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롬 6: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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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롬 6:12-23)
<서론>
새가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것은 당신이 어쩔 수 없지만, 새가 머리위에 집을 짓는 것은 막아야한다’는 외국의 속담이 있습니다.
제목,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것은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죄에 대하여 장사지낸(세례) 죄와 상관없는 존재가 되어, 죄의 종은 아니지만, 여전히 삶의 실제에서는 계속 죄와 대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가 나를 지배(왕 노릇)하지 못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것이 오늘 강론의 핵심입니다.
<본론>
1.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12)
먼저, 우리 성도는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라”(12)
12절은 오늘 강론을 주도하는 핵심내용입니다. 몇몇 단어들의 의미를 잘 음미하면 전체의 내용을 잘 이해 할 수 있습니다.
지배하다”의 원어적 뜻은 ‘왕 노릇하다, 왕으로서 다스리다’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의 왕으로 삼은 것; 가치 있다고 여기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지배받습니다.
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돈을 위해 가족조차 죽이기도 합니다. 그에게 왕은 돈입니다.
죽을 몸”이라는 표현에 유의하십시오. 비록 성도가 ‘의롭다 함(稱義)’을 받아, ‘법적으로는 죄 용서함’을 받았지만, 아담의 범죄 이후로 우리 몸은 ‘죽을 운명’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칭의(稱義)는 ‘법적으로 의롭다 여긴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영접하였기에, 죄인이지만 죄인으로 여기지 않고, 전혀 의롭지 않지만 의롭게 여겨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몸”의 문제」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우리 몸이 부활하여 완전히 해결됩니다.
이렇게 성도는 구원 받았지만, 육체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따라오는 문제가 “몸의 사욕”입니다. ‘사욕’의 원어적 뜻은 ‘욕심들’ ‘탐욕들’입니다.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육체적 한계 때문에 오는, 타락한 본성의 욕심들에게 우리 몸이 순종하지 않도록 하라; 지배받는 것을 막으라’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여전히 ‘죄에 노출되어, 때때로 실패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원칙’을 붙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원칙은, 죄가 나의 왕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왕’임을 삶으로 고백하는, 삶의 신앙고백입니다.
이 삶의 신앙 고백이 있는 성도에게 「하나님이 죄를 이길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 삶의 신앙 고백이 있는 「모든 성도는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가 왕 노릇 하지 멋하게 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13, 14上).
그렇다면, 죄가 나의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는 적극적인 방법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나 자신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image 요강 01> 이 물건이 무엇입니까? 요강입니다. 이 요강을 처음 본 외국인이 ‘이것은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하고 집으로 가져 왔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를 알지 못하던 외국인이 좋은 생각을 해 냈습니다.
<image 요강 02> 요강이 요강인 것은 거기에 소변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라면을 끓이니 냄비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죄가 나의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려면,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13)
지체”는 ‘몸의 각 부분들’, “무기”는 ‘수단’ ‘도구’, “내준다”는 하나님께 제사할 때 하듯이 ‘바친다’는 뜻입니다.
어색하고 비위 상할 수 있는 비유이지만 요강처럼, 우리의 몸은 의(義)를 행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될 수도 있고, 불의(不義)를 행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몸을 ‘불의의 도구로 죄에게 바치지 말고, 의의 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됩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14上)
주장하다”는 ‘주(主)로서 다스리다’는 의미로, ‘왕 노릇하다’와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의 몸은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마귀를 섬기는 도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몸과 우리 삶을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로, ‘의의 도구’로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야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몸을 ‘의의 무기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너무도 중요한 결단이자 실천입니다.
따라서 결단하여 작심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교회를 섬기며, 선한 일 하기에 힘쓰고, 이웃을 돕고 사랑하는 일우리 손과 발을 사용; 헌신해야 합니다.
이렇게 ‘의의 무기’로 나를하나님께 나를 드림’으로, 내 마음속의 결단구체적인 삶으로 끌어내어서, 우리가 성도인 것나타내야 합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전인격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림’으로 ‘죄가 우리의 왕 노릇하지 못하게’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죄가 왕 노릇하면 그 삯은 사망이다(14下–23).
마지막으로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해야 할 이유는, 죄가 왕 노릇하면 그 삯(결과)으로 사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1–11절에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었기에 죄와 상관없는 법적 지위에 있다고 말한 바울은, 이제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의 법적 지위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14下)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17, 18)
우리가 전에는 율법아래 있는 죄의 종이었지만, 이제는 의에게 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의의 종’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15)
1절 말씀을 상기시킵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기 위해 계속 죄 가운데 살겠느냐?
우리가 율법이 아닌,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짓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15)입니다.
그 이유,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16)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빙자해서 죄에 머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한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의의 종’이 된 너를죄에 헌신하게 하는 것’ 잘못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내준다”는 ‘계속 지속적 일상적으로 제물로 드린다’는 현재시제입니다.
그래서, ‘일상에서 죄에게 헌신하면, 죄에 순종하는 죄의 종이 된다’ 또는 ‘늘 의에게 자신을 드리는 삶을 살면, 의에 순종하는 의의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가지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너희가” 「죄의 종」이었을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21)
“이제는 너희가...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22)
결국 죄의 종으로 살면 그 결과는 ‘사망’이며, 의의 종으로 살면 그 결과는 ‘의’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23)
의에게 종이 되었다’는 것은 ‘의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존재가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는 의의 지배를 받으며 의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부족함연약함이 있고, 때때로 잘못할 때도 있지만, 우리의 신분은 ‘의의 종’으로 변화되었음을 기억해야합니다.
그리고 그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제는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마지막 유월절 식사 때, 주님께서, 허리에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 시작하셨습니다.
베드로: ‘주님 안 됩니다! 제 발은 절대로 씻으실 수 없습니다!
예수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네가 나와 상관없다
베드로: ‘그러면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세요!
예수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요 13:10)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이미 목욕하여 온 몸이 깨끗하지만 발은 씻어야 합니다. 주님 만나는 날까지 성화(聖化)를 이루어 가야 합니다.
이렇게 살 때, 우리가 부족하여 넘어지고 잘못할 때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며, 또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십니다.
양반집 자제면 양반집 자제답게 행동해야 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은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롬6:23)이기 때문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주님의 경고등」을 언제나 켜두고,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는 삶’을 위해 몸부림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본문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산다는 것의 기쁨을 말함과 동시에, 큰 부담으로 다가 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았고, 오직 예수로 산다’고 안도하고 있었는데, ‘죄가 왕 노릇 못하게 노력하라!’ ‘하나님의 자녀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사망이야!’말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갑작스럽게 태세 전환을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여전히 우리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다”(14中, 15中)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은사)는 영생”이라고 말합니다.
행위와 노력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는 자가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이길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인 폴리캅이 복음을 전하다가 끌려갔습니다. 재판장은 폴리캅에게 예수를 욕하며 모른다고 하면 석방하겠다고 회유 했습니다.
폴리캅은 그 소리를 듣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고는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팔십 평생을 살도록 주님이 한 번도 나를 섭섭하게 하신 적이 없는데, 이제 와서 내가 살겠다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단 말인가? 그럴 수 없오!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어!
폴리갑이 무슨 뱃장으로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오직 은혜의 능력 아래’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아래 있는 성도는 강합니다. 죄가 덤벼도 예수이름으로 이길 수 있습니다.
은혜아래 있는 성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성령께서 죄를 이길 힘을 주십니다.
은혜가 죄 보다 훨씬 강합니다. 은혜가 약한 나를 강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은혜아래, ‘죄가 왕 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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