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음으로 교회를 세워가요!
1. 교제에 참여. — 친밀한 관계를 누리거나 그룹에 속하는 특권이나 활동에 참여하는 행위. 특히 혼인과 교회에서 사용. 관련 주제: 교우; 친목.
행 2:42 καὶ τῇ κοινωνίᾳ, τῇ κλάσει τοῦ ἄρτου
고전 10:16 εὐλογοῦμεν, οὐχὶ κοινωνία ἐστὶν
빌 1:5 ἐπὶ τῇ κοινωνίᾳ ὑμῶν εἰς τὸ εὐαγγέλιον
몬 6 ἡ κοινωνία τῆς πίστεώς σου
요일 1:3 ἵνα καὶ ὑμεῖς κοινωνίαν ἔχητε μεθʼ ἡμῶν·
2. 참여 — 특히 집단이나 제휴하는 가운데 어떤 것을 가지고, 주고, 받는 행위. 다음을 참고하십시오 μετάλημψις, μετοχή, μέτοχος. 관련 주제: 친목.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누가는 사도행전 2장을 초기 신자들의 교회 생활을 묘사함으로 끝낸다. 사도행전에는 예루살렘 교회의 초기 모습이 세 번에 걸쳐 묘사되어 있는데(참고. 2:42–47; 4:32–35; 5:12–16), 본문이 첫 번째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놀랄 만한 신적인 공동체를 경험했다. 실로 그들의 모습은 놀랍고 역동적이다. 그들의 모습은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인 임함을 보여준다. 필시 이것은 성령께서 역사하신 결과이지, 사람이 인위적으로 노력해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 교인들이 힘썼던 일(2:42)
초대교회 교인들의 삶은 “힘쓰니라”(프로스카르테레오, προσκαρτερέω)라는 단어에 집약되어 있다. 이 단어는 1:14에서 사도들과 제자들이 다락방에서 기도에 힘쓴 것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 10번 나오는데, 사도행전에 6번 나온다(예. 1:14; 2:42; 2:46; 6:4; 8:13; 10:7). 이 단어는 글자 그대로 ‘어떤 일에 계속해서 전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락에서 이 단어는 42절과 46절에 두 번 사용되어 초대교회가 힘을 많이 기울인 공동체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단어는 6:4에서 사도들이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는 데 사용된다.
누가는 초대교회에 대하여 묘사하기를,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라고 한다(42절). 한글성경 개역개정판에는 “힘쓰니라”가 문장의 제일 끝에 위치해 있고 그 앞에 기도가 언급되어 있어서, 언뜻 보면 마치 초대교회가 기도에만 힘쓴 것 같다(참고. 1:14). 그러나 헬라어 본문에는 이 단어가 문장 첫머리에 분사 형태로 있어서 대격으로 언급된 일들 모두에 연결된다. 즉 “힘쓰니라”(프로스카르테룬테스, προσκαρτεροῦντες)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것’, ‘서로 교제하는 것’, ‘떡을 떼는 것’, ‘기도하는 것’을 모두 지배한다. 그리고 이 일들에는 모두 관사가 붙어 있어서 특별함을 드러낸다.
첫째로,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데 힘썼다. 사도의 말씀은 초대교회 부흥의 가장 중요한 동인이 되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시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셨는데, 제자들 역시 예수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말씀을 교인들에게 가르치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치셨듯이(참고. 1:3), 제자들 역시 교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가르쳤다. 사도는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가장 정성을 기울였으며, 사람들은 말씀을 받는 데 가장 힘을 썼다. 이후 사도들의 교훈은 이방 지역에 세워진 교회들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었다(참고. 11:25–26; 18:11; 19:9–10; 20:7–12, 20–21, 28–32; 28:30–31).
둘째로,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교제하는 데 힘썼다. “교제”는 헬라어로 테 코이노니아(τῇ κοινωνία)라고 되어 있어서 관사(테, τῇ)를 포함한다. 이것은 초대교인들의 교제가 세상 사람들의 일반적인 모임이나 사교활동이 아니라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 모임임을 의미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가 된 신성한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사랑을 베풀어주신 것과 같이 서로를 사랑했다. 더욱이 그들의 교제에는 실천적인 행위가 수반되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사랑으로 교제했으며, 그러한 사랑에는 재산과 소유의 공유와 통용이라는 실제적인 행위가 있었다. 이렇게 사랑이 동반된 교제의 모습은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상세히 언급된다.
