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Cross Series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74 views
Notes
Transcript
제목: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본문: 시 22:1-2
(시22:1) (아엘렛 샤할에 맞추어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돕는 일로부터 또 나의 울부짖는 말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나이까?
<To the chief Musician upon Aijeleth Shahar, A Psalm of David.> My God, my God, why hast thou forsaken me? why art thou so far from helping me, and from the words of my roaring?
(시22:2)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 부르짖으나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나이다. 밤에도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나이다.
O my God, I cry in the daytime, but thou hearest not; and in the night season, and am not silent.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의 초림의 실패로 인한 결과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이미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습니다.
즉 이미 예언된 일이고 그 예언대로 성취된 사건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서 많은 기쁨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또한 십자가를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무겁게 느껴지고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게 됩니다.
(시22:3) 그러나, 오 이스라엘의 찬양 가운데 거주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But thou art holy, O thou that inhabitest the praises of Israel.
(시22:4) 우리 조상들이 주를 신뢰하고 신뢰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Our fathers trusted in thee: they trusted, and thou didst deliver them.
(시22: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출을 받았고 주를 신뢰하여 당황하지 아니하였나이다.
They cried unto thee, and were delivered: they trusted in thee, and were not confounded.
(시22:6) 그러나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오니 사람들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멸시거리이니이다.
But I am a worm, and no man; a reproach of men, and despised of the people.
위치를 기억하고 마태복음으로 가보겠습니다.
십자가에서 철저히 버려지는 예수님
(마27:44)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같은 말로 그분을 욕하더라.
The thieves also, which were crucified with him, cast the same in his teeth.
(마27:45) 이제 여섯 시부터 아홉 시까지 어둠이 온 땅을 덮었더라.
Now from the sixth hour there was darkness over all the land unto the ninth hour.
(마27:46) 아홉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것은 곧,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말이라.
And about the ninth hour Jesus cried with a loud voice, saying, Eli, Eli, lama sabachthani? that is to say, My God, my God, why hast thou forsaken me?
예수님은 십자가 사건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히 버려지는 경험을 하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버려지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라
(히10:25)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되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Not forsaking the assembling of ourselves together, as the manner of some is; but exhorting one another: and so much the more, as ye see the day approaching.
히브리서 10장의 말씀은 교회에 모이는 일에 빠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이는 일이 없다면 모이는 일을 폐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께 부르짖고 계셨습니다.
그 이유는 죄인들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죄인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었습니다.
죄인들과 하나님이 서로 적대 관계에 있기 때문도 아닙니다.
죄인은 거듭나서 화해하기 전 까지는 평생 원수 관계에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영광스럽게 그리고 완벽하게
아버지와 하나가 되어계셨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교제와 동행을 크게 즐겼습니다.
그렇게 큰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6,000년 전에
“우리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영원한 하나님께서 아버지, 아들, 성령이 함께 계셨을 때
그들은 서로의 동행을 크게 즐겼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람이 되셨을 때도
그 교제에는 전혀 끊김이 없었습니다.
(사59:1) 보라, 주의 손이 짧아져서 구원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요, 그분의 귀가 둔하여서 듣지 못하는 것도 아니라.
Behold, the LORD'S hand is not shortened, that it cannot save; neither his ear heavy, that it cannot hear:
(사59:2) 오직 너희 불법들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갈라놓았고 너희 죄들이 그분의 얼굴을 너희에게 숨겼으므로 그분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But your iniquities have separated between you and your God, and your sins have hid his face from you, that he will not hear.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갈라지게 된것은 사람들의 죄로인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람이 된 것으로 인해 하나님과 갈라질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죄도 범한 적이 없으십니다.
십자가에서 일어난 일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세 분이 항상 즐겨왔던 교제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일이 생겼던 것입니다.
