을것은요..
이세상에서 어떠한 가장 귀한 보물이 있더라고 바꾸지 않아야 할것과 꼭 얻어야 할것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있는것입니다.
잠언 22:1 “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많은 재물.. 그리고 은, 금보다 무엇을 택합니까? 명예와 은총을 택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재력을 보고 평가를 하는데요..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다고 지금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예, 하나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명예 그것을 선택하라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면 무엇을 위해서 누굴 본받으며 살아야 합니까? 네 맞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본받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