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가, 이제라도, 그럼에도(사사기 16: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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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오늘 말씀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의 이야기입니다.
바로 삼손과 들릴라의 이야기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힘을 없애기 위해 들릴라를 매수합니다.
그래서 들릴라는 삼손을 유혹하여 힘의 근원을 밝히고자 하지만
그러나 삼손이 매번 거짓말을 해서 밝히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들릴라의 끈질긴 유혹으로 말미암아
결국 삼손은 유혹에 넘어가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삼손이 되었고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에게 희롱과 수모를 맛보는 삼손!
아니 더 이상 하나님의 영이 임하지 못한 삼손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여정에서
크고 작은 죄와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때로는 우리 자신의 잘못된 선택과 연약함으로 인해
깊은 고통과 좌절을 겪기도 합니다.
이러한 순간들 속에서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시간 “어쩌다가, 이제라도, 그럼에도” 라는 설교제목으로
함께 도전과 은혜를 받길 바랍니다.
새겨야 할 말씀: 어쩌다가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인생
다함께 23절-25절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음:
23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이르되 우리의 신이
우리 원수 삼손을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다 모여 그들의 신 다곤에게 큰 제사를 드리고 즐거워하고
24 백성들도 삼손을 보았으므로 이르되 우리의 땅을 망쳐 놓고
우리의 많은 사람을 죽인 원수를 우리의 신이 우리 손에 넘겨 주었다 하고
자기들의 신을 찬양하며
25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이르되 삼손을 불러다가 우리를 위하여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옥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삼손을 두 기둥 사이에 세웠더니_아멘
본문의 말씀은 삼손이 자신의 죄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에게 잡히고 조롱을 당하는 장면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의 특별한 사명과 힘을 부여받은 인물이었지만
그러나 자신의 죄와 연약함으로 인해 이 모든 것을 잃고 말았습니다.
삼손의 실패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삼손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죄로 말미암아 비참한 상태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죄는 항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너나 할 것이 예외가 없으며
믿는 사람이든, 심지어 사사라 할지라도 예외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어둠의 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단지 들릴라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을 했을 뿐입니다.
또한 블레셋 사람의 행동은 분명 삼손을 붙잡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결국 삼손을 붙잡게 되자.
이들의 숨은 의도와 목적이 드러났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들의 신, 다곤을 찬양했다는 것입니다.
사진보기]- 다곤: 곡물, 큰 물고기란 뜻.
상반신은 사람, 하반신은 물고기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블레셋 바알신에게 두 명의 아버지가 있었는데
한명은 하늘의 신을 말하는 엘(제우스)
또 한명은 곡식의 신을 말하는 다곤
이처럼 블레셋 사람들은 단순히 삼손이 힘이 세기 때문에
삼손이 피해를 주기 때문에
삼손을 붙잡았지만
그러나 실상은 하나님께로부터 힘과 능력을 받은 삼손을 능욕을 주기 위해
다시말해서 삼손에게 힘과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능욕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삼손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런 삼손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은 아름다운 이름으로 상황을 두고 교회를 향해 이야기를 합니다:
사랑이 넘쳐야 하는 교회가 동성애의 인권을 무시하면 되겠느냐!
이들을 품어주고 사랑해야 되지 않으냐!
교회가 개혁되어야 하는데. 왜 그리 보수주의냐!!
성도여러분, 사실 이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어떻게 해라고 합니까?
그렇습니다. 미워하지 말라. 이것이 정답입니다.
다시말해서 우리의 전쟁은 혈과 육의 전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전쟁인 것입니다.
삼손을 보시기 바랍니다. 삼손은 이런 것을 알았을까요?
또한 삼손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떠난 인생으로 살고자 했을까요?
삼손은 태중에부터 구별된 나실인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어릴때부터 신앙의 모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속에서 소위 어쩌다보니..
결국 인생은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된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 즉 자들의 신이 삼손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기억하길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런데 어둠의 세력은 하나님의 자녀로 된 우리를
계속해서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인생으로 만들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이는 삼손처럼 육신의 정욕으로!
또 어떤이에게는 세상의 물질로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어쩌다보니 하나님을 떠난 인생이 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세상에 이끌리어 어쩌다가의 인생이 아니라
성령의 이끌리어 인도함을 받는 주인공이 되길 소망합니다.
두번째 말씀: 이제라도 믿음의 길을 걷는 인생
다함께 26절~28절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음:
26 삼손이 자기 손을 붙든 소년에게 이르되
나에게 이 집을 버틴 기둥을 찾아 그것을 의지하게 하라 하니라
27 그 집에는 남녀가 가득하니 블레셋 모든 방백들도 거기에 있고
지붕에 있는 남녀도 삼천 명 가량이라 다 삼손이 재주 부리는 것을 보더라
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_ 아멘.