세 분이 가졌던 동료관계가 갑자기 중단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울부짖는 장면은 복음서에서 자세히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편 22편으로 가야 우리는 제대로 된 예수님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시22:1) (아엘렛 샤할에 맞추어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돕는 일로부터 또 나의 울부짖는 말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나이까?
<To the chief Musician upon Aijeleth Shahar, A Psalm of David.> My God, my God, why hast thou forsaken me? why art thou so far from helping me, and from the words of my roaring?
“나의 울부짖는 말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나이까?”
신약의 복음서에서는 세부적인 표시들이 없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사건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부분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에서는 낮에는 부르짖으셨고, 밤에도 목소리를 크게 내면서
감정을 드러내는 소리를 목청것 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히5:7) 그분께서는 친히 육체로 거하던 때에 자기를 사망으로부터 능히 구원하실 분에게 강렬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기도와 간구를 드리셨고 또 친히 두려워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들으셨느니라.
Who in the days of his flesh, when he had offered up prayers and supplications with strong crying and tears unto him that was able to save him from death, and was heard in that he feared;
(히5:8) 그분께서 아들이실지라도 친히 고난 받으신 일들로 말미암아 순종하기를 배우사
Though he were a Son, yet learned he obedience by the things which he suffered;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으로 인해
아버지께 강렬한 부르짖음이 있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낮에 부르짓고 밤에도 부르짓으셨습니다.
(시22:2) 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 부르짖으나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나이다. 밤에도 내가 잠잠하지 아니하나이다.
O my God, I cry in the daytime, but thou hearest not; and in the night season, and am not silent.
십자가에서 매달리셨을때 한 낮에 어둠이 드리워졌습니다.
이 말씀의 성취를 위해서 한낮에 밤이 몇시간 동안 드리워졌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모순이 아니고 예언의 성취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의 울부짖음을 들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편 22편에서는 소리를 외치는 자가
왜 당신은 내 말을 듣지 않고 멀리 떨어져있냐고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울부짖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고통을 당하는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내 부르짖음을 들었는데 왜 반응이 없냐는 것입니다.
내 음성을 들었다면 왜 나를 도우러 오지 않냐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사람은 도와주시고 나를 돕지 않는 하나님
주님은 4절에서 다음과 같이 상기시키십니다.
(시22:4) 우리 조상들이 주를 신뢰하고 신뢰하였으므로 주께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Our fathers trusted in thee: they trusted, and thou didst deliver them.
(시22: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출을 받았고 주를 신뢰하여 당황하지 아니하였나이다.
They cried unto thee, and were delivered: they trusted in thee, and were not confounded.
십자가에서 고난당하는 사람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에게 그 이유를 알고 싶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나를 도우러 오지 않는 것은 내 음성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겁니다.
당신은 아담을 도우러 왔었고, 노아를 도우러 왔었고
롯과 이삭과 이스라엘 자손을 도우러 왔었고, 여호수아를 도우러 왔었고,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누군가 당신에게 부르짖을 때 마다
당신은 와서 돕지 않은 경우가 없는데 왜 나는 와서 돕지 않냐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울부짖고 있고 부르짖고 있고 소리쳐 왜치고 있는데
왜 나를 도우러 오시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 대해서 두 가지 이유를 3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22:3) 그러나, 오 이스라엘의 찬양 가운데 거주하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But thou art holy, O thou that inhabitest the praises of Israel.
뭔가 극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부정한 영이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막1:24) 이르되, 나사렛 예수님이여, 우리를 홀로 두소서.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오셨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신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시니이다, 하매 (눅4:34)
Saying, Let us alone; what have we to do with thee, thou Jesus of Nazareth? art thou come to destroy us? I know thee who thou art, the Holy One of God.
성경은 그를 죄인들과 구별되는 더럽혀지지 않은 거룩한 존재로 묘사합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는 순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아들을 도울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거룩하신 아들을 도와주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벌레가 되어버린 예수님
(시22:6) 그러나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오니 사람들의 비방거리요 백성의 멸시거리이니이다.
