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공경이 힘든 당신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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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6:1~3
아마 오늘 본문 말씀은 어버이주일 같은 때 자주 인용되는 말씀이기 때문에 매우 익숙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본문을 대할 때 꼭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다면 이 본문은 이 구절만 딱 따와서 읽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본문은 앞뒤 전체 문맥 속에서 다루어져야 하는데요. 예를 들면 에베소서 5장 18절“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여러분, 이 말씀 잘 아시죠? 술 취함이나 성령충만함이라는 것은 사실 내가 무엇으로부터 영향을 받는가? 하는 영향력에 문제더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지금 어떤 영향력 아래 놓여져 있고, 누구를 의지하며 살아가느냐?’의 문제인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그 무엇이 아닌,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 놓여진 인생이고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대전제가 바로 5장 18절에 있고, 그다음 19절~21절까지는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특징이 열거되는데요. 에베소서 5:19-21 합독
19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20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21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여기 보니까 하나님의 영향력 아래 놓인 사람들의 삶의 정황이 두 가지로 설명이 되는데, 하나는 내적입니다. 내적으로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습니다. 찬양이 있는 삶입니다. 그런가하면 두 번째로는 이런 내적인 충만함을 바탕으로 해서 외적으로는 대인관계에서 있어서 “피차 복종하라” 복종의 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구조는 높은 자가 낮은 자를 군림하려 하고 낮은 자는 높은 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구조, 또 어린 자는 연장자에게 복종해야 하는 구조로 세상이 펼쳐진다면 성령의 영향력 아래,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우리 모두는, 서로가 복종하는 자세로 높고 낮은 자세로 대인관계를 영위해야 한다고 선포하고 그런 다음에 아내가, 남편이, 자녀가, 부모가 또 상전이, 아랫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 나오는데, 오늘 본문 에베소서 6장 1~3절은 그 일환의 하나로 소개되는 말씀이더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1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여기에서 “옳다”는 것은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인 것,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이게 옳다는 그런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설정해 놓으신 이 창조 질서가 있는데, 이것을 회복해야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부모님을 공경하고 순종하는 것에 대한 문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모공경에 대한 문제는 영적인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을 보면 이 말세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1절부터 보시길 바랍니다. 디모데후서 3:1-2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죽 열거되는데, 그중의 하나가 “부모를 거역하며”라는 항목이 여기 나와 있지 않습니까? 그런가 하면 로마서 1장 28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29절부터 보시길 바랍니다. 로마서 1:29-30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그다음에도 나옵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여기도 보니까 부모를 거역하는 것을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진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영적인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런 관점으로 오늘 본문을 다시 살펴보셔야 하는데요. 1절과 2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에베소서 6:1-2 합독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여기에 보니까 우리가 부모에 대해서 회복해야 할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순종하라” 또 다른 하나는 “공경하라”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순종하라”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로 보면 “휘파코”(ὑπακούω)라고 하는데, ‘아래’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휘포’ 또 ‘듣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아쿠오’ 이 둘의 합성어입니다. 즉, ‘순종하다’라는 말은 상대방의 말을 아래에서 잘 듣는 태도 즉 ‘경청하다’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네 부모에게 순종하라”라는 말씀을 “네 부모의 말을 경청하라”라고 해석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부모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가하면 2절에 나오는 “공경하라”라는 단어는 원어로 “티마오”(τιμάω)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전쟁을 배경으로 한 용어입니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면 그 전리품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지 않습니까? 그때 각자가 이루었던 공들을 치하할 때 사용하는 단어가 ‘티마오’입니다.
자! 이런 배경을 가지고 2절의 “공경하라”라는 단어를 직역하면 ‘가치를 인정해 주어라’ 혹은 ‘합당한 값을 책정하여 돌려주어라’ 이렇게 단어 풀이를 할 수 있고 이것이 오늘 본문에서는 ‘부모라는 존재의 가치를 인정해 드려라’ 이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1절에 나오는 이 ‘순종하라’는 것은 부모의 말씀에 경청하고 귀를 기울이는 외적인 태도라면 두 번째 나오는 ‘공경하라’는 것은 부모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의 태도를 설명하는 단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빠뜨리면 안 되는 것이요. 여기 1절을 보니까 무슨 전제가 있습니까? 부모님께 공경하되 “주 안에서” 이것을 원어로 보면 “엔 크리스토스(κύριος)”에요. 이 ‘엔(en)’이라는 전치사는 ‘무엇 무엇 때문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말처럼, “주 안에서”라고 번역하기 보다는 ‘주님 때문에’라고 번역하는 게 더 원문에 가깝다는 것이죠.
