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하는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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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신 주님
나를 부르신 주님
우리 모두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시기가 있을거라 생각해요.
언제 예수님을 처음 인격적으로 만나셨나요?
언제 구원의 감격을 경험 했었나요? 신앙의 길을 걸어오면서 예수님을 통해 받은 은혜와 구원의 감격 그리고 인격적으로 만난 사건이 참 많았을 것이라 생각해요.
저는 중학교 1학년 어느 날 저녁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중학생일 때 오셨던 전도사님은 기도에 진심 미쳐 계셨던 분이었어요. 그래서 중고등부 모든 학생들을 매일 저녁 7시에 교회로 불러서 10시까지 기도회를 진행 하셨어요. 당연히 기도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중고등부는 그 자리에 나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전도사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애들 집을 다 찾아다니면서 끌고 와서 그 자리에 앉히고 같이 기도를 하셨어요.
저는 어땠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 2학년. 9살 때부터 목사, 선교사가 꿈이었던 양휘석은 이 기도회를 참석 했을까요. 안했을까요?
말해 뭐하겠어요. 당연히 안 갔죠. 목사는 먼 미래의 일이고, 지금 당장은 그냥 노는게 더 좋았던 휘석이는 기도회를 가지 않았어요. 도망 다녔어요.
기도가 아니라 게임에 미쳐 있었거든요. 거의 중독자처럼 게임을 했어요. 당연히 예수님은 뒷전이었죠.
하나씩 사람들을 불러 모아 자리에 앉혀 기도회를 이어가던 전도사님에게 한 가지 기도제목을 말씀하셨어요. 양휘석을 잡아야 한다.라는 미션이 생겼어요. 알고보니 저 빼고 다른 중고등부 애들은 다 기도회에 참석하고 있었더라구요.
심지어 제 친구는 걸어서 1시간 거리이고, 버스도 저녁 8시면 끊기는데 그 거기를 걸어와서 기도하고 밤 10시에 집에 걸어가고 있었어요. 기도회 가지 말자고 같이 이야기했는데, 진짜 완전 배신자죠.
“양휘석 잡기” 미션이 시작이 되었어요. 전도사님뿐만 아니라 그 배신자 친구와 다른 중고등부 동생들도 작전에 투입 됐어요. 그런데 그 비밀 작전을 진행하는 그 팀에 양휘석 스파이가 있었어요.
저에게 “언제 집으로 찾아 간다고 하니 알아서 피하라”라고 전화를 해줬어요. 그리고 그 날이 됐어요.
역시 스파이에 첩보대로 딱 그 시간에 마을 어귀에 차가 슥 들어 오더라구요. 저는 집에서 나와서 마을 으슥한 곳에 숨었어요. 그리고 그들을 지켜봤어요. 무슨 범죄자 잡는 것처럼 승합차에서 사람들이 내리더니 제가 살던 빌라로 다같이 뛰어 올라 가더라구요. 그리고 다들 한숨을 쉬며 내려 왔어요.
작전이 실패 한거죠.
그리고 막 흩어져서 저를 찾기 시작하는데, 저만큼 그 마을을 아는 사람이 없고, 또 저는 그들을 보고 있으니까 당연히 잡히지 않았어요.
그렇게 2-30분 여간의 추적이 끝나고 승합차에 다들 타서 돌아 가더라구요. 왠지 알 수 없는 승리의 기쁨을 누리면서, 집 근처에 있는 슈퍼에 들어 갔어요. 마침 주머니에 돈도 있겠다. 기분도 좋고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었어요. 그리고 스크류바를 딱 들었어요.
계산을 하고 거기에서 까서 쓰레기를 버리고 문을 열고 나와서 입에 스크류바를 넣는 순간. 양 옆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튀어나와서 제 손을 잡고 뒷목을 잡았어요. 제 양손을 잡았어요. 아이스크림 어떻게 됐을까요.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져서 땅에 쳐박히는 그 모습이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어요. 그리고 전 그렇게 승합차로 끌려 갔어요. 한 입도 먹지 못한 스크류바를 남긴 체 저는 교회로 끌려가서 기도실로 던져짐을 당했어요.