But I am a worm, and no man; a reproach of men, and despised of the people.
예수님은 생명수고, 생명의 빵이고, 문이고, 부활이고, 생명이신 분입니다.
그런데 뭔가 심각한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계시면서
나는 벌레라고 말씀하시고, 사람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비방거리, 백성의 멸시거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어떻게 그분이 벌레가 될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저는 여러분을 이해시켜드릴 수 있는 방법도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생명수 이시고, 부활이시고 선한 목자가 되시는 분께서
어떻게 나는 벌레가 되었다고 하실 수 있는 걸까요?
내가 있어야 할 곳에 계신 예수님
그 이유는 그분이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십가가에 매달리셨기 때문입니다.
그곳에서 그분은 거룩하신 분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흠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며
죄를 씻어주는 어린 양이 아니며 천사들이 숭배하는 사람이 아니며
바로 저와 여러분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분을 도우러 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분에게 진노를 쏟아 부으셔야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형벌을 내리실 것이고 그를 상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죽음에 놓이게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죄인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저일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가룟 유다이기도 하고, 그분은 김정은 이기도 하고,
그분은 살안자 이기도 하고 아동 성추행범이기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맞서며 저지른 모든 죄와 모든 죄인들이 되신 것입니다.
그분은 나는 벌레일 뿐 아니라 벌레보다도 못한 상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세상이 시작된 이후 가장 더럽고 부패한 상태가 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자신의 아들을 버리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교회나 설교자가 죄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는다면
죄를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랑하는 하나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분은 사랑이 넘치고 은혜로운 하나님이시지만,
당신이 죄 가운데서 죽는다면 그분은 당신을 돕기 위해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기 때문에 벌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
만약 여러분이 아직 구원받지 못했다면, 바로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나에게 벌을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사랑하시는 아들이 여러분의 죄를 그의 몸에 지니셨을 때,
하나님은 그 아들을 벌하셨고, 그분의 외침에도 돕지 않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하나님이 없는 곳에서..
(엡2:12)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연방 국가 밖에 있던 외인들이며 약속의 언약들에서 분리된 낯선 자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 밖에 있던 자들이었으나
That at that time ye were without Christ, being aliens from the commonwealth of Israel, and strangers from the covenants of promise, having no hope, and without God in the world:
여러분은 그리스도 밖에 있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다면
여러분은 세상에서 아무 소망도 없이 하나님을 모른채 살아갔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여러분의 자리에 대신 섰던 그 순간,
우리의 죄로인해 몇 시간 동안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구원자가 없이 죄가운데 죽게 된다면
여러분은 영원히 하나님이 없는 세상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을 하나님과 화해시키기 위해서 그자리에 가신 것입니다.
(고후5:18) 또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으며 그분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고 또 화해하게 하는 사역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And all things are of God, who hath reconciled us to himself by Jesus Christ, and hath given to us the ministry of reconciliation;
(고후5: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그들의 범법을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해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셨느니라.
To wit, that God was in Christ, reconciling the world unto himself, not imputing their trespasses unto them; and hath committed unto us the word of reconciliation.
(고후5:20) 그런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너희에게 간청하시는 것 같이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한 대사가 되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너희에게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해하라.
Now then we are ambassadors for Christ, as though God did beseech you by us: we pray you in Christ's stead, be ye reconciled to God.
(고후5:21)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For he hath made him to be sin for us, who knew no sin; that we might be made the righteousness of God in him.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우리를 위하여 죄를 짓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죄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거룩하신 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가셨고,
우리의 모든 죄를 가져가서 자신이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분의 의가 여러분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으시고,
우리는 의로운 구석이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그분께 얹어 놓았고,
그로인해 예수님의 의를 우리에게 주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시고, 어떤 일을 해주셨는지를 안다면,
우리는 감히 침례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보다 우위에 둘 수 없습니다.
