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5. 31 금요철야 설교(마 19: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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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찬양]
[찬양 후 기도]
[말씀봉독]
마태복음 19:16–26(NKRV)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20 그 청년이 이르되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온대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오늘은 “인생의 방향”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성도님들 혹시 몇년 신앙생활 하셨나요?
30년? 40년? 60년 되시는 분도 계시나요??
저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제가 지금 37살이니까 신앙생활한지 36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태어나고 저는 성결교단 출신이라 태어나서 유아세례를 받았구요 그리고 부모님께서 수원에서 구하신 단칸방 집이 교회 앞이었습니다.
덕분에 어렸을 때 교회와 더욱 가깝게 지내고 교회에 있는 선교원을 나왔습니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인 선교원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저는 교회 근처에 살면서 교회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해보니까 제가 제일 많이 했고 제일 오랫동안 한게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니 그게 바로 “신앙생활”이었습니다.
다른말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 삶이 제일 많이하고 제일 오랫동안 한 것이더라구요.
태어나서 지금까지 쉬지않고 계속하고 있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삶이었습니다.
여러분 ‘고인물’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물이 흐르지 않고 한곳에 고여 있는 고인물이라고 부르죠.
그런데 요즘에 젊은이들은 이 ‘고인물’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그 뜻을 한가지를 꾸준히 오랫동안 많이 하고 잘하는 사람들에게 ‘고인물’이라는 뜻을씁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교회다니는 기독교인으로서 ‘고인물’이죠.
아주 어렸을때부터 교회에서 놀고 먹고 해서 교회안에 있는 웬만한 일들을 다 경험하고 자랐으니까요. 참 오래 했습니다.
거기에 복음전하고 사역자가 되고 싶어서 신학교까지 갔으니 더하죠.
성도님들도 오래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다들 교회에 고인물들 이시죠?
옆사람에게 이렇게 질문해 볼까요? 고인물이세요?
요즘 젊은이들은 고인물이라는 것에 더 나아가서 고인물에 고인물이 되면 ‘썩은물’이라고 합니다.
고인물이 오랫동안 고여있으면 썩으니까요.
그정도로 한길만 팠다고 인정하는말입니다. 부정적인 단어처럼 들리고 그렇게 쓰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한길만 열심히 판사람들에 대한 단어로 쓰이기도 합니다.
한 교회에 정착해서 죽을때까지 다니시는 분들은 고인물을 넘어 썩은물까지도 되겠죠.
우리 그리스도인은 한번 그리스도인이 되면 죽을때까지 그리스도인으로 생을 마감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일 겁니다.
저는 그래서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하시고 교회와 동고동락하신 분들을 보면 참 존경스럽고 멋지고 그런 생각이 듭니다.
친구의 구원과 삶의 모습 이야기.
오늘 말씀은요 우리가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고인물이듯이 유대사회에서 구약의 율법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고인물인 부자 청년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부자청년이요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온거 같아요. 이 부자 청년이 예수님한테 질문을 하거든요. 질문한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나온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 청년의 질문이 굉장히 심오하고 어려운 질문입니다.
마태복음 19:16 (NKRV)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주님 어떻게 해야 영생을 받나요?
이것을 질문한 것이죠. 그런데 이 청년은 전제조건을 이미 정해놓고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자기가 생각했을 때 이러한 방법으로 해야 영생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본인이 이 바운더리를 정해놓은 것이죠. 유대교 고인물 답게요.
그 바운더리는 ‘선한 일’ 입니다.
왜 ‘선한 일’로 정하고 질문했냐면 이 청년이 유대교 사회에서 오랫동안 배우고 지켜온 것은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아가야하는 수많은 율법들을 배우고 지켜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확실하게 영생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기에 예수님께 나아와서 물어보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영생이라고 말하는 헬라의 원어는 생명이라는 단어로 쓰였습니다. 생명을 얻는다는 얘기는 결국엔 죽은 다음의 사후세계를 말하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 어떤 선한일, 착한일 그러한 일들 해야 하냐고 묻는 것입니다.
