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교훈 하시는 하나님
Notes
Transcript
안녕하세요! 오늘 1달만에 모여서 교제를 하네요!
주중에 모이니깐 많은식구 분들이 모이지 못하죠.. 힘이 들것입니다. 그렇죠.. 다음 달 부터는 항상 봉사자 모임이 있는 날에 이렇게 방문미 교제를 할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만약에 외부 설교가 있으면 방송 실장님께서 인도하셔서 교제를 하면 될것 같습니다. 아시겠죠..
말씀 찾겠습니다.
시편 144장 1절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방금 읽은 말씀은 다윗의 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144편은 다윗이 과거에 전쟁에서 구원해 주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찬송하고 있으며, 현재 앞두고 있는 큰 전쟁에 대해서도 그 적들을 물리치고 승리하게 해주시기를 기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방금 읽은 1절 말씀에 저가 내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셨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다윗을 주님은 무엇을 가르쳐 주셨습니까?
우리는 이것에 교훈을 받아야 할것입니다. 내 손을 가르쳐 주셨고 손가락을 가르쳐 주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떠한 것을 다윗에게 가르쳐 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다윗을 훈련하는 방법은 욥기에 나오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의 말씀처럼 금을 연단하듯이 용광로에 쇠를 담글질 하듯이 불순물이 떨어질때까지 만들어 가신것입니다.
시편 32:8 “8 내가 너의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너의 갈길입니다. 우리의 훈련코스가 각자가 다르게 다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본문 말씀에 저가 내 손을 가르친다고 말씀하고 있는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걸어가야 할 코스는 이 은혜의 복음을 생명을 바쳐서 전하는 일이었잖아요!
베드로의 코스도 십자가에 거꾸로 메달려서 순교하는 길이 었잖아요!
그리고 사도요한의 코스는 밧모섬에서 마지막을 요한계시록을 작성하는 코스도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코스는 없을까요?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에게는 각자의 코스가 있는 것입니다.
시편 37:23–24 “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 길을 기뻐하시나니 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사람은 구원받은 사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데 어떨때 기뻐하시냐면 그 정하신 걸음대로 걸어갈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넘어질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주 엎드러지지는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들어 주시기때문에 절대 엎드러 지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눈물의 골자기가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어떠한 코스로 훈련을 받았을까요?
다윗의 훈련은 먼저 보이는것을 의지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사울에게서 쫒겨 다니면서 방백들을 충분히 의지할수 있지만 오로지 누구만 의지하게 만듭니까? 하나님만 의지 하게 만드셨습니다.
주변 사람이었던 사울의 딸 미갈도, 자기에게 기름을 부어주었던 사무엘도, 자기의 생명처럼 사랑했던 요나단도, 제사장 아히멜렉도, 기드왕, 아기스도 다윗을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누가 다윗을 지켜 주었습니까? 네 하나님만이 다윗을 지켜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같다는 것입니다. 이세상의 것은 어떻게 되어 버립니까? 지나가는 인생인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과 함께.. 주님을 의지 해서 하는 것들만이 영원히 남는 것입니다.
요한1서 2:17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그리고 다윗이 배운 또 하나는 내가 피할곳은 어디인지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시편에 주의 그늘 아래에서 나는 이 재앙이 지나가기까지 피한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피해야 할곳은 바로 주님의 그늘 아래여야 합니다. 중요합니다.
시편 57:1 “1 하나님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내 영혼이 주께로 피하되 주의 날개 그늘 아래서 이 재앙이 지나기까지 피하리이다”
다윗은 사울이 추격할 때 기도만 했던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을 했냐면 자신이 할수 있는 것은 했다는 것입니다.
57편 상단에 내용이 나오는데 무엇이라 적혀 있나면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있던 때에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사울을 피하여 굴이 있을때.. 주께로 피하되…
주님이 훈련하시는 것은 무엇이냐. 주께로 피하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구원의 역사를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가끔 과소 평가를 할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난 모든것을 다 할수 있어. 이것도 할수 있고, 저것도 할수 있어.. 젊을때 청년때 이러한 생각을 많이 들하죠..
왜냐 하면 건강하고 힘이 있기때문입니다. 그런데요.. 우리는 어떠한 존재입니까? 하루살이 같은 인생들인것입니다.
욥기 4:19 “19 하물며 흙 집에 살며 티끌로 터를 삼고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 자이겠느냐”
우리는 흙집에 살며 하루살이에게라도 눌려 죽을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 연약한 존재인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보았을때에는 작고 작은 피조물인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어떻습니까? 개인주의 사상, 혼자만의 세상을 즐기고 있지 않습니까? 욜로족.. 혼밥.. 협력의 단어가 점점 퇴색되고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구원받은 우리는 무엇을 알게 됩니까? 난 작은 존재이구나.. 하나님이 없으면 난 아무것도 아니구나 그것을 철저하게 깨닫지 않습니까?
그러니깐 난 창조자 하나님에게로 피해야 겠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겁니다. 내가 높아져 있고. 내가 할수 있음을 알때 그때가 가장 위험할때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고린도전서 10:12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선줄로 생각하는자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좋은 곳은 바로 주의 날개 그늘 아래인것입니다. 그곳이 세상 어느 곳 보다 최고로 좋은곳이 아닐까요!