자,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창조 질서 차원에서 부모의 권위가 회복되기를 원하고 계시는데,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허락해 주시고 ‘부모’라는 존재감을 이처럼 중요하게 각인시키기를 원하시는 것일까요? 왜 그럴 것 같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인간은 누군가가 붙잡아주면 안 되는 약한 존재에요. 어린 시절에는 말할 필요도 없고요. 장성해서도 우리는 누군가가 붙잡아 주는 역할을 해주어야만 정상적으로 살 수 있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인터넷 기사로 한 논문 주제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는데요. ‘KDI’ ‘출산율 높이기 위해 동거문화 수용해야’하는 제목의 기사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가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니까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제는 정식 혼인을 통해 출산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이런 고정관념을 다 없애고 이제는 동거나 혼외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거예요. 이것을 철부지 십 대 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요. ‘KDI’라는 ‘한국개발연구원’에서 발표한 연구 논문을 인용한 기사였습니다.
이런 논문이 공공연하게 발표하고 또 이것을 인터넷 기사를 통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 현실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각자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사사기 시대 같지 않습니까?
오늘 이 시대를 포스트모던 시대라고들 하는데요. 이 포스트모던에는 크게 두 가지의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탈(脫)권위주의’에요. 기존의 모든 권위는 다 무너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현상들이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제 나이만 돼도 아이들은요. ‘꼰대’라고 합니다. ‘심꼰대’ 사실 저도 학창 시절에 선생님에게 혼나면 “에이~” 뭐 이러기는 했거든요. 선생님 들리지 않게 작게 했어요. 작게! 그러면서도 그런 저의 태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요. 이제는 선생님의 권위 자체가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초등교사 지원율이 급격하게 떨어졌다고 하잖아요? 교사의 권위가 바닥에 떨어지고 힘들기만 하니까요. 이게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런가하면 포스트모던 시대의 특징 중의 하나가 ‘상대주의’입니다.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포스트모더니즘의 타겟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습니다. 절대 진리나 절대주의는 없고 다 상대주의이다! 왜 하나님이 유일신이시냐? 나도 하나님일 수 있다, 나도 구원자가 될 수 있다는 것 아닙니까? 오늘날 우리 시대가 이렇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저 같은 목회자들이 이런 시대에서 목회하면서 책잡히지 않도록 살얼음판을 걷듯이 살피면서 목회를 했어야 하는데, 너무 함부로 행동하고 쉽게 목회하려는 마음에 권위가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일에도 그런 말씀 드렸잖아요? 책망할 수 있는 권위가 사라져버렸다고요.
그래서 저는 이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극복하는 첫 번째가 바로 건강한 권위의 회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건강한 권위의 첫 출발은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라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가장 원초적인 기관은 가정이고, 가정에 부여해 주신 영적 권위야말로 어른 됨에 첫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가지고 이것과 관련해서 2가지 기도 제목을 나누려고 하는데요. 첫 번째 기도 제목은 ‘가정에서 부모의 권위 회복하기’입니다. 에베소서 6:1
1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또 2절에
2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왜 그렇습니까?)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사실 이 말씀을 듣는 많은 분들이 내가 자식이면서 또 부모일 수 있잖아요? 이런 이중적인 위치에 있다면 우리는 중요한 한 가지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는 자녀로서 부모님의 권위를 복귀시켜 드려야 해요. 잠언 23:22 새번역 합독
22 너를 낳아 준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늙은 어머니를 업신여기지 말아라.
