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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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이 물잔에 사람의 마음을 담을 수 있을까?
혹은 이 캔에 사람의 마음을 담을 수 있을까?
뭔가 의미부여를 한다면 마음을 담아 건네줄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자 그러면 이 종이에는 사람의 마음을 담을 수 있을까요?
네 담을 수 있어요.
이를 뭐라 말하나요?
편지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종이에 담아 우리에게 전하셨어요.
저는 오늘 본문을 깊이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본문을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편지라 정해보았는데요..!
빌립과 애디오피아 내시를 통해 어떤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있는지,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으신건지 알아가 보도록 해요.
첫째, (복음을 전하는 삶)의 중요성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 첫번째는 ‘복음을 전하는 삶은 중요하다’ 말씀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무엇을 통해서 이런 생각이 들었냐면요! 사도들이 세운 일곱 집사들을 통해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시 이야기를 하자면요. 스데반과 빌립 그리고 나머지 다섯 집사들은 사도들이 복음 전함을 힘쓰기 위해 세워진 교회 내부의 사역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은 교회 내부사역을 감당하지 않고, 오히려 복음을 전하는데에 주력하는 것을 봅니다.
이는 어떤 학자들이 이야기의 순서가 부자연스럽기에 짜집기가 된 것 아니냐는 말을 합니다. 왜냐하면 집사들이 교회 내부 사역을 위해 세움받았다면, 그에 대한 모습을 이야기해야하니깐요!
그러나 그 생각은 틀렸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는 베드로와 고넬료 사건을 생각해보면 될 것 같아요.
고넬료 사건을 생각해보면 사도들은 아무리 성령에 충만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다 헤아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유대인이 가지고 있는 선민사상이 있었기 때문에. 복음이 유대인들에게만 해당 되는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꿈 속에 찾아가, 내가 정하다 한 것을 부정하다 생각하지 말라 하시고,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그가 가진 유대인의 사상을 깨뜨렸습니다.
즉,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나름대로 교회를 위해 일곱 집사들을 세웠으나, 성령님이 원하시는 사역은 복음 전파에 힘쓰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확실한 증거로 스데반처럼 오늘 본문의 빌립 또한 주의 사자, 성령이 말하는 데로 이끌리어 복음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것, 모순된다는 것. 가짜라 말하는 것은 틀린 생각입니다.
사도들이 말씀 사역에 주력하려 했다는 것과 스데반의 말씀 선포와 빌립의 말씀 전함의 모습을 통해
오늘의 본문은 말씀 선포가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합니다.
정리해볼까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교회 내부 사역도 중요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아내길 원하신다. -> 그러니 우리만 (복음)을 누리지 맙시다!
두번째입니다.
둘째, (성령)님이 복음 전파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좀 전에 말했다시피, 유대인 스스로는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할 수 없었습니다. 이유는 선민 사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의 빛이 전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주권적으로 빌립에게 개입하셨습니다. 주의 사자, 성령을 통해서 애디오피아 내시를 만나게 하셨고, 그가 예수의 좋은 소식을 듣고 세례를 받기까지 인도하심을 보게 됩니다.
즉, 유대인들이 우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은 성령님의 주권으로 우리에게까지 도달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이 복음을 들은 데에는 사람의 행함이 아니요, 하나님의 직접적인 역사라는 것입니다.
이것까지만 생각할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우리가 받은 복음이 정말 큰 은혜란 생각이 듭니다. 큰 은혜죠? 큰 은혜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분명한 메세지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을 내가 주고 싶은 자에게만 복음을 전달하면 안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사랑하고 싶은 자에게만 복음을 전합니까? 아니면 모두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정리해봅시다.
하나님은 복음이 언제 어디에서도 제한되지 않고 전해지길 원하신다. -> 그러니까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하지 맙시다.
셋째, (세례)를 받고자 하는 마음은 (예수)로 인하여 생겨나는 것이다.
세례 받은 친구들 손. 여러분에게 세례가 어떤 의미인가요?
부모님의 강요로 받았나요? 혹은 교회의 지시 때문에 받았나요? 혹은 자발적인 마음으로 받았나요?
