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 말았어야 하는 서원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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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스톱기도회
논스톱기도회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사랑합니다! 논스톱 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잘못된 약속 또는 맹세로 후회해본 적 있는가? 나 같은 경우는 초등학교 때 허세가 좀 심했었다. 그 당시에 강원도 강릉에 3년 정도 살았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쯤이었다. 학원에 다니던 형들이 자주 했던 말이 있는데, 건담 프로모델, 피규어를 갖고 싶다고 매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때 하지 말았어야 하는 허세를 부리고 말았다. 형들에게 내가 사줄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그러면서 주변에 있던 형들이 듣고 벌떼같이 몰려들어 자기들도 사달라고 엄청 쪼르기 시작했다. 반응들이 재밌어서 형들도 다 사주겠다고 하니까 아주 파티의 현장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를 짜증나게 했던 형도 거의 머리를 조아리면서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하니까 너무 재밌었다. 때마침 집에서 광주로 이사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찰나라 다음 날 광주로 내려가기 전 마지막 학원 수업이 있었다. 형들에게 내일 장난감 가게에 가자고 말하니 형들은 아주 기대에 차 있었다. 그렇게 마지막 학원 수업을 마치고 형들에게 놀이터에 잠깐 있으라고 말하고 얼른 차에 타서 큰소리로 “형들아~ 미안하다~”하고 자동차 창문 밖으로 이야기하니까 형들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짱돌을 들고 쫓아오는 모습을 뒤로하며 도망 간 기억이 있다. 만약에 도망가지 못하고 놀이터에서 잡혔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만해도 끔찍했을 것 같다.
오늘 말씀에서는 지난 주에 여러분과 나눴던 입다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전하고자 한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여러분들과 역사서를 가지고 여호수아부터 사사기에 들어와서 논스톱 기도회에서 강해설교를 하고 있다. 중간에 필요할 때 강해설교가 아닌 다른 본문을 가지고 설교하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계속해서 성경을 쭉 다루는 강해설교를 하고자 한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각 사람마다 주시는 메시지를 발견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는 이 밤되어지기 소망한다. 오늘 읽은 이스라엘의 상황은 이렇다. 암몬이라는 이방 족속이 길르앗을 침략해 오는 상황이다. 당시에 이스라엘 군대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다들 내향형의 사람들이었던 모양이다. 아무도 이스라엘을 용감하게 이끌 사람이 하나도 없는 상황인 것이었다. 그때 입다가 등장하지만, 그의 어머니가 몸을 파는 여자 곧 창녀였기에 사회적으로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었다. 이러한 이유로 자신의 아버지 길르앗의 유산도 받지 못할 뿐더러 아버지 집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러니 입다는 태생이 정상적으로는 사회에서 성공할 수 없는 부류의 사람이었고, 사회적으로 비천하며 탐탁한 인물이 아니었지만, 입다는 타고난 전사이면서 뛰어난 지도자로서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태생적으로 자격이 없어보이는 입다를 사사기 기자는 11장 1절에 ‘큰 용사’라고 말하고 있다.
아무도 이스라엘을 지켜낼 자가 없었던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자, 쫓겨난 자를 찾아간다. 군사적인 위협이 눈 앞에 점점 다가오자 이제서야 길르앗(이스라엘의 요단강 동쪽 지역/르우벤, 갓, 므낫세) 장로들이 입다에게 찾아온다. 그에게 군대장관이 되어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가서 암몬과 전쟁을 해 달라고 요청한다. 제안을 들은 입다는 만약 자신이 군대장관으로 나가서 암몬에게 이기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길르앗 장로들은 입다의 말에 동의한다. 그렇게 입다는 이스라엘의 장관이 되어 암몬과 전쟁을 하러 나간다. 그전에 입다는 먼저 전쟁하기 전에 고대의 풍습대로 적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외교적인 조치로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입다가 주장하는 핵심은 암몬은 암몬의 신 그모스가 주는 땅을 차지하는 것이라면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은 우리가 소유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 외에도 지난 300년 동안 평안히 살고 있는데 왜 갑자기 소란스럽게 하냐며 암몬 왕에게 따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주장과 주장, 고소와 고소가 맞부딪히면서 두 군대가 충돌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면서 최종 권위이신 여호와께 호소하게 된다. 사사기 11:27
내가 네게 죄를 짓지 아니하였거늘 네가 나를 쳐서 내게 악을 행하고자 하는도다 원하건대 심판하시는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자손과 암몬 자손 사이에 판결하시옵소서 하였으나
