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9:15-18 / 신앙의 슬럼프가 올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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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부상을 당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슬럼프 입니다.
부상은 정도에 따라 다르지만, 치료와 수술과 재활을 통해 회복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상보다 더 큰 문제는 슬럼프 입니다.
아무리 잘 나가던 선수라 하더라도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슬럼프에 빠지면 헤어나오기가 힘이 듭니다.
시즌을 망치기도 하고, 더 심할 경우에는 극복하지 못하고 은퇴를 하기도 합니다.
분명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평생을 해오던 것이 안될 때 정신적으로 큰 타격을 입기도 합니다.
그래서 슬럼프가 오면 선수들은 잘 할 때의 영상을 돌려 보거나, 훈련의 여러가지 방법들을 의논하기도 하고, 심지어 의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까지 슬럼프 탈출을 위해 애를 씁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가 하는 일들 가운데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하고, 심하게 겪기도 합니다.
그럴때 아마 다양한 방법들로 슬럼프에서 빠져 나오려 부단히 애를 쓰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슬럼프가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삶의 문제가 생길 때, 관계의 문제가 생기고 회복이 되지 않을 때, 교회의 섬김이 지쳤을 때, 교회의 여러가지 문제들을 겪거나 보게 될 때
어쩌면 어느 순간 갑자기.. 아무런 이유 없이 신앙의 슬럼프가 찾아옵니다.
이럴 때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은 ‘교회를 잠시 쉬자, 교회를 옮기자’ 는 것입니다.
신앙의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자리를 피하는 것으로만 해결하려 한다면, 또 똑같은 문제 앞에서 결국 도망자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신앙의 슬럼프가 왔을 때 어떻게 그것을 극복 할 수 있는가 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엘리야 선지자는 정말로 대단한 선지자 중 한 사람 입니다.
엘리야가 선지자로 활동할 당시 북이스라엘은 역사상 가장 악한 왕이라 불렸던 아합왕과 아내 이세벨에 정면으로 대응했던 선지자 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타락에 하나님은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그 땅에 3년 반이나 비를 내리지 않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북이스라엘은 3년반 동안 심각한 가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한번 잘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도 반년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강이 마르고, 농작물이 제대로 자라지 않습니다.
채소, 과일 값이 엄청 오를 것이고, 농사 뿐만 아니라 우리 삶의 전반적인 모든 것들이 너무 힘들어 질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3년 반동안 비가 한번도 내리지 않았던 북이스라엘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백성들의 삶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완전히 파국으로 치달았을 것입니다.
특히 농경사회인 북이스라엘에게 비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섬기는 바알이 비를 주관하는 신 인데, 그 땅에 비가 내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북이스라엘과 함께 그들이 섬기는 바알도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임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3년 반이라는 긴 고통의 시간 속에서 하나님의 심판의 의도를 깨달아야 하는데
아합왕은 오히려 이 모든 사태의 원흉을 북이스라엘에게 저주를 내린 엘리야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엘리야를 죽이려고 찾아다녔습니다.
그렇게 3년 반이 지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다시 아합왕 앞에 나타난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제단을 세우고 싸웠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바알 선지자들이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애를 써도, 심지어 칼과 창으로 스스로의 몸을 상하게 해도 불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엘리야의 기도에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열왕기상 18장 38-39절 입니다.
38.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하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참 왕은 오직 하나님 뿐이심을 직접 보여주십니다.
바알은 거짓 신이며 우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왕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이 직접 경험 했습니다.
이 일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워하며 바알 제사장들을 직접 처단합니다.
엘리야는 그렇게 승리했습니다.
이후 갈멜산 꼭대기에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은 3년 6개월 만에 이스라엘 땅에 비를 내리셨습니다.
여러분, 이 모든 일들을 통해 엘리야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제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께로 돌아오겠구나~~ 아합왕도 이세벨도 하나님 앞에서 굴복하는 회복의 때가 도래할 것이라는 이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19장에서 엘리야는 어디 있습니까?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기쁨과 승리에 가득찬 엘리야의 모습은 사라지고, 자신의 인생을 저주하며 목숨을 거두어 달라는 깊은 신앙의 슬럼프에 빠진 엘리야를 볼 수 있습니다.
승리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 목숨을 걸고 전했던 선지자가 어떻게 신앙의 슬럼프에 빠졌습니까?