우리는 감히 교회 맴버십이나 우리의 선행을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보다 중요하게 여길 수 없는 것입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분께서 여러분을 위해서 죄가 되셨습니다.
그리고 의가 뭔지도 모르는 여러분을 의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여러분의 자리에 매달려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외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니 자신이 벌레가 되어계셨던 것입니다.
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주님은 그 어느 인간보다 더 낮은 곳에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희생으로 얻게 된 것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죄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다면,
우리는 시편 22편과 시편 46편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22:1) (아엘렛 샤할에 맞추어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돕는 일로부터 또 나의 울부짖는 말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나이까?
<To the chief Musician upon Aijeleth Shahar, A Psalm of David.> My God, my God, why hast thou forsaken me? why art thou so far from helping me, and from the words of my roaring?
아들이 도움을 요청하는 울부짖는 소리에 하나님은 멀리 떨어져 계셨습니다.
(시46:1) (고라의 아들들을 위해 악장에게 주어 알라못에 맞추게 한 노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참으로 고난 중에 즉시 만날 도움이시라.
<To the chief Musician for the sons of Korah, A Song upon Alamoth.> God is our refuge and strength, a very present help in trouble.
하나님은 우리가 도움을 청하면 즉시 도와주시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아들이 고난에 처해 있을때는 하나님은 그 곳에 계시지 않았고
전혀 도움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버리셨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분이 지금 여러분의 자리에 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죄를 가져가셨기 때문에
이제 당신이 그분을 구원자로 신뢰하기만 하면
그분이 당신에게 그분의 의를 전가해 주십니다.
이제 우리가 얻은 의로 인해서 내가 곤경에 처했을때
주님이 곧바로 나를 도우시는 분이 되신 것입니다.
그것이 놀랍지 않나요?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겪으실 때 아버지께서는 그분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나 내가 고난을 겪을 때는 이제 아버지께서 그 자리에 함께 계십니다.
이것은 제가 예수님보다 낫기 때문은 아닙니다.
갑자기 제가 예수님 보다 하나님 도움을 더 받을 가치가 생긴 것이 아닙니다.
그 일로 인해서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의 의를 주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버려지신 분으로 인해 버려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로 가보겠습니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나는 벌레가 되었습니다. 나는 사람이 아닙니다.
(히13:5) 너희의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Let your conversation be without covetousness; and be content with such things as ye have: for he hath said, I will never leave thee, nor forsake thee.
이 구절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우리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실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아야 할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이 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예수님께서 나의 자리에 서서 버림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결코 버림받지 않는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에게 전가된 의로 인해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됨
(히13:6)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분이시니 사람이 내게 무엇을 행하든지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라, 하노라.
So that we may boldly say, The Lord is my helper, and I will not fear what man shall do unto me.
시편 22편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이었던 아담도 도우셨던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이었던 노아도 아브라함도 다윗도 도우셨던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들이신 예수님을 돕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네가 지금 다른 사람들을 위한 죄 값을 지불하고 있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 서 있는 저도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죄를 짓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도 죄인이라고 알고 있다고 그렇다고 확신을 합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도 돕지 않으셨지만,
우리는 도우실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아들이 나의 자리를 대신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의 자리에서 살 권리를 얻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자를 버리실 수 없으십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나 대신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그로인해 내가 가질 수 없던 의를 영원히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분이 사람으로 이 땅에서 33년 반 동안 계시는 동안
아버지는 한번도 아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 이유를 아십니까? 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리스도를 나의 구원자로 믿기만 하면,
그분이 나를 절대로 떠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는 이유는
그것은 오직 나에게 전가된 그리스도의 의(義) 때문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버릴 수 없는 상태로 만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고 영원에서도 그런 상태가 된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난에 있을 때, 여러분이 시험에 놓였을때
그분은 결코 여러분을 멀리 두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구원은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고후4:8) 우리가 사방에서 고난을 당하나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난처한 일을 당하나 절망하지 아니하고
We are troubled on every side, yet not distressed; we are perplexed, but not in despair;
(고후4:9) 핍박을 받으나 버림받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나 망하지 아니하고
Persecuted, but not forsaken; cast down, but not destroyed;
(고후4:10) 우리가 항상 주 예수님의 죽으심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님의 생명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Always bearing about in the body the dying of the Lord Jesus, that the life also of Jesus might be made manifest in our body.
