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6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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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비밀

여러분 반갑습니다. 오늘도 함께 모여 말씀을 나눌 때 주님께서 주시는 크신 은혜가 함께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지난주에는 1,2학년들이 선택귀가를 다녀와서 12기들과만 함께 예배를 드렸는데요, 사도행전 말씀, 그 중에서도 스데반이 순교한 내용들을 함께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스데반 이후 바울을 준비하신 것처럼, 우리에게도 어려움 가운데에서 주님의 크신 계획을 준비하신다는 것을 함께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난주에는 12기들과만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조 모임 대신해서 졸업생들과 재학생들간의 원투원을 진행했는데요, 사실 긴시간동안 하게되다보니 조금 걱정이 있었어요. 조금 지루해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시간이 부족하게 느껴질 정도로 다들 잘 해주어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은 원래대로 조모임이 진행됩니다! 예배 후에 함께 조별로 모여 모임을 해주시면 되겠구요, 다만 오늘도 특별한 시간이 있습니다.
저번에 공지드렸다시피, 오늘은 예배 후에 맹물보 순서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질문을 받아서 함께 나누고 또 더 나아가서 토론까지도 할 수 있으니까 다들 함께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오늘도 함께 말씀을 나눌텐데요, 오늘 말씀도 지난주에 이어서 사도행전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우리가 익숙한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누구죠? 바로 사도 베드로가 등장합니다.
흔히 예수님의 수제자라고도 불리는 이 베드로 사도가 오늘 어떤 사건을 겪게 되는지 함께 살펴보도록 합시다.
자, 그런데 오늘 말씀에는 사실 베드로 말고도 특정한 한명의 인물이 더 등장을 합니다. 혹시 누구일까요?
사실 오늘의 본문에서는 그 사람의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책 앞으로 조금만 가면 10장 1절에 그 이름이 등장을 합니다. 바로 고넬료라는 사람입니다. 영어로는 코넬리우스라고도 부릅니다.
아니 왜 44절 이야기를 하는데 1절까지 가냐 싶겠지만, 44절에 오기까지의 스토리를 보려면 1절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럼 1절부터 보자구요. 이 고넬료라는 사람, 뭐하는 사람이라고 하나요? 이달리야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고 말합니다.
백부장이라는 것은 100명의 군인을 거느리는 지휘관의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인데요, 요즘으로 비교하자면 중대장정도 된다라고 비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다는 것은 로마군 안에서 그래도 꽤나 직위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겠죠? 그런데 그 사람이 어떤 인물이었냐,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었어요.
사실 학자들에 따르면, 당시 로마 군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종교에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물론 전쟁이라는 생명을 다투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보니 그럴 수 밖에 없겠죠.
고넬료도 마찬가지로 어떠한 계기에 의해 유대교에 관심이 생긴거에요. 아마 유대인들이 회당에 모여서 말씀을 나누고 사람들에게 베풀고 하는 모습들이 좋게 보였으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는 유대인은 아니었습니다. 왜냐, 진정으로 유대인이 되기 위해서는 율법에 따라 할례를 해야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고넬료 뿐만이 아니라 많은 이방인들에 유대교 교리에 대해 관심을 갖다가도 할례라는 것 때문에 완전한 개종을 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고넬료도 마찬가지였던 것이죠.
그런데 그렇게 매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기도를 하는 고넬료에게 하나님의 천사가 찾아옵니다. 그리고 그 천사는 베드로를 불러 만나라고 합니다.
그렇게 고넬료는 부하와 하인을 시켜 베드로를 청하죠.
말씀은 그 후 바로 베드로를 비춥니다. 베드로도 시간이 되어 기도하기 위해 지붕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그 때 하늘이 열리며 한 보자기가 베드로 앞에 내려옵니다.
그 보자기 안에는 각종 짐승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리죠.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어라!
베드로는 그 말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럴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사실 보자기 안에 있던 수많은 짐승들은 모두 율법에 먹으면 안된다고 규정한 동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 율법을 따라 깨끗하지 않은 것을 결코 먹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소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너가 속되다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러한 실랑이를 세번이나 한 후 그릇이 다시 하늘로 올려갑니다.
