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1 새벽기도회: 욥기 26: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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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시겠습니다. 28장 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로 부르시고 함께 말씀을 듣고 기도할 수 있게 하심 감사합니다. 한 주를 살아가면서 지금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살아계신 하나님과 함께하는 하루가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저희가 있는 모든 곳이 천국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지켜주실 줄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욥기 26:5-14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욥기 26:5–14 NKRV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서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 그는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시며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그는 보름달을 가리시고 자기의 구름을 그 위에 펴시며 수면에 경계를 그으시니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나는 곳이니라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흔들리며 놀라느니라 그는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라합을 깨뜨리시며 그의 입김으로 하늘을 맑게 하시고 손으로 날렵한 뱀을 무찌르시나니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에 나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고 하루 동안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두고 먼저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빌닷이 세 번째로 말한 것에 대한 욥의 대답입니다. 욥과 세 친구는 계속해서 서로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는 논쟁을 계속 이어왔습니다. 오늘의 본문도 그러한 구도 속의 본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은 특별히 욥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서 서술하는 본문인데요. 오늘은 욥이 본문 속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함께 살펴보고 기도제목으로 삼으면 좋겠습니다.
욥은 고난 중에 처음에는 하나님이 이해가 안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보응 신학으로는 도저히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왜 고난을 주셨는지 설명이 되지 않아 괴로워 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들과의 논쟁 속에서 자신이 깨닫는 바가 있는지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찬양하기 시작합니다. 먼저 5절에서 욥은 “죽은 자의 영들이 물 밑에서 떨며 물에 사는 것들도 그러하도다”라고 말합니다. 욥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의 시작은 창조 세계의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땅 밑에는 바다가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깊은 바다를 우리는 심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욥은 그 가장 깊은 바다보다 더 깊은 곳이 있다고 말하는데요. 바로 죽은 자의 영들이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곳을 6절을 보니까 ‘스올’이라고 말합니다. 이 스올은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죽은 자의 영들이 있는 곳으로 영적인 세계입니다. 따라서 스올은 인간의 손이 뻗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이 아닌 곳입니다. 그런데 이 스올도 다스리시는 분이 계시는데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6절을 보니까 하나님 앞에서는 “스올도 벗은 몸으로 드러나며 멸망도 가림이 없음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죽은 자들이 모인 스올조차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스올, 즉 지옥은 사탄의 영역이며 사탄이 주권을 행사하는 곳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지옥은 하나님의 진노의 현장이며 하나님의 주권이 있는 곳임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대등하거나 하나님을 넘어서는 초자연적인 악은 결코 없는 것이죠. 이것을 안 욥은 스올에서조차 주권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분이신지 찬송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욥은 이제 바다에서 땅으로 옮깁니다. 7-10절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질서의 자리인 창조 세계를 보여줍니다. 7절에서 “북쪽을 허공에 펴시며”라고 말하는데, 이 북쪽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자폰”입니다. 이 자폰은 고대 종교 사상에서 신들이 거주하는 가장 높은 산을 의미했습니다. 욥은 바로 이것을 차용하여 이방 종교의 신이 아니라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이 이 산에 거주하심으로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시는 것을 보여줍니다. 시편 48:2에서 시온 산이 “북방”에 있다고 말하는데, 진짜 지리적으로 북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의미로 시온 산은 주권을 행사하는 곳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북쪽은 한 분이신 참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하나님께서는 허공에 펴시며 땅을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매다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주권을 허공에 펴시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 땅을 매다시는 이 모습은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라는 이 장면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기 이전의 땅의 상태를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주권대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것처럼 허공에 펴시며 매다심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이 세상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이것을 욥은 찬양하고 있습니다.
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8절은 “물을 빽빽한 구름에 싸시나 그 밑의 구름이 찢어지지 아니하느니라”라고 찬양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고 궁창을 만드신 장면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궁창을 만드실 때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물은 무게가 엄청난데도 구름으로 싸시고, 구름이 찢어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만약에 구름이 찢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로 노아 때처럼 대홍수가 세상에 펼쳐질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을 운용하고 계시기에 찢어지지 않고 막으심으로 질서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노아의 대홍수는 단순히 자연 현상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대로 일어난 것임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땅를 내리시도 하고, 비를 내리지 않으시는 분이시기도 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9절에서 가장 밝은 달인 보름달도 가리시는 분이시라고 말합니다. 가장 밝은 보름달 마저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기의 구름을 그 위에 펴셔서 가리실 수도 있는 분이라고 욥이 말하고 있는 겁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셨을 때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다고 마태가 말하였습니다. 그때가 제육시라고 말하는데,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시간으로는 낮 12시입니다. 낮 12시가 언제입니까? 바로 해가 중천에 떠있다는 말처럼 가장 밝을 때입니다. 가장 밝을 시간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습니다. 이것은 일식으로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이 유월절이며, 유월절은 보름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온 세상에 어둠이 임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마치 애굽의 아홉 번째 재앙처럼 말입니다. 세상을 밝히는 광명체조차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음을 욥은 찬송하고 있습니다.
창조 질서를 말하는 마지막 10절에서는 수면에 경계를 그으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수면의 범위를 정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곳에서 빛과 어둠이 함께 끝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 세상 모든 것이 창조되었으며, 창조된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그냥 내버려두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으로 유지하시며 질서와 경계를 정하셨음을 욥은 찬송하고 있습니다.
