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1장
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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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views그리스도인의 의로움으로 하나님은 이 땅에, 그가 속한 공동체에 은혜를 베푸신다.
Notes
Transcript
1절: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새번역 성경에서는 “왕의 마음은 흐르는 물줄기 같아서 주님의 손 안에 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왕을 이끄신다.”라고 번역한다.
왕을 지도자로 생각한다면 우리가 속한 여러 영역의 지도자를 생각할 수 있다. 대통령, 시장, 회사의 사장, 교회의 담임목사님, 가정의 가정 등
본문의 말씀을 하나님의 진리라고 여긴다면 기존에 우리가 해왔던 많은 생각과 반응에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대통령이 정책을 잘못 결정하고, 혹은 역량이 부족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나라에 해를 끼칠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 회사의 사장이 지혜로운 결정을 하거나, 어리석은 결정을 하는 데도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기 때문인데, 그러면 나라의 형편이 어려워지고, 지도자가 어리석은 결정을 하거나, 불법을 저지를 때 하나님을 원망할 것인가? 그러면 하나님이 불의를 행하는 분인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주제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앞에 세상에서 어떤 존재인가? 공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악이 넘치는 세상에 대한 심판을 어떻게 미루실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스도인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긍휼을 베풀 수 있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기준이 있다. 악이 관영하여 더 이상 회복의 가능성이 없을 때이다.
창 6:5-7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 6:11-13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 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노아가 있었지만, 땅은 더 이상 회복의 가능성이 없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구원하시고 땅의 모든 것을 심판하시기로 하셨다. 하나님의 심판은 회복의 가능성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 심판에 대해 살펴볼 몇 가지 예가 있지만 이스라엘을 심판한 결정적인 이유를 살펴보자.
렘 5:1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한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 한 사람이 없어서 이스라엘은 심판으로 멸망했다. 소돔과 고모라는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했다. 소돔과 고모라에 롯이 살고 있었지만 소돔과 고모라의 죄악으로 인해 그의 심령이 상했다. 이스라엘에 진정한 의인,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킬 통로가 될 의인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은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변화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은 심판을 유예할 수 있으시다. 소돔과 고모라에 의인 10명, 아니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의인 1명을 조건으로 내놓았어도 하나님은 수락했을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를 변화시킬 의인 1명이라도 있었다면 심판을 유예했을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세상의 넘치는 죄악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심판을 미루실 수 있는지 알았다. 세상에 의인이 아직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 의인 된 이들이 있어서 아직 세상에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기에 심판을 미루신다. 하나님의 기쁨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위해 중보할 때 하나님은 세상에 공의와 심판이 아니라 긍휼과 자비를 행하실 수 있다.
이제 왜 대통령이 어리석은 결정을 하는지, 회사 사장이 어리석은 결정을 하는지, 왜 역량이 안 되는 이가 대통령이 되는지, 부정직한 사람이 국회 위원이 되는지 알겠는가? 수없이 많은 표면적인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 땅에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 의롭지 않아서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을 위해 하는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아서이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가 담겨있다. 나라가 어려워질 때, 내가 속한 단체가 어려워질 때,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기독교가 부흥하고, 많은 이가 회심하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나라들이 흥왕해지는 역사를 잘 안다. 많은 이들이 우리 나라도 평양 대부흥을 비롯해서 하나님께 돌아왔던 시간을 통해 나라가 발전했다고 믿는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 반대도 사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 멀어질 때 나라도 쇠퇴한다.
그러면 우리가 속한 영적인 공동체인 교회를 생각해보자. 세상의 지도자도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주장하신다.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그리스도인들의 의로움과 관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영적 공동체인 교회는 더 그러하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 지도자에게 하나님의 뜻을 감동하신다고 믿는다. 그렇게 고백한다. 그리고 이는 사실이다. 그런데 교회 지도자가 실수할 때는 개인의 문제라고 여긴다.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다.
본문 말씀에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는 진리이다. 하나님께서 교회 지도자의 마음을 주장하신다. 그의 생각을 주장하신다. 선한 것만이 아니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 의롭게 살아야 한다. 내 옆에 지체가 의를 행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교회에 어려움이 있을 때 함께 회개해야 한다. 누구 한 사람의 책임이라고 말할 수 없다. 교회는 몸이고, 우리는 모두 몸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이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모든 일 가운데, 모든 상황 가운데 계신다는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계 2:1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은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신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 사자이다. 예수님이 교회의 지도자를 붙잡고 계시다. 그를 임의로 인도하고 계신다. 예수님은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신다. 일곱 금 촛대는 일곱 교회이다. 예수님은 교회 사이를 거니시며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보고 알고 계신다. 우리의 주님 되신 예수님 앞에 어떻게 행해야 하겠는가?
교회에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을 때, 함께 회개하며 겸손히 마음을 낮추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한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 의로운 행위이기에 하나님의 회복이 임한다. 그러나 문제가 있을 때 누군가의 책임을 묻고, 정죄하고, 다툰다면 그것은 하나님 앞에 죄이기에 하나님께서 회복을 주시지 않는다. 여러분 눈이 어떤 부족함이 보이는가? 그것은 판단과 정죄를 위한 재료로 주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운 행동이 뭔가를 생각해보라. 오히려 중보하고, 오히려 부족함을 돕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로움이 아니겠는가. 여러분이 의를 행할 때 여러분이 속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된다. 교회 뿐 아니라 가정도, 회사도.. 그리고 나라도!
의로우신 하나님의 의로운 백성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