베드로는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의아합니다. 그런데 마침 그때 앞서 고넬료가 보냈던 하인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왜 자신에게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이방인과 교제할 수 없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율법에 따르면 지옥에 떨어질 죄인들이었기 때문에, 죄인들과 교제하게 되면 자신 역시도 그 죄에 빠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음식 환상을 보여주시며 그러한 모습이 이제는 바뀌게 되었음을 알려주신 것이죠.
그렇게 베드로는 고넬료와 만납니다. 고넬료는 베드로가 들어오자 앞에서 절을 할 정도로 그를 대접합니다. 그리고 고넬료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사자를 보내신 일을 고백하죠.
그러자 베드로는 자신이 해야할 일을 깨닫고 고넬료에게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과,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사역들을 모두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자 무슨 일이 발생을 하느냐, 베드로가 그 말씀을 전할 때 성령께서 베드로의 말을 듣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내려오신 거에요.
그런데 성령께서 임하신 것이 유대인들 뿐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고넬료를 비롯한 모든 이방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임재하시는 것을 모두가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자 베드로를 비롯한 유대인 성도들은 이 상황을 보고서 깜짝 놀라게 되죠. 왜 그러냐면, 물론 고넬료를 비롯한 그의 하인들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그들은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할례를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넬료를 비롯한 모든 하인들은 이방인의 신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방인들은 앞에서 말했듯 유대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택하신 백성이 아니었고, 결국 구원도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벌어진거에요? 성령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까지 은혜를 부어주신거에요.
그리고 은혜가 부어지자 그들이 방언도 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는 모습들을 그들이 보게 된 것이죠.
이러한 사실은 베드로를 비롯한 기존 유대인 신자들에게는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구원은 하나님의 백성, 즉 유대인들에게만 허락되었다고 여겼기 때문이죠.
물론 성경에서 룻의 경우나 라합의 경우처럼 유대인들이 아님에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구원을 받은 이들이 존재하긴 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핏줄은 이방인이긴 해도 결과적으로는 유대인 공동체 속에 들어온 경우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서의 고넬료는 어땠나요? 하나님을 잘 믿기는 했지만, 할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율법에 따르면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상태였던거에요.
그런데 성령께서 유대인이 아닌 그들의 머리 위에 임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하나님께서 보여주신거에요? 꼭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유대 공동체 안에 속해있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47절에서 나온 것처럼 누가 능히 세례 베풂을 금하겠느냐 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어줍니다.
세례를 베푼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냐면, 마치 유대 공동체에 들어오기 위해 할례를 하듯이, 그리스도를 믿는 공동체로서 받아주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도 보통 교회에서 세례를 하는 것을 이 그리스도인이 되겠다, 이 교회 교인에 되겠다는 선언으로 받아들이잖아요?
그래서 세례교인이 되면 교회의 교인으로서 투표도 할 수 있게 되고, 봉사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이제 고넬료와 그와 함께한 이방인들은 정식으로 그리스도인, 즉 주님이 택하신 공동체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오늘 바라본 말씀은 여기까집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게 되시나요?
하나님께서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구원을 모든 민족에게 확장시키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죠. 이러한 일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우리도 지금 이 자리에서 이렇게 예배할 수 있게 된 것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보면서 나같은 사람들에게까지 구원의 손길을 보여주신 주님께 감사함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데요, 우리는 여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았다는 것에서 멈추면 안된다는 것이죠.
무슨 이야기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르심을 받고 함께하게 되었다면, 우리 또한 그 은혜를 누린 것처럼 그 은혜를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전도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이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일이기도 합니다.
사도행전 1:8 NKRV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께서 고넬료에 머리에 임하셨다는 것, 그리고 우리에게도 임하셨다는 것은 결국 우리가 땅끝까지 하나님을 전하는 전달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그 전달자로서의 사명, 잘 감당하고 계신가요?
혹시 여러분들은 말그대로 전도를 해보신 적이 있나요? 한번 생각만 해봅시다.
물론 이런 생각이 들수도 있어요. ‘저는 전도하고 싶은데, 어떻게 전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친구들과의 관계가 틀어질 것 같아 두려워요.’
그렇습니다. 사실 그러한 생각들, 저도 학창시절 많이 했던 생각들입니다.
