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26. 주일오후설교 (마태복음 10:34-42, 검을 주러 왔노라)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32 viewsNotes
Transcript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40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42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주일 오후 예배 (26일)에 나오신 성도님들 /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6월 16일 전도축제가 이제 딱 3주 남았습니다.
이번에 전도축제 강사분으로 유은성 찬양사역자님, 김정화 님 (탤런트)가 오시는데요. 두분도 아주 유명한 분이시죠?
유은성 전도사님의 대표곡 -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김정화 탤런트 - 논스톱 에도 나오시고 , CF (삼성전자 노트북)도 찍으신 유명하신 분이 오십니다.
전도축제가 우리 영도교회에서 하는 가장 큰 행사입니다.
다들 태신자를 위해서, 또 전도축제를 위해서 기도로 준비 많이 하시고 있는 줄 압니다.
이번에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400명이 넘는 태신자를 작정하였습니다.
저희 3지역 같은 경우에, 100명 넘는 태신자를 작정하였습니다.
태신자 작정하신 분들을 보면 - 직장 동료들, 친구들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가족들을 태신자로 작정하였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아들, 며느리, 손자, 손녀, 동생, 시누이, 올케, 사돈)
이렇게 우리가 가족들을 태신자로 작정한 이유는?
그만큼 우리가 가족들을 사랑하고, 가족들도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기를 원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오늘 마태복음 10 장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복음을 전할때에 꼭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우리가 태신자들(가족들)에게 전하기를 원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2) 복음을 전할때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3) 어떤 영광이 있는지?
같이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 본론 ----------
우리가 오늘 살펴볼 마태복음 10 장은 /
예수님께서 12명의 제자들을 부르시고/ 전도하러 내보내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경험적으로) 우리가 전도할때에,
우리 이번에 나랑 같이 교회 한 번 가보자? 라고 하고 /
예수님 이야기 하면?
반응이 어떻던가요? 별로 좋지가 않죠?
그래서 참 예수님 이야기 꺼내기가 쉽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우리들의 상황을 아시고/ 미리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예수님 말씀) 너희들 전도할 때에/ 별로 환영 받지 못할거야 !
이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니까/ 우리가 복음을 전할때에/ 이것을 각오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 세상 사람들이 복음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아하지 않는구나?
그렇다면/ 왜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예수님을 환영하지 않는가?
1.예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평안을 약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34절 보시면,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이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내가 세상의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번역이 조금 아쉬운데요,
번역을 차라리 “평강, 평안”으로 했으면/ 우리가 더 오해를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화평이라고 한 단어는 “에이레네 (샬롬)”인데요
평안이라고 번역하는게 더 오해의 소지가 없어 보입니다.
마태복음 10:13 (NKRV)
13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하지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
다시 쉽게 의역하면/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강을 주러 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기에는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오셨잖아요?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성경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평강과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평강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요.
세상의 평안 VS 하나님과의 평강을 구분해야 이해를 해야 합니다.
1) 세상 사람들은 모두다 평안한 삶을 추구하면서 삽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었던 예수님의 제자들도 “세상의 평안”을 쫓아서 예수님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포함해서 + 우리도 그렇고 +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원수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사람들은 하나님이 내 삶에 관여하지 않는 삶을 원하고 삽니다.
그래서 자기 힘으로 모두다 열심히 노력해서, 성공해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는 것 입니다.
든든한 직장이 있고, 노후가 보장되어 있고, 아무런 걱정이 없을 때 -
세상 사람들은 “평안하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이런 인간의 상태를 예수님께서 누가복음에서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여기 비유에 등장하는 한 부자는
재산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재산이 불어나고 있습니다.
이 부자는 더 이상 사는데에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생각하기를 “내 인생이 참으로 평안하구나”라고 생각을 한 것입니다.
이런 부자에게 하나님께서 뭐라고 이야기 하십니까?
이 어리석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 평강에 속아서/ 참된 평강을 놓치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이런 거짓 평강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현실적인 문제) 를 생각해보면 좋겟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나 + 믿지 않는 자들이나 /
모두 이런 세상적인 평강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런 세상적인 평강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었던 제자들 또한 “세상의 평강”을 쫓아서 “예수님을 쫓아”다니던 때 였습니다.
제자들은 언제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완전히 깨달았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 그리고 성령의 오심을 경험하고야 이 말씀을 깨달았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전할 때? 왜 사람들은 예수를 원하지 않는다고요?
네 예수님이 세상의 평강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 하면/ 예수 믿으면 돈이 안 나오기 때문입니다.
영도교회 오면/ 십만원씩 줍니다. ? 라고 하면 많이 올 수 도 있습니다.
그런데 / 그것은 거짓 평강을 쫓아 온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2.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평강은 무엇일까요?
2.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평강은 무엇일까요?
성경에서 말하는 평강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오는 평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평강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입니다.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원래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살았는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 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것 = 이것을 평강이라고 말합니다.
