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 다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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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벌서 5월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1년에 절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금방 하계수양회가 오면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갈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월을 지나가도 우리는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5월에 무엇이 있습니까? 어머니화 낮 전도집회가 다음주 부터 계획대어 있습니다.
시간이 너무 빨리간다 하더라도 잊어 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교회가 추구하고 있는 방향입니다. 그리고 계획들입니다. 중요합니다. 교회가 한방향으로 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 중 하나인것입니다.
다음주 낮 전도집회 그리고 6월에 대전도집회 그리고 1년의 큰 행사 중에 가장 큰 천국잔치가 열리는 곳 바로 하계수양회입니다. 우리는 넓은 예산을 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지 어머니 자매님들이 지치지 않고 열심을 내어서 달려갈수 있을것 같습니다.
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오늘 손에 대해서 잠시 말씀을 나누어 볼려고합니다.
방금 읽은 말씀처럼 손은 주님이 주신것입니다. 그래서 그 손을 게으르게 할수 있고 부지런하게 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손으로 많은 역사를 일으킬수 있습니다. 그래서 손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볼려고 합니다.
성경에는 손을 하나님의 손과 나의 손 즉 성도의 손으로 나누어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손은 어떠한 손입니까?
먼저 하나님의 손은 어떠한 손입니까?
우리가 잘알고 있듯이 창조주의 손입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셨는데 사람의 신체부위 중에서 참 신기한 곳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곳이 손입니다. 제가 한 번 인터넷에 확인해봤는데 한 사람이 손을 구부렸다 폈다 하는 것이 평생에 2천 5백만 번 손을 폈다 구부렸다 한다고 합니다. 누가 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2천 5백만 번. 그래도 이렇게 잘 움직여지는 게 신기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참 손만 봐도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손도 똑같은 손이 없다고 하잖아요. 지구상에 그 많은 사람이 있어도 손이 똑같은 손이 없고 사람의 정맥구조도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시편 8:3–4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주의 손가락으로 무엇을 창조 하셨습니까? 달과 별을 창조 했다고 지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사야 성경에서는 오른손으로 하늘을 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전능하신 손인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만든 나의 손은 어떠합니까?
정말 신묘막측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손은 천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손이며 또한 심판의 손이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8:19 “19 술객이 바로에게 고하되 이는 하나님의 권능이니이다 하나 바로의 마음이 강퍅케 되어 그들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하나님의 권능.. 손가락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을 손길을 주셨고 애굽에는 어떠한 손을 내밀었습니까? 심판의 손을 내보인것입니다.
이 심판의 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있는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의 손이 던지는 손으로 바뀌게 될것입니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계속 부르시던 그 손이, 내밀었던 그 손이 어떻게 됩니까? 지옥으로 던지는 손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22:17–18 “17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속박하고 장사 같이 맹렬히 던지되 18 정녕히 너를 말아 싸서 공 같이 광막한 지경에 던질 것이라 주인의 집에 수치를 끼치는 너여 네가 그 곳에서 죽겠고 네 영광의 수레도 거기 있으리라”
맹렬히 던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불순종의 결과 누구에게 던져 졌습니까? 바벨론에게 던져 졌습니다.
에레메야 성경에 10장 18절에 보면 이번에는 내어던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까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하면 어떻게 됩니까?
누가복음 12:5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지옥에 던져 넣을 권세가 있으신 분이 지옥으로 던져 버리실것입니다.
그러니깐 우리는 주님의 능하신을 의지해서 구원의 손을 붙잡아야 하는것입니다.
이사야 59:16 “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우리가 열심히 해서 무엇을 해서 구원을 얻은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배푸신 손을 의지해서 구원을 받은것입니다.
시편 98:1 “1 새 노래로 여호와께 찬송하라 대저 기이한 일을 행하사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
그 오른손과 거룩한 팔로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신것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구원을 베푸신 그 창조자의 손을 우리는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분은 모두다 그 손을 잡으신 분들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다 해주신것을 우리는 믿기만 하면 되는것이 바로 구원인것입니다.
