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02 고등부 예배; 막10:35-45, 승리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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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인사

본문:마가복음10장35-45절

Mark 10:35–45 (NKRV)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열 제자가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 대하여 화를 내거늘
예수께서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설교

서론

1. 본문 배경: 내가 좌하고 너가 우하자!

오늘 본문은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께 당신께서 영광을 받으실 때 우리를 좌편과 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말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이말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재로부터 독립시키시고 난 뒤 나라의 통치자가 되는 그 때 자신들을 국무총리와 같은 권력의 2인자 자리를 달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그분의 놀라운 일을 직접 본 것이기도 하지만 9장에서 그들을 데리고 한 산에 올라가서 당신의 변화된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그 모습은 신이신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이었어요. 부분적인 모습이었겠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그를 향해 하늘 아버지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라’는 음성에 경이로움을 금치못했고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도 예수님께 잘 보이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누가복음에 실린 같은 기사의 내용을 보면 그들이 주님을 위한 초막을 짓자고 말합니다. 이 초막은 누군가 직접 살 집을 말하는게 아니라 주님을 기념할 장소를 짓자는 것이에요.
예수님은 그들의 의도를 단번에 아시고는, 경고하시며 너희들이 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세요. 예수님은 이 땅에서 존귀히 여김을 원치 않으셨어요.

본론

2. 왕이신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겸손과 섬김

예수님은 오늘 본문 45절의 말씀처럼 이 땅을 섬기고자 오셨어요.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내어주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기위해서 오셨지요.
예수님은 놀라우신 전능한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 그분은 당신의 능력을 스스로를 높이는데 사용하지 않으셨어요. 주님은 이땅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대신 속죄하시기 위해서 병든 자들을 치유해주시고, 귀신 들린자들을 고쳐주시고, 주린 자들을 배불리게 해주셨어요.
주님께서는 주로 사회적으로 낮은 자들, 가난한 자들, 천한 자들, 외면받는 자들과 함까 하셨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이 땅을 섬기기 위해 오셨습니다. 높아지고자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더 낮은 곳으로 내려가셔서 일하셨어요.
오병이어의 기적때에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고자 했지만 주님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채시고 서둘러 자리를 피해 바다 건너편으로 떠나셨습니다.
이제 주님께서 이 땅에서의 일을 마무리 짓고자 예루살렘에 들어가고자 하셨는데요. 그때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호산나 호산나 왕으로 오신 이여’ 라고 함성을 질러댔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의 칭송에도 왕과 같이 품위있는 모습이 아닌 초라한 당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어요.
그리고 주님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형벌인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며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할 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돌아가시기 직전 십자가에서 내려와보라는 사람들의 조롱에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그 벌을 잠잠히 마치 죽음을 맞이하는 어린양처럼 잠잠히 받으셨습니다.
이렇듯 그분의 인생은 그 자체가 겸손과 순종의 삶입니다. 진정한 신으로서 온 우주를 지으신 왕이신 주님이 하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셔서 구약시대때부터 예언된 말씀을 따라 말 밥통에서 천하게 나시고,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는 치욕스런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창세기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의 죄악’때문입니다. 그 죄를 용서하시고자 하늘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겸손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창세기 3장의 약속처럼 원수의 머리를 밟아 깨뜨리셨습니다. 죄의 결과인 죽음을 죽이시는 죽음으로 완전히 죄의 권세를 완전히 이기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주님은 부활 승천하시며 우리에게 하셨던 약속과 같이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는 그 약속을 성령님을 통해 지금 이 시간에도 지키고 계시며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보호하십니다.

적용

3. 모든 죄를 이기신 우리 주님께 피하자!