내가 승리한 줄 알았는데 패배한거죠. 심지어 내 돈 500원까지 썼는데 졌어요. 이긴 줄 알았는데 지면 진짜 허탈해요. 던져져서 기도실에 들어 갔는데, 아무 생각도 안나더라구요. 그냥 웃음만 나왔어요. 그리고 이게 끝이 아니에요.
밖에서 자물쇠로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어요. 저 범죄자도 아닌데, 밖에서 쇠사슬로 묶고 자물쇠로 잠구더라구요. 그리고 이런 소리가 들려 왔어요.
“기도하기 전에, 예수님 만나기 전에 넌 나올 수 없다.”
당황스러워서 정신도 못차리고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까 정신이 돌아 오더라구요.
거기에서 전 탈출 계획을 세웠어요. 기도실에는 밖으로 나가는 창문이 두개가 있었어요. 중 1때는 제 키가 158이었거든요? 창문은 작지만 충분히 통과할 수 있었어요.
창문을 열고 넘어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전도사님의 딱 나타났어요. 저는 그대로 뒤로 자빠졌어요. 그리고 짜증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다른 창문으로 달려가서 문을 열었어요. 거기엔 배신자 제 친구가 서 있었어요.
모든 탈출로가 막혔어요. 그리고 기도할 때까지 문을 열어주지 않겠다고는 소리가 계속 들려 왔어요.
이제 저의 선택지는 딱 하나에요. 기도하는 것. 이거 밖에 답이 없었어요.
근데 또 오기가 생기는거에요. 기도를 하는 척을 했어요. 그랬더니 전도사님이 문을 쾅 치면서 “장난치지마!!”라고 하는거에요. 뭘 해도 제 머리 꼭대기에 계셨던거죠. 그래서 모든 것을 다 포기했어요.
앉아서 씩씩 거리다가 그래 기도나 해보자. 라는 마음이 들어서 기도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데 기도를 시작했어요.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그냥 혼잣말을 한 거죠.
저는 그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어요. 진짜 말도 안되는 사건을 겪고 기도실에 던져졌고 감금까지 되었는데, 그 말도 안되는 그 상황에서 예수님을 만났어요.
갑자기 알 수 없는 눈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제 입에서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고 하나님 앞에 저의 죄를 다 고백하고 있더라구요.
저는 그 날을 절대 잊을 수 없어요. 양휘석이 정말 다시 태어난 날이거든요.
여러분에게도 이렇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던 날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간 이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찾는 시간을 보내고 있겠죠.
세상이 이기는 것 같아 보여도
세상이 이기는 것 같아 보여도
오늘 본문 창세기 4장을 보면 최초의 살인자 가인의 족보와 아담과 하와의 새로운 아들 셋의 족보가 등장해요.
사실 가인은 살인을 했고 큰 죄를 저지른 사람이니까,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그리고 족보가 어떠했는지 기록할 필요는 사실 없어보여요.
그런데 성경은 그 살인자의 족보를 기록해 놨어요.
굳이 우리가 살인자의 족보까지 알아야 하나 싶지만, 사실 이 안에는 정말 중요한 메시지가 숨겨져 있어요.
(쉬고)
가인이 동생을 죽였어요.
하나님은 가인을 찾아가셔서 그의 죄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시면서, 지켜주시겠다 말씀하시죠.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대한 약속을 받은 가인은 곧 길을 떠나고, 한 곳에 정착해서 살기 시작해요.
성경을 잘보면 굉장히 의미심장한 표현이 등장해요.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났다”
살인을 했으나 하나님께 용서를 받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었어요.
하나님으로부터 무한 보호의 표를 받았어요.
만약 우리가 가인이었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일반적이라면 하나님께 감사를 고백하면서, 다시는 같은 죄를 반복하지 않도록 결단하며 살아야겠다! 라 할거에요.
(쉬고)
그런데 성경은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났다.”라고 말해요.
(쉬고)
이 문장은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일어나 길을 떠났다라는 뜻이 아니에요.
하나님을 뒤로한체, 삶에서 배제한체 길을 떠났다는 것을 말해요.
다시 말해 이제부터 나는 하나님의 규칙을 무시하고, 내가 하고 싶은데로 살아가겠다!는 것을 보여주는거에요.
그리고 정말 그런 일들이 그의 자손들 중에 생겨나기 시작해요.