행위에서 난것이 아니니 누군든지 자랑할것이 없다고( 에베소서 2:9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여러가지 손을 우리를 위해서 배푸셨습니다. 창조자의 손, 심판의 손, 그리고 구원의 손까지 우리를 위해서 배푸셨고 우리를 위해서 지금까지 붙잡아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28 “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구원받은 우리를 절대로 뺏앗을수 없다고 주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손, 하나님의 손은 성경에서 이러한 역활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우리의 손은 어떻습니까?
그러면 우리의 손은 어떻습니까?
시편 144:1, “1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시편 144:7 “7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 , 시편 144:11 “11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저희 입은 궤사를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방금 읽은 시편을 보면 손이 세번 나옵니다.
1절에 보면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여기 저가 내 손을 하나님이 가르치시고 싸우게 하셨다. 여기 다윗의 손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다윗의 손을 훈련시키시고 전쟁을 위해서 훈련시키고 손과 손가락을 훈련 시켰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윗의 손이 나와 있고 7절에 보면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 7절에는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주의 손이 여기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1절에는 다윗의 손이 나오고 7절에는 주님의 손이 나오고 그 뒤에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고 건지소서” 이방인의 손이 여기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8절에도 “저희 입은 궤사를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11절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저희 입은 궤사를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여기 다윗의 손이 나와 있고 주의 손이 나와 있고 이방인의 손, 이방인의 손이 얼마나 거짓된 손인지 8절과 11절에서 두 번이나 강조해서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라고 그렇게 강조했습니다.
시편144,편을 기록한 다윗은 구약 시대에 구원을 받은 사람의 대표적인 모습이며, 신약시대의 참된 성도를 대표한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이 시편을 통해서 어떻게 다윗이 신앙생활을 잘 할수 있었는지 알수 있습니다.
7절을 통해서 보면 주의 손을 의지한 다윗을 알수 있고 주의 손에 붙잡힌 다윗을 볼수 있습니다.
다윗은 이방의 세력에서 잘못된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사울을 피해 돌아 다녔을때. 여호와께 묻지않고 돌아다닐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울을 쉽게 죽일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주의 손의 붙들려서 주의 손을 의지했던 자였습니다.
시편 144:8 “8 저희 입은 궤사를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시편 144:11 “11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저희 입은 궤사를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방금 읽은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져달라는 다윗의 기도가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주님의 손을 붙잡고 살아가는데 구원받기 전에는 우리가 마귀의 손아래 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붙잡은 손들은 이세상의 것들을 붙잡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헛된 것들이었습니까? 이세상의 것 내가 구원받지 않았다면 이 세상의 것을 붙잡고 계속 살았을것입니다. 그 손을 놓고 주님의 손을 붙잡은것 그것 놀라운 일 아닙니까?
우리가 정말 구원받기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세상에 좋은것이 너무많고 볼것도 많고 그렇지 않습니까? 요즘 욜로 족들이 있지 않습니까?
한번뿐인 인생 재미지게 살다가 가자 하는 주의 잖아요! 그러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았는데 그 잘못된 손에서 벗어나서 하나님께 붙잡힌바 된 사람이 바로 여기에 앉아 있는 여러분들인것입니다.
정말 놀라운것입니다. 진짜인 오른손을 붙잡아 보니깐 내가 잡고 있었고 그것이 올바른 손인줄 알았는데 거짓의 오른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지 않습니까? 지금 다윗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는것을 잠시 생각해보면 다윗에게 역사했던 그 의로운 오른손이 우리를 나를 붙듣것이 아니겠습니까?
충분히 잘못된 손들이 움직였었는데.. 그것에 붙잡히지않고 주님의 손에 붙들려서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것은 정말 놀라운것입니다.