이제 우리는 죄에서 승리하신 왕이신 예수님을 믿어서 하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서, 존귀한 왕의 자녀로서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은 우리를 유혹하고 넘어뜨리려는 죄로부터 피해서 승리하신 예수님께 달려가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음의 자리에서 다시 살아나시므로 이 땅의 모든 죄악은 힘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그저 죄의 찌꺼기, 흔적, 시체와 같은 것인데 좀비처럼 돌아다니며 우리를 괴롭게 합니다. 우리의 연약한 몸은 그것에도 영향을 받아 쉽게 넘어집니다.
우리가 존경하는 바울 선생님도 사망의 죄악때문에 내 마음이 힘들다라고 고백하셨어요. 바울 선생님도 자신을 유혹하는 죄를 이기는 것이 쉽지 않다, 어렵다 말하는 것이에요(롬7:23-24).
그렇기에 우리가 할 일은 죄에 직접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죄로부터 피해서 아버지를 붙잡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도와주시길 이미 모든 죄를 이기신 분께서 우릴 도와주시길 바라며 그분을 향해 피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하늘로 올라가신 뒤에도 쉬지 않고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우리가 하늘 아버지께로 피해서 죄악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지키기를 늘 기도하시며 우리가 그런 마음을 늘 품고 살아가도록 돕기 위해 성령님을 보내주십니다.
또한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당신의 선한 손을 펼쳐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이 은혜를 여러분이 경험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죄의 유혹이 내 마음을 찌를 때 아버지를 부르고 도와달라고 구하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시편 121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어요.
Psalm 121:1–2 (NKRV)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우리의 도움이 어디서 오는가? 우리를 늘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시는 하늘 아버지께로부터 옵니다. 우리를 위해 늘 기도하시고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을 보내주시는 우리 그리스도 예수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떠오르게 하시는 성령님 그분께로부터 옵니다.
죄악을 우리가 마주할 때 백전백패입니다. 요셉이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무너진 이유는 그 자리에 계속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주께 피해야 합니다. 완벽한 피난처, 피할 바위이신, 도피성이신 주님께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곳으로 달려간자 안전합니다.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늘 언제나 돕고자 하십니다. 단순한 예로, 제가 지난주 함께 식사를 했던 남자 성도님이 한 얘기를 해주셨어요. 대학교를 졸업한 딸이 한명 있으신데, 그 딸이 초등학교 시절 주말에 친구들한테 자기가 고기를 사주겠다며 친구들을 데리고 고깃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먹었다고 합니다. 맘 편하게 즐겁게 고기를 다 먹고 나서 성도님께 전화를 했데요. 그 때까지 이 분께서는 딸이 고기를 먹으러 갔는지도 몰랐다고 합니다. 전화를 해서 ‘아빠 나 친구들이랑 고기먹었는데 이거 계산 좀 해주세요’라고 했답니다. 그 전화를 받고 성도님은 당황하셨지만 한편으로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아 이녀석이 나한테 전화하면 해결할 수 있다는 걸 아는 구나’ ‘얘가 나에게 도움을 구하는 구나 날 의지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집에 쉬고 계시다가 서둘러 고깃집에 가서 계산을 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이렇습니다. 부모님의 마음이 이렇습니다. 자녀가 도움을 구할 때 외면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오히려 기뻐합니다. 못해주게 되면 오히려 자신이 더 미안해 합니다. 마음 아파하죠. 이 땅의 부모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하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떨까요? 전능하신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향해 어떤 마음을 품고 계실까요? 언제든 나에게 구하라, 나를 찾으라.
우리가 최근 자주 듣고 고백하는 찬양이 있죠?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왜 기뻐합니까? 아버지이신 그분께서 우리의 어려움을 우리의 상황을 외면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도우심으로 인해 기뻐합니다.
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지 않고, 아버지께 피해야 합니다. 아버지 제가 이번 죄악이 이런 아픔이 있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시고 이미 승리하신 말씀으로 말씀에 의지하여 승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의 죄가 사라졌음을 믿습니다. 내 안에 있는 죄의 찌꺼기 나를 더이상 더럽게 하지 못하는 이 죄의 찌꺼기로부터 저를 건져내주세요. 저를 더욱 정결케 해주세요. 라고 기도할 때 그 기도를 아버지께서 외면하실까요?
나의 유익과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부정함 죄악을 해결해 달라고 구하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예수님을 하늘아버지를 더 사랑하기 원한다는 그 기도인데 어느 부모님이 그런 기도를 안들어주고 베기실까요? 당장에 다가오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피할 길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모든 죄에서 승리하신 주님께 피하는 우리가 됩시다.

4. 예수님과 같이 역설의 진리를 따르는 삶을 살자!