여러분들이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도 목사님 아들이었기 때문에, 웬만하면 제가 교회다니는 것을 제 주변 사람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러다보니 어린 맹주현의 생각 속에는 오히려 전도를 하는 것이 너무 속보이는 행동일 것 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결국 저는 활발하게 주변 사람들에게 전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주변인들을 전혀 교회에 데려온 적이 없느냐? 사실 그것은 아닙니다.
무슨 이야기냐면, 제가 나서서 교회에 오라고 하지는 않지만, 먼저 제게 와서 교회에 대한 관심을 보인다면 그래도 교회에 대해서 잘 알려준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떤 일이 있었냐, 전에 한번 이야기한 것도 같은데, 제 대학시절 후배가 있었는데, 원래 교회를 다니긴 했었는데, 그렇게 막 열정적인 신앙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더니 신앙에 대한 열정이 생겨난거에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대학 근처 교회를 물색을 했는데, 마침 학과 사람들에게 제가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사실이 잘 알려져있다보니 저에게 연결을 해준거에요.
그래서 저한테까지 그 후배가 와서 혹시 형네 교회 가도 되냐? 라고 물어보길래 당연히 와도 되지 하면서 잘 안내해주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 그 후배는 그냥 오며가며 인사하며 하는 정도였지, 그렇게 친한 후배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제가 다니던 교회에 잘 정착하는가 싶더니, 정말 열심히 다니고, 막 부서 교사로 봉사까지 하더니, 청년부 회장도 하고, 지금은 그 교회 안에서 좋은 자매를 만나 결혼까지 했습니다.
제가 왜 이 후배 이야기를 했냐면요, 사실 전도라는 것이 그리 대단치 않은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제가 이 후배가 우리 교회에 왔으면 좋겠다고 해서 막 기도하고 그랬던 것이 아니에요. 그냥 그 친구가 먼저 물어보길래 연결만 해준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모든 일들이 잘 이루어진거에요.
그렇습니다. 사실 전도의 과정도 이렇습니다. 우리가 뭘 엄청나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는거에요.
우리는 보통 전도를 해서 사람들이 신앙이 생겨나게 하려면 엄청난 준비가 필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성경을 잘 알아야 할 것 같고, 그래서 논리로 탄탄하게 무장되어야 한명의 사람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 같죠.
물론 그렇게 준비되어 있다면 정말 좋겠죠. 그러면 어떤 질문이 오더라도 잘 대답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전도를 하는 것에는 어떠한 문제도 없습니다.
성경을 잘 모르고, 신학을 잘 모른다고 하더라도 전도를 할 수 있다는거에요.
아마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그러한 경험을 이미 겪은 친구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냥 친구한테 별 생각 없이 ‘너 할거 없으면 하임이나 와볼래?’라고 한마디 던진건데 이 자리에 나아와서 열심히 하임 생활을 하는 경우들도 있다는 것이죠. 또 어떤 경우에는 먼저 그 친구들이 관심을 가지고 우리에게 하임에 대해서 질문하기도 하죠.
어떻게 이런 일들이 가능할까요. 그것은 결국 전도의 과정 가운데서 일하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이미 그 사람을 택하시고, 주님께로 나아오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뿐입니다.
그렇기에 그 영혼이 하나님께 택함받은 존재라면, 우리가 성경에 대해 1도 모르고, 그저 한마디 별 생각없이 던지더라도 그 사람은 주님께로 나아올 수 있을 것이구요,
반대로 정말 신학적으로 무장한 교수님들이 전하더라도 그 사람이 택함받지 못한 자라면 그 사람은 우리의 공동체로 나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자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또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어요.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만 오는 거니까 그렇게 막 열심히 우리가 할 필요는 없겠네요?’
논리적으로 보면 맞는 이야기지만, 사실 이는 틀린 이야기입니다.
왜 그러냐, 물론 말한대로 택함받지 않은 사람은 우리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게 맞아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걸 아냐는거에요. 모르죠. 저 사람이 택함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오직 주님만이 아시는,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았을 때에는 너무나도 착하게 살고, 바른생활을 하기에 구원 받을 것 같이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시선에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반대로 저사람은 구원 못 받을 것 같다고 보이더라도, 하나님의 시선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거에요.