이 청년에게는 유대인의 사고가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며 유대인으로 태어나서 그렇게 교육받고 살아왔기 때문이죠.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 것입니다. 이 청년의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꽤 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냥 단지 이 땅에서의 삶에 허우덕 거리는 게 아니었으니까요. 어쩌면 부자였기 때문에 삶이 넉넉하니까 죽은 후의 삶을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의 사고 방식대로 대답해주십니다.
마태복음 19:17–19 (NKRV)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18 이르되 어느 계명이오니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19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니라
“계명들을 지켜라”
예수님께서는 이 부자 청년에게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18절에 보면 그 계명들은 모세에게 준 십계명입니다.
이 부자청년은 예수님에게 어떤 계명들을 지키냐고 물었는데
이 당시에는 현재 우리가 계명이라고 할 때 십계명을 얘기하는 것과 같지 않았고 구약에 나온 수많은 율법들을 말했습니다. 랍비의 계산에 따르면 모세오경에는 613개의 계명이 있다고 합니다.
이 부자청년은 예수님을 특별한 선생님으로 여겼고 그 율법들 중에서 무엇이 중요하냐고 물은 것입니다.
이 부자 청년이 고인물 답게 이 계명들을 다 지키며 살았다고 예수님께 대답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계명들을 보면 우리도 기독교인으로서 착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지켜볼만한 법들입니다.
살인하지 말라. 살인한적 없죠? 있으시면 여기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있을 수도 있지만 이것도 예수님 제대로 믿고 있는 성도들은 쉽지 않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도둑질도 마찬가지죠.
거짓 증언하지 말라. 거짓으로 증언하려면 무언가에 연루되어있어야 하는데 이것도 평범하진 않습니다.
제 부모를 공경하라.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 우리가 노력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도 나름 지키며 잘 살아오는 것들을 유대인이었던 부자청년은 더 잘, 철저히 지키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여러분 부자 청년은 이 또한 지키며 살았을 것입니다. 왜냐면 유대인들은 십계명에 나온 법 뿐만 아니라 많은 법을 지키고 살았어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챙기고 도와주는 삶을 무조건 살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야 했거든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계명은 레위기에 있습니다.
레위기 19:18 (NKRV)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인 사랑하라는 이 계명은 이미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지키고 사는 유대인들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봐야할 것 하나는 “계명”에 대한 부분입니다.
많은 계명이 있고 그 중에서도 십계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십계명 중에서도 ‘내면’적인 계명이 있고 ‘행함’이 강조되어지는 계명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께서 이 청년에게 지키라고 하신 계명들은 ‘행동’이 강조되어지는 계명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는데 구원은 행함으로 받지 않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폐하지 않으셨음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오히려 오늘 말씀을 보면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이 청년에게 먼저 하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는 것을 여러분 기억하셔야 합니다.
행함으로 구원을 얻냐 믿음으로 구원을 얻냐 이 얘기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계명들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야하는게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하게 여겨야 하고 해야 하는 것을 아주 쉽게 합리화하고 지키지 않는 모습을 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마태복음 19:21 (NKRV)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이 부자청년이 그 계명들을 다 지켰다는 대답에 예수님께서는 니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라고 말씀하시면서 이 청년이 완전해 지길 원하니까 그렇다면 이렇게 해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렇게 해”는 “너가 가진 재물들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온전함”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텔레이오스”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도덕적으로 결점이 없다는 의미의 완전함이나 완전한 성숙을 말하는 정도는 아닙니다. 성숙하다 이러한 정도 이죠. 완벽한 상태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청년에게 이정도의 온전함을 얘기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온전함은 이 청년이 생각하는 바와는 다른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선에 대해서도 어느정도의 선이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그러한 선을 행하고 베푸는 것을 해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온전함을 이루려면 모든 것을 나누어주어야 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예수님은 어떠한 제한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일”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뿐이고 예수님께서 주목하신 것은 그러한 것을 하고 “나를 따르라”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봐야하는 것은 영생을 얻는 길에는 어떠한 선한 일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9:22–26 (NKRV)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5 제자들이 듣고 몹시 놀라 이르되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그래서 이 청년은 재물이 많아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청년의 모습을 보시고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 어렵다”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에는 모든 재산을 다 바쳐야 할까요?