더나아가 우리는 왕의 자녀로서, 왕이신 주님이 통치하시는 그 뜻을 따라 살아가므로 이 땅에 주님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이 말은 단순히 1차원적으로 우리가 나가서 교회를 짓자거나, 또는 밖으로 선교를 나가자 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왕이신 주님께서 이 땅을 살아가시면서 보여주셨던 그분의 뜻; 죽음을 감당하시면서까지 이루고자 하셨던 그뜻;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늘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그 뜻이 무엇인가요?
겸손과 순종, 사랑의 논리.. 이 땅의 논리가 아닌. 5리를 같이 가달라고 하는데 10리를 가주는, 왼쪽뺨을 때리는데 오른쪽 뺨을 내주는, 겉옷을 좀 달라고 하는데 속옷까지 내어주는, 승리를 말하는데 십자가를 보여주는. 이 놀라운 하늘 아버지의 뜻이 하늘의 논리가 이 세상을 바꿔놓았습니다.
주님의 죽음 이후 아무 것도 변한 게 없다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그분이 보여주신 말씀에 대한 겸손과 섬김은 이 땅을 변화시키셨고, 세상 그 어떤 통치자보다 더 강한 역사를 일으키셨습니다. 이땅의 교육과 정치를, 인권과 경제관념을, 복지를 이 땅의 모든 것을 바꿔놓으셨습니다.
과거 그 어떤 강한 나라도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했고 위대한 황제들과 학자들의 이념은 과거의 학문으로 남겨져 있습니다. 그런 내용들이 사람들을 변화시키진 못했습니다.
근대에 정말 큰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칼 마르크스’의 막시즘은 끊임없이 분쟁을 일으킵니다. 집단을 분열시키고 그 안에서 지배층과 피지배층/강자와 약자를 구분짓고 피지배층이 약자가 지배층을 강자를 이겨야 세상이 바뀐다, 그래야 유토피아가 온다 라고 말하며 지금까지도 그 이념이 계속해서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의 이론이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사람들을 변화시키기는 커넝 도태시키고 망하는 길로 걷게 하고 있습니다. 그의 이념에서 파생된 현 시대의 문제들은 자주 언급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주의, 차별금지법과 연결되는 동성애, 인종차별 등등 막시즘에서 파생된 수많은 생각들과 행동들이 이 사회를 건강한 방향으로 이끌기보다는 악한 길로, 망가지는 길로 달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보여주신 길은 겸손과 사랑을 말하지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그분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차별과 분열이 아닌 하나됨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귀하다고 가르칩니다. 이런 사상이 인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차별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여성에 대한 문제, 흑인에 대한 문제, 노예에 대한 문제들을 해결해왔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기독교가 이 땅에 들어오고 천민들에게도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 여성들에게도 교육을 받을 수 있고 그들이 사람으로서 대우받을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이 땅을 지켜야 한다는 국방 의식도 기독교 교육을 통해 더욱 강해졌습니다. 과거 민족대표 33인 중 절반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은 이 주장에 힘을 실어줍니다.
지금은 이 땅의 교회의 역할이 많이 줄어들고 정확하게 얘기하면 오히려 무시받고 교회 다닌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기독교인이라고는 하지만, 진정 왕이신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 내가 주인이 되어서 이땅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 욕심 내 명예 내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기 때문에 주님의 겸손을 본받는다는 것, 주님께서 보여주신 말씀에 대한 순종을 본받는다는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국회의원 중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는데 우리 나라의 정치를 보면 상대진영을 헐뜯기 바쁘고, 편가르고 뒷통수 치는게 일상입니다. 목회자들에 대한 문제와 신자들의 문제들은 기독교에 대한 혐오를 계속해서 키워가고 있습니다.
이러 시대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앞서 얘기했던 것처럼 순종의 본을 보이신 주님을 따라, 왕의 자녀로서 왕이신 주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도록 내가 행하는 것. 나의 자리에서 행하는 것. 말씀을 지키는 것. 십리를 가주는 것, 양쪽뺨을 다 대주는 것, 겉옷속옷 다 주는 것, 십자가를 지는 것. 이것이 정말 어리석은 일처럼 보일지라도 이것이 승리의 길, 영광의 길입니다.
역설적인 이 논리에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걸었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 논리로 승리하셨기때문에 우리는 이 역설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것 이것이 바로 내 삶 속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늘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기도문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옵시기를 구하는 것은 내 삶속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겠습니다. 살아가게 해주세요. 라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내 삶속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살아낼 때 전혀 변한 것 없어보이는 현실 속에 교회가 아버지의 나라가 세워집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신앙을 교회 안으로만 제한시키지 마십시오. 삶 속에 교회를 세워나가세요. 로마서 12장 1절 우리의 몸을 하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말씀하십니다. 죽으라 말씀하시는 거에요. 십자가를 지라 말씀하세요.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인 예배라고 말합니다.
예배 드리고 끝이 아니라, 여러분의 학교에서 우리 선생님들의 일터에서 교회를 세우라고 말씀하세요. 예배드리라고 말씀하세요.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라 죽고 십자가를 지라 말씀하십니다.
2절; 이 세대를 본받는게 아니라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이전에 마음에 몸에 담아두었던 세상의 습관들 행동들을 다 덜어내고, 다 비워내고 하늘 아버지의 선하신 뜻, 기뻐하시는 뜻 온전하신 완벽하신 그 뜻이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내가 내 자리에서 내가 앉아 있는 예배실에서, 학교 교실에서, 학원에서, 스카에서, 카페에서 실천할 수 있는 아버지의 뜻은 무엇일까? 그리고 내가 갖는 꿈을 통해 실천할 수 있는 아버지의 뜻은 무엇일까 고민하며 살아가라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잘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중에 대통령도 나오고, 국회의원도 나오고, 장관도 나오고, 회장님도 나오고, 의사도 나오고, 판검사, 공무원, 대기업임원, 선생님, 경찰관, 사장님 다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가진 이 꿈 단순히 뭐가 되겠다가 꿈이 아니라 내가 하늘 아버지의 자녀로서, 왕의 자녀로서, 내가 이 땅에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가야겠다, 내가 교회를 세워야겠다 하는 이 비전이 늘 있어서 여러분이 몸 담게 될 그 어떤 자리이든 선하게 변화되고, 세상의 가치와 논리를 거스르는 예수님의 논리로, 이 세상을 변화시켜나가는 사람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단순히 무엇을 할까가 우리 인생의 목적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인생의 목적이 되기를 무엇을 하든 상관없습니다. 먼저 구해야 할 것 먼저 우리가 마음에 품어야 할 것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내 삶에 임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내가 그분의 의 그분의 뜻을 따라 살 수 있기를 구하는 것. 이 말이 우리가 그토록 반복해서 얘기하는 하늘 아버지께 영광돌리고 그분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인생의 가장 주된 목적인 것입니다.
이런 인생을 위해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탁월하게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러분에게 맡겨진 시험들, 공부들 열심히 하십시오. 우리 선생님들께서도 이런 믿음이 있기에 열심히 살아가고 있음을 압니다. 존경합니다.