룻기에 보면 나오미가 며느리 룻을 데리고 어디로 옵니까? 네 베들레햄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 베들레헴은 어디입니까? 이 곳은 떡집이라는 뜻이 있는 곳이고요, 또한 예수님이 태어난 곳입니다.
미가 5:2 “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잖아요
룻은 그곳으로 지금 보호받으러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룻기 2:12 “12 여호와께서 네 행한 일을 보응하시기를 원하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네게 온전한 상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 날개 아래 보호를 받으러 온 룻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상 주기 원한다 그렇죠..
그래서 여호와 그늘 아래가 가장 좋은 곳이 되는것입니다. 가장 안전하고 가장 안락하고 안식이 있는 곳이 바로 그 그늘 아래 인것입니다.
다윗은 힘들고 어려울때 어디로 피해야 되는지 잘 알았던 것입니다. 비록 지금 굴에 있지만 주님이 계신 그곳 그늘 아래에 거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어렵고 힘들때 어디로 피하십니까? 나만의 굴로 들어가 버리십니까?
엘리야 처럼 로뎀아래 그늘 아래로 숨어 버립니까? 죽기를 각오 하면서요..
우리는 주님이 계신 집으로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평생 소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시편 27:4 “4 내가 여호와께 청하였던 한 가지 일 곧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나로 내 생전에 여호와의 집에 거하여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앙망하며 그 전에서 사모하게 하실 것이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이 세우신 교회와 뗄 수없는 관계인것입니다. 교회는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내가 반드시 거해야 하는 처소인것입니다.
그곳이 바로 여호와 그늘 아래인것입니다. 혹시 교회라고 해서 이 교회당을 생각하고 계신분 없죠.. 두세사람이 있는곳에 나도 있다고 한 그곳인것입니다.
다윗은 훈련중에서 이러한것을 주님이 가르쳐 주신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묻고 따라가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무엘상에 보면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라는 말이 여러번 나옵니다. 다윗은 시시콜콜 하나님께 물어보면서 나아갔습니다.
인생을 의지할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다윗은 자기 생각을 버리고 누구의 뜻을 구한것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구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보복이 아니라 용서의 삶을 훈련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사울은 끊임없이 악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그 악을 무엇을 갚았습니까? 선으로 갚았습니다.
로마서 12:21 “21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사도바울 말씀처럼 다윗은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 어떻게 이길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과 어떠한 상황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는 그 안목이 그를 용서의 사람으로 만든것입니다.
사울이 굴속에서 자고 있을때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베었지 않습니까? 그러고 다윗은 어떠한 마음을 가졌습니까?
마음에 찔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같은 형제 자매님 사이에서 상처 주고, 서로 힘들게 한고나서 우리는 어떻습니까? 아무렇지 않습니까? 아니면 마음이 괴롭습니까?
우리의 양심은 구원받고 나서는 선한 양심으로 깨끗해 지죠.. 작은 죄라도 지으면 그것이 쉽게 들어나잖아요!
그러니깐 우리가 그 마음이 들면 서로를 용서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해가 생기면 풀려고 노력을 하고요..
그리고 우리가 용서 할수 있는 이유는
에베소서 4:32 “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예수님께 받은 사랑이 있기 때문에 아무런 이유없이 용서 할수 있는것입니다.
그래도 용서 할수 없다면 명령을 기억해야합니다.
마태복음 18:21–22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일흔번식 일곱번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가 않되면 할려고 노력해야합니다.
그리고 용서가 되지 않은 것은 바로 그 것을 다시 생각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41-42장 을 보면 나를 내가 저를 그러한 표현들이 많이 쓰여져 있습니다.
41장 5절에는 나의 원수가 내게 이러한 말을 했어요, 7절에는 나를 미워하는 자가 이렇게 했어요 그리고 42장에는 사름들이 종일 나에게 하는말이 이렇게 했어요..
이러한 말을 적어 놓고 있지 않습니까?
나를 보고 그때 나에게 했던 말들을 곱씹고 있지 않습니까?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않되는 겁니다.
하지만 시편144장 2절 말씀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는 자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피난처시요 내 백성을 내게 복종케 하시는 자시로다 을 보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의 인자 십니다. 나의 산성 이십니다. 나를 건지시는 자 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으로 연결을 짓고 있는다는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이세상의 중심에서 나를 가장 귀하게 여기면서 1인칭으로 보고 있을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해서 하나님이 나의 중심으로 여기면서 살아가야 함을 이 성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절인 15절에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무엇이 있습니까? 복이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누구 하나님으로 자기 하나님을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항상 나의 하나님이 되어야 합니다. 이삭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다윗을 하나님이 훈련하신 것을 바탕으로 나에게도 같이 손으로 가르치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가르치고 하실것입니다.
우리는 이 훈련을 묵묵히 어떻게 이겨나아가야 하냐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는 코스다 그렇게 생각하고 묵묵히 견뎌야 할것입니다.
그러면 욥기 23:10 “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이 말씀처럼 정금처럼 귀하게 쓰는 그릇이 될것입니다.
시편 144편을 나누어 보면 과거의 나에게 역사했던 하나님께 감사 그리고 5-11절은 현재 전쟁하고 있는데 거기서 부터 건져 주실것을 간구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12-15절은 앞으로 축복이 임할것에 대한 노래로 이 시편 144편을 적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