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29 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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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은 하나님 안에 있습니다.
창세기 30:14–24 (NKRV)
14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15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16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17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18 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19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20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21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2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야곱이 집을 떠나 삼촌 라반의 집에 도착 하였다.
그리고 라반은 야곱에 일을 한 품삯을 준다고 했고 이에 야곱은 라헬과 결혼하길 원한다고 하였다.
그래서 야곱은 7년동안 열심히 일을 하였다.
당시 풍습에 따르면, 신랑 될 사람은 장인 될 사람에게 신부의 몸값을 지불해야만 아내로 데려올 수 있었다.
7년의 품삯으로 혼인 지참금을 대신 하겠다는 말이었다.
이제 드디어 야곱이 라헬과의 결혼식 날이 되었다.
그런데 라반은 야곱을 속이고 라헬이 아닌 그의 언니인 레아를 야곱과 혼인 시켰다.
그리고 나서는 지방 풍습에 언니가 먼저 결혼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는
라헬도 아내로 줄테니 7년을 더 일하라고 라반이 야곱에게 이야기 한다.
야곱은 라반의 말을 수락하여서 라헬과도 결혼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야곱은 삼촌 라반의 계략으로 졸지에 자매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야곱은 처음부터 라헬에게만 마음이 있었다.
결혼한 이후에도 레아보다 라헬만 사랑하였다.
그 마음을 레아도 모를리 없었다.
그런 레아를 하나님께서 애잔하게 보셨다. 그래서 레아에게 아이를 잘 가질 수 있게 축복하셨다.
하나님께서 레아의 태를 열어주셨다는 것은 남편에게 사랑 받지 못하던 레아를 위로하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레아는 4명의 자녀를 얻었다.
첫째 아들을 낳고 이름을 ‘르우벤’ 이라고 지었다. 그 이름의 뜻은 “보라 아들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이름으 속 뜻은 “하나님께서 내 괴로운 마음을 알고 아들을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돌봐주시구나, 그러기에 이젠 남편도 나를 사랑하겠지?” 라는 레아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둘째를 낳았는데 ‘시므온’ 이라 이름하였는데 그 뜻은 “들으심”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주께서 남편 사랑을 받지 못하는 내 처지를 아니고 내 간구하심을 들으셨다” 라는 레아의 마음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레위’ 인데 그 뜻은 ‘합체, 연합’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에 레아는 “내가 이렇게 아들을 셋이나 낳았으니 남편도 이제는 나와 연합하겠지” 라는 마음이 담겨져 있다..
넷째도 낳았는데 이름을 ‘유다’로 지었는데 그 이름의 뜻은 “찬양하다, 감사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레아가 앞으로는 오직 주님만을 찬양하겠다는 결심을 담은 이름이었다.
넷째 아이를 출산한 이후 레아는 한동안 아이를 낳지 못한다.
이는 레아가 불임이 되었다는 것을 이야기 한 것이 아니다. 이유는 그 이후에 또 출산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후에 레아가 출산하지 못했다는 것은 야곱이 더 이상 레아와 잠자리를 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레아가 4명의 아들을 출산 하도록 라헬은 한명의 자녀도 출산하지 못하였다.
상황이 이러니 라헬의 마음은 또 어떠하겠는가?
그래서 30: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였다.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자신의 언니를 시기했다고 표현한다. 그리고 1절 후반부를 보면 심지어 자녀를 낳지 못하면 자신이 죽겠다고까지 한다.
그러니 라헬의 마음이 얼마나 조급한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라헬은 자신의 여종을 통해서라도 언니 레아의 아이가 아닌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었다.
라헬은 여종 빌하를 통해 2명의 아들 ‘단’과 ‘납달리’를 낳게 되었다.
재미있는 것이 6번째 아들 ‘납달리’의 뜻은 “겨루기, 씨름’이라는 뜻으로 라헬은 자신의 몸종에서 태어난 2명의 아들을 통해 ‘내가 언니 레아와 겨루어 마침내 이겼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걸 보고 레아는 지기 싫어 자신의 몸종인 빌하와 야곱이 잠자리를 갖게해 2명의 아들을 얻게 된다.
이후의 내용이 바로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이다.
이렇게 레아의 종을 통해서 자녀를 또 얻으니 라헬의 입장이 급해졌다.
하루는 레아의 첫째아들인 르우벤이 들에나가 합환채를 얻었다. 합환채는 ‘사랑의 과일’로 불리는 열매이다.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열매가 불임 여성들에게 아이를 갖게 해준다고 믿었다.
이렇게 좋은 약을 르우벤이 가지고 온 것을 라헬이 알게 되었다. 그래서 라헬은 레아에게 합환채를 달라고 요구하였다. 하지만 레아는 이런 라헬의 요구를 당연히 거절하였다.