당장 오늘 말씀만 보아도 잘 나타나죠. 유대인들은 구약의 말씀을 통해서 ‘이방인들은 구원을 못 받을 존재들’이라고 머리에 각인이 되어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나요? 아니라는 것이 오늘 말씀을 통해 나타났죠. 고넬료는 이방인이었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셨고, 그는 구원받는 교회 공동체 안에 속할 수 있었죠.
이처럼 누가 구원 받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주님만이 아십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어요? 어차피 모르니 모든 이들에게 열심히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사람이 주님이 택하신 사람이기를, 그래서 함께 구원을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하면 된다는 것이죠.
그러면 주님께서 그의 택하신 계획에 따라 그사람을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삶의 모습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보았듯이, 우리는 성령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 공동체이고, 그렇기에 우리는 주님을 전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 주님을 전하는 일들은, 물론 우리가 나서서 사람들을 데리고 올 수도 있겠지만, 다른 경우도 존재합니다.
바로 여러분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주님을 잘 모르는 이들도 주님에 대한 관심이 생겨난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이런거에요. 주님에 대해 모르는 친구가 하늘고에 왔어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하는데, 너무 힘든거에요. 뭐 당연한 거겠지만, 부모님과도 떨어져서 본지도 얼마 안된 애들하고 같이 살아가면서 옆에서 막 공부하는 것들도 신경쓰이고, 내 공부는 잘 되지도 않는 것 같고.
시험을 봤는데 생각했던 것처럼 점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너무 학교 생활이 힘들어.
그런데 저기 어떤 친구는 나랑 그렇게 다르지도 않은 것 같은데, 오히려 공부는 나보다 잘 못하는 것 같은데, 학교생활을 너무 재밌게 하는거야. 들어보니 무슨 하임이라는 곳을 간대.
분명히 쟤도 공부때문에 힘들어하는 것 같기는 한데 하임만 다녀오면 막 즐거워하고 걱정도 별로 없어보여. 공부할 시간도 없을텐데 막 시간을 써서 열심히 나가는 것 같아.
대체 쟤가 저렇게 있을 수 있는 이유가 뭘까? 저기 다녀오면 뭐가 있나? 나도 뭔가 의지할 존재를 찾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들 속에서 결국 물어보게 된다는거죠. 너는 하임이 뭐가 좋니? 왜 그렇게 열심히 가는거야?
어쩌면 그 한번의 생각과 질문이 주님께서 그 친구를 우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계획일지도 모른다는거에요. 그러면 그 친구는 여러분들을 통해, 여러분들의 생활을 통해서 하임 공동체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의 모습들을 통해 하임 공동체의 모습이,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모습이 세상 가운데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들이 주일날 열심히 기도하고 평소에 성경도 읽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맨날 죽상으로 있고,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주면서 학교생활을 해나간다면, 저런 질문들이 생겨날 수 있을까요?
물론 주님께서 일하신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주님이 일하시는 그 과정 가운데 우리의 그러한 모습들은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열심히 전하지는 못할망정 하다못해 방해가 되면 안되겠죠? 그렇기에 여러분들의 삶의 모습이 참 중요합니다.
물론 여러분들의 입장에서는 정말 힘들 수 있어요. 나도 나름대로 힘든 순간들이 있고, 우울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억지로 좋은 척 해야하냐라는 생각이 들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과 함께해주십니다. 여러분들이 힘들고 어려운 순간마다 주님은 여러분들의 그 마음을 이해하시고 함께해주실 것이고, 여러분들의 우울한 마음가운데 주님과 함께함으로 주시는 기쁨을 선사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정말 힘든 순간 가운데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이겨내는 여러분들의 모습은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귀한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 하임 공동체 여러분들, 귀한 주님의 전달자로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말로써 주님을 전하고, 우리의 모습으로써 주님을 전하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들을 통해 정말 더 많은 이들이 주님께로 나아올 수 있도록 하실 것이구요, 더 나아가서 그 영혼들이 주님께로 나아오는 모습을 통해 여러분들에게도 더 큰 은혜를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 사실을 믿으며 돌아오는 한 주간의 삶 가운데서 삶으로 주님을 전하는 우리 모든 귀한 하임 공동체가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십자가의 전달자
말씀을 놓고
우리 공동체를 놓고
공동체 밖의 영혼들을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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