셋째로,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떡을 떼는 데 힘썼다. 그런데 헬라어 본문에서 사도의 ‘가르침을 받는 것’과 ‘교제’ 사이에는 접속사 카이(καί)가 있고, ‘떡을 떼는 것’과 ‘기도’ 사이에도 카이가 있지만, ‘교제’와 ‘떡을 떼는 것’ 사이에는 카이가 없다. 그래서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과(카이) 교제, 떡을 뗌과(카이) 기도에 힘썼다’가 된다. 그렇다면 교제와 떡을 떼는 것 사이에 카이가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이 둘이 하나의 범주에 속한다는 뜻이다. 즉 초대교회 교인들이 교제를 나누었는데, 떡을 떼면서 교제를 나누었다는 뜻이 된다. 따라서 초대 교회가 힘쓴 것은 네 가지가 아니라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곧 사도들의 가르침, 교제(떡을 떼면서 교제함), 기도가 된다. 떡을 떼는 것은 음식을 먹는 것을 나타내는 유대식 표현이다(참고. 27:35; 눅 9:16; 24:30, 35). 따라서 그들은 교제를 하면서 음식을 함께 먹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형성된 가족(식구)임을 확인했다.
여기서 떡을 떼는 것을 ‘애찬’(단순한 식사)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성찬’(성례)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다. 이 문제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역사적인 상황과 관련해서 이해해야 한다. 처음에는 기독교 공동체에서 애찬과 성찬이 함께 행해진 것이 분명하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의 규모가 커지고, 또한 애찬의 정신이 훼손되면서 애찬은 사라지고 성찬만 남게 되었다. 고린도전서 11장을 참고할 때, 고린도 교회에서는 음식을 먹는 것과 성찬을 행하는 것이 처음에는 구분되어 있지 않다가 나중에 구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예루살렘 교회 역시 처음에는 음식을 먹는 것과 성찬을 행하는 것이 구분되지 않았다가, 나중에 교회의 예전이 발전하면서 음식을 먹는 것과 성찬을 행하는 것이 구분되었을 것이다.
넷째로(혹은 ‘셋째로’),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기도하기를 힘썼다. 그들은 다락방에서 성령의 강림을 위하여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썼는데(참고. 1:14), 이제 성령이 강림하신 이후에도 기도하기를 힘쓴다. 사도행전에는 기도에 대한 언급이 많이 나온다(참고. 1:14, 24; 4:24–31; 6:4, 6; 9:40; 10:2, 4, 9, 31; 11:5; 12:5; 13:3; 14:23; 16:25; 22:17; 28:8). 여기서 기도에 대하여 사용된 헬라어 단어가 복수형인 프로슈카이스(προσευχαῖς)인 것은 그들이 구약적인(유대적인) 기도와 신약적인(기독교적인) 기도를 혼합하여 기도했음을 시사한다. 이는 그들이 오랫동안 유대의 관습에 젖어 있던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며, 또한 구약의 기도 관습이 신약의 복음과 모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성전의 기도 시간을 따랐을 뿐만 아니라(참고. 3:1; 22:17), 그들 나름대로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참고. 1:24; 4:24; 12:12 등).
2) 교회 공동체의 이상적인 모습(2:43–47)
누가는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라고 말한다(43절a).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2:37에 묘사된 현상과 유사한데, 하나님의 역사가 있을 때 나타난다(참고. 눅 1:12, 65; 2:9; 5:26; 7:16; 8:37). ‘두려움’(포보스, φόβος)이라는 용어는 신약성경에 47번 나오는데, 누가-행전에 12번 나온다. 누가는 이어서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라고 말한다(43절b). “기사와 표적”(테라타 카이 세메이아, τέρατα καὶ σημεῖα, wonders and signs)은 사도행전에 대단히 빈번하게 나오는 용어이다(예. 4:16, 22, 30; 5:12; 6:8; 8:6, 13; 14:3; 15:12). 이 구절에서 “기사”와 “표적”의 의미를 굳이 구분할 필요는 없다. 여기서 이 단어들은 같은 뜻을 가진다. 기사와 표적은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인정하신다는 수단, 즉 사도들의 권위와 자격을 증명하신다는 표식이 된다. “나타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에기네토(ἐγίνετο)는 미완료형(imperfect)인데, 이는 기사와 표적이 계속해서 나타났음을 의미한다.