오늘은 애디오피아 내시로 인해 세례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합니다.
애디오피아 내시는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흑인이었죠? 또한 내시는 유대인의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자에 속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자였어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흑인, 이방인의 신분으로 하나님께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갔다고 합니다. 놀랍죠? 게다가 그 당시에 두루마리 양피지가 굉장히 비싼 물품인데, 성경 말씀이 담긴 양피지를 소지하고 있었어요. 놀랍죠?
그러니까 그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을 앎에도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였습니다. 그럼 그의 마음 속에 어떤 간절함이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싶은 마음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그에게 성령님이 빌립을 보내어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그는 어땠을까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죄인 된 날 위해 죽으신 그의 소식은 그의 마음을 뜨겁게 했을 것입니다.
나 같은 이방인을 구원하려 그의 아들을 내어주셨다니.. 내시였던 그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가슴이 뛰었겠습니까?
예수의 좋은 소식을 모두 들은 찰나 그는 눈 앞에 오아시스를 보았고, 그는 감탄합니다.
성경전서 개역개정판 (8장)
36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 (없음)
38 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사랑하는 여러분, 세례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뜨거워지고, 마음이 불타오르고 감사해서 받는 것입니다.
세례는 그저 나이가 차서 받고, 부모님이 받으라 해서 받는게 아니라, 예수로 인하여 받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정리합니다.
하나님은 내가 예수로 인하여 뜨거워지고, 세례를 받고, 세례 받은 자의 삶을 살아내길 원하신다. -> 그러니 복음 앞에 (뜨거운) 마음이 없다면, (예수님)을 다시 묵상해보자.
그럼 우리가 생각해본 것들을 정리해보아요.
첫째, (복음을 전하는 삶)의 중요성 -> 복음을 우리만 누려서는 안 된다.
둘째, (성령)님이 복음 전파의 (벽)을 허무셨습니다. -> 사랑하고 싶은 자만 사랑하는 배타주의적인 삶을 살아선 안 된다.
셋째, (세례)를 받고자 하는 마음은 (예수)로 인하여 생겨나는 것이다. -> 복음 앞에 뜨거운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회복해야한다(묵상).
여러분 생각에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마음이 어떨 것 같으세요?
오늘 본문은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끔 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한분 한분이 정말 복음 앞에서 진지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편지를 받으면 간직하는 편이죠. 좋은 편지라면! 더욱 보관하고 싶잖아요. 이런 부분을 생각할 때 오늘 우리에게 가져다준 복음,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잘 간직했으면 좋겠어요.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요.
예수님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받을 수 없는 복음이잖아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방인의 빛으로 삼지 않았다면 이 복음은 유대인들의 것이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릴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은혜를 주셨어요.
그런 은혜 앞에서 우리는 뜨거운 마음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시처럼 뜨거운 마음이 없다면 복음을 더욱 가까이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분명 예수님을 묵상할 때 내시와 같은 뜨거운 마음을 하나님이 허락해주실 거에요!
그럴 때에 우리는 사랑할 수 없는 자들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님께서 주실거에요.
적어도 우리는 복음 앞에서 우리만 복음을 누려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주시는 이 메세지를 마음에 새기고, 늘 간직했으면 좋겠습니다.
혹시 힘들어서 아무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지칠 때는 오늘 세 번째로 나눈 주제처럼
꼭 예수님을 묵상하길 바래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힘주시고, 다시 한 번 일어날 힘을 주님께서 주실거에요.
그래서 복음으로 힘 받고, 복음으로 일어나서, 복음을 나누는 삶으로 살아가길 바래요!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전하고 싶은 편지일 것입니다.
함께 읽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정리해봅시다.
하나님이 주신 귀한 복음을 우리만 누리면 안 된다. 하나님이 우릴 위해 이방인의 벽을 허무셨듯이 우리 또한 이 복음을 기쁨으로 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 안에 복음으로 인하여 뜨거운 마음이 없다면 다시 한 번 예수님을 묵상해서 회복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이 마음을 기억하기 원하신다.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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