3. 그러니까 예수님은 세상의 평강의 주러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평강을 주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하나님은 죽었던 우리를 살리시고고/ 이제 칼을 들고 수술을 하는 의사처럼 말이죠죠.
우리 한 명 한명 수술을 하는 것입니다.
2. 그래서/ 34절 후반절 보시면/
34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예수님께서 세상의 평안이 아니고/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한 명 한 명 이제 수술을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용하는 칼은 “사람을 죽이는 칼”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칼”입니다.
이 말도 우리가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이 “검”이라는 단어가 “베드로가 사용한 칼”로도 번역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베드로가 잘못 사용되어서/ 다른 사람을 헤칠때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해서 오셨습니까?
아니죠/ 말이 안 됩니다.
칼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물건을 베어낼 때 사용하는 것” 입니다.
원래 칼의 용도는 베어내는 것 입니다.
(조크) 요즘에 수박이 아주 맛 있었던데요.
우리가 칼을 가지고 수박을 자르면 수박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죠.
칼은 아주 유용한 도구 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가?
우리의 마음을 베어내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서 오셨다는 것 입니다.
신명기 말씀 보시면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이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말씀입니다.
이미 이 말씀속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마음을 돌이킬 능력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율법을 주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지킬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잘라 낼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잘라내어서/ 우리를 살려 낼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신명기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검을 주러 왔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들의 마음 가죽을 잘라서/
세상을 향해 있던 마음을 / 하나님께로 돌이키겠다는 말씀입니다.
3. 그로 인한 결과가/ 맨 먼저 가족간의 분리로 나타나는데요.
3-1. 이것은 죽은 자와 산자의 분리입니다.
신명기 말씀대로 생명을 얻는 자와 생명을 얻지 못한 자의 분리가 일어나는 것 입니다.
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원어의 의미를 살려서 다시 읽으면/
마태복음 주석 (상~하) 4.4.1. “~하러 왔다”(10:34~36)
나는 …… 나누려고 왔다
남자를
~에게서 \ 그의 아버지
딸을
~에게서 \ 그녀의 어머니
며느리를
~에게서 \ 그녀의 시어머니
이 말씀은 복음이 어떤 사람에게 전해져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면/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과 분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험적으로) 자명합니다.
예수 믿기 전에 그 많던 친구들/ 이제 예수 믿고 나니/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고?
만나도 생각하는 것이 달라가지고? 같이 어울리기도 힘들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에도 보면/ 사도 바울 같은 경우도 / 예수 믿기 전에/
자기랑 어울려서 예수를 잡아 죽이려고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바울을 잡아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사도행전에서 보면 알 수 있습니다.
23 여러 날이 지나매 유대인들이 사울 죽이기를 공모하더니
이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전한다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5-36절에서 - 살아 있는 자들과 죽은 자들 사이의 갈등과 분리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3-2. 창조의 질서대로 우선 순위가 변경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39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이 말씀을 대할 때? 어떤 생각이 드세요?
예수님 (주님) !! 다른 건 몰라도 우리 아들보다? 우리 딸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고요?
다른 말씀은 다 순종할 수 있어도?
이 말씀만을 순종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씀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38절 말씀은 더합니다.
어떤 부모님들은 자기 목숨 보다 자기 자녀들을 더 사랑하지만요.
또 모든 사람은 자기를 사랑합니다.
자기를 끔직히도 사랑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피해를 끼치는지 몰라요.
그런데 자기 생명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고요?
나는 내 생명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할 수 없어요...... 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 우리 인생에서 예수님을 최우선 순위에 둘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구약에서 약속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아까 신명기 30:6 말씀 기억나시나요?
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결국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루셨나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 부활하시고 +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 이루셨습니다.
----------------------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내 보내실때에 하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제자들은 그 당시에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고/ 이 말씀을 이해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생명을 바쳤습니다.
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제자들이 생명을 바쳐 전한 복음이/
2000년 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 우리들에게까지 왔습니다.
이제/ 이 복음을 우리가 전해야 할 차례입니다.
-------------------------
(적용- 우리가 기억합시다. )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세상의 평안을 약속하는 복음이 아닙니다.
한때/ 산업화의 시대화 발맞추어서/ 한국 교회가 급성장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저희 어렸을때에는 교회가면/ 맛있는거 줘서 교회를 가던 때였습니다.
교회가면 부자된다. ‘
교회가면 잘살게 된다. 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복음이 세상의 평안과 평강을 보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전도할 때에/ 이런 세상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지 말고
어떻게 태신자를 하나님과 평강을 찾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2.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죽은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
7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8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는 일, 나병환자를 고치는 일은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8- 9 장에서 하신 일입니다.
8장에서) 실제로 산상수훈의 말씀을 하시고 - 나병환자를 고쳐주셨고
9장에서)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던 여인을 고치시고, 죽었던 소녀를 살려주었습니다.
9장에서 ) 그리고 두 명의 맹인을 고쳐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이적을 보여주신 이유가 무었입니까?
예수님이 그의 백성을 부르시고 대수술을 하신다는 것 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죽은 자를 살려서/ 좋은 의사에게 데려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