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놀라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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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놀라운 길!
[하나님의 말씀을 교독하여 읽겠습니다: 시편 1: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 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인사말-도입]
오늘은 어떤 인사를 나눌까요? 오늘 설교 제목을 따라 앞뒤 좌우에 계신 분들과 이렇게 인사 한번 나누겠습니다. “오! 놀라운 길을 가시는 군요!”
‘헤르만 헤세’는 그의 소설 ‘데미안’에서 삶은 자기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라고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저는 동의하지는 않지만 세상의 길을 멋지게 표현한 말입니다. 인생은, 결국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누구나 예외 없이 길을 걷습니다. 이것을 어떤 이는 여정이라고도 하고 여행이라고도 표현합니다. 때론 그 길이 평탄한길이기도 하고 험한길 이기도 합니다. 좁은길을 걷다가 넓은 길을 걷기도 하고 넓은 길을 걷다고 좁은 길을 만나기도 합니다. 누구도 그 길의 끝에 이르기까지는 결코 멈추거나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길에는 길마다 이정표가 있습니다. 아이는 태어나서 누워 있다가-뒤집기를 하고-배 밀이를 합니다-기어가고-일어서고-걷고-뛰고 하는 아이 성장의 이정표가 있습니다. 배움의 이정표도 있는데요! 어린이집을 거쳐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대학원으로 이어지는 학업의 과정도 있습니다. 청장년의 삶의 이정표는 어떻습니까? 졸업을 하면서 취직-결혼-출산-이사,이직-부모님의 죽음-퇴직으로 이어지는 삶이 있습니다. 인생은 이렇듯 시간의 순서를 따라 저마다의 삶의 길을 걷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우리에게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성경은 우리에게는 두가지 길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는 “보이는 세상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믿음의 길 ”즉 오늘 제목인 오! 놀라운 길 입니다. 오늘 믿음으로만 볼 수 있는 놀라운 길을 발견하고/ 그 길 가운데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성경이 말하는 두가지 길은 다른 대조적인 말로도 많이 표현하고 있는데 길의 난이도에 따라서 “넓은 길과 좁은 길”, 걷는 사람의 정체성으로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 인식의 정도에 따라 “상식의 길과 역설의 길”, 사람의 수에 따라 “다수의 길과 소수의 길” 을 말합니다. 본문에서는 지속성에 따라 “겨의 길과 나무의 길”등을 말합니다.
성경 본문을 들어 가기 전에 길에 대한 이야기했으니, 저의 길도 조금 나누려고 합니다. 성도님들의 기도와 응원 덕분에 제가 벌써 신대원 2학년을 지나가고 있습니다.시간이 얼마나 빠른지요!.그런데 제가 지난 1년동안 참 많이 들은 말이 부르심과 소명에 대한 질문 입니다. 왜 이 늦은 나이에,왜 지금,자녀는 사업은 어떻게?정말 목사 하려고 그러냐? 이런 수 많은 질문을 들으면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저의 길에 대하여 다시 생각을 해보게 되더라고요! 저는 23세에 처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습니다.그리고 부끄럽게도 30년이 지난 53세에 비로소 거듭났다고 여러분에게 고백을 드렸습니다.흔히들 신대원을 가면 특별한 부르심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신대원을 가고 안가고는 저의 선택이고요! 예수님 안에서 거듭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름에 응답하는 길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앞으로 제가 무엇을 할지 계획이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저 주님이 이끄시는 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과 나누려는 것은 저의 소명과 부르심은 아니고요!
제가 오늘 여러분과 얘기하려는 것은 그 30년의 긴 시간동안 성경이 말하는 두가지 길을 (보이는 길과 믿음의 길) 저는 함께 걸을 수 있다고 착각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주일에 나가서 예배 드리면서 평일에는 사회에서 열심히 회사 다니고 사업하는 것,/ 집에서 아이들에게 하나님 사랑하라고 가르치면서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공부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믿는 한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해서 역량을 높이고,사람들과 관계를 넓게 하고, 공부해서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는 선교와 구제를 해야 하니 돈을 많이 벌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 물질 축복과 번영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았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 무엇이 문제일까요? 제가 이상한 길을 걸었나요? 비상식적인 길을 걸었나요? 악한 길을 걸었나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상식적이고, 분명하게 보이고, 다수의 사람들이 걸어가는 그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상식적이고 이상적이며 열심히 책임감 있고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주님이 “태형아 이제 되었다. 그만 하면 충분하지 않니? ”그런 주님의 위로의 말씀이 들려 오는 겁니다. 그때 허물어 졌습니다. 많이 걸어왔고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왔으며 사회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많은 것을 이뤘다고 생각한 모든 것이 주님의 위로 앞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었습니다. 오해하시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모든 부르심을 받은 성도가 세상일을 내려놓고 신대원에 가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두가지 길을 저울질 하면서, 제 마음 중심은 저의 욕망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도 저의 의를 세웠다는 것을 성령님이 깨닫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23살에 예수님을 처음 만난 이후 주님 앞으로 여전히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한/ 제 자신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제 안에 숨어 있는 자기 욕망과 자기사랑을 성령님이 보게 하셨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속이는 일에 능숙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경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시고 우리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제가 지금 신대원에 다녀도 믿음으로 걷지 않으면 보이는 길을 걷는 삶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그분 앞에 세상 만물이 벌거 벗은 듯이 드러납니다. 두가지 길을 같이 걷는 방법은 없습니다.성도들에게는 믿음의 길, 놀라운 길, 주님 가신 그 좁은 길 밖에는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시편 1편의 본문도 이 놀라운 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본문]
오늘 본문은 너무도 유명한 시편1편 말씀입니다. 아마도 여러분은 적어도 몇 번은 이 본문을 주제로 한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시편 1편은 150편의 시편 중 서시에 해당하는 지혜시 입니다. 지혜시는 보통 악인의 길과 의인의 길을 대조하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선포합니다. 대표적인 성경이 잠언입니다. 시편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시와 슬픔을 노래하는 탄원시 등이 있습니다. 혹자는 시편속에 성경이 축소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신약에서는 로마서를, 구약에서는 시편을 주의 깊게 읽어라! 권면하기도 합니다. 처음 초신자에게 시편을 읽기를 권하기도 하는데 이는 시편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과 탄식으로 기도하는 기도문이 모두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시편은 인간이 하나님과 관계 맺는 모든 과정이 담겨져 있습니다. 시편을 읽으면 삶의 길이 보입니다.
