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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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로 오신 예수님

사도행전 3:20–24 NKRV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모세가 말하되 주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너희 형제 가운데서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울 것이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그의 모든 말을 들을 것이라 누구든지 그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는 자는 백성 중에서 멸망 받으리라 하였고 또한 사무엘 때부터 이어 말한 모든 선지자도 이 때를 가리켜 말하였느니라
사랑합니다. 드림인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여기 있는 스피커의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나의 말을 전달해줘야 하는 것이 스피커의 역할이다. 만약에 스피커가 내 소리가 아닌 이상한 소리가 나오게 된다면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렇다. 고장났다고 확신하고 수리하거나 고물상에 팔아넘기게 된다. 이처럼 스피커는 말하는 사람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그대로 나타나야 한다. 그렇다면 왕의 뜻을 전하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하는가? 그렇다. 사신 또는 사자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전하는 사람을 무엇이라고 부르는가? 그렇다. 선지자이다. 오늘 여러분들과 진정한 선지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나누도록 하겠다.
오늘 말씀 읽은 사도행전의 3장 말씀에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3시 쯤에 기도시간이 되어 성전에 올라간다. 그때 태어나면서 걷지 못하는 사람이 성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 앞에 앉아서 구걸하는 것을 보게 된다. 태어나면서 걷지 못하는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구걸을 하는 것이다. 그러자 베드로가 “우리를 봐라”고 말한다. 그 사람이 무언가 얻을 것을 기대하면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하고 명령한다. 보통 우리나라의 화법은 좋은 것을 먼저 앞에서 말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은금방이라고 하지 않고 금은방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유대인의 히브리 사고에서는 가치가 낮은 것부터 먼저 말하면서 가치가 높은 것을 나중에 말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은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금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은 것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하고 명령한다. 그리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킨다. 그때 선천적으로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함께 지켜봤던 주변에 있던 사람들과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걸어다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몰려드는 것이다. 솔로몬의 행각이라고 신전 같은 곳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이때 베드로가 백성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유대인들을 향해 일종의 전도 설교이다. 베드로는 먼저 태어나면서 걷지 못하던 사람이 걷게 된 일은 자신들의 능력이나 경건함 때문에 된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했지만 유대인들이 반대했다. 행3:14-15
사도행전 3:14–15 NKRV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거룩하고 의로운 이”라고 부른다. 예수님은 죄가 없는 거룩한 분이며 의인이시라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생명의 주”라고 부른다. 이 말은 ‘생명의 창조자’ 또는 ‘생명의 임금’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은 일찍이 자신을 “나는 생명이요 부활이니”라고 소개했다. 예수님은 생명을 다스리시는 분이며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다. 유대인들은 이러한 분을 십자가에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다. 제자들이 이 일에 증인이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걷지 못하는 자가 걷게 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하며 말한다. 행3:16
사도행전 3:16 NKRV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베드로는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병자를 치유했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치유한 사건은 믿음의 역사라고 말한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마법의 주문을 외치듯이 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요한이 분명하게 우리 주님이 치유하실 것이라는 확신하며 믿음으로 일으켜 세울 때 그가 선포한 “일어나라!”는 선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는 믿음의 선포로 놀라운 기적을 맛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위기 상황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하나님 지혜 주세요!”라고 선포할 때 성령님께서 평안한 마음과 함께 그 힘든 상황을 도우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때가 너무나도 많았다.
베드로는 이제 설교를 듣고 있는 대중들에게 해야할 일을 설명한다. 먼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못 박은 것은 그들이 알지 못하고 한 일이라는 것이다. 무엇을 알지 못했는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이 모든 일은 또한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언하신 일들이 성취된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구약이 성취된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에게 회개를 시급하게 요청한다. 베드로는 유대인들에게 죄 용서함을 꼭 받으라고 설교한다. 그렇게 회개하고 나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2장 38절에서 베드로의 첫 번째 오순절 설교에서는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용서를 받으면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헷갈리게 된다. 성령의 선물도 받고 예수 그리스도도 받는 것일까? 함께 살펴보기 원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때가 되면 성령이 오실 것을 예언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셨다. 결국 성령님과 함께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다. 성령을 통해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할 것이다. 베드로는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첫 번째 오순절 설교에서는 성령을 선물로 받는다고 말했고, 성전 미문에 앉은뱅이를 고친 후에 회개하고 나면 예수님이 오신다고 설교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지만, 성령을 통해서 오신다. 이 때문에 베드로는 성령을 “주의 영”이로고 부르게 되었다.