무슨 뜻입니까? 겉으로 보이는 그 무엇 가지고 부모를 공경할지 말지 판단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 아닙니까? 아까 전제로 설명해 드린 게 뭐였죠? “주 안에서” “주님 때문에”라는 거예요. “우리 아버지가 너무 도덕적이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가 너무 교양있기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 내게 해 준 게 많기 때문에” 그 고마운 마음으로 하는 게 진정한 효도가 아니고, 부모님이 어떠함과 상관없이 “주님 때문에” 부모님의 권위를 인정해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두 번째 기도 제목은 ‘부모의 권위 회복이 행복이 되는 것을 경험하기’입니다. 저는 부모의 권위가 회복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쁨인가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부모의 권위를 인정해 드리고 세워드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오늘 본문 3절을 보십시오.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 본문은요. 사실 우리가 대표적으로 오해하고 있는 구절 중의 하나인데요. 두 가지의 약속을 해 주시는데, 첫째 여기서 나오는 “잘 되다”라는 단어는 원어로 유(εὖ)라는 단어로 ‘좋다’ ‘행복하다’ ‘번성하다’ 이런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1장 8절 합독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기 “네가 형통하리라”라는 표현이 헬라어로 번역할 때, ‘유 호도스’라고 번역을 하는데, 여기서 나오는 접두어 ‘유’가 바로 오늘 본문의 ‘유’입니다. 그리고 ‘호도스’는 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하나님 말씀을 지켜 순종하면은, “좋은 길을 걷게 된다”라는 것을 형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 질서가 가정 안에서 회복이 되고 우리가 부모의 권위에 순복하게 되면 어떻게 된다고요? 이 땅에서 형통한 은혜를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약속이 뭡니까? 그 나라에 대한 소망이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이게 오해가 많은 것이요. 3절을 다시 한번 보세요.
3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땅에서 장수’한다니까 ‘아! 효도하면 100살까지 사는구나!’ 이런 오해를 하기 쉬운데요. 이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왜 이런 오해가 나오는가 했는데, 우리말 성경에서 번역 하나를 빠뜨려서 그렇습니다.
원어로 보면 “땅에서”라는 표현 앞에 영어로 ‘the’(그) 라는 정관사가 하나 더 붙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이 아니고 그 땅이에요. 예를 들어서 출애굽기 3장 17절에
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그)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이렇게 죽 열거하지 않습니까? 이 말씀을 헬라어로 번역할 때도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에 관사가 하나 더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땅’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현재 위치가 어디예요? 황폐한 광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이 뭐예요?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예비해 두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이 땅에서 얼마나 옥토를 만들고 많은 부와 명예를 누리며 장수하느냐 그것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서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을 소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에게 효도할 때, 우리가 부모님의 말을 경청하고 존재감을 인정해 드릴 때, 여기서 100살까지 승승장구하면서 사는 게 아니고, 이 광야와 같은 땅에서 그 나라를 꿈꿀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나라를 소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100세 시대, 100세 시대하고 심지어 120세까지도 살게 될 거라고 하는데요. 여러분, 그게 정말 축복일까요? 너무 힘든 일 아닐까요? 그 정도면 그냥 살게 되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잘 아는 십계명 중의 제5계명에 해당하는 말씀이 출애굽기 20장 12절인데요. 합독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제1계명부터 4계명까지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관련된 계명이고요. 5계명~10계명까지가 인간관계에서 꼭 기억해야 될 계명 아닙니까? 그래서 모세가 두 돌판을 받았는데, 한 돌판은 하나님 사랑과 관계된 1계명부터 4계명이 기록되어 있고요. 또 두 번째 돌판은 인간관계에서 기억해야 될 5계명부터 10계명이 담겨져 있다고 그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흥미로웠던 게 뭐냐면, 왜 하나님은 인간관계를 다루는 계명 중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제일 먼저 주셨을까? 하는 점입니다.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는 부모를 섬기는 문제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문제라고 인식하셨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어느 신학교 교수님이 하신 말씀인데요.
부모공경의 문제는 인간관계에 해당되는 계명 중에서 제일 먼저 등장할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를 다루는 5계명~10계명까지 계명 중에 유일하게 부연 설명이 있는 계명이라는 거예요. 이게 뭔지 출애굽기 20장 12절~17절까지 보십시오. 제5계명입니다. 인간관계에서 첫 번째 계명이 나옵니다.
12 네 부모를 공경하라 (왜 공경해야 됩니까?)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그러고는 다른 명령에는 부연 설명이 없습니다. 그냥
13 살인하지 말라
14 간음하지 말라
15 도둑질하지 말라
16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마지막 열 번째 계명은 길지만 부연 설명은 아닙니다.
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이렇게 부모공경의 문제가 가장 먼저 등장할 뿐만 아니라, 유일하게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겠어요?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이고 그만큼 기초가 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생각해보면 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가 더 중요한 것 같지 않습니까? 살인이 훨씬 심각한 문제잖아요? 그런데 왜 하나님은 살인 금지보다 부모공경을 먼저 기록하셨는가? 이에 대해 해석하는 글을 봤는데요.
여러분, 부모공경이 우리 인간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항목으로 주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부모는 생명의 전달자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창조자이시며 주관자이시지만, 육신의 부모님은 주관자 되시는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명을 전달해 주는 전달자이십니다.