1절 말씀에 복 있는 사람은 하고 시작합니다. 히브리어로 “아쉬레 하이쉬” 라고 하는데 이 ‘아쉬레’는 복을 번역한 것인데 원어로는 행복하여라~! 로 해석합니다. 보통 구약의 복은 ‘바라크’를 많이 사용합니다. 이 바라크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복’입니다. 그러나 ‘아쉬레’는 하나님이 존재 자체에 주는 복을 말합니다. 즉, 특정한 삶의 한 방식과 관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인정하시고 확증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특정한 삶의 한 방식을 볼 때, 롬4:5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이것이 은혜입니다. 이어서 나오는 “악인들의 꾀/죄인들의 길 /오만한자들의 자리”는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과의 관계 밖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신이 필요한 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자신들의 꾀, 자신들의 길, 자신들의 자리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1절을 한번 읽어 볼까요?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여기서 보면, 복 있는 사람은 단수로 나오지만 악인들과 죄인들과 교만한 자들은 복수로 표현됩니다. 좁은 길을 걸아가는 사람은 소수이지만 넓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시대를 불문하고 다수입니다. 1절 말씀은 [점층법을 사용하여 은혜 받은 자는/ 악인과 죄인과 교만한자와는 다른 길을 걸어간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세 유형(악인,죄인,오만)을 통해 우리는 죄의 습성을 보게 됩니다. 죄는 처음에는 어쩌다 한번 따르는 것으로 시작했다가 점차 거기에 머무르게 되고 나중에는 안주하며 즐기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죄’는 과녁을 벗어난 것을 말합니다. 목적을 잃어버린 화살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삶은 방향이 중요합니다. 방향이 하나님을 향해 나아 가느냐?아니면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곳으로 나아가냐? 의 문제입니다. 인생에서 속도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방향이 틀릴수록 더욱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달려봐도 찾던 길이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때 멈춰 서서 돌아볼 수 있다면 그것이 은혜입니다. 방향이 틀렸는데 끝없이 더 빨리 달려가다가 종국에는 인생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인생의 끝에 허무하지 않는 인생이 없습니다.
2절,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 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여기서 ‘주야’라는 표현은 시간적으로는 ‘항상’을 말하며, 질적으로는 조건을 초월하여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묵상한다는 것을 무엇인가요? 여기서 말하는 ‘묵상하다’는 히브리어 ‘하가’인데 생각하다, 작은 소리로 읊조리다 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통독, 또는 큐티를 하고나서 책을 덮는 순간부터 깔끔하게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틈만 나면 생각하고 되 뇌이는 것을 히브리어로 ‘하가’ 묵상이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성도님들이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비둘기가 모이를 쪼아 먹듯이 계속 구구 하는 것, 사자가 먹이를 움켜지고 으르렁 거리는 것, 소가 여물을 되새김질 하는 것이 묵상이라는 말. 이제 1-2절 말씀을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복주시기로 작정한 은혜 받은 사람은/ 자신들의 필요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사람은 어떤 길을 걸어 가게 되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3절 말씀입니다.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 3절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여기서 ‘심기운’은 히브리어 원문으로는 ‘샤틀’입니다. 이는 ‘샤탈’ 동사의 수동분사로 쓰였는데요. 누군가의 의도에 의하여 심겨졌다는 뜻입니다. 1절의 ‘아쉬레’와 3절의 ‘샤틀’ 은 모두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통해 /관계 맺어진/ 은혜 받은자를 말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구원을 얻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 재림하실 때까지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우리를 새롭게 지어 가시는 것도 성령 하나님 이십니다. 그것이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열매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말합니다! 갈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런데 이 열매는 자신을 위한 것입니까?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입니까? 보시면 모든 열매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시냇가에 심긴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해 열매 맺는 것입니다. 이것이 1절의 자신들을 위하여 꾀를 내고 길을 찾고 자리를 차지하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과의 차이점인 것이지요!
