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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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1:1~4
오늘부터 우리는 디도서의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왜 이 디도서라고 하는 책을 전하려는지에 대해 설명을 드려야 하는데요. 저는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다음 해에 전할 말씀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웁니다. 그래서 작년 연말에 내년도 설교 계획 그러니까 2024년도에 어떤 말씀을 전할까를 계획했습니다. 그러면서 교회에 대한 메시지를 꼭 전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러다가 찾은 본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디도서라는 책입니다.
여러분, 디도서를 많이 읽어 보셨습니까? 디모데전후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편이지만, 디도서는 아마 낯설게만 느껴지실 겁니다. 바울이 디도라고 하는 젊은 사역자에게 교회를 부탁하면서 쓴 책이 바로 이 디도서인데요. 총 3장으로 된 아주 짧은 본문이지만, 교회를 향한 바울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또 교회가 세상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번 시리즈 제목을 <교회를 부탁합니다>라고 정해봤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교회를 잘 부탁한다기 보다는 2천 년 전 바울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지를 부탁한다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위기라는 말을 참 많이들 하지 않습니까? 사실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근 20년 가까이 계속해서 들려오는 탄식의 소리입니다. 결정적으로 코로나 시기를 거치면서 교회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지더니 이제는 아예 무관심하거나 무시한다는 것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지난 10년 동안에 기독교 인구수가 약 200만 명에 가깝게 줄었다고 하니 한국 교회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캇 맥라이트라고 하는 분이 교회의 위기에 대해서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복음이 교회를 형성했고 따라서 교회의 위기는 곧 복음의 위기이다.” 저는 이 표현이 굉장히 적절하다고 생각했는데요. 교회는 복음만 드러내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교회가 어렵다고 한다면, 이 교회를 만드는 복음이 혹시 문제 있는 것은 아닌가? 또 복음이 정상적이라면 배웠거나 들었거나 전했던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가 살펴보려는 것입니다. 복음은 정상인데, 그 복음이 잘못 전해진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죠.
약 2천 년 전, 바울은 선교 여행을 통해서 그레데라는 섬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지중해 지도를 놓고 보면 지중해 중간에 큰 세 개의 섬이 있습니다. 바로 ‘그레데’ 혹은 ‘크레타’라고 불리는 섬입니다. 그레데는 작지 않은 섬입니다. (지도 사진)
이렇게 ‘그레데’라는 섬에 교회를 개척한 바울은 얼마동안 사역을 하다가 다음 선교지, 아마 마게도냐라고 추측을 하는데요. 그레데를 곧 떠나게 됩니다. 그렇게 떠나면서 젊은 디도에게 그레데의 교회를 부탁하는 것이죠. 이 디도라는 젊은 사역자는 교회를 맡아서 뭔가 열심히 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문제가 생기게 된 거예요. 그리고 이 그레데 교회에 문제가 생긴 것을 들은 바울이 지금 이 디도에게 편지를 쓰면서 교회의 문제들을 이렇게 이렇게 해결하라고 하는 게 이 디도서를 쓴 목적입니다.
그렇다면 이 디도가 사역하는 교회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을 통해 그 내용을 유추해 볼 수가 있는데요. 첫 번째 문제는 교회의 장로 즉 교회의 영적 리더를 세우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고요. 두 번째는 교회 안에 들어온 거짓 교사들을 분별하고 그들을 내쫓는 문제에 다루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교회의 리더를 세우는 것 또 교회 안에 거짓 교사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언뜻 보면, 굉장히 구체적인 것 같으니까 디도서가 매우 실용적인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실용적인 면만 있는 게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세우는 리더를 뽑을 때도 ‘복음은 어떠한가?’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고요. ‘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거짓 교사들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이야기할 때도 복음의 내용을 점검하라고 하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복음을 가지고 교회를 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가지고 교회의 리더를 세워야 하고 복음을 가지고 거짓 교사를 분별해야 하고 복음으로 교회를 견고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차원에서 2024년 올 한해의 중간을 지나는 이 시점에 주님이 우리 하름교회를 향해 어떻게 말씀하고 계시는지, 교회를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하는 복음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를 한번 정리해 보고자 하는데요.