초대교회의 중요한 특징은 물건을 통용했다는 점이다. 그들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다(44–45절). 그런데 여기에 사용된 단어들의 시상이 미완료형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완료형 시상은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주는 일이 단회적이 아니라 계속 반복해서 일어났음을 시사한다. 고대 문헌을 참고할 때 이러한 모습은 초대교회에 잠시 있다가 없어지지 않고 비교적 오래 지속하였다(참고. Didache 4.7–8; 바나바 서신 19.8). 더욱이 여기서 미완료 시상이 사용된 것은 자신의 재산을 파는 일이 강제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뜻한다. 이것은 공동체에 어떤 필요가 있을 때마다 자발적으로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내놓은 것을 암시한다. 즉 그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다. 따라서 초대교인들이 물건을 공유한 것은 근대 공산주의 체제에서 사람들이 강제로 재산을 공유한 것과 다르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날마다” 모였다. “날마다”(카뜨 헤메란, καθʼ ἡμέραν)라는 표현은 문장 전체에 영향을 미쳐서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에게까지 연결된다. 그들에게는 두 종류의 모임이 있었다. 그것은 성전에서의 모임과 집에서의 모임이다(46절). 성전에서의 모임은 큰 모임으로 이방인의 뜰 동쪽 끝에 있는 솔로몬 행각에서의 모임으로 보인다(참고. 3:11; 5:12). 그들은 성전에서 모여 말씀을 듣고 기도했을 것이다. 집에서의 모임은 작은 모임으로 ‘집에서’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매 집마다’로 번역되는 카트 오이콘(κατʼ οἶκον)인 것을 볼 때 여러 집을 돌아가면서 모인 것으로 보인다(참고. 5:42; 10:24–48). 실로 초대교회 교인들은 성전과 집에서 모이기를 힘썼으며, 모일 때마다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한 가족인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들었다(47절a). 따라서 초대교회 교인들은 하나님과 이웃을 모두 기쁘게 하였다. 여기서 “온 백성”(홀론 톤 라온, ὅλον τὸν λαόν)이란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후에 기독교에 대해서 적대적이었지만, 처음에는 기독교에 대해서 호의적이었다. 초대교회의 유대인 신자들은 처음에 유대의 의식과 관습을 잘 지켰기 때문에 유대인 불신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착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에 칭송을 들었다. 그 결과로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다(47절b). 여기서 누가는 구원을 받는 사람이 더해진 것을 주님의 역사로 언급한다. 즉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사람의 인위적인 노력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교훈과 적용
1. 우리는 이 단락에서 교회의 이상을 볼 수 있다. 교회가 어떤 공동체여야 하는지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 문제들의 상당수는 잘못된 교회관에서 비롯되었다. 교회가 바로 세워져 있지 않기 때문에 건강하지 않은 그리스도인이 배출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르고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일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우리는 사도의 가르침과 그들이 목회했던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바른 교회관을 정립할 수 있다.
2. 초대교회는 세 가지(혹은 네 가지) 일에 힘썼다. 즉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일, 서로 교제하는 일(떡을 떼는 일), 기도하는 일에 힘썼다. 이 일은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오늘날 교회는 이 일에 힘써야 한다. 교회는 이 일을 하면서 혹은 이 일을 위해서 다른 일을 해야 한다. 특히 이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고 배우는 일이다. 말씀이 근본이며 우선이다. 말씀 위에 모든 것이 세워져야 한다.
3.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들었다. 그들은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난 삶을 살았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는 것은 대단히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삶으로 그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 말로만 복음을 전할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 불신자들에게 칭찬을 듣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한마음과 한 입으로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노라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35 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 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 되리니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
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17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18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