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19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애굽 사람이나 이방 나라 사람이나 초막절을 지키러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가 받을 벌이 그러하니라
20 그 날에는 말 방울에까지 여호와께 성결이라 기록될 것이라 여호와의 전에 있는 모든 솥이 제단 앞 주발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21 예루살렘과 유다의 모든 솥이 만군의 여호와의 성물이 될 것인즉 제사 드리는 자가 와서 이 솥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고기를 삶으리라 그 날에는 만군의 여호와의 전에 가나안 사람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죄인을 용서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죄인을 판단하기보다, 죄인을 용서하시기 원하신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용서하여, 그 사람이 다시 한 번 일어서기를 원하신다. 사람들은 정죄하며 심판하는데 관심이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의 잘못을 너그럽게 용서하시는 분이다. 물론 이러한 예수님의 용서와 사랑을 가벼이 여기는 자는 더 큰 심판을 받을 것이다. 다만 예수님께서 풍성한 사랑으로 용서하신다는 것을 잊지 말고, 그에게 나아와 죄를 고백하며 용서를 구해야 한다.
2.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죄인이 거룩하게 사는 것이다. 예수님은 용서 받은 죄인이 거룩한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의 관심은 그 사람을 용서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거룩한 삶으로 그를 닮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를 기억하고, 내 삶이 그의 말씀에 합당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죄를 용서하신 분의 뜻에 합당하게 죄를 떠나는 삶을 살아할 것이다. 이러한 거룩한 삶이 진정 예수님이 원하셨던 용서의 삶의 열매이다.
3.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죄인이 그의 지혜를 닮는 것이다. 예수님은 용서 받은 죄인이 그의 지혜를 닮기를 원하신다. 예수님은 지혜로운 말씀으로 세상의 공격을 막아 내셨다. 오늘날 우리도 세상에서 다양한 질문이나 공격을 당한다. 때로는 그리스도인을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도 있다. 당황스러운 상황에서도 지혜롭게 대답하신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 예수님의 지혜를 구하며, 우리도 세상에 지혜롭게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 외에 초막절의 또 다른 상징은 빛(불)이다. 초막절 기간, 매일 저녁 제사장들은 여러 개의 큰 초를 가져다가 성전 안에 있는 여인의 뜰을 환하게 밝힌다(미쉬나 숙콧 5:2–3). 이러한 의식은 광야에서 자기 조상들을 빛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동시에 앞으로도 자신들을 인도해 주실 것을 기원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초막절과 빛의 관계는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빛이시고, 이스라엘의 인도자가 되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 초막절을 배경으로 예수님이 자신을 빛으로 선포하신다(12절). 빛이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는 그러므로 어둠과 분리된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을 얻게 된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셔서 생명을 얻게 하신다. 예수님의 모든 말씀이 빛이다. 예수님의 모든 사역이 빛이다. 예수님 자신이 빛 자체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