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7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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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 295 큰 죄에 빠진 나를
헌금명단호명 / 기도
하나님 아버지, 늘 우리의 허물과 연약함에도 오래 참아주시고, 측량할 수 없는 은혜로 우리를 덮으시고 용서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드리는 예물들을 주님께서 흠향하시고 그 마음의 소원들을 주께서 아시오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왕상 21:17-29
우리가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지만, 아합은 북이스라엘 가운데 바알과 아세라를 비롯한 우상숭배를 장려했던 가장 악했던 왕이었다. 비록 그의 리더십이나 자질들은 세상의 기준으로는 뛰어났을런지는 모르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그는 가장 악한 왕이었다. 그의 악랄한 죄는 왕상 21 장 초반부에 기록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행위에서 절정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께서 땅을 사고 팔지 말라고 하신 것은 모든 땅이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었다. 나봇이 유산으로 받은 땅은 그가 오늘날 말로 제태크를 잘해서 구입한 땅도 아니고, 열심히 한푼 두푼 모은 돈으로 구입한 땅이 아니었다. 이는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선물이었다. 따라서 부득이한 상황에서 땅을 팔더라도 희년이 되면 원래 주인에게로 땅을 돌려주어야 했다. 그 땅이 하나님의 선물이니까. 그러나 아합은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이러한 사실들을 분명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땅을 빼앗기 위해 비열한 방법을 동원하며 나봇을 죽이고 그 땅을 빼앗게 된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러한 배경 가운데 시작한다. 자신의 악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던 아합과 이세벨에게 심판의 말씀이 선언된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보내사 아합과 이세벨에게 심판을 선언하신다. 그 심판의 내용은 무엇인가? 아합과 이세벨이 나봇을 죽이고 그 땅을 빼앗았으므로, 아합에게 속한 모든 자들이 반드시 죽게 되리라는 것이었다.
20절을 보시면 엘리야는 아합에게 “네가 네 자신을 팔았다” 라고 말한다. 이는 자기 목숨을 팔아 나봇의 포도원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에 대한 심판으로 하나님께서는 21절에서 아합 뿐만 아니라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를 다 쓸어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불살라 태워버리다’, ‘흔적도 없이 치워버리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22절처럼 여로보암과 바아사 왕조를 끝내실 때마다 사용하셨던 표현이기도 했다.
우리가 알다시피 여로보암이나 바아사나 모두 하나님께 심판을 받은 가문이었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매우 짧은 기간 통치하다가 반역으로 암살당해 멸문당한 가문이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집을 그렇게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 이유는 22절 말미에 기록된 바와 같이, 아합이 하나님을 노하게 하였고, 그들의 죄는 자신들만 범죄한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전체에게 악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은 이세벨에게도 임한다. 아합에게 선포되었던 성격과 비슷하다. 개가 그녀의 시체를 이스르엘 성벽 근처에서 뜯어 먹게 될 것이다. 24절을 보라. 이처럼 아합에게 속한 자라면 그들이 누구든, 그들이 어디에 있든, 도시 안에 있든, 도시 밖에 있든 모두가 죽을 것이고, 개와 새가 그들의 시체를 뜯어먹게 될 것이다. 어디에 있든지 모두가 죽는다.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이것은 비단 아합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죄인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로마서 6:23 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다. 아합에게 속한 그 누구도, 어디에서 무얼 하든 다 죽어야만 하는 것처럼, 성경은 죄인의 결국이 이와 같다고 말씀하신다.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길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여기에 복음이 있다. 엘리야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아합은 그 심판의 말씀이 두려웠는지 회개하는 모습을 보인다. 열왕기상 21:27 말씀을 보라.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여기서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기며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눕는 행위들은 회개를 상징한다. 물론 아합의 회개가 성경이 말씀하시는 죄사함의 회개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모함으로 죽인 나봇의 명예를 회복시키지도 않았고, 그 유족들에게 포도원을 다시 돌려주는 모습도 없기 때문이다. 그저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참담해할 뿐이었다.
그의 회개는 합당한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점에서 바른 회개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를 통해 발견할 수 있듯이, 참된 회개는 반드시 그에 합당한 행동, 열매들이 나타난다.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아합의 겸손해진 태도가 거짓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후회하며 하나님의 심판적인 말씀에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반쪽짜리 회개에 어떻게 말씀하시는가? 아직도 정신을 못차렸느냐고 꾸짖으시며 즉결 심판을 행하셨는가? 그렇지 않다. 29절 말씀을 보시면,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아합의 당대에는 그의 왕조를 끝내지 않으시겠다 말씀하신다. 그의 반쪽짜리 회개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회개를 받으시고 오므리 왕조를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와 여호람 때까지 유지되게 하신다. 이스라엘 역사상 최악의 왕이었던 아합이 그저 반쪽짜리 불완전한 회개를 보였을 뿐이었으나, 심판을 유예해주실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은혜로우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합의 모자란 회개에도 불구하고 심판을 연기해주시는 하나님은 얼마나 은혜로우신 분이신가? 풀이 죽어 소망이 없는 상태로 주저앉은 아합에게 멸망이라는 최후의 심판을 자신의 눈으로 보지 않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아합과 같이 악인 중의 악인도 겸손해졌을 때 이러한 자비를 경험했다면, 그가 반쪽짜리 불완전한 회개의 모습을 보였을 때에도 이러한 은혜를 경험했다면, 악당 중의 악당도 이런 은혜를 경험하였다면, 독생하신 아들의 피값으로 사신 저와 여러분들에게는 얼마나 크신 은혜를 부어 주실까? 우리가 전심으로 우리의 죄를 자백하고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시겠는가? 우리가 옷이 아닌 마음을 찢으며 우리의 죄를 긍휼이 많으신 주님 앞에 고백할 때, 인자와 자비가 충만하신 우리 아버지께서 그 모든 죄들을 동에서 서가 먼 것처럼 우리 곁에서 치워버리시지 않겠는가?
요한1서 1:9 말씀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 이라고 말씀하셨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용서하실 수 없는 죄란 없다.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할 죄도 없다. 죄인이 멸망하는 이유는 그 죄가 너무 커서가 아니라, 그 죄를 들고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든 그 죄를 짊어지고 애통해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하시고 상한 심령을 회복시키신다.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는 무엇인가?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실 때, 예비하신 놀라운 은혜들을 부어주실 것이다. 이 사실을 확신하며 겸손히 나아가시는 이 자리 모든 성도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주기도문
자비하신 아버지, 오늘 이 새벽의 시간에 하나님을 향하여 가로막고 있는 죄의 담이 있다면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게으름, 우리의 무지함, 우리의 연약하고 부족함, 우리의 불충함, 우리의 완악함을 회개하오니 우리의 죄를 정결하게 씻어주시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