성경에 나온 하나님께 재물을 받쳤던 사람들
누가복음 19:1–10 (NKRV)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삭개오가 나옵니다.
이 삭개오는 이 부자 청년과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이 부자청년처럼 재물이 많은 자였습니다. 왜냐하면 삭개오는 세리라는 세금을 걷어서 로마에 바치는 자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삭개오는 세리들의 장, 세리장이였습니다. 이 당시 세리는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이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자신의 재산의 절반을 가난하고 어려운 자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자신이 속여서 받은 세금이 있다면 4배나 더 갚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것은요 예수님께서 시키신 일이 아니었습니다. 삭개 본인이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그것도 아주 신나고 들떠서요
누가복음 19:8 (NKRV)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예수님께 스스로 이러한 얘기를 한 것입니다.
이 이후 성경에는 삭개오에 대한 기록이 없지만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에게 이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은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마음과 생각이 바뀌었기에 이러한 고백을 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로 살아갔을 것입니다.
성경에 이와 비슷한 상황을 한개 더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5:1–2 (NKRV)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사도행전 5 5장에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나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들의 집을 팔아서 주님께 드린다고 하고
그 판 재산이 아까웠는지 제자들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재산의 일부 바치고도 제자들과 하나님앞에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벌을 받았죠.
하나님을 속이려고 한 죄.
그래서 그들은 죽었습니다.
사도행전 5:4–5 (NKRV)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그의 아내 삽비라는 남편 아나니아가 이러한 벌을 받은지 모르고 그대로 거짓말을 했다가 똑같이 벌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부자 청년과 삭개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 세사람 모두 큰 재산을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부자 청년은 근심하며 돌아갔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죽었고
삭개오만 구원 받았습니다.
여러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큰 재물이나 헌금 이러한 것들을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요 성경에서 말한대로 우리의 행위나 어떠한 일들을 통해서 그것에 대한 결과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값없는 그 은혜.
십자가의 그 사랑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고 그분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까지만 생각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는다는 것은요 단번에 끝나는 의식같은게 아닙니다.
빌립보서 2:12 (NKRV)
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사도바울은요 빌립보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라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서는요 죽은다음에는 분명하게 심판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9:27 (NKRV)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여러분 우리는 죽은 후에 심판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구원에 대해서 구원을 이루는 삶에 대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은혜를 진중하게 생각하고 우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혼동하면 안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인 이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우리의 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의이고 값없이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짐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대로 살아가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두번째를 잊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첫번째만 굉장히 중요하고 두번째는 우리는 연약하니까…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가기 어려우니까… 이러면서 자기 합리화 해버립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랬습니다.
나를 믿는 자들인지. 안믿는 자들인지.
여러분 우리의 인생의 삶을 구원해주는게 장난입니까?
구원이 그냥 어디가서 쇼핑할 수 있는 정도의 가벼운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걸 아는데 우리는 그렇게 여기면서 아주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구원의 은혜에 진중한 고민과 삶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함께 나눈 부자 청년의 이야기에서 우리가 부자 청년의 자세와 태도를 배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때문에 주님께서 이 부자청년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신 것이라고 생각이듭니다.
그것이 무엇이냐면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는 구원에 대한 진중하고 깊이있는 삶의 태도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더욱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얼마나 귀중하고 감사하고 그것이 중요한지 깨닫게 되어진다면 여러분 우리가 타협하고 우리의 나약함과 연약함을 생각하면서 타협하고 쉽게 신앙생활할 수 있을까요?
더욱이 주님께서 우리삶의 열매와 모습들을 보고선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고 하신 그 말씀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된다면 이렇게 생활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더욱 진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한순자 사모님 인생의 방향과 속도 이야기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책 - 이만열(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우리의 과거를 살펴보면 기계적인 속도보다 인성, 정신세계를 중시하는 사례를 많이 찾을 수 있죠. 분명히 한국 전통문화는 방향, 가치, 신념을 중시했어요. 방향은 어떤 의미에서 도덕적 윤리적인 가치를 중시 하는 듯도 합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항상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만 강조합니다. 시험 점수, 월급, 집값 등등.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바로 도덕적인 가치, 미학적인 가치에 우리는 소홀한 경우가 많아요. 박물관에 가는 사람들은 많지만 대부분 그냥 gift shop에만 가서 커피를 마시고 옷을 사요. 속도는 빠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방향은 없지요.”