4장 16-24절에 가인의 족보가 있어요.
몰라도 되는 살인자 집안의 이름이 쭉 나오다가, 갑자기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이 되어요.
그의 이름은 라멕이에요.
라멕이 그의 아내들에게 말해요.
아내들이래요.
뭔가 꼬이기 시작했어요. 원래 하나님은 부모를 떠나 하나. 단수가 되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지금 라멕은 아내들에게 말하고 있어요.
심상치 않죠. 하나님의 규칙을 완전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데로 살아가고 있는거에요.
이어지는 그의 말이 더 충격이에요.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사람을 내가 죽였다.
나는 사람의 목숨을 마음대로 할만큼 강하고 능력도 있다.
난 잔인하고 포악한 존재이다. 그 누구도 나를 막을 수 없다!!
한마디로 “나 건들지마 다 죽어”라는 노래를 부르고 다니고 있어요.
하나님을 떠나 규칙을 무시하고 멋대로 살아가겠다!라고 외쳤던 가인과 그의 후손. 그 후손은 살인을 자랑스럽게 외치며 노래까지 불러요.
가인의 후손의 삶의 양식이 어떤지 이해하겠나요?
그들의 삶은 철저히 하나님은 떠났어요.
나의 세상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지워버렸어요.
그렇게 멋대로 살아가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아요.
그들의 포악함과 죄는 날이 갈수록 커져가요.
(쉬고)
이처럼 세상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지워버린 가인과 그의 후손들이에요. 정말 답이 없죠.
창세기 4장이 여기에서 끝이 났다면 정말 절망적이었을거에요.
(쉬고)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또 다른 사람의 족보가 등장을 해요.
바로 가인의 막내동생 셋의 족보에요.
한 순간에 아들 둘을 잃어버린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아들이죠.
셋의 후손들은 가인의 후손들과 완전히 대조되는 삶을 살아가요.
그 후손들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해요.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쉬고)
여기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럼 아담과 하와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후에 하나님을 부르지 않았나?
잘못은 본인들이 해놓고 삐져서 하나님을 찾지 않았나?
(3초 쉬고)
가인이 아벨을 왜 죽였을까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다가 마음에 안들어서 때려 죽인거잖아요.
아담과 하와도 그리고 그 자손들도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왔어요.
그런데도 지금 성경은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라고 말하죠.
(쉬고)
이것은 무리가 집단이 드디어 하나님을 공식적으로 예배하기 시작했다는 의미에요.
(3초 쉬고)
어떤 이유였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함께 모여 공식적으로 예배를 드리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들이 모여 집단이 되어 하나님을 공식적으로 예배하는거에요.
(쉬고)
세상에는 이제 하나님을 지우고 갈라진 사람들과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만 남았어요.
그렇게 팽팽한 줄다리기를 해오던 삶의 양식이 어느 순간 툭 끊어져 버리는 사건이 발생해요.
(쉬고)
창세기 6장 2절이에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하나님을 지운 삶과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 그들의 족보가 섞이기 시작하는거에요.
그렇게 서로의 삶의 양식이 뒤죽 박죽 되어버려요.
(쉬고)
사실 우리는 여기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누구인지 성경이 말하지 않기 때문에 정확하게 알 수 없어요.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던 두 가지 삶의 양식이 혼합된 하나의 양식으로 변해버렸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무시하고 지웠던 문화와 하나님을 기억하는 문화가 합쳐졌어요.
자기 눈에 좋은데로 사람들끼리 막 결혼하기 시작한거에요.
비로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들도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기 시작하는거에요.
자기 눈에 좋아 보이는데로 선택하고 마음껏 누리는거에요.
(쉬고)
이렇게 자기 눈에 좋아보이는 것을 선택했던 큰 사건이 이전에도 있었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사건
“먹음직스럽고 보암직하고 지혜를 가질만큼 탐스러워 보였고” 그 열매로, 죄가 들어왔고, 결국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어요.
사람들이 또 다시 그 때처럼 내 본능과 욕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거에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으면서, 하나님의 모습을 닮고 그분의 속성을 공유 받는 엄청난 가치가 있는 존재가 스스로 짐승처럼 동물처럼 본능과 욕구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어요. .
세상의 문화와 하나님의 문화가 섞였어요.
