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1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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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된 교회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이렇게 온라인선교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말씀을 말씀을 나눌 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혜로 함께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저희가 나눌 말씀은 로마서입니다. 로마서는 간단하게 말씀드리자면, 바울 사도가 로마의 성도들에게 쓴 편지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로마서는 하나의 편지 이상으로 우리에게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성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로마서의 말씀이 사도 바울의 신학을 집대성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래서 이 로마서는 성도들에게 매우 유익하기도 하면서도 쉽지는 않은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어가기 전에 이 로마서의 구조를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먼저 로마서의 내용들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이신칭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진다는 것이죠.
이전까지 구약의 기본 틀에서는 의롭게 되기 위해 말씀의 준수가 요구되었습니다. 행동이 필요했던 것이죠.
하지만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약의 율법을 뛰어넘어 오로지 주를 믿는 믿음으로 우리가 의롭게 여겨질 수 있음을 이 로마서에서 말합니다.
바울은 그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1장부터 11장까지 길게 인간의 원죄와 그리스도의 성육신, 그리고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크신계획을 길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모두 선포된 이후 이어지는 말씀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12장 말씀인데요, 12장 이후로는 로마서의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11장까지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신학적으로 설명했지만, 12장부터는 그 복음의 은혜를 입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를, 교회와 세상 공동체 속에서 성도들이 살아가야 할 바른 신앙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오늘 우리가 읽은 12장의 말씀은 그 로마서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의 첫부분부터 함께 확인해보시죠.
1절을 보면 어떤 말씀이 등장하나요? 아마 여러분들이 잘 아실 말씀이죠.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드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적 예배라고 말하고 있죠.
이 말씀은 무엇을 말하는 것이냐, 앞의 내용에서 이어지는 거에요. 너희가 이렇게 그리스도의 크신 사역과 그 은혜를 통해 구원을 받았다. 그러니 이제는 너희가 우리를 위해 어린양과 같이 화목제물이 되신 예수님을 따라 우리 몸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생명을 주셨는데, 그 생명으로 우리가 새로운 삶을 얻었으니, 우리의 앞으로의 삶은 우리의 것이 아니다. 주님의 삶이다. 그러니 우리의 몸을 주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것이 우리가 주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영적 예배의 모습입니다.
과거 구약시대에는 죄 사함을 위해 실제로 육체를 드려야 하는 제사가 필요했지만, 예수님으로 인해 이제는 실제적인 제사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영적 예배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영적 예배는 언제 올려드려야 하는 것일까요? 주일날이면 충분할까요? 아니면 수요일과 금요일에 더 드려야 할까요?
이 영적 예배는 어떤 특정한 날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매일의 삶을 예배로 올려드려야 하죠.
다시 말하자면, 성도는 주일 뿐만이 아닌 매일의 삶이 주님께 올려지는 예배의 모습으로 우리 삶에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은 각 개인에게 주시는 주님의 복음을 설명하고, 자연스럽게 그 복음을 성도의 실제 삶으로 연결시켜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구원받은 성도의 삶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들이 등장하게 되는 것이죠.
가장 먼저 어떤 내용이 등장하느냐, 2절에 나타나는데요, 이 역시도 아마 여러분들이 너무나도 잘 아실 말씀일 것 같아요.
로마서 12:2 NKRV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 성도의 삶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야 할 모습이 어떤 것이라고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한다고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의 삶에서 나타나야 할 너무나도 중요한 모습은 세상에게서 벗어나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삶의 모습입니다.
성도들은 주님의 은혜로 의롭다 여김을 받고 이미 구원을 얻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 은혜를 누리는 때는 주님께서 다시 이 땅 가운데 오시는 재림의 때입니다. 그리고 그 때는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오로지 주님만이 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 성도들은 그 날을 기다리고 고대하며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신분은 하늘 나라 시민이지만, 당장 세상의 시민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모습은 하늘나라의 모습과는 상반된, 죄로 가득찬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연약한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인도합니다.
어쩌면 그렇기에 이 땅에서의 성도의 삶이 고통가운데 존재하게 되는 것이겠죠. 우리의 나아가야 할 바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우리가 존재하는 곳이 그와는 상반된 곳이니, 그 안에서 괴리와 충돌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저번달에도 말씀드렸지만, 우리의 모습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2절에서 바울 사도가 이야기하는 세상의 악한 것들에서 벗어나 우리 마음을 점검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를 돌아봅시다. 정말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고 있나요? 아마도 그렇지 못했던 우리들의 모습이 떠오르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기에, 그 안에서 존재해야 하기에 세상의 논리에 끌려다니고, 심지어는 그 논리에 발맞춰 걸어가는 모습들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세상에서 최고로 삼는 성공의 모습들이겠죠. 경제적 성공, 사회적 성공 등등.