우리 한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빠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향이 맞지 않다면 문제가 됩니다.
느려도 됩니다. 그러나 방향은 맞아야 합니다.
시율이 등산 사진
등산은요 천천히 가던 빠르게 가던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정상을 향해 가는데 방향이 잘못되면 정상에 못갑니다. 올라가다 보면 수많은 길이 나오는데 모두가 다 정상을 향해 가는 길이 아닙니다.
제가 아들을 데리고 올라가는데 느리지만 천천히 묵묵히 조심히 가니까 정상에 도달하더라구요.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요. 우리의 믿음 생활이요. 우리의 하나님을 믿는 삶이요. 이래야 해요.
방향이 맞아야 합니다. 천천히 가던 빠르게 가던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돌아가던 늦게 가던 그 방향이 중요해요. 그렇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거에요
오늘 말씀에 이 부자 청년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이러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구원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고 살아가십시오.
어느 교회의 집사님의 고민
마태복음 19:16 (NKRV)
16 어떤 사람이 주께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혼동하지 않아야 하는 것, 구원.
하지만 여러분 여기서 혼동하면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이 행위가 따라오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 이것에 햇갈리시면 안됩니다.
여러분 구원은 행위냐 믿음이냐 이런 우리의 인간적인 것들로 받아들이시면 안됩니다.
구원은요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게 값없이 주신 그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임해서 자신의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자들에게는 열매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0–21 (NKRV)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 말씀은 거짓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거짓선지자들을 알수 있다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여기에 있는 열매에 대해서 우리도 깊이 생각해 봐야합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서 변화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그 안에 내적인 변화가 일어나서 외적인 변화까지 일어난 사람들이 보이는 그 모든 것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보이는 열매일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확실히 알고 믿고 살아가신다면 그 은혜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그렇지 못하고 있다면 두려워하십시오.
열매로 안다고 하시는 그 말씀을 기억하고 살아가십시오.
2. 근심하지 마십시오.
근심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것을 막습니다.
마태복음 19:22 (NKRV)
22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19:26 (NKRV)
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3. 분명하게 삶의 방향을 맞추고 살아가야 합니다.
마태복음 19:21 (NKRV)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부자 청년의 이야기를 뒤집어 보세요.
그리고 우리의 삶에 적용해보세요.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가는 자들이 되어야합니다.
그래서요 제자들이 자신들이 예수님을 따라온 자들이기에 묻습니다.
마태복음 19:27–29 (NKRV)
2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사온대 그런즉 우리가 무엇을 얻으리이까
2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29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4. 그래서 방향을 맞추면 우리 삶의 주인을 바꿔야합니다.
주인이 바뀌면 기준이 바뀌고 기준이 바뀌면 우리의 삶의 태도가 바뀌고 우선순위가 바뀝니다.
마태복음 19:24 (NKRV)
24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여러분 여기에 보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야 하는게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합니다.
한번 생각해봅시다 말이 됩니까?
과학적으로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이건 뭐 과학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말이 안됩니다.
주님께서는 절대로 불가능한 일을 말씀하신겁니다.
무엇에서 불가능합니까? 사람이 하는 일에서요.
‘선한 일’ 이것에서요.
구원은 주님께 달린 일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하는 것에서 주님께서 너희에게 영생이 있을 것이라고 제자들에게 말하고 그 상급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죠.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진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바치고 버리고 주를 따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부자청년같이 요구하시는 경우가 있고 요구하시지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나섰던 삭개오 같은 사람이 있고 주변 성도들이 하는 것을 보고 하는 아나니아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 인생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인생의 주인이 바뀌니까요.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시고 그 마음 주시니 하는 거구요. 주님께 순종하는 맘으로 그것을 하는거에요. 주님께서 믿음없는 자들에게 요구하시지 않으세요. 모든 사람에게 그러지 않으신다구요. 제자들과 같은 모습을 요구하시는 분들이 있구요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그렇게 성도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요구하시는 모습이 있어요.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본인들이 주변 사람들을 보고 체면차리려고 하다가 하나님 무서운줄 모르고 그렇게 된것이구요.