신앙의 슬럼프는 기대와 소망이 꺾일 때 찾아옵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바알과 싸운 엘리야 선지자의 사역의 결과 입니다.
열왕기상 19장 1-2절 입니다.
1. 아합이 엘리야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어떻게 모든 선지자를 칼로 죽였는지를 이세벨에게 말하니
2. 이세벨이 사신을 엘리야에게 보내어 이르되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신들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림이 마땅하니라 한지라
이세벨이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였다는 소식에 화가나서 엘리야를 죽이라 명하였습니다.
엘리야의 회복과 돌이킴의 소망, 모든 기대가 산산조각 나 버렸습니다.
또한 자신의 목숨도 위험해 졌습니다.
북이스라엘의 회복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십니까?
하나님을 위해 목숨걸고 선지자 직분을 수행했던 엘리야로써는 지금의 이 결과를 받아들이기가 너무나도 힘이 듭니다.
악한 자들이 꺾이지 않고 / 오히려 엘리야의 소망, 희망, 기도제목, 사명이 모조리 다 꺾여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손, 영광이 그 땅에 들어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야는 도망칠 수 밖에 없습니다.
회복의 희망과 기대가 꺾이고 무너지자 감당할 수 없는 절망의 늪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신앙의 슬럼프는 적당히 신앙생활하고,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양다리 걸치는 사람들에게 오지 않습니다.
열심히 예배의 자리를 지키고, 교회의 수 많은 자리를 지키고,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찾아옵니다.
특히나 간절하게 기도하는데, 부르짖음에 전혀 응답이 없고, 상황도 나아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전혀 알지 못하고, 상황은 더욱 심각해져가는
전혀 은혜가 없고 꼭 벽 보고 기도하는 것 같을 때
예배의 기쁨이 없고, 더이상 하나님께 나의 소망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질 때 신앙의 슬럼프가 오게 됩니다.
어떻게 해야 극복 할 수 있습니까?
답은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신앙의 슬럼프가 올 때, 오히려 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엘리야는 이런 상황에서 무엇을 합니까?
열왕기상 19장 4절 입니다.
4. 자기 자신은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가서 한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시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나를 죽이십시오
무슨 이유로 자신의 생명을 거두시라고 합니까?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지금 그가 죽기를 원하는 이유는 이세벨이 보낸 군사들로 인해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이 아닙니다.
선지자로써의 사명이 실패했기 때문에, 스스로를 실패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사명과 계획이 틀어질 때, 엘리야와 마찬가지로 쓰러집니다.
분명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 묻고 기도하며 삶을 선택하며 준비해 나갑니다.
결혼, 취업, 진로, 삶의 수많은 문제들 앞에 적당히, 대충, 좋은 방법을 골라서 선택하고 살면 답답할 필요가 없는데
하나님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그 길을 가면 막힐 때가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엘리야는 이런 슬럼프, 한계에 부딪히고 낙심과 실망으로 좌절하여, 도대체 하나님의 뜻도 모르겠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다른 계획을 생각하거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떠나면서 이제 알아서 하나님이 하시겠지.. 라고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 속에서도 엘리야는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묻고, 따지고, 하나님 앞에서 탄식 합니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모든 것을 하고 있습니다.
묻고, 따지고, 낙심하고, 탄식하는 것도, 포기도, 절망도, 하소연도 다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 합니다.
신앙의 슬럼프가 찾아올 때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떠나려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과의 거리두기, 더 멀리하기를 하지 않습니까?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낙심하고 실망하고 좌절하여 삶과 신앙에 슬럼프가 찾아와도
결국 우리가 찾고, 의지하고 붙잡을 분은 하나님 한분 밖에 없습니다.
우리들의 응답되지 않는 기도, 낙심, 절망, 소망을 잃어버리고 꺾이는 것 까지도 하나님께 온전히 가지고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기도가 안됩니다. 예배가 안되고 은혜가 없습니다. 마음이 아프고 절망이 닥쳐오고 포기하고 싶습니다.
네 맞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게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것 까지도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 들고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정말 대단하다는 대표적인 구약의 선지자도 하나님께 그만하시고 죽여주십시오 라고 기도하는 데
우리 또한 하나님께 못할 말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의 탄식을 들으시고는 하나님이 무엇이라 하십니까?