우리가 왜 부모공경을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자식들에게 잘 대해주시고 희생하신 것 그것도 물론 감사해야 하지만, 창조 질서 안에서 보면 부모는 생명의 전달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2천 년 전에 이탈리아의 폼페이 화산 폭발 때, 그 많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화산재가 되지 않았습니까? 하루 만에 도시 하나가 다 사라지고 말았죠. 그중에 아기를 품에 안은 어머니가 그대로 화산 화석이 된 사진도 있잖아요? 어떤 부모라도 그런 상황이 되면 그렇게 자식을 먼저 보호할 것입니다. 그게 본능이고 내리사랑이니까요.
제가 한 달 전쯤인가, 저희 아버지가 밤늦은 시간인데 저한테 전화를 하셨어요. 아들 목사가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는 것을 아시니까 밤늦게 전화하시지 않거든요. 그래서 느낌이 이상해서 얼른 전화를 받았는데, 아버지가 처음에는 말씀이 없으시더니 “바쁘냐?” 그러시더라고요. 밤늦게 전화하셔서 “바쁘냐?”고 물어보시는데 좀 뜬금없으시잖아요?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그랬더니 “나 너한테 정말 서운하다.” 그러시는 거예요. “무슨 일 있으세요?” 그러는데, 그때부터 막 “내가 너희한테 뭘 그렇게 서운하게 했냐?” “잘못한 게 뭐냐?” “내가 오래 살아서 그런다” “정말 서운하고 화가 난다” 막 그러시는데, 저는 저희 아버지가 그렇게 화를 내시는 것을 전화상으로는 처음 들어봤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늘 아들 목사에게 많은 지원을 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만 하셨지 그런 말씀은 처음이셨거든요. 알고보니 저랑 제 동생한테 전화를 다 하셨더라고요. “아버지 왜 그러세요?” “저희한테 서운한 일 있으세요?” 그랬는데, 계속 감정을 누르지 못하고 서운함을 토로하시더니 전화를 끊으시는 거예요.
그래서 다음 날 제 동생하고 통화를 해봤죠. 그랬더니 아버지가 일도 그만두시고 아직 여든은 안되셨거든요. 그래도 무기력해지고 여기저기 아픈데도 많으시고 한데, 이 아들이라고 하나 있는데 목회하면서 바쁘다고 연락도 제대로 안 드리고 해서 정말 서운하셨나 봐요. 제가 그즈음에 제 아들 녀석 대학 문제, 제 딸이 고등학교 진학하고 이런 상황이다 보니 온통 자식들만 신경 쓰고 있었거든요.
그때 하나님이 제게 주신 마음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하는 내리사랑은 부모인 저로서는 너무 자연스러운데, 이 아버지에 대해서는 자식으로서 내가 좀 더 애를 써야 하는구나’ 이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부모이면서 자녀인 여러분! 자녀나 손주에 대한 사랑은요. 내리사랑이기 때문에 그렇게 애를 쓰지 않아도 돼요. 본능적으로 자식에 대해서는 그렇게 사랑을 하니까요. 십계명에 “네 자식을 목숨처럼 사랑하라”가 없잖아요? 그 문구 안 넣어도 모든 부모가 다 그렇게 할 거거든요. 그런데 부모공경은 좀 애를 써야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어버이날에 용돈 보내드리면서 제 마음을 담은 카톡 메시지를 양가 부모님들에게 다 전해 드렸는데요.
여러분, 우리 젊은 부모님들은 자식에 대해서는 조금 덜 신경 쓰시고요. 부모님에 대해서는 좀 노력을 같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도 결혼하고 부모가 되어 보니까 아시잖아요? 저처럼 때로는 부모공경이 힘들고 부담이 되더라도요. 조금만 더 노력해 주시면 안 될까요? 여러분들의 부모님이 생명의 전달자이시잖아요?
그리고 오늘 여기 함께 예배드리시는 연로하신 원로 장로님들, 원로 권사님들께 이 젊은 목사가 부탁을 드립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바로 자식들을 위한 생명의 전달자이심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조금만 오래 살아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비록 몸은 노쇠해지시고 전부 젊은 사람들 위주로 다음 세대들 위주로 교회가 운영되다 보니까 소외감을 느끼고, 권위가 해체되는 시대에 어른으로 살아가시는 것이 너무 힘들다 할지라도 여러분, 부디 오래 살아주십시오. 우리 하름교회의 기둥이 되어 주시고 버팀목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이 젊은 목사가 목회하면서 엉뚱한 짓 하려고 할 때, 사랑의 책망을 해 주시고 또 젊은 자녀들, 손주들을 위해 중심축이 되어 주신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의 사명 아니겠습니까?