시편 31:15 “15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여기 주의 손이 나오고 내 원수와 핍박하는 자의 손이 나오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속에서는 주의 손이 있다고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인 됨과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있습니다. , 즉 세상에 어떤 손보다 하나님의 손이 더 크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중심으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시편 144:2 “2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시로다” 이 말씀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2절에 하나님을 나의 무엇무엇이요 이렇게 일곱번이나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기와 연결시키고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고 얼마나 연결시키며 살고 있습니까? 서두에 제가 말씀드린 하나님의 손에 대해서 안다고 믿는다는 분들이 과연 그 하나님의 손과 나를 얼마나 연결을 시키며 살고 있냐는 것입니다.
다윗은 일곱번이나 이렇게 하나님과 나와 연결한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
우리도 생각해보십시요! 구원을 받을때나 구원의 말씀을 들으때 어떻습니까? 정말 하나님이 나의 전부이구나 하고 깨닫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3-4절 말씀이 나의 말씀이 되지 않습니까?
시편 144:3–4 “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4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다윗은 확실한것을 붙잡은 사람입니다.
소경이었다가 눈을 뜬 사람이 하는말은 많은 말을 하지 않고 딱 이 한마디 했습니다. 변론의 자리에서
요한복음 9:25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확실한것을 붙잡은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냐면 난 소경이었다.. 하지만 난 지금 본다 이것이 증거다 이렇게 말을 하고 있는것입니다
다윗도 나의 평생에 주님의 도우심으로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의 인생의 전부이다. 이렇게 말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 144:1 “1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반석이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신 훈련을 받으면 살았습니다. 다윗은 이 두손으로 무엇을 했을까요? 훈련을 받으면서 하늘에다가 원망의 말을 했을까요?
아닙니다. 다윗은 두손을 모아 하나님께 간절히 빌었고 도우심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1절에 하나님께서 내 손을 가르쳤다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훈련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긴 생활동안 훈련을 받았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다 알지 않습니까?
양을 칠때부터 하나님께 의지 하도록 훈련시키고, 10년간의 광야, 그리고 아들에게 쫒김을 받고, 계속적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통일왕국을 이루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수 있었습니다.
시편 18:34 “34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니 내 팔이 놋 활을 당기도다”
하나님이 손을 훈련시켰다고 지금 말씀드리고있습니다. 얼마나 훈련을 시켰냐면. 놋 활을 당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놋 활을 당길려면 얼마나 큰 힘이 있어야 할까요?
하나님이 훈련시켜 놋 활을 당길수 있을정도로 많은 훈련을 시킨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도 이렇게 훈련을 시켜 가지는 것입니다. 지금 환란중에 있습니까? 지금 고난중에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놋 활을 당길수 있도록 훈련을 시키고 있음을 알아야 할것입니다.
이렇게 훈련 시킨 이유는 싸우게 할려고 훈련을 시킨것입니다.
우리도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 시킨 이유는 바로 영적 전쟁에서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훈련을 시키는것입니다 .
우리는 구원을 받을때 입대를 한것입니다. 그것도 신병으로 입대를 한것입니다. 그러니깐 힘이 들죠. .왜냐 몸이 익숙하지 않기때문입니다. 익숙해질려면 많은 고난도 있어야 하고 노력도 있어야 합니다. 마귀는 인간수단방법으로는 이길수 없습니다.
마귀를 이길수 있는 방법은 성경대로 전쟁을 해야합니다. 그렇게 해야지만 이길수 있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랑도 싸워야 하고, 이세상 풍조들과도 싸워야합니다. 이 싸움은 한번의 전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오실때까지 싸우는 것입니다.
구원받고 난 이후에 우리의 손이 정말 주님이 원하는 손이 되어야합니다.
주님이 원하는 손이 되기 위해서 먼저 주님의 손을 배웠고, 그리고 주님이 우리의 손을 가르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훈련을 잘 받고 손에 힘을 키워야합니다.