하나님은 더 이상 없어요
모두가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삶을 더 행복해해요.
(쉬고)
이 것만으로도 큰 일났는데, 더 엄청난 일이 일어나요.
창세기 6장을 보면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을 바라보며, 인간 지은 것을 한탄하기 시작하세요.
한탄은 다른 말로 말하면 후회한다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은 것에 대해 후회하신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사랑하지만 벌을 내려야하는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그 마음이 너무 괴롭다는 뜻이에요.
그만큼 세상에 가득찬 죄를 보며 마음 아파하고 계신다는 뜻이에요.
사랑의 하나님이지만 또 공의의 하나님이기에, 죄와 함께 갈 수 없는 분이기에 그 것을 다 지우셔야 했어요.
하나님이 한탄을 하던 말던, 우리를 바라보며 벌을 내릴 수밖에 없는 그 애절한 눈물과 사랑을 보이고 계시던 말던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짐승처럼 살아가고 있어요.
99.9%가 같은 삶을 살아 가요. 하나님을 지운 삶을 너무나 행복해해요.
하고 싶은 것 마음 껏 할 수 있으니까요.
(3초 쉬고)
하나님을 지우고 죄가 가득한 세상
그런 세상을 바라보며 심판해야 하는 하나님께서 한탄하실 때 상황의 반전이 일어나요.
6장 8절.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여러분 노아의 뜻이 무엇인지 아세요?
맞아요. “위로하다”에요. 위로하다.
(쉬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심판해야 해서 극도로 마음 아파하시던 하나님을 위로하는 존재가 세상에 있었던 거에요.
(3초 쉬고)
하나님을 떠올리지 않고, 하나님이 누군지도 모르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떠올리고 예배하던 한 사람. 하나님을 위로하던 존재가 남아있었어요.
노아도 죄인이었지만,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모든 삶의 목표와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 있었어요.
(쉬고)
우리는 노아보다 상황이 나아요.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기를 원하는 동역자들이 여기에 이렇게나 있으니까요.
같이 기도하고 찬양할 수 있는 동역자들이, 예수님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내 옆에 있잖아요.
그런데 노아는 혼자였어요.
하나님의 흔적을 지워가던 시대. 아니 하나님이라는 존재조차 모르던 시대.
신을 이야기하는 순간 미개하다 말하는 그런 시대
하나님을 다 지워버린 세상이에요.
가족 빼고는 아무하고도 하나님의 기준과 말씀을 나눌 수 없는 사람이 노아였어요.
하나님이 방주를 만들라 하세요.
먼저 고페르 나무를 사용하래요. 방수에 굉장히 뛰어난 나무에요.
그런데 아무데서나 가져올 수 없었어요. 널려 있는 아무 나무로 만들 수 없어요.
무조건 고페르 나무에요. 고페르 나무라고 다 좋은 것 아니잖아요. 가서 보고 방주를 지을만한 것을 엄선해서 가져와야 했어요.
그렇게 가져온 고페르 나무에 역청을 발라야 해요.
지금은 방수포 사는 것이 어렵지 않죠. 그 때 그런게 어디있어요. 직접 만들어서 앞뒤 모른 곳에 고루 발라야 해요.
그거 만드는 것 쉽지도 않아요. 다 일일히 손수 시간을 드려 만들어야 했어요.
배는 또 얼마나 크게요.
여러분 100m 달리기 해봤죠? 100m 뛰고 결승점 들어왔는데 50m 더 뛰라고 하면 어떨까요? 눈으로 욕하겠죠.
배 길이가 150m 였어요. 너비는 3-40m 높이는 14m. 아파트 3층이 약 11m에요. 그 보다 높은 방주를 지어야 했던거에요.
방주 만드는 것이 쉬웠을까요?
아무도 도와주지 않아요. 노아와 그 가족들 밖에 없어요.
비가 상당히 왔는데도 배가 뜨지 않았다고 해요.
그럼 엄청 고지대에서 방주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잖아요.
높은데로 올라갈수록 숨쉬기가 어렵잖아요.
그런데 노아는 고페르 나무를, 역청의 재료를 산 아래서부터 다 들고 꼭대기까지 올라갔어요.
매일 나무를 들고 걸어올라가는 노아를 보고 사람들이 뭐라고 했을 것 같아요?
