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그리스도인의 삶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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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율법의 연관성을 통해 성도의 성경적인 삶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아봅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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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의 사랑

가장 큰 계명(마22:36-40;막12:28-34;누가복음 10:25–28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이르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성경속 사랑의 개념과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사랑의 개념은 동일한 것일까? 성경은 사랑이 율법의 완성(로13:10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예수님도 율법과 선지자들의 강령(마22:40)이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22:40 NKRV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사랑과 율법과의 개념으로는 상호 연관성을 이해하기는 어렵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즉, 오늘날 성도,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을 완성하도록 사랑하라고 하신다. 주님 본인도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다고 마태복음 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따라서, 우리는 사랑을 알기위해서는 먼저 율법의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원리이다. 모든 성도들은 율법준수를 통해 이 땅에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야고보서 1:22 NKRV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이처럼 우리는 율법을 행함으로 정직하며 올바른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로7:10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율법은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타락으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율법 준수는 결코 나의 구원을 이루는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나의 행복이 되므로 자발적 의지에 의해서 완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먼저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 대하여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주님은 이웃을 사랑하데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알아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구원을 받은 자입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의(義)롭게 회복된 자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의롭다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의롭다는 것은 어떤 언약 관계에서 상호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언약을 맺은 상대방이 어떠하던 내 의무를 다하여 상대방 또한 언약의 관계를 회복하도록 하여 언약을 온전히 이루는 것을 뜻합니다.
언약의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방을 인정하고 승인하고 그 명예를 존중해주는 것을 의롭다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법을 준수하고, 도덕적, 윤리적으로 완벽한 것이 성경의 의롭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창세기 15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그가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올지니라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었던 언약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과의 언약 과정중에 이미 십자가를 통해 성실히 본인이 죽으심으로 언약을 이행하실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로움, 거룩함때문에 친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주게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의로움이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의로우심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12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13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4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17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러하니라

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21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로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우리는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죄된 존재이지만 십자가의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행할 때 온전한 자로 칭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결코 감정과 감성이전에 의무입니다. 의로운 행위, 자세, 태도, 생각입니다. 언약 관계에서 나에게 주어진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우리는 성경이 말씀하시는 사랑을 깨닫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사랑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분보,두려움,염려,정죄,탐심,고통,슬픔 등의 감정에 치우치거나 지배되어 있으면 인격적, 정신적, 육체적으로 우리는 해를 받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의 감정,감성에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빌립보서 4: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립보서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마태복음 6: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에베소서 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로12:14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시편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성경은 감정에 호소하며 명령하라고 합니다. 우리의 존재는 내 안의 감정을 선택하고 명령할 수 있습니다.
시편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긍정적 사고, 번영신학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대로 우리 감정에 명령하며 선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선택할 수 있는 인격의 자유로움이 주어져 있습니다. 분노, 우울, 시기, 질투, 미움 등은 왜 생깁니까? 그것은 바로 자기 방어(죄인의 속성)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속고 있습니다. 죽을 몸, 육신, 습관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것으로부터 벗어나 거듭남 삶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죽은 육체의 결박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상처(내적치유,심리, 정신학 등)를 우리의 방법으로 치유하고자 하지만 되지 않습니다.
요한복음 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오직 우리는 진리를 통해 자유할 수 있습니다.상처를 치유할 수 있습니다.
감정에게 명령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내 선택에 대하여 나는 책임을 저야합니다. 깨어 있고, 싸워야 합니다.
내 감정속에 있으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민수기 14: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자신의 생각과 감정에 치우여 있으며 두려움 때문에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기에 생기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말씀 참조
예: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의 순종하신 분 손양원 목사님.
집착과 중독에 의한 잘못된 사랑:
결혼의 이혼률이 높은 이유는 우리가 배우자에대하여 집착과 중독 소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집착은 바로 나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는 것이다.
교회안에서도 집착할 수 있는 여러 잘못된 신앙
요구만 하는 행위, 신비적 체험, 기도응답이 오직 자신의 욕구 충족에만 집중되어 있는 경우
: 이러한 잘못 된 신앙에서 벗어나 율법대로 살아가야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바르게 선택하고 행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스데반 집사와 예수 그리스도: 죽음 직전에서도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를 할 수 있었던 의로운 행위.
유대인의 모습이 지금의 나의 모습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위로운 행위는 결코 위선이 아니다.
율법주의: 나의 행위로 구원의 조건을 충족시켜 내가 구원받고자 하는 나의 이익을 위한 의도로 살아가는 것을 말하지만,
성경이 말씀하시는 의를 행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바로 의를 행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책임, 의무를 행하므로 하나님이 부여해 주시는 평강의 복을 누리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 하라”
자유로 나의 의지로 종노릇하는 자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나의 이웃은 누구인가?
누가복음의 선한 사마리아 눅10:30-37
누가복음 10:30–37 NKRV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나의 이웃이 누구인지는 정해주지 않으시고 모든 자에게 내가 선한 이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해야할 의무는 무엇인가?
로마서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마태복음 16:4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가시니라”
주님도 죽음을 선택하셨다.
사랑은 우리의 의무이므로 우리는 우리의 의지로 선택하여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기도하며 성령의 도움을 간구하여 그 성령의 능력으로 사랑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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