오늘날 교회안에서 가장 부족한 것은 세상 사람들과의 교류관계 입니다.. 신앙 생활이 오래되면 될수록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모임이 줄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보내는 시간은 늘어납니다. 저도 신대원을 가고 전도사가 되니 그나마 있던 세상 친구들과 교류가 끓어져 버렸습니다. 일단 시간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역사는 세상 가운데 항상 있었습니다. 교회가 복음을 전하려면 세상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지 않는 곳에 성령의 열매는 맺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열매는 자신의 영성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관계 맺는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관계도 중요하고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중요하다고 성도들이 교회 공동체 안에만 남아 있다면 우리를 통한 하나님 나라는 이루어 지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인정받아 장로, 권사, 순장이 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세상속에서 세상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는/ 사랑이 많은 성도 되기를 더욱 힘쓰시기를 권면 드립니다. 이와 같이 본문에서 살펴본 놀라운 길을 걷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놀라운 길을 걷는 사람의 첫번째 특징은,하나님의 섭리 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본문 1절의 복에 해당하는 ‘아쉬레’와 3절 ‘심기운’ 에 해당하는 ‘샤틀’ 은 모두 하나님의 절대 주권안에 있는 은혜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자신의 노력, 의지, 계획, 꾀를 따라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는 대비되는 사람입니다.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 를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를 믿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모든 일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사람은 세상 일이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심정 가운데 이러한 고백이 샘솟는 사람이지요!. 롬8:31-33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놀라운 길을 걷는 사람의 두번째 특징은, 삶의 열매로 타인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레위기는 제사와 삶의 일치를 강조한 책입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예배와 일상의 삶이 분리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중 핵심적인 말씀인 19장 18절을 보면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인용하셔서 신약에 말씀 하시지요! 마22:37-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인데 우리가 하나님 사랑한다면 우리 이웃을 우리 몸같이 사랑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사랑으로 이어지는 관계를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가능 합니까? 우리는 못합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을 바라볼 때 ,우리 안에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이러한 삶을 살아가도록 새롭게 창조해 가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배의 자리에 있어도 우리가 만약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간다면 하나님 나라는 우리를 통해 이루어 지지 않습니다. 주변에 이웃을 위하여 우리의 물질과 시간을 온전히 내어 드리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한걸음도 믿음으로 내딛지 못한 인생일 수 있습니다. 히13:16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
[결론] 삶은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자기 뜻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악인의 길과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하나님과의 관계로 살아가는 놀라운 길이 놓여 있습니다. 그 길은 비록 사방에 우겨쌈을 당하여도 답답하지 않은 길입니다. 겉모습은 후패하여도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 지는 길입니다. 가난이 밥상이요 친구여도 궁핍하지 않는 길입니다. 눈에는 어렵고 길이 없어 보여도 피할 길을 내시고 더 좋은 곳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길입니다.우리 인생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면 됩니다.6절 말씀에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이 놀라운 길을 함께 걷지 않으시겠습니까? 눈에 보이고 쉬우면서 상식적인 길이 아니라 좁지만 하나님이 같이 걷는 길, 겨와 같이 바람에 흩어지는 길이 아니라 나무같이 든든하고 안전한 길,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가신 그 길을 걸으시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우리 함께 찬양하고 기도로 나아가겠습니다.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가 시절을 쫒아 열매를 맺으며 그 앞사귀가 마르지 않는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봄 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생명을 거는 한사람을 주님이 지금도 찾으십니다. 말씀 앞에서~ 경외함으로~ 주께 홀로 섭니다.
찬양~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있습니다. 일하지 않아도, 경건하지 않음에도 그런 우리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그 믿음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우리 대적 마귀는 우리가 이 은혜를 누리지 못하도록 도적질 하고 속입니다. 우리는 자녀입니다. 하나님 앞에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드립시다.주님! 우리가 복 있는 사람됨을 감사합니다. ‘아쉬레’ 행복한 자여! 우리를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지금까지 믿음주시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심을 감사 드립니다. 다같이 우리를 놀라운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경배의 기도로 나아가겠습니다. 주님 이름 한번 부르고 통성으로 간절함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의 주님~~
기도~
복 있는 사람은, 은혜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살아 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어떠한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으신지요? 관계의 어려움속에 고통 당하고 계십니까? 물질의 부족과 건강의 어려움속에 계십니까? 자녀의 믿음을 두고 기도하고 계신가요? 어떠한 형편이든지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 앞에 쏟아 놓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인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이 여러분의 기도를 응답하시고 회복의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우리는 사랑의 열매로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먼저 우리 삶에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도록 그리고 그 열매를 우리처럼 어려운 주변의 이웃을 섬길 수 있도록/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주님의 이름을 한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찬양~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가리라~~ 좁은 문! 좁은 길! 나의 십자가 지고!
마무리 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