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구간만 잘 달리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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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17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우리는 계속해서 열왕기서를 큐티하고 있습니다. 열왕기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간 이유를 설명하는 이스라엘 왕조실록입니다. 이 책을 통해 나라의 흥망성쇠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가에 달려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제가 단어를 드릴테니, 어떤 걸 이야기 하고 있는지 맞춰보세요. 조선 숙종, 남원, 광한루, 그네, 월매, 기생, 변사또, 이몽룡, 성춘향. 이 단어를 들으면 춘향전을 떠올립니다. 춘양전은 권선징악이 잘 녹아져 있으며 양반사회를 풍자합니다. 또한 그 속에 백성들의 신분상승의 욕망이 숨겨져 있습니다.
다시한번 단어를 드릴게요. 비가 내리지 않는 3년 반, 바알세불, 아세라, 이세벨, 아합, 엘리야. 우리는 이 단어들을 통해 아합전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합전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전국가단위의 우상숭배가 있었던 시대,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이 죽임을 당하던 시대, 왜 아합은 망하지 않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합전을 통해 말하고 있는 것은 아합도 결국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러한 큰 관점을 가지고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보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이 되는 아합전의 시대적 배경을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4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
이세벨의 학살로 인해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했고, 오바댜를 통해 간신히 100명의 선지자만 동굴에 숨어 있는 긴장감이 감도는 상황입니다.
이때 엘리야의 갈멜산 대첩이 일어나게 됩니다. 고구려 을지문덕의 살수대첩이 있다면 성경에는 모세의 홍해대첩이 있고, 조선시대 12척으로 330척을 부셔버린 이순신의 명량대첩이 있다면 성경에는 엘리야 단신으로 850명과 싸워 승리한 갈멜산 대첩이 있습니다.
21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갈멜산 대첩은 “누가 진짜 신이냐?” 왕을 통해 권력을 잡고있는 이세벨의 바알이냐? 아니면 죽임을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하나님이냐?하는 자존심 대결이었습니다.
24절을보면,
24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백성이 다 대답하되 그 말이 옳도다 하니라
제사에 불로 응답하는 것으로 누가 진짜 신인지 따져보기로 했습니다.
먼저 바알 선지자들이 나아옵니다. 그들은 아침부터 낮까지 제단 앞에서 소리를 지르고, 춤을 추었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에 엘리야 그들을 조롱합니다. “야 더 크게 외쳐봐 지금 너희 신이 생각에 잠겼나봐 아니면 너희 신이 좀 피곤해서 낮잠자나? 풉” 바알 선지자들이 엘리야의 조롱에 긁힙니다. 그래서 그들이 칼로 자해까지 하면서 바알을 불러 외칩니다.
그럼에도 응답이 없자 이제는 엘리야가 의기양양하게 일어서서 제단으로 나아갑니다. 그는 제물에 물까지 부어 아주 흥건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합니다. “하나님 누가 진짜 하나님인지 오늘 모두가 알게 해주세요” 바알 선지자처럼 소리를 지르거나 춤을 추거나 자해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단 한번의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하나님이 응답하시기에 충분했습니다. 기도를 그치매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모든 제물과 돌과 흙과 물을 다 태워버렸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를 올리고, 엘리야는 백성들과 함께 거짓 선지자들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이후 3년간 오지 않았던 비까지 내리면서 완전한 승리를, 이스라엘의 여호와가 참 하나님임을 드러냈습니다.
완전한 역전승에 사이다 결말이죠. 제가 만약 이 영화의 감독이라면 여기서 컷합니다. 그리고 나래이션으로 이렇게 처리할 것 같아요. “이후 엘리야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나라의 최고위직에 임명되었고, 그가 있는 동안에 이스라엘에 있는 산당들이 제거되고 남아있는 이세벨과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로 전부 추방되었다. 백성들은 다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았다.” 이야기 끝.
정말 그렇게 끝났을까요? 오늘 본문 19장은 갈멜산 대첩의 속편으로, 그 이후의 이야기입니다.
19장 1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아합이 이 모든 일을 그의 아내 이세벨에게 다 말했다고 합니다. 이때 말한다는 것은 보고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짜 흑막, 실세가 이세벨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이세벨은 바로 엘리야에게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2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한마디로, “엘리야 오늘의 이 치욕은 내가 반드시 갚아주겠다.” 그 소식이 엘리야에게 들리자 엘리야가 두려워서 도망갑니다.
3-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3 그가 이 형편을 보고 일어나 자기의 생명을 위해 도망하여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에 이르러 자기의 사환을 그 곳에 머물게 하고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갈멜산 대첩에서 승리를 이끈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번아웃까지 찾아와서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한 거에요. “하나님 이게 뭡니까. 여기 제 사직서 받아주세요. 저는 여기까지 인 것 같습니다. 그냥 저를 죽여주세요.”
엘리야가 크게 낙담하고 좌절한 이유는 갈멜산 대첩 이후 이제 바알 우상은 모조리 사라지고 다시 하나님께 돌아올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합 왕은 우유부단했고 이세벨은 더욱 포악해져 자신을 죽인다고 한거에요. 엘리야는 자신이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는 심한 자괴감이 든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의 사역을 실패한 사역이라고 평가한거에요.