질문]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삼손과 들릴라”를 생각하면
어떤 것들이 생각나십니까?
아마도 집요하게 삼손의 힘을 찾아고자 하는 들릴라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머리카락이 잘린 삼손을 생각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다곤신당에서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과 함께 죽은
삼손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이처럼 삼손과 들릴라를 생각하면
다양한 것들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삼손과 들릴라라고 듣게 될 때,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그 내용을 대략적으로 생각하며 주는 메시지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삼손과 들릴라의 뜻을 알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히브리어로 삼손과 들릴라의 뜻은 작은 태양과 밤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빛과 어둠은 함께할 수 없고
낮과 밤은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빛의 자녀가 밤의 자녀와 함께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말해서 죄와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삼손의 선택은 바로 빛이신 하나님이 아니라 죄를 선택한 것입니다.
본문은 삼손이 이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장면입니다.
삼손은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데
여기서 보여준 삼손의 모습은 진정한 회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여기서부터 시작되어야 바로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있는 것입니다.
삼손은 그동안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믿고 살아왔습니다.
이것은 사실 우리의 민낯이기도 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하면서
우리도 어쩌다보니...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것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사람을 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결국 세상의 쓴맛!
조직의 쓴맛을 경험하면서!
다시말해서 자신의 실패와 죄를 깨닫게 되자..
이제서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라도 하나님을 의지 해야겠구나!
그렇습니다. 바로 그때가 다시 돌이켜야 할 때입니다.
바로 그때 다시 회개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어느 가정을 세우고자 하는 가정주부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의 사업도 힘들고 특별히 자녀의 교육비를 위해서
바깥일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가정을 세우기 위해 돈을 벌었는데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과 소원한 관계가 되었고
자녀들과도 소통이 잘 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교회생활도 잘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어쩌다보니 제 이렇게 되었고
저의 가정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오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일을 그만두어야 한다. 이런 메시지가 아닙니다.
이제라도.. 기도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믿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삼손은 그동안 자신의 힘과 능력만을 의지했습니다.
비록 그가 실패와 좌절속에 있었고
정말 수치스러운 상황에 있었지만
그러나 이제라도 삼손은 기도로 하나님께 요청하였고
믿음의 길을 가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이제라도 더욱더 믿음의 길을 걷는 주인공이 되길 소망합니다.
이제라도 저희 가정을 회복시켜 주세요
세번째 말씀: 그럼에도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인생
다함께 29절~31절의 말씀을 보도록 하겠음:
29 삼손이 집을 버틴 두 기둥 가운데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30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31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다 내려가서
그의 시체를 가지고 올라가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그의 아버지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니라 삼손이 이스라엘의 사사로 이십 년 동안 지냈더라_ 아멘.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은 삼손의 기도를 들으시고
삼손에게 다시 힘을 주셔서 다곤신당을 무너뜨리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원과 동시에 심판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특별히 삼손은 정말 형편없는 종으로 전락하게 되었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역사하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삼손이 비록 힘과 능력이 없지만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이 형편없는 삼손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니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블레셋 사람들이 다곤신당이 모인 이유는
자신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준 삼손에게 조롱과 수치를 주기 위해서
또한 이들의 숨은 의도는 이들의 신을 찬양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형편없는 삼손에게
수치를 주고 조롱을 주기 위해 모인 것이지만
그러나 그 결과 믿지 않는 자의 파멸로 불러왔다는 것입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도여러분, 한나가 누구의 축복기도로 사무엘을 낳게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제사장 엘리입니다.
비록 엘 리가 제사장이었지만 그러나 본문의 말씀으로 빚대어 말한다면
삼손처럼 형편없는 종이며 제사장입니다.
그렇지만 한나는 엘리가 정말 뛰어나고 훌륭한 제사장이라서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에!
그가 하나님의 제사장이기 때문에 그를 존중해 준 것입니다.
한나의 이런 행동은 정말 쉽지 않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한나가 이런 행동을 하자
하나님은 형편없는 제사장 엘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 인간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인 거부반응이 일어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삼손이 형편없는 종이지만
엘리가 형편없는 종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저는 이것을 잠잠히 묵상하면서....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역사가 나에게도 나타나겠구나!
나의 힘과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으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혹 여러분중에 혹은 주변에....
환경으로 인해 혹은 자기 자신을 향해... 분노하고 힘들어하는 분이 있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기억하길 바랍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쓰러져 있는 우리에게!
스스로 형편없다고 여기는 우리에게!
그럼에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이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주인공이 되길 소망합니다.
정리]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삼손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그의 인생을 통해 성경은 우리에게 일깨워 주십니다.
어쩌다가. 이제라도.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럼에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역사를 보이십니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더욱더 믿음의 길을 걸으며
이 시대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는 주인공이 되고 교회가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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