고난을 당할 때도, 난처한 일을 당할 때도, 핍박을 받을때도
우리는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버림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자칭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 그리고 설교자들이
다시 죄를 짓는다면 구원을 잃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죄를 짓지 않는다고 스스로를 속이게 만듭니다.
그러한 교리를 가지고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신이 하는 모든 것을 죄가 아니라고 변명하게 만드는 것 뿐입니다.
여러분은 함께 모이는 일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교회 안에 있었다가 여러분이 다니던 교회를 떠나게 되면,
여러분이 모임을 버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과 관계를 갖게 된 적이 있어야만
하나님이 여러분을 버리실 수 있는 조건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구원을 받지 않았다면 그것은 버림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아직 길을 잃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당신을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고 약속한 이상
그 관계는 종료될 수 없습니다. 끝낼 수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죄를 지으면 그것은 당신을 상처 입게 할 것입니다.
당신이 죄를 지으면 당신의 가족을 상처 입힐 것입니다.
당신이 죄를 지으면 당신의 교회를 상처 입힐 것입니다.
당신이 죄를 지으면 그리스도의 사역에 상처를 입힐 것입니다.
하지만 그 죄는 십자가 위에서 이미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아들이 당신의 자리를 대신할 때
그분은 그 아들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담대하게 주님이 나의 도우시는 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제가 모든 일을 올바르게 할 거라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많은 잘 못을 할 것입니다.
저는 잘 해보려고 시도할 자유가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를 만나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휴가를 내서 여름 수양회에 참석해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배우자가 되는 일도 부모가 되는 일도
완벽하게 해내지 못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생활에 참여해서 잘 해내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를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은 나를 자유롭게 해 줍니다.
내가 그분이 가진 최고가 아니더라도
그분이 나를 버리지 않으실 것이라는 믿음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주님, 오늘은 정말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내일 다시 잘 해보겠습니다.
주님이 여전히 저와 함께 해주시는 것에 감사하고 기쁩니다.
때때로 누군가를 믿을 수 있는지 의심이 드는 세상에서,
언제나 믿을 수 있는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에 감사드리게 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등을 돌리지 않을 분이 계십니다.
때로 당신이 둘러보면, 모두가 포기할 것 같고, 모두가 나를 떠날 것 같고,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릴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등을 돌리지 않을 한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러한 사건들을 직접 현장에서 보는 것 보다
성경을 통해서 더 많은 것들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우리에게 무엇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다시 십자가 사건을 목격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그 자리에서 주님의 처지가 어떠했는지
그분이 지금 어떤 상황을 겪고 계시는지를
성경만큼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현장에서 예수님이 하나님께 왜 나를 버리셨냐고
외치는 장면을 보았다면,
여러분은 잘못된 이해를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마저 저렇게 버려지신다면,
내가 버려지는 것은 더 쉬운 일이겠구나.
나에게는 절망만 남았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그 자리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을 목격하는 것보다
성경을 통해서 더 많은 것들을 배우고 알 수 있게 된 것이
더 큰 유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록된 성경을 우리에게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천 년 전에 하늘을 떠나서 이 땅에 오신 것으로 인해
여러분이 그곳에 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가 되셨기 때문에
여러분의 죄를 제거해 주실 수 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았었기 때문에
그분이 여러분을 켤코 버리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당신을 실망시키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정말 놀라운 진리입니다.
우리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좋은 진리 입니다.-끝-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