야곱도 이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요셉의 활이 도리어 견강하며 그의 필이 힘이 있다..그렇게 된 이유는 전능자의 손을 힘입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손은 힘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전능자의 손의 힘을 입어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44:7 “7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
그래서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서 나를 보호해 달라고, 그리고 그 손으로 나를 훈련 시켜 달라고 다윗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의 전능하시는 손아래 우리가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 손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주의 손을 붙잡고 함께 하고 있을때 어떠한 역사가 일어납니까? 그것은 바로 전도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는 손인것입니다.
처음은 주님이 알려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훈련시키고, 주님의 의지하는 법을 알게 하여 주시고 우리가 주의 손의 의지하고 함께해서 결국은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이 손을 사용하는 것을 주님이 원하는 손인것입니다.
사도행전 11:21 “21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다한 사람이 믿고 주께 돌아 오게 된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더욱더 주님에 손을 다른이에게 알려 주어야 합니다. 잡으라고요! 지옥으로 달려가는 그 영혼에 대해 우리가 손을 내밀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변에 그러한 손을 기다리고 있는 분이 있을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 손을 붙잡아 듯이 우리도 다른이에게 그 엄청난 손을 알려 야 할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는 손은 성경을 넘기는 손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처음 찾았던 말씀 잠언 10:4 “4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
손을 게으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됩니다. 정말 그렇게 됩니다. 우리의 손이 말씀을 넘기는 것을 게으게 하면 영적 가난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러면 신앙의 힘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생동안 성경의 책장을 넘겨야합니다. 손으로 성경을 붙잡아야 합니다. 평생에 듣던 성경.. 평생에 보던 성경.. 이렇게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넘어져 가는 형제 자매님을 붙드는 손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4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우리가 구원받기 전에는 세상으로 더욱더 밀치는 손이었습니다. 하지만 구원 받은 후로는 넘어져 가는 자를 붙들어주는 손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의 하나의 행동 행동들이 한 형제를 살릴수도 죽일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손은 넘어져가는 분들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움켜쥐는 손에서 베푸는 손으로 바뀌어야합니다
신명기 15:7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땅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그 가난한 형제에게 네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네 손을 움켜 쥐지 말고”
먼저 구제입니다. 내 손을 불쌍한 사람에게 편다는 것은 마음이 열려 있어야 가능한것입니다.
하나님쪽으로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은 틀림없이 형제 자매님 쪽으로 마음이 열려 있고, 불쌍한 영혼 쪽으로 마음이 열려 있기에 내 손도 열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해외선교에 가면 더많은 물질을 드리고 헌물도 하는것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소망을 잡는 손으로 바뀌어야합니다.
무엇을 잡아야 하겟습니까? 주님의 우리에게 내려 주시는 상급을 바라봐야 합니다.
시편 128:2 “2 네가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네 손이 수고한대로 먹을것이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주님의 교회안에서 부지런히 주님의 일을 해야 할것입니다 .
이것은 주님이 우리에게 내려 주신 법칙입니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형제 자매님은 어떠한 손을 가지고 싶으신가요?
기도의 손, 소망을 잡는 손, 베푸는 손, 붙잡는 손 어떠한 손을 가지고 싶으신지요!
여기에 가장 아름다운 손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위로의 손입니다.
우리가 어렸을때 가위 바위 보를 하지 않습니까?
어떠한 글을 읽었는데요! 남자는 가위바위보하면 무엇을 내라고 말을 합니까? 남자는 주먹이지 이렇게 말을 하잖아요!
그리고 여자는 가위를 낸다고 하잖아요!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내어야 할까요! 보를 내어야 한다고 어떠한 글귀를 읽게되었습니다.
왜 보일까! 고민해 본적이 있었습니다.
주먹을 이기는 것은 보입니다. 맞죠. 우리는 가끔 이 주먹으로 형제 자매님을 때리지는 않지만, 언어의 주먹으로 형제자매님을 상처를 주는 것같습니다.