스스로를 성도로 자부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속에서는 누구보다도 더 높은 자리에, 더 많은 재력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있다는 것이죠.
제가 사역하는 학원선교부에서 겪게 되는 큰 딜레마중에 하나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사실 제가 사역하는 하늘고를 비롯하여 하나고, 용인외고와 같은 자사고에 재학중인 학생들은 누구보다도 공부에 있어서 욕심이 많은 친구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대학, 좋은 성적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누구보다도 잘 하기를 바라고, 누구보다도 완벽하게 모든 일들을 마무리하기를 꿈꿉니다.
그러한 바람들은 예배 공동체에 열심히 참석하는 재학생들도 다르지 않습니다. 정말 놀랍게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그 안에는 세상적 가치들에 대한 욕망도 함께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오늘 말씀과 같이 세상적 가치는 중요하지 않고, 오직 중요한 것은 주님의 말씀과 진리이다! 라고 선포를 해도 그 말씀이 그들의 깊은 속까지 닿지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머리로는 그 말씀이 맞다고 이해를 해도, 마음으로는 세상적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는 욕심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험성적 중요하지 않아! 라는 말을 마음속으로는 정말 여러번 반복하지만, 차마 입밖으로 대놓고 말하기에는 그들의 마음이 상할까 염려되는 부분들이 존재한다는 것이죠.
이처럼 우리의 연약한 인간의 모습은 자꾸만 이 세대를 본받고자 하는 모습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의 사역지인 온라인 공간을 보아도 아마 많이 느끼실 겁니다.
대표적 SNS들, 먼저 인스타를 볼까요? 내가 잘먹고 잘놀고 잘산다를 자랑하는 내용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랑들에 경쟁이 붙어 인스타를 올리기 위해 실제로 그정도 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무리하여 소비를 하는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유튜브 같은 영상매체들은 어떨까요? 아주 쉽고 간단한 자극을 얻기 위해 더 짧고 더 핫한 것들을 찾아다닙니다. 이제 10분이 넘어가는 영상들은 사람들을 머물게 하지 못합니다.
커뮤니티들은 어떨까요? 주된 내용들이 누군가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것들로 가득합니다.
왜 이런 현상들이 나타났을까요? 다른 사람들을 경쟁자로, 적으로 간주하여 저들보다 더 크고, 더 강하고, 더 빠르게 존재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세상적 가치들 때문일 것입니다.
이러한 문화들이 지금 우리들의 청년들과 다음세대들을 집어삼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올바른 방향, 주님의 진리를 제시해주어야 하는 우리들조차도 어쩌면 그 자리에 빠져들고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바울 사도가 말하는 대로 세대를 본받지 않고 주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이를 위해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있습니다. 바로 공동체이죠. 그 중에서도 교회 공동체를 우리에게 선물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어지는 3절부터 그 공동체를 향한 권면을 시작합니다. 어떤 권면을 하죠?
마땅히 생각할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이것은 어떤 이야기냐, 주님께서 부르신 성도들이 은혜로운 삶, 영적 예배를 드리도록 한 자리에 교회로서 부르셨는데, 서로를 향해 다른 생각들을 품지 말고, 오로지 주님이 허락하신 만큼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모든 성도는 주님의 부르심을 받아 한 교회로서 모여있지만, 서로가 너무나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 바울도 이야기하지만, 한 몸에 여러 신체 부위가 있는 것처럼 서로의 장점도 다르고, 단점도 다르고,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모두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당장 이 자리에만 보아도 알 수가 있죠. 서로 배경도 다르고, 지향하는 바도 다르고 여러가지들이 다를 겁니다.
그렇게 다른 이들이 서로 모이다보니, 어떤 일이 벌어져요? 갈등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게 옳은 것 같은데, 왜 저사람은 저렇게 행할까? 이런 생각들이 발생한다는 거에요.
그래서 바울은 교회 공동체의 성도들 서로가 주님이 허락하신 분량만큼만 마땅히 생각하고, 그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말라고 권면한 것이죠.
다시 말하자면, 서로가 다른 모습이지만, 그것을 문제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다른 모습대로 각자가 필요한 부분들이 있음을 인정하고, 주님께서 그 다른 모습들을 통해 이루실 은혜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사실 이 말씀이야말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말씀이 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문제는 앞서 보았던 세상적 가치의 범람도 문제이지만, 사실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그 가치들이 서로 충돌한다는 것입니다.
당장 우리나라만 보아도 어떤가요? 각 인터넷 공간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서로를 향해 비난과 비방이 넘쳐나게 됩니다.