여러분 하나님이 진짜 있다고 믿으십니까?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진짜 있다고 믿고 있으시다면 어떻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음대로 하나님을 믿으며 삽니까?
그렇지 않아요? 하나님 무서운 줄 모르고 어떻게 그렇게 사냐 이말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요 나의 믿음이 잘못되었나?
나는 구원 받을 수 없는 사람인가?
이게 아니에요.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믿고 그 은혜를 깨닳아 알게 된 사실 자체가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어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사랑을 깨닫고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면 여러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혜가 있다는 거에요.
그런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요.
우리의 믿음에 대해서 나의 삶의 주인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는 거에요.
여러분 하나님 살아 있다고 믿는데 어떻게 하나님 두려워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 살아 계시다고 믿고 나를 구원해 주셨다고 믿는데 왜 근심하며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십니까?
각자에게 주신 은혜와 사명과 말씀들이 있는데 하나님 살아 있다고 믿으면서 왜 순종하지 못하냐는거에요
여러분 그래서 오늘 부자청년의 이 모습을 잘 기억하셔야해요.
인생의 주인을 바꾸지 못해서 근심하며 떠나가는 이 모습. 이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면 안됩니다.
여러분 ‘선한 일’은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은요. 우리 안에 주인이 무엇이냐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그 ‘선한 일’이 부자청년처럼 내 노력으로 영생을 얻겠다는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일처럼 될 수 있어요. 불가능한 거요.
여러분 주님을 믿고 자신의 삶의 주인이 바뀌면요 삭개오처럼 되는거에요.
하나님을 만난 구원의 기쁨과 감격으로 주체할 수 없게요.
삭개오가 그 이후에 어떻게 했는지 몰라요.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지 않아요.
그런데 인생의 주인이 바뀐 사람들의 결과는 다 저랬어요.
하나님께서 어떤 순종을 원하시는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고 아무도 알 수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순종하는 모습들을 보면 하나님께서 저 사람에게 저런것들을 원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열매로 보고 아는 거에요.
여러분 이게 주인이 바뀐 삶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어떤 순종을 원하실지 또는 이러한 것들을 말하실지 ‘근심’하지 말라는거에요
여러분 주인이 바뀐 자의 삶에는요 그 주인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주인과 기쁨을 누리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그 주인이 대단하면 그만큼 누리기도 하는 거에요. 주인이 허락한 만큼요.
하지만 이 종에게는 이게 없으면 안되요. 그 주인을 두려워 하는 것.
여러분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우리가 정확하게 알면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서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으로 그분께서 말씀하신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그게 주인이 바뀐 자의 삶이에요.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우리는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르치고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컵안에 커피
여러분 컵안에 커피가 들어있어야 향기가 나는 것처럼
여러분의 삶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나는거에요
그래야 그리스도인처럼 사는거에요
그래야 좋은 의미에서 고인물 그리스도인이 되는 거에요.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시죠?
그분이 나를 살리기 위해 이땅에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다시 오신다는 것을 믿으시죠?
여러분 하나님을 믿으신다면 근심하지 마시고 여러분 삶의 주인으로 받아들이세요.
열매로서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임을 보이세요.
하나님을 두려워할줄 아는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말씀 후 찬양]
찬송가 150장 갈보리 산 위에
하나님 앞에 온전히 서지 못했음을 용서해 주옵소서
이제는 주님의 자녀로 내 삶의 주님을 주인으로 하나님 두려워할줄 아는 자가 되게하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안에 더욱 넘쳐 흘러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자유케 하고 그 사랑으로 우리가 온전히 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안에 그 사랑이 있게 하옵소서 더 우리가 주님을 바라고 바라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를 변화시켜 주옵소서.
내 삶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삶이 되게 하시고 우리 가정과 우리 교회가 십자가의 사랑을 더욱 흘러보내는 교회가 되게하시고 우리 교회를 위해서 담임 목사님을 위해서 교회 많은 성도들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