5. 왕으로서 교회를 다스리시고 보호하신다

이렇게 살아가면 망하는 거 아니냐 걱정이 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위해 그 듯을 따라 살아가는 자들을 너무나 기뻐하시며 그들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이 진리는 분명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자녀들이 망하는 길로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역설의 진리를 붙잡으십시오. 승리의 역설; 십자가 죽음 순종 겸손 이것이 세상을 이기고 변화시키는 힘입니다.
수요예배 설교 중에 담임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나눠주셨죠. ‘도살당한 어린 양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당당하게 고고하게 서있다’
계시록5장 6절 상반절 말씀이지요.
Revelation 5:6 (NKRV)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이 어린양을 향해 5장 12-13절에서는 죽임당하신 어린양은 지극히 높으십니다 라고 찬양합니다. 죽음을 이기신 그 죽음으로, 비참한 그 십자가로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높은 영광을 취하셨습니다.

결론

6. 왕의 자녀로 살아가자

이제 결론을 맺으며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하는지 정리하겠습니다.
첫번째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이 땅에 모든 죄악을 죽이신 예수님을 믿으며 우리를 계속해서 유혹하는 죄의 찌꺼기들을 이겨냅시다. 이기기 위한 방법은 우리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싸우시도록 우리는 아버지께 피하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님, 성령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로부터 승리하는 길입니다.
두번째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심으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믿으며 이 땅의 논리가 아닌 예수님의 논리로 살아갑니다. 그것을 우리의 비전으로 품으며 우리의 자리에서 교회가 세워지도록, 아버지의 뜻이 드러나도록,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시도록 살아갑시다. 십자가의 역설이 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죽으셨으나 고고하고 당당한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닮아 우리도 우리의 삶속에서 거룩한 산 제물이 됩시다.
우리 이렇게 고백할까요?
죄를 이기신 우리 주님께 피하겠습니다.
죽음으로 승리하신 역설의 진리를 따라서 이 세상을 살아가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합시다.
1. 우리가 앞서 선포했던 것처럼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 우리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승리하신 어린양 예수님께, 하늘 아버지께 성령님께 피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유혹하는 죄의 찌꺼기들을 이기기 위해 주님께 피하겠습니다. 나를 정결케 해주세요” 라고 기도합시다.
2. 역설의 진리가 세상을 이김을 믿으며, 이 진리를 따라 살아가겠습니다.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며,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내가 삶 속에서 거룩한 산 제물이 되어 세상을 따라가고자 하는 내 자아를 죽이며 예수님으로 사는 내 인생이 되길원합니다. 라고 기도하며 나아갑시다.
하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을 보내주셔서 예수님의 인생을 통해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이 땅에서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섬기기 위해 죽기 위해 오셨음을 배웠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죽음이 세상의 죄를 이겼습니다. 세상의 이론을 이겼습니다. 십자가가 영광입니다. 십자가가 승리입니다. 우리가 이 역설의 진리를 따라 살겠습니다. 나만 잘먹고 잘사는 인생이 아니라 이 땅을 새롭게 하는, 이 땅을 바꾸어나가는, 이땅에 하늘 아버지의 나라를 임하게 하는, 교회를세우는 인생 살게 해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우리의 삶
죄를 피하고 주님을 의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요?
역설의 진리를 기억하며 가정과 학교, 학원, 일터에서 주님의 뜻이 이뤄지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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