지금 엘리야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똑같지 않나요? 저도 최근까지 엘리야랑 똑같은 마음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중고등부 다윗 공동체를 맡으면서 선생님들과 함께 아이들이 교회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섬겼습니다. 감사하게도 4명이었던 아이들이 8명까지 늘고 새신자들도 찾아왔었어요. 그런데 올해부터 아이들이 교회에 안나오기 시작한거에요. “왜 교회를 다녀야하는지 의미를 못찾겠다. 교회 나오는 것보다 늦잠을 자고 싶다.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 하면서 한 두명씩 교회를 안 나오는거에요. 제 마음이 너무 낙심이 되었어요. 내가 문제가 있나? 내가 하나님 앞에 올바로 서있지 못했나? 엘리야처럼 제 사역이 실패한건가? 라고 생각하게 되는거에요.
이처럼 우리는 순종을 통해 하나님이 내 삶에서 역사하는 모습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계획이 틀어지거나, 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쉽게 낙담됩니다.
하나님은 지치고 낙담하는 엘리야를 방치하고 다른 인물로 대체하지 않으십니다. 그가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하십니다.
5 로뎀 나무 아래에 누워 자더니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 그에게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쉽게 표현하자면, 천사를 통해 등을 토닥토닥해주면서 오구오구 해준거에요. 많이 힘들었지? 하루종일 도망치느라 배고프고 목마를텐데 떡도 먹이고 물도 마시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순종하다가 지치고 낙담하고 포기하려고할 때, 어휴 너네는 내가 언제까지 기다려야하니? 그냥 너 말고 내 말 잘듣는 다른 얘 데리고 할란다 하지 않으십니다. 지치고 낙담한 마음을 위로해주고, 먹을 것도 주시면서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기다려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엘리야는 다시한번 힘을 얻고 호렙산으로 걸어갑니다. 이제 오늘 본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요. 번아웃으로 지친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어떻게 다가올까요?
11-12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12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11절을 보면, 먼저 바람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바람 가운데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바람 후에는 지진이 나타나지만, 그 지진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은 계시지 않으십니다. 마지막으로 불이 있었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있지 않고 바람, 지진, 불 후에 세미한 소리로 엘리야를 만납니다.
바람과 지진, 불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는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는 늘 똑같지 않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리야에게 간접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죠. “나의 역사는 늘 너의 예상과 같지 않다”는 것을요.
그렇게 세미한 음성으로 다가온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13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13 엘리야가 듣고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나가 굴 어귀에 서매 소리가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이 질문은 의아한 질문입니다. 7-8절을 보면, 로뎀나무에서 호렙 산까지 엘리야를 인도하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단순히 장소를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 사명 곧, 엘리야의 역할을 일깨워주는 질문입니다.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왜 여기에 숨어 있느냐 질문하신 것입니다.
이에 엘리야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14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4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
엘리야의 말은 이런거에요. “나만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대로 살면 뭐합니까! 말씀대로 살았더니 결국 이 모양 이꼴 아닙니까!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대체 왜 아합 왕을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라고 부르짖은 적이 한번도 없으신가요? 말씀으로 살아가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겨우겨우 순종했는데, 교회 공동체에서 여전히 날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 회사생활 가운데 자꾸만 괴롭히는 직장 상사들이 나를 더 힘들게해요. 더 악하게 괴롭혀요. 이럴 때 “하나님 대체 왜 나를 내버려 두십니까. 하나님 어디에 계십니까 말씀에 순종했는데 왜 도와주시지 않습니까”라고 부르짖은 적이 없나요? 변하지 않는 현실, 응답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우리를 얼마나 낙담하게 만들고 좌절하게 만드나요.
그렇게 부르짖는 엘리야에게 세미한 소리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15-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를 통하여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16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기름을 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내 나라는 내가 경영한다. 넌 너의 구간만, 너에게 맡겨준 그 트랙만 잘 달리면 돼”라는 의미에요. 지금 당장 아합에게 심판이 임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사엘, 예후, 엘리사 세명에게 기름을 부어라. 내가 그들을 통해 아합 왕을 심판할 것이다. 너에게 맡겨진 구간을 잘 달리면 돼. 그리고 그 다음사람에게 바통터치를 하면 그 사람을 통해서 내가 다스릴거야. 그리고 너 혼자라고 낙심하지마.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는 7천명을 내가 남겨놨어. 그들을 통해 다시 나의 나라를 회복시킬거야. (왕하 10:1-11 예후 왕을 통해 아합 왕 가문이 끝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막막한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멈추지 않기 때문이에요.
말씀에 결론을 맺으려고 합니다.
열왕기는 크게 순종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때로는 크게 승리하기도하고, 기뻐하고 소위 말하는 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순종했는데, 변하지 않는 현실로 인해 낙심하고 좌절할 수도 있습니다. 여전히 날 괴롭히는 직장 상사, 나를 짜증나게 하는 교회의 지체, 날 어렵게만 만드는 상황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게 만듭니다. 이때 엘리야처럼 사직서 내고 모든 봉사를 내려놓고 싶게 만듭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 도대체 어디에 계십니까 왜 변하지 않습니까” 부르짖게 됩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내가 내 나라를 경영하고 있다. 너는 그게 보이지 않고, 너의 생각과 계획, 타이밍과 다를지라도 나를 믿고 네게 맡겨진 자리에서 순종해주겠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지금 내게 맡겨진 사역, 봉사의 자리에서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열심” 함께 찬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