“야 너 뭐하냐 진짜. 한심하다 한심해”
“몇년째냐 지금? 진짜 노답이네”
“벌써 70년이나 지났어. 정신 좀 차려”
“대화가 안되네!.”
누가 뭐라해도 방주를 지었어요.
홍수라는 개념이 없었던 그 때 홍수가 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최소 70년 최대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어요.
인류의 99.9%가 하나님을 떠났고 지워버린 세상을 살던 한 사람. “자기에게 명하신데로 다 준행하는 것을 즐겨했던 노아”가 있었던거에요.
(쉬고)
그가 살았던 현실은. 경건하지 못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역할 모델로 칭송받았던 때였어요.
세상에 하나님은 없고, 인간이 최고다.
하고 싶은 것 하며 눈치보지 말고 살라 가르쳤어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도 똑같아요.
저도 여러분도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지워버린 세상을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가 초중고대학교 때 배우는 모든 것들, 우리의 아이들이 배우고 있는 세상의 학문에는 한 가지 목표가 있어요.
하나님의 흔적 지우기.
세상은 하나님을 떠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가르치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남은 하나님을 지워버리려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쉬고)
우리가 즐겨보는 드라마 영화 책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과 반하는 내용들이 잔뜩 담겨 있어요.
저 어벤져스, 스파이더맨, 아이언맨이 나오는 마블 영화 굉장히 좋아해요.
근데 솔직히 말하면 그거 말도 안 되는거잖아요.
무슨 멀티버스, 평행세계가 있고, 외계인들이 행성을 뛰어 다니면서 다른 행성을 구하나요.
솔직히 말도 안되는 이야기잖아요.
그걸 진짜로 받아 드리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 없을거에요. 그리고 “그게 뭐가 잘못 됐어요?” 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이게 세상의 전략이에요. 혼란스럽게 만드는거에요. 혼동 시키는거에요.
그게 말이 안되는 소리라는 것 알아요. 그런데 거기에 자꾸 빠지게 만들어요.
그러다보면 진실과 거짓이 헷갈리게 되어요.
가랑비에 옷이 젖듯 계속해서 우리도 그렇게 세상문화에 젖어들고 있었어요.
마치 가인과 셋의 족보가 혼합된 것처럼 세상 문화와 그리스도인의 삶이 뒤죽박죽 섞이는 것이죠.
예배하는 자들
예배하는 자들
(5초 쉬고)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요?
혹시 하나님과 세상을 같이 사랑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혼합된 삶을 살아오고 있지는 않았나요?
(5초 쉬고)
우리의 삶에는 분명한 영향을 주고 있는 두 가지가 있어요.
세상이 주는 달콤함과 즐거움 그리고 매혹적인 문화 그리고 좁은 길을 걸어가야 하고, 온통 불편한 것 투성이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
(쉬고)
나의 삶이 혼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면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마음을 한탄케 했던 99.9%의 사람이 되고 말거에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살아갔던 사람이 되고 말거에요.
하지만 깨닫고 의식하면서 살아가려 애를 쓰고, 혼합된 삶을 힘들더라도 괴롭더라도 분리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로했던 노아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위로하는 사람이 될거에요.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위로하는 삶을 살아가는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쉬고)
사실 저는 이미 여러분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위로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있음을 믿어요.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면, 세상에는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알면서도 제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 투성이에요.
그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대로 살아가요.
그들의 삶에 하나님은 없어요.
그들의 입술에도 하나님은 없어요.
(쉬고)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은 그들과는 다르죠.
특별히 이슬람이 더 많은 이 땅에서 여러분들은 매주 정해진 시간에 모여 하나님을 찬양하고, 교제하고 그 분의 이름을 부르고 있어요.
하나님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흔적을 남기고 있어요.
우상이 가득 한 이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며 그 분을 위로하는 역할을 우리가 하고 있었던거에요.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러나 노아는 은혜를 입었더라
(쉬고)
지금까지 해오셨던 것처럼 앞으로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분을 위로하는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기도합니다.
(3초 쉬고)
한마음 가족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이 이 곳에서 불려지기를
한마음 가족들의 삶을 통해 다음세대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갈 수 있기를
우리가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위로하는 삶을 살아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하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