또한 욥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하나님께서 마음 먹으신다면 이 질서에서 벗어나 주권을 행사하실 수 있으심을 찬송합니다. 11절을 보시면 “그가 꾸짖으신즉 하늘 기둥이 흔들리며 놀라느니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늘 기둥은 구약성경의 우주관에서 하늘의 궁창이나 판을 떠받치는 산들을 말합니다. 이 견고한 산들은 궁창을 떠받치는 기둥과 같아서 홍수로 땅이 파괴되지 않게 막아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꾸짖으신다면 궁창을 떠받치는 이 산들이 흔들릴 수 있고, 곧 세상에 재앙이 찾아올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세상에 창조 질서가 있지만, 이 창조 질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핵심은 자신이 그러기로 선택하실 때 잡힌 창조 질서를 흔들 수 있고 흔드시는 주권적인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마음 먹으시면 자신이 세운 창조 질서도 흔드실 수 있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하시는 걸까요? 자신의 백성에게 겁을 주고, 이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창조도 하고 파괴하기를 반복하기 위해 그렇게 하시는 걸까요? 그저 재미로 그렇게 하시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12-13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2, 13절은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구절이지만, 당시 고대 근동의 독자들은 욥이 말하는 이 부분을 보고 단번에 알았을 겁니다. 왜냐하면 욥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에게 익숙한 콩쥐 팥쥐나 흥부와 놀부 같은 이야기처럼 말입니다. 라합은 13절에 따르면 “날렵한 뱀”이라고도 불리는데, 이것은 바다에 살며 우주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악한 세력을 상징하는 거대한 바다 괴물이나 바다뱀을 가리킵니다. 이 날렵한 뱀은 이사야 27장에서도 나오는데. 거기에서는 라합의 다른 이름인 “리워야단”으로 나옵니다. 이 리워야단은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욥기에서도 등장하는 이름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꾸짖으실 때 “너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에서 등장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바다를 잔잔하게 하시며 지혜로 이 거대한 바다 괴물인 라합, 다른 말로 리워야단을 깨뜨리시고 13절에서는 무찌르신다고 욥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욥은 11절에서 말하는 주권적 하나님은 창조 질서를 흔드는 것만으로도 악을 정복하실 분이심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의 주권이 단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계를 잘 유지하는 것만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주권이 이 세상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강하게 흔드는 것처럼 보이는 악이 멸망하는 것에도 있음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욥은 이러한 지혜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께서 보응 신학으로만 세상을 운용하시는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은 그것에 갇혀있지 않으시고, 그것에서 벗어나 자신의 주권대로도 세상을 운용하실 수 있고, 운용하고 계시는 분이심을 깨닫게 됩니다. 바로 하나님은 자신의 이해를 넘어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찬송하게 되는 장면입니다.
그리하여 욥은 이 모든 것의 결론으로 14절을 고백하게 됩니다. “보라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 바로 욥은 자신이 창조 세계나 하나님의 섭리를 관찰하고 연구함으로써 찾아낼 수 있는 것보다 더 깊은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고 고백하고 찬송합니다. 자신이 관찰하였지만,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며, 자신이 하나님께 들은 것들은 지혜와 능력이 충만하신 하나님이 속삭이는 소리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그렇기에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능히 헤아릴 수 있겠느냐 라며 마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창조 세계와 지금까지 자신이 깨달은 바의 결론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깨달으려고 하고, 이해하려고 해도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하나님을 찬송할 수밖에 없게 된 겁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욥이 찬송한 하나님은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며, 지금도 이 세상을 운용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볼 때 관찰하며 연구하고, 분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주권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꾸짖으신다면 이 세상은 흔들릴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공간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이것을 믿고 있습니까? 창세기 1장은 우리가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이 세상의 모든 공간이 하나님께서 지으시고 그분의 주군이 있는 곳임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딛고 있는 이 교회, 그리고 가정과 직장, 우리가 있는 모든 공간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이며 하나님의 주권이 있는 곳임을 우리는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리하고자 하신다면 얼마든지 움직여질 수 있는 곳임을 믿고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이것을 믿을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욥처럼 이것을 깨달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겁니다. 이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 이 세상을 질서 안에서 운용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때로는 창조 질서에서 벗어나 운용하시는 하나님을 연구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욥처럼 하나님의 지혜에 경탄하며 그분을 찬송하게 될 겁니다. 이 세상이 찬송의 제목이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경험적으로도 창조질서에 따라 이 세상을 운용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창조질서에서 벗어나 자신의 선한 뜻대로 운용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질서로만 설명되지 않는 이 세상에서 펼쳐지는 일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욥이 깨달은 이 사실을 우리도 깨달아 내가 있는 모든 곳에서 지혜이신 하나님을 날마다 찬송하게 되는 우리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질서대로 운용하시며, 때로는 선한 목적에 따라 주권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희의 얄팍한 지혜로는 하나님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욥이 말한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주권을 볼 때에 “이런 것들은 그의 행사의 단편일 뿐이요 우리가 그에게서 들은 것도 속삭이는 소리일 뿐이니 그의 큰 능력의 우렛소리를 누가 능히 헤아리랴”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저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지혜에 경탄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저희가 있는 모든 공간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높이며 찬송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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