여기서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히브리어로 직역하면 ‘그 사사이신 여호와’이다. 입다는 여호와를 ‘그 사사’로 부른다. 진정한 사사는 여호와 한 분이심을 사사기 기자는 강조하고 있다. 입다는 사사이신 여호와께 이스라엘과 암몬 사이를 심판해 달라고 요청한다. 입다가 여호와를 최종 심판자로 호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암몬 왕이 귀를 기울이지 않음으로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입다는 여호와께서 세우신 사사는 아니다. 길르앗의 백성과 장로들의 제안을 받고 나온 군대장관이다. 그렇지만 입다는 진정한 사사이신 하나님을 의지한다. 다시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지 않겠다고 하셨던 하나님이 입다에게 여호와의 영을 보내신다. 이스라엘의 반복되는 배반에도 이스라엘이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고 여호와께서는 마음 아파하시다가 여호와의 영을 보내 이스라엘을 돕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결과는 누가 이기는 게임인가? 이스라엘이 이길 것이 분명한 것을 사사의 역사 속에서 알 수 있다. 여호와의 영이 임했기 때문에 승리는 100% 보장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입다는 암몬과 전쟁을 하러 나가면서 여호와께 서원한다. 이기게만 해주신다면 무엇이든지 다 하겠다는 식의 멩세를 한다. 입다는 서원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전쟁의 승리를 보장받으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입다의 서원은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 아주 계산적이고 간교한 것이었다. 성경 본문 어디를 찾아봐도 입다는 여호와께 받은 약속의 말씀이 없었다. 입다의 관점에서 보면 여호와께서는 아직도 멀리 계시며, 아무런 헌신도 하시지 않은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도움을 얻어내기 위해 극단적으로 서원한 것이다.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입다의 서원을 보면 무엇을 번제로 드리려고 한 것인지 분명하지가 않다. 입다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집에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자신을 영접하는 자를 번제로 드릴 것을 서원한다. 이것은 인간을 제물로 해서 드리는 제사를 뜻한다. 전형적으로 잘못된 서원이다. 그러면서 집에 돌아올 때 누가 혹은 무엇이 마중 나올지 애매하다. 자기를 영접하러 나올 자가 누구인지 혹 무엇인지 모르기에 이후의 일들을 자세히 살펴봐야한다. 누가, 무엇이 희생 제물이 될 것인가? 결국 실제로 입다는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게 되었다. 사생아로 태어나서 이복형제들에게 쫓겨나 길바닥 신세였던 입다가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자리로 등극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집에 신난 마음으로 들어갔고, 그때 저 멀리서 “아빠~~”하고 달려오는 것이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외동딸이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아버지에게 소고를 잡고 춤을 추며 맞이한 것이다. 딸이 마중나오는 것을 본 입다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옷을 찢으며 크게 슬퍼했다. 참 신기하게도 이런 고통의 순간에도 입다는 딸을 위로하지 않고 딸을 오히려 비난하고 있다.
“내 딸아! 네가 나를 너무나 슬프게 하는구나. 내가 여호와께 약속을 했는데, 그것은 깨뜨릴 수 없는 것이란다”(11:35)
실제로 입다의 딸은 잘못한 것이 없다. 입다가 여호와의 도움을 보장받기 위해 이기적으로 서원한 것이 위기를 만들었다. 입다는 한번 서원하면 어떤 맹세라도 지켜야 한다며 딸의 희생을 피치 못할 일로 선포하고 있다. 이기적인 입다와 다르게 입다의 딸은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지가 여호와께 약속하셨으니, 그 약속대로 하세요. 여호와께서는 아버지를 도우셔서 아버지의 적인 암몬 사람들은 물리칠 수 있게 하셨어요. 그렇지만 제게도 한 가지 부탁이 있어요. 제가 두 달 동안, 산에서 지낼 수 있게 해주세요. 나는 결혼도 못하고 죽어요. 그러니 친구들과 함께 산에 가서 울 수 있게 해주세요”(11:36-37)
이에 대한 입다의 반응은 한마디 밖에 없었다. “가라” 어쩌면 그 이상의 말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딸이 처녀로 죽을 수밖에 없음에도 “가라” 한마디밖에 할 수 없었던 입다는 인생의 비극이 이보다 강하게 표현될 수 있는가? 입만 열만 청산유수, 언어의 달인이었던 입다가 “가라”라는 말 한마디 남기고 떠나가는 딸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음은 인간의 유한함을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렇게 입다는 그녀를 서원한대로 번제물로 드린다. 이것은 비록 입다가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사였지만, 잘못된 신앙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당시 주위 국가들이 자녀들을 번제로 드리는 것을 보고 배웠던 것이다. 암몬과의 전쟁을 위해 이미 하나님의 영으로 임한 상태였지만 그는 마치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것이 필요한 것처럼 성급하고 불필요한 맹세를 했다. 너무 계산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 그는 결국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자신의 자식을 잃게 되고 만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가?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건하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우리가 드려야할 기도는 첫 번째로 하나님의 때를 잠잠히 기다리십시오. 우리는 성급하게 기도제목이 응답되기를 원한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빨리 빨리의 문화 때문에 오래 기다리는 것을 많이 힘들어한다. 그리고 나의 때에 기도제목이 응답되길 원하고, 응답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지도 않고,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 땅을 가보면 알겠지만, 완전히 메마른 중동의 땅이다. 우기가 시작되는 10~11월 쯤에 내리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하고 한다. 농사가 잘되기 위해서는 이른 비가 충분하게 내려야 한다. 9월까지 이스라엘은 건기로 그동안 비가 오지 않아 땅이 바짝 말라 있는 상태이기에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를 시작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일 년의 농사를 잘하기 위해 준비하며 이른 비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은 어떠할까? 애탈 수 밖에 없다. 강하게 내리쬐는 태양열에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땅을 보며 애타게 비를 기다리는 것이다. 