우리는 형제 자매님을 위로 해준다고 하면서 가끔 주먹으로 가위로 위로를 해줍니다. 전혀 도움이 되지 않죠. 우리는 여기에 계신 형제 자매님 모두 보로 손을 피고 위로를 해주어야 합니다.
주먹과 가위는 나의 경험, 나의 방법으로 위로를 해주는 것입니다. 주님이 위로 해주실때 어떻게 위로를 해주었습니까? 사람의 방법입니까? 아니면 주님의 방법입니까?
네 맞습니다. 주님은 주님의 방법으로 아주 알맞은 방법으로 위로를 해주었습니다.
누가복음 5:12–13 “12 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문둥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13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문둥병이 곧 떠나니라”
방금 읽은 말씀을 보면 지금 문둥병 걸린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는 어떻습니까? 고칠수 있습니까? 우리는 할수 없으니깐 가까이 가기도 싫잖아요!
그런데 주님은 어떠한 방법으로 이 문둥병 걸린 환자를 고치셨습니까?
그냥 말로 너의 병이 낳았다 그렇게 해도 낳았을텐데…
주님은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이렇게 행동으로 하셨습니다. 우리는 가끔 우리의 방법으로 이렇게 하면 되잖아요! 이렇게 말할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형편과 사정을 모르는체 그냥 무심코 던질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때 상처가 더욱더 깊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처럼 그 형제 자매의 마음에 손을 대어야 합니다. 같이 그 상황에서 아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는 정말 큰 위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같이 우는 것 아니겠어요.. 우리의 말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을수도 있습니다.
우리 위로는 주님이 나에게 배푸신 전능자의 손이 필요할때가 있는것입니다.
또한 징계로 여러가지 어려움으로 고통 받고 있는 형제 자매님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럴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더욱 붙잡아 주어야합니다.
베드로도 환경을 보고 물속에 빠진 사건을 기억할것입니다. 물에 빠지기 전에 베드로도 주님을 보고 열심히 물위를 걸었던 분입니다. 얼마나 대단합니까?
하지만 그러한 믿음의 선진들도 물에 빠질수 있다는것을 알아야 하는것입니다. 징계일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릅니다. 그런다고 그냥 두면 됩니까?
않됩니다. 주님이 그때 손을 내밀어서 건져 주었습니다. 우리도 같습니다. 그런 분에게 더욱더 가까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굴속에 들어가 있습니까? 더욱더 찾아가야합니다.
그 굴속에서 나오는 방법은 찾아가는것입니다. 엘리야도 450명의 바알선지자와의 전투에서 이기고 이세벨이 죽일려고 하니깐 스스로 광야로 들어갔잖아요!
그곳 로뎀나무 아래에서 엘리야는 나만 남았다고 주님 저를 데려가달라고 그렇게 원망스러운 말을 했는데 주님은 어떻게 했습니까?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 먹으라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십니까?
열왕기상 19:5–8 “5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6 본즉 머리맡에 숯불에 구운 떡과 한 병 물이 있더라 이에 먹고 마시고 다시 누웠더니 7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8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주 사십야를 행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어루만저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먹을것을 주시고 그러니깐 다시 힘을 내서 40주야를 행하여 호렙산에 이르렀지 않습니까.
우리도 같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힘이 빠질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더욱더 어루만져 주어야합니다. 잘하고 있다고 우리 같이 함께 뛰어보자고 내가 도와 주겠다고 그러한 위로의 말이 그 형제 자매에게는 큰 힘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4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우리의 손은 판단하는 손, 상처 주는 손이 되어서는 안되며 안위하고 붙들어 주며 오래 참아 주는 손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손은 펴는 보자기입니다. 알겠죠!
우리가 기억할것은 바로 위에서 부터 내려오는 주님의 손이라는 것입니다. 그 손을 붙잡고 나는 누굴 또한 붙잡아야 겠습니까? 형제 자매님을 위로해주고 붙잡는 손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가장 아름다운 손들입니다.
오늘은 주님이 내게 주신 손에 대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손을 통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손은 나를 위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교회와 주님을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