더 나아가 베드로는 예수님이 구약의 성취자라는 것을 네 가지 예를 들어 논리적인 증거를 보여준다. 첫째, 모세가 율법에서 말한 “나 같은 선지자 하나”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신명기의 선지자 법을 말하는 본문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시내 산에 임하실 때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서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중보자였다. 모세는 그때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가 올 것을 예언했다. 이스라엘은 그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 베드로는 이것을 말하면서 예수님이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한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진짜 중보자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선지자로서 구약의 율법을 성취하는 분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들은 모두 멸망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선언한다. 둘째, 예수님은 선지자 사무엘 이후의 모든 예언을 성취하는 분이시다. 셋째, 베드로는 또한 예수님이 구약의 약속과 언약을 성취하는 분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한 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너의 씨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을 성취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언약이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넷째, 베드로는 예수님이 여호와의 고난 받는 종이라는 것을 말한다. 이사야 선지자가 말했던 “내 종” 즉, 고난 받는 여호와의 종을 기억나게 한다. 사53:5
이사야 53:5 NKRV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 분이 누구이신가?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는 “우리의 죄악 때문에” 징계를 받고 고난을 받았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여 죽는다고 예언한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구약의 율법, 약속, 언약과 예언을 모두 성취하는 분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비단 유대인들에게만 전하는 이야기가 아닌 지금 우리에게도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선지자의 뜻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입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을 깨우치는 자이다. 그래서 선지자는 하나님께 받지 않고는 주지 못하고 또 받은 것보다 더 주지 못한다. 마치 스피커가 나의 목소리를 그대로 전달해주는 것처럼 있는 그대로 전할 뿐이다. 그렇기에 선지자는 미래를 말하는 사람 또는 예측하는 사람이 아니다. 성경에서 예언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언약을 파괴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책망, 심판을 경고하고 그들이 죄를 회개하면 언약을 다시 고쳐서 새롭게 하는 일을 담당했다. 모세부터 시작해서 사무엘, 나단, 엘리야, 이사야, 예레미야, 느헤미야 등등 각 시대마다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들이 등장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권위를 부여받았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가졌고, 그들이 기록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래서 지금 현재 선지자가 있는가? 없다. 또 성경에서 말하는 방언이 없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방언은 여러 나라와 지방에서 뿔뿔히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다시 예루살렘에 모여서 각자의 자신들이 살았던 나라의 언어로 이야기했기 때문에 통역을 했어야 했고, 결국에는 모든 말씀이 완결이 되어서 더이상 방언으로 직통계시가 없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방언기도하는 것은 나쁜 것인가? 아니다. 성경이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해 완결되어 계시와는 이제는 무방하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 함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 은밀하게 말하고 싶어서 사용하는 방언은 사용할 수 있다. 그렇지만 가능하면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 한국말로 기도하기 바란다. 선지자들이 한 말은 자신의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지금 교회에 선지자와 사도가 있는가? 없다는 것이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처럼 완전히 주어지기 전에 존재했다. 그래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실 것인가를 예언하였고 신약의 사도들은 그리스도가 하신 것을 기록했다. 지금은 완전한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선지자로 오시므로 더 이상 선지자의 직분이나 사도의 직분, 예언은 사라졌다. 교회에는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계신다. 목사님과 전도사님은 이미 기록이 완성된 말씀을 지금 여러분에게 전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님은 질서의 영이시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소망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4장을 질문에 답하기 바란다.
Q24. 그리스도서 어떻게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십니까?
A24. 그리스도께서 선지자의 직분을 행하시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그 말씀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성경에서 마지막 선지자는 누구인가?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선지자 위에 계시며 구약의 모든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시는 분이시고, 예수님 그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시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유일하신 선지자이며 그는 지금도 오직 성경만을 통해 교회에 말씀하신다. 선지자, 사도들은 끝난 직분이지만 다른 직분은 교회에 주신 그리스도의 영원히 계속되는 은사이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를 위한 일들을 위해 전도사님 같은 사람들을 계속 부르고 계신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새로운 성경을 쓰라고 부르신 도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주셨고 완결하신 성경말씀을 연구하고 선포하며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마태복음 11:11 NKRV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지금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구약의 모세나 엘리야와 같이 위대한 선지자들보다 하나님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받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보잘 것 없어보이는 신약의 성도라도 구약의 마지막 인물인 세례 요한보다 더 높은 지식의 수준에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구약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그림자만 알았고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었고,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것밖에 모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어떤 일을 했는지, 어떤 성품을 가지신 분이신지 등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예고편만 본 사람과 본 방송을 본 사람과의 대화의 수준과 깊이가 다른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가 말하는 것이나 어떤 유명한 목회자가 말하는 것이나 유명한 신학교 교수가 말하는 것, 부모가 믿고 있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믿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그의 말씀에서 진리라고 가르친 어떤 확실한 것을 믿지 않는 한, 확실하고 안전한 지식을 가질 사람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이것은 신학자, 목회자, 교회가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도 성경 위에 무엇을 두거나, 성경과 동일한 수준에 둘 수 없다는 것을 명심하시라. 우리의 모든 삶의 기준이 오직 성경이 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이 완전한 선지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계시하셨기에 우리는 말씀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삶을 다스리고 있는가? 아니면 내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여호와께 돌아갑시다.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성경으로 돌아갑시다. 그리하여 여러분의 삶이 성경 말씀으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가 이끌어가는 귀하고 복된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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