늦은 비는 3~4월에 내리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한다. ‘봄비’라고도 불리는 ‘늦은 비’는 농작물의 환경을 좋게 하고 곡식을 더 풍성하게 추수하게 해주는 꼭 필요한 비이기에 그야말로 단비이다. 결국 농부의 삶은 누구 손에 달린 것인가? 하나님의 손에 달린 것이다. 아무리 농사를 잘하려고 완벽한 준비를 하더라도 하나님이 비를 내리지 않으시면 어떠한 완벽한 준비도 의미가 없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한다. 주님 다시 오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기도는 믿음의 기도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면 다 드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길 수 있다. 마치 이번 대학만 합격하면, 취업에 성공하면, 결혼하면, 아이를 낳으면 등등 자신의 소원을 두고 이루어지면 다 드리겠다고 기도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입다를 보면 이렇게 기도하는 것과 매우 비슷하다. ‘시험 성적이 오르면 제가 가지고 있는 최신형 비싼 노트북을 깨부수겠습니다’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옆에서 부모님이 보면 어떨 것 같은가? 성적이 오른 것과 노트북을 깨부수는 일과 무슨 연관이 있으며, 그게 무슨 도움이 되냐는 것이다. 아주 쓸데없는 일이고, 한심한 모습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행위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히브리서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어떤 믿음인가? 내가 가고 싶은 대학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결혼하지 못하더라도, 아이들 갖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그 사실 하나, 나의 인생과 나의 영혼을 책임져주시고 절대 망하게 하시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여기서 하박국 말씀을 보게되면 완전히 망해버린 상황인 것이다. 일 년 농사를 망치면 뭘 먹고 살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박국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한다고 한다. 왜인가? 아무리 인생이 잘 풀리고, 잘 먹고, 잘 살고 아무 걱정하지 않을만큼 어마어마한 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는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농부가 대충 준비해서 이렇게 고백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기후는 아무리 농사를 완벽하게 준비해도 하나님이 비를 내리시지 않으시면 농사를 지을래야 지을 수 없다. 비를 내리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이 굶어죽게 하시는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인도하신 여호와를 생각하면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도 먹이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풍성할 때 잘 못느낀다. 그러나 부족하고 망한 것 같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에게 감히 도전하는 한가지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날마다 붙드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기 소망한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아무리 완벽하게 계획하고 철저하게 미래의 일들을 준비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누구의 뜻대로 세계 역사는 흘러가는가?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뜻대로 흘러간다. 우리는 반드시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일들을 충실하게 해야한다. 앞으로 각자 개인의 삶의 계획도 철저하게 준비해야한다. 그러나 내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무엇을 인정해야 하는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계획이 누구의 뜻에 맞춰야 하는가? 하나님의 뜻을 맞춰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했는데, 실패와 같은 상황이 왔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씨를 뿌려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게 하실 때까지 계속해서 인내하며 기도해야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부르셨다. 누구는 학생으로 누구는 다양한 직업으로 부르셨다. 나는 목회자라는 부르심으로 이곳에 왔다. 나는 목회자가 목표가 아니다. 전도사라는 직분은 복음을 전하는 도구이다. 학생인 여러분도 학생의 신분을 도구로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셨다. 직업들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목표가 아니라 복음의 도구가 되어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신다는 것은 그 사람이 그럴만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럴만한 능력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이지만, 우리가 해야할 일은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여러분, 이 밤에 여러분의 믿음의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지기 소망한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과 준비하는 모든 일들이 복음의 통로가 되어지길 소망한다. 이것이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이다. 나의 얄팍하고 어리석은 나의 생각을 의지하지 말고 여러분의 인생을 영원토록 책임지실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소망한다. 실패한 것 같아보여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소망한다. 날마다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여 성령의 충만함으로 복음을 전할 때 여러분들을 통해 많은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