우리 성도님들 가정에 부모님들의 권위가 회복되고 비록 연로하시지만, 잠언에 있는 말씀처럼 가정의 자녀와 그 자녀 손들을 위한 중심이 되어 주시는 기둥 역할을 해 주신다면 오늘 우리 가정의 창조 질서가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그런 은혜와 사랑이 우리 모든 성도님들의 가정에 충만하게 임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찬양 :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1절 후]
사실 오늘 말씀은 부모공경에 대한 말씀이긴 하지만, 설교를 준비하는 내내 여기 계시는 우리 원로장로님들, 권사님들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 우리 교회 원로분들은요. 대부분 4, 50대 교회에 다 바치고 헌신하셨던 분들이세요. 그런데 이분들이 존재감이 없이 지내시는 게 아닌가? 우리 김계옥 권사님 잘 아시잖아요? 지금 아흔이 넘으시고 아시다시피 지병이 있으시잖아요? 지난 금요일에 댁으로 심방을 갔더니 너무 기력이 없으셔서 이제 침대에 누워 계세요. 제가 부임해 왔을 때만 하더라도 걸어서 오셨는데, 지금은 힘이 없으셔서 댁에 누워 계시는 게 제가 마음이 안타깝더라고요. 언젠가 저에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나는 목사님이 나를 잊어버린 줄 알았어.”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전화도 드리고 한 달에 한 번씩 찾아봬도 어르신 마음은 그러신가봐요.
그래서 오늘 예배 가운데 우리 70대 이상 어르신들에게 그런 말씀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는 너 다 알고 있다. 안 잊어버렸다. 네가 어떻게 헌신했는지, 어떻게 자식들을 위해 희생했는지, 교회를 위해 헌신했는지 안 잊어버렸다.”
오늘 우리 부모님들을 포함해서 주변에 계신 어르신들을 향해 이렇게 두 손을 펼치고 후렴부터 다시 한번 불러보기를 원합니다. (후렴)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합심기도
이 시간 우리가 먼저 육신의 부모님들을 품고 기도하길 원합니다. ‘하나님, 제가 저도 모르게 부모님들의 헌신과 희생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너무 편하다 보니까 자식에 대해서는 그렇게 가슴 아파하고 애통하면서 기도했는데, 부모님에 대해서는 그러질 못했습니다. 주 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하셨는데, 그것이 다른 계명보다 더 먼저 앞서고 중요하다 하셨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그런가하면 부모님들을 향한 격려가 필요합니다. 제가 그걸 잘 못한 것 같아요. 여러분, 사춘기 애들만 격려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어른들일수록 격려가 필요하세요. 자꾸 반복하셔야 해요. 오래 사셔야 한다고 건강하셔야 한다고 말씀해 주세요. 어머니 아버지가 내 생명의 전달자라고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또 이미 부모님들이 안 계신 분들은 우리 교회 어르신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오늘 주신 말씀이 우리 가정 안에서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이 마음 가지고 우리 부모님과 우리 교회 어른들을 위해 합심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침기도
네 부모를 주님 때문에 순종하고 공경하라 말씀하신 하나님, 자꾸만 부모의 권위가 땅에 떨어지고 부모보다는 자식을 향한 내리사랑이 더 짙어지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부모님을 보내주시고 그분들의 헌신과 사랑에 힘입어 오늘 우리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내리사랑도 좋고 자녀 사랑도 좋지만, 무엇보다 십계명의 5계명처럼 가정에서 부모공경이 먼저 회복되게 하시고 또 창조 질서가 회복되는 행복을 누림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명의 전달자이신 부모님들과 우리 교회의 어르신들이 여생을 더욱 행복하게 또 건강하게 살아가실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옵소서. 부모님과 어른들을 섬기는 일에 우리가 좀 더 노력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우리 하름교회가 교회를 지키기 위하여 수십 년을 헌신하셨던 우리 윗대 어르신들이 소외감을 느끼시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더욱더 붙잡아주시고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리며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결단의 찬양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부모공경이 힘든 우리에게 오늘 말씀을 통해 부모공경을 회복하라고 명령하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다짐하는 우리 성도들 머리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히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