남성과 여성으로, 청년과 기성세대로, 수도권과 지방으로, 정말 여러가지를 두고 서로를 갈라 싸우는 모습들을 너무나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인터넷 공간이 이제는 정보를 서로 나누는 공간이라기보다는 서로 분노를 나누는 공간과 같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비단 세상의 인터넷 공간에만 존재하는 문제일까요?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장 교회들에도 그러한 문제들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세대로, 정치로 서로 갈려 부딪히는 모습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여러가지 떠오르는 사건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이 교회라는 곳은 주님의 핏값으로 사신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앞서 이야기를 했잖아요. 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산 제물로 영적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그것이 쉽지 않으니, 함께 힘을 합칠 교회라는 믿음의 공동체를 허락해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바쳐 살리신 수많은 영혼들이 함께 한자리에 모여 우리의 삶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교회가 해야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위해 모인 공동체가 약간의 다른 모습들을 이유로 서로 싸우게 된다면, 주님께서 핏값으로 선물해주신 교회를 정말 무가치하게 만드는 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아무리 못나고 멍청한 사람이더라도 각 신체부위가 못났다고 잘라버리고 못쓰게 만들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삶을 영위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각 지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잘 움직여나아갈 때에야 올바르게 기능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이의 장점이 다른 이의 약점을 보완하여 서로가 함께 윈윈할 수가 있다는 것이죠.
결국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오늘 말씀 3절의 이야기처럼, 우리에게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주님께서 날 위해 귀한 생명을 주신 것처럼, 저 사람도 주님의 귀한 생명으로 사신 귀한 지체이다라는 지혜로운 생각이 우리가운데 필요할 것입니다.
서로 생각이 다르고 지향하는 가치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리스도라는 같은 믿음으로 사는 존재들입니다. 예수님으로, 그 믿음으로 함께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한몸과 마음이 되어 살아간다라면, 우리가 그 안에서 서로 호흡하여 온전한 몸이되어 살아간다면,
우리의 이 모습을 통해 저렇게 갈라져 서로 싸우는 세상 가운데에도 말 그대로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앞으로도 해야 할 일들이 바로 이런 일들인 것입니다.
서로 갈라져 한명이라도 더 비난하고 욕하기를 원하는 온라인 인터넷 현장에, 공동체를 세우시고 함께하시기 위해 행하신 주님의 놀라운 사랑을 전한다면, 정말 단 한사람만이라도 주님의 능력을 통해 서로를 비난하게 만드는 세상적 가치에서 벗어난다면,
이를 통해 세상은 주님의 사랑으로 정말 조금씩이라도 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작은 변화들을 통해 작게는 인터넷 사회의 갈등들이 해결되고, 더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의 사회적 문제들까지도 해결되는 귀한 일들이 벌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는 이 사회를 보며 믿음생활하기 너무나도 어려운 시대, 더 어려워질 시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이 위기가 우리에게 주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사회가 그들의 잘못된 가치로 지속적으로 무너져 결국 답을 찾지 못해 우왕좌왕할 때, 우리 교회 공동체가 주님의 귀한 진리를 그 답으로서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성도들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오늘 이 로마서 말씀을 통해, 이 세상이 지속적으로 악해져가고, 이로 인해 우리도 세대를 분별하지 못하고 본받는 모습들이 나타나지만,
이를 위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교회 공동체를 허락하셨고, 우리는 그 공동체를 통해 주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를 삶 속에서 실천해낼 수 있을 것이고, 더 나아가서는 악해져만 가는 세상에도 주님의 선한 영향력을 끼쳐 세상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일까지도 이루어낼 수 있음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우리 온라인선교부가 정말 그 일들을 해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어쩌면 어렵고 힘든 삶이고, 지침과 부침이 있겠지만, 주님께서 허락하신 공동체가 여러분들 가운데 함께한다는 것을 믿고 의지함으로, 무너져가는 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어나가는 귀한 우리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놓고 - 우리가 점점 악해져만 가는 이 세대 가운데 물들지 않고, 우리 마음을 올바로 세워 모든 공동체가 주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예배를 올려드릴 수 있도록
2. 우리의 사역을 놓고 - 우리가 행하는 이 온라인선교 사역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해달라고. 점점 무너져 답을 찾는 이들에게 주님의 귀한 진리를 전하는 귀한 일들이 우리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도록
3. 교회와 공동체를 놓고 - 교회 공동체 안에 서로 다름으로 인해 나타나는 어려움과 분쟁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공동체가 주님의 사랑 안에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그래서 삼일교회 공동체가 새로운 70년을 향해 하나되어 나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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