엄밀이 말하면 야곱의 첫째 부인은 레아 이다. 그러기에 지금 레아는 남편을 라헬에게 빼앗긴 것 같은 느낌일 것이다. 그래서 라헬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이러한 언니의 마음을 안 라헬은 남편의 잠자리를 걸고 다시 레아에게 제안을 한다. 합환채를 주면 남편 야곱을 보내주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남편인 야곱을 레아가 아닌 라헬이 독차지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또, 그만큼 야곱이 라헬만을 사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라헬의 제안을 레아는 수락한다. 라헬이 자신의 남편을 레아에게 보내면서까지 합환채를 얻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른것이 아니라, 합환채만 있으면 자신의 불임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라헬은 합환채를 먹었지만 불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 모두는 성도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가 된 모든 거룩한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거룩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구별됨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도란 세상에 살지만 세상의 방법대로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지금도 우리의 소망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심을 믿는 사람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도라 하면서도 아직까지 하나님이 아닌, 오늘 본문에 나오는 라헬과 같이 세상의 방법인 자신의 경험이나 자신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라헬은 하나님이 아닌 합환채에 소망을 두었다. 합환채가 있으면 자신의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세상은 언제나 사람의 안전과 생명이 물질적 풍요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많은 것을 소유하면 언제나 안전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래서 세상에서 ‘잘 산다’는 기준은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우리도 그러지 않는가?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차를 사는 사람을 보면 잘산다~고 말한다.
그래서 2009년에 나온 그랜저 라는 자동차 광고에 이런 문구가 사용되었다.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의 말에 그랜저로 대답했습니다” 자신은 그랜저를 가지고 있으니 잘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남들보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고, 그 물질적 소유로 인해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면 세상에서는 잘 사는 것이다.
그래서 성도라 하면서도 하나님보다 돈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살아간다. 돈을 벌기 위해서 때로는 하나님을 버리고 돈 버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며 살아가기도 한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하나님 안에 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것이 우리의 삶속에서 어려움이 닥쳐 왔을때 세상의 방법대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나서 안되니깐 최후의 보루로 하나님을 여기며 살아가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는 것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최고의 방법임을 기억해야 한다.
라헬은 합환채만 가지고 있으면 자신의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합환채는 라헬의 문제를 해결 해 줄 수 없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얄궃게도 합환채로 거래를 하여 남편을 레아에게 보냈더니 레아가 금방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너무나도 속이 상한 라헬은 자신의 여종을 남편과 잠자리를 하게 하여 자신의 여종인 빌하도 자녀를 낳았다. 심지어 레아의 여종 실바까지 자녀를 낳았다.
이 때 라헬의 마음이 어떠했겠는가? 오늘날에도 자녀를 낳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속상한 일입니까? 그런데 당시에 결혼한 여자가 애를 갖지 못하는 것은 속상한 것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니 라헬이 자신의 여종을 통해서라도 애를 낳게 한 것이다. 그리고 합환채까지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불임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았으니 라헬의 마음은 산산조각이 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라헬 말고 다 자녀가 생겼다. 어쩌면 라헬은 모든 것을 포기 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22절 그 때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셨다는 것은 단순히 기억을 되살린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라헬에게 자비를 베풀기 원하신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라헬에게 자녀를 허락하신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들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요셉’이다.
우리의 모든 문제의 답은 하나님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라헬은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힘으로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였다.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는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결정적인 순간에 내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정직하게 볼 필요가 있다. 내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찾고 있는 그것이 내가 정말 신뢰하고 믿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혹시 성도님들에게 있어서 합환채는 무엇인가? 내 삶속에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 합환채는 무엇인가?
내가 많은 것을 소유하면 문제가 다 해결 될 것 같습니까? 내 자녀가 좋은 대학을 가서 돈 많이 주는 직장에 취직을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 같습니까? 내가 건강하기만 하면 내 문제가 다 해결 될 것 같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문제의 답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보다 더 먼저 생각하고 하나님을 구하길 보다 더 간절히 구하는 합환채가 무엇인지 정직하게 생각하는 이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리고 인정하기 싫지만 하나님보다 더 구하고 있는 합환채가 있다면 오늘 이후로 그 합환채를 내려놓고 주님만을 바라보길 원한다. 그리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분임이 믿어지는 이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단번에 한번에 생기지 않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작은 것 하나부터 내려놓고 주님께 맡기는 훈련을 해야 한다. 훈련은 반복입니다. 계속해서 내가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을 주님 앞에서 내려놓는 훈련을 하길 바랍니다. 그렇게 훈련이 되어 있어야 우리가 결정적인 순간에 내 생각 내 능력, 세상의 방법을 내려놓고 주님만을 의지하여 나의 모든 문제를 온전히 맡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 또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보면 라헬의 믿음은 주님 보실 때 온전하지 못하였다. 레아 또한 마찬가지 였다. 그도 역시 라헬과 합환채를 가지고 거래를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들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어 가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세상은 자격이 없고 능력이 없으면 버려진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시다. 사랑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우리가 연약하면 연약한대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사용하시고 끊임없이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며 우리를 인도하신다. 복 받을 수 없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으시고 기어이 복 받을 자로 만드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의 은헤를 깨달은 성도는 매순간 주님을 바라보지 않을래야 바라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주님과 동행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를 만드시고 인도하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모든 순간순간마다 주님만을 의지하며 주님 앞에 엎드려 주님만을 구하는 성도다운 삶을 살아가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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