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진심
Notes
Transcript
하나님의 진심
하나님의 진심
마태복음 5:7 “7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이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집안의 한 소년이 생계를 위해 빵을 팔러 다니면서 가족의 생계를 도왔다.
명절이었다. 사람들이 고향을 가기위해 버스터미널로 모이는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가서 팔고 싶었다. 복잡한 곳에서 빵을 파는데 버스를 급하게 타기위해 달려오던 청년들과 부딪히는 바람에 빵이 바닥에 쏟아지고 엉망이 되었다.
청년들은 버스를 놓칠까봐 버려두고 달려가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급한 발걸음으로 지나치기만 했다. 소년을 눈물을 흘리며 떨어진 빵을 주워 담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 노인이 쭈그리고 앉아서 함께 빵을 담아 주었다.
모두 주워담자 소년은 노인에게 다가가서 물어보았다.
“저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혹시 그리스도입니까?”
이 아이는 주일학교에서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공부를 했는데 그분이 이 할아버지인것 같아서 그런 질문을 했을 것입니다.
자비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비는 가장 소중한 것을 상대방에게 주는 구체적인 행동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누가복음… 10장 이야기에서 처럼,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 중 누가 이 사람의 이웃이겠느냐 물으시자, 37절에서 누가복음 10:37 “37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자비를 베푸는 것은 자신의 형편이 좋아서 다른 사람을 동정하거나 연민을 가지고 돕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도 어렵고 힘들지만 온마음과 사랑으로 베푸는 것을 자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익스피어는 자비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자비는 가장 위대한 것 중에 가장 위대한 것으로 왕의 권세보다 중하다. 라고 말이지요.
하나님의 속성인 공의가 하나님의 자비로 세상 권세에 임하면 세상권세가 하나님의 권위로 변합니다. 공의를 주장하는 것만으로 살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고, 그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공의와 의에 너무 심취해서 그저 의로워야 된다고 외쳐대기만 하고 교회는 말이지, 하나님은 말이지, 기독교는 말이지 하며 소리치기만 할때가 있습니다. 성도들은 열심히 좋은 설교만 찾아들으면서 은혜를 받기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자비를 구하고 그 자비를 베풀때 실현이 되는 것입니다.
자비는 하나님의 성품이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신명기 4:31 “31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자비로운 하나님이시니, 당신들을 버리시거나 멸하시지 않고, 또 당신들의 조상과 맺으신 언약을 잊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움에 긍휼히 여기시고 도우십니다. 뿐만아니라 용서하기까지 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가 바로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지만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자비를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니믜 자비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그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자비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사람을 자비롭게 대하실 것입니다.
마태복음 6:14 “14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베풀때 하나님앞에서 우리도 그러한 베품을 받게 됩니다.
존스토트목사님은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 어려움에 대해 긍휼이 보이지 않는다면 자기 죄를 회개했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세상에 하나님의 자비가 유통되고 흘러가야 합니다. 정죄하고 판단하기 바쁜 교회를 원하지 않습니다. 끝없이 용서하고 돕고 자비를 베푸는 일에 바쁜 교회를 세상은 원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자비때문에 모인 자들입니다. 그러한 교회가 다시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 세상속으로 자비가 흘러 나가는 강물의 근원지가 되어야 합니다.
과연 저와 여러분은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입니까?
세상의 대해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자신에게 주신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계속 은혜가 부족하다며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폴레옹 시대에 한 소녀가 울며 왕을 찾아와 간청합니다.
아버지를 용서해 주세요. 아버지가 누구냐 묻자 라욜라입니다. 억울하게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래 그는 국가 반역죄를 저질렀다. 나는 너를 위해 해 줄것이 없다.
그러자. 잘 압니다. 저는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왕의 자비를 구하고 있는것입니다.
그러자 왕은 소녀의 손을 잡으며 내가 너를 위해 아버지를 용서해 주겠다. 집으로 돌아가거라.
오늘 우리에게 세상의 법칙을 뛰어넘는 자비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