잘한다~ 그게 할말이니? 뭐 잘했다고 죽여 달라고 그러냐~ 넌 믿음도 없고 실패한 선지자야~~
그렇게 질책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에게 잠을 주시고 천사를 보내어 위로 하십니다.
먹고 마시게 하시므로 힘을 내게 하시고,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걸어가게 하십니다.
상황은 변하지 않습니다. 여전합니다.
이세벨과 그의 군대가 엘리야를 죽이려 합니다.
하지만 그의 실패가 오히려 하나님과 더 가까이 교제하는 그 자리로 걸어가게 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출발해 하나님께로 도착해야 하는 자들입니다.
도착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은 위로와 회복을 건내시며, 새로운 사명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람왕이 될 하사엘에게, 이스라엘의 왕이 될 예후에게, 엘리야의 뒤를 이을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으라 명하십니다.
이 세명은 아합 왕조를 심판할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 입니다.
또한 이세벨로 인해 죽고 흩어졌다고 생각했던 하나님의 선지자 7천명을 보호하고 남겨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엘리야의 계획, 상황, 바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직접 보지 못해도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과 여정은 멈추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이 사역을 위해 다시 북이스라엘로, 자신이 사역해야 할 그 자리로 돌아갑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질 것입니다.
저도 몇년 전에 심한 신앙의 슬럼프를 겪었던 적이 있습니다.
많은 일들로 인해 건강도 좋지 않았고, 사역의 기쁨도, 확신도 사라졌습니다.
이러다가 내가 죽을수도 있겠다 라고 생각했던 어느날 밤에, 저희 아내와 심각하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스트레스도 심하고, 가만히 있어도 손도 떨리고, 심장도 너무 두근거리고,, 무엇보다 삶과 사역에 기쁨도, 열정도 사라져버린지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를 하자 아내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 처럼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래서 사역을 관두고 무엇을 할까를 진지하게 의논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교회에서 교구사역을 하는데, 제가 담당한 교구에 하도 장례가 많이나서 부산 지역에 안가본 장례식장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나 장례지도사 나 다 같은 하나님께 보내드리는 직업으로 생각하고 장례지도사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때 코로나가 터지면서 교회가 폐쇄되고 현장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한테는 이 기간이 회복의 시간이었습니다.
교회가 폐쇄되니 일이 줄어들어서 좀 쉴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 기간 내내 담당하던 고등부에서 영상예배를 올릴 때 마다 연락이 와서 너무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메시지를 학생들이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약 1년 뒤에 예배가 다시 시작되었을 때, 비록 좀 줄었지만 첫주에는 50명, 둘째주에는 60명이 넘는 고등부 학생들이 와서 예배를 드리고 심지어 코로나 기간에 전도를 해오는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이 아이들이 너무나도 이 예배가 그립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그리웠다는 이 고백이 저에게 큰 위로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시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회복과 사역의 은혜를 회복하게 하셨고, 다시 사역에 힘을 내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때로는 도망치고 싶고, 다시 돌아가고 싶고, 하기 싫어도
우리가 있어야 할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과 기도의 제목들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하며 그 자리를 지켜야 하는 자가 그리스도인 입니다.
고난과 낙심을 통해 성장하고 단단해져야 하며,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곳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상처를 만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며, 부르신 그 자리에서 예배와 사명을 회복시켜 나가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더 깊고 놀라운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는 회복의 역사가 충만하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원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정체되어 있고, 신앙의 슬럼프에 빠졌을 때 이것을 벗어날 다른 방안은 없습니다.
단 하나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 때로는 기도의 방향을 바꾸게 하실 때 그대로 기도하는 것
이것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곳은 오직 하나님 앞이며, 다시 우리의 삶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슬럼프가 올 때, 낙심 될 때, 마음을 숨기지 말고 하나님께 내어 놓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주님이 부르신 자리에서 주님이 주신 사명을 다시 점검하며 최선을 다해 하시기 바랍니다.
신앙의 슬럼프에 빠져 낙심하고 좌절한 엘리야를 위로하시고, 다시 사역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하신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의 손이
정체되어 있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하며, 신앙의 슬럼프에 빠져 방황하는 우리의 삶을 만지시고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힘과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과 함께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 곳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