먼저 바울은 편지를 시작하면서 디도에게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미 서로 충분히 잘 알고 있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에 대해 소개의 글을 쓰는 것은 디도 혼자 이 편지를 읽는 게 아니라, 디도와 함께 모든 교인들이 이 편지를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바울 서신을 생각해 보세요. 한두 구절이면 인사가 끝나는데 무려 네 구절을 할애해서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길이도 긴데 내용도 매우 깊습니다. 먼저 1장 1절입니다. 합독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이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먼저 자기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설명하고 두 번째로는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표현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주로 사용했던 표현인데요. 이게 무슨 뜻이냐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이고, 나는 그걸 받아서 너희에게 말한다’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종이라고 한 것입니다. 마치 구약의 이사야나 예레미야 선지자와 같이 ‘지금 내가 구약의 선지자들과 같은 맥락에서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라는 뜻으로 이해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는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사도로 번역이 되어 있는 단어가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라고 하는 단어로써, 문자적인 뜻으로는 ‘보냄을 받은 자’라고 합니다. 전달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바울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자주 사용했던 자기의 정체성 아닙니까? “나는 내가 말하고 싶은 걸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 받은 것을 전하는 사람이다. 나는 전령이며, 전달자이다” 이러는 것이죠.
여러분, 1절을 자세히 한 번 보세요. 이렇게 바울의 소개에는 자기소개이면서도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질 않습니다. 바울의 소개를 보면 온통 하나님이고 온통 예수님입니다. 그가 못난 사람이라 소개할 게 없어서 그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잘나가던 인생이었고 자랑할 게 많았던 사람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자로서 금수저로 태어났고, 엘리트 바리새파 사람에 가진 게 너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다니면서 세계 선교의 문을 열고 있는 사도행전의 주인공 아닙니까? 초대 선교사이면서 초대 목사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많은 것을 가졌는데도 그의 이력서에는 쓸 만한 것은 다 지우고 딱 두 가지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의 사도’ 왜 그랬을까요? 이 두 가지면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예전에는 디도서를 읽으면서도 바울의 자기소개 이 부분은 대충 읽고 넘어갔었거든요. 사실 별로 눈에 들어오질 않았어요. 그런데 이번에 제대로 묵상을 하는데, 1장 1절 말씀이 그렇게 마음이 뜨거워지는 거예요.
여러분, 바울이 어디 저 같은 사람하고 비교나 됩니까? 그는 특출난 엘리트 바리새인 중의 한 사람이었어요. 예수 믿기 전에 자랑거리가 많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깨달은 게 뭡니까?
내가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께 순종하고 그분께만 충성하며 살아야 하는데, 종이 아닌 주인 행세를 했던 자신을 보게 된 것 아닙니까? 스스로 신앙생활도 잘한다고 생각했을 텐데 진짜 주님을 만나고 나니까 자신이 종이 아닌 ‘주인’이 되어서 순종이나 충성보다는 주인 행세를 하며 살아가는 자기를 돌아보게 된 거예요. 그래서 틈만 나면 그는 자기 자신을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의 사도’ 심지어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까지도 불렀습니다.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것 아닙니까?
여러분, 교회가 교회답다 할 때 교회가 어떠하면 교회다워지는 것일까요? 이에 대해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0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0:25~27
25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합독] 27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통해 교회다운 교회가 되기 위해, 성도다운 성도가 되기 위해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모두가 왕이 되고 모두가 높은 자리를 원하는 이 세상에서 낮아지기를 자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좀 세상과 다르게 살아내고, 서로 붙들어주는 그런 다른 공동체가 되어주지 않겠냐는 것 아닙니까? 교회는 결코 세상의 가치를 가지고 서로를, 또 세상을 바라보고 상대하지 않고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방식대로 또 바울이 자기 자신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섬기고 낮아지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습이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누군가를 섬기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아끼고 희생할 줄 아는 곳이 바로 교회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교회가 이제 8월 말에 장로 피택을 하고 또 가을에 권사, 안수집사를 세워야 하는데, ‘이런 이런 사람이 장로감이지, 하름교회에서 장로하려면 이 정도 위치는 되어야지’ 어떤 세속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 아닌 바울과 같은 사람, 하나님의 종이 되어주고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줄 수 있는 섬김의 사람, 나 스스로를 남들보다 결코 높다고 생각하지 않고 헌신할 수 있는 그런 분이 우리 교회의 영적 리더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는요. 세상과 다른 구조를 따라 힘써서 섬기고 종이 되고 낮아지는 것을 연습하는 곳입니다. 실패한 사람들이 와서 서로 실패한 것을 나누고 약함을 드러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곳입니다. 함께 주님을 알아가고 함께 울며 함께 웃으며 주님을 사랑하되 누구도 소외되지 않고 서로를 돕는 경험을 하는 곳이 바로 교회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목사가 타락해서 큰 차 타면서 좋은 아파트, 고액의 연봉을 받는다고 해서 교회가 그렇게 쉽게 타락하지 않습니다. 타락한 리더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공의의 심판을 하시거든요. 그런데 교회 공동체가 모두 주인이 되려고 한다면 그것은 교회 전체가 타락해지는 거예요. 저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디도서 1장 시작하자마자 저 자신에게 먼저 묻는 거예요. ‘네가 진짜 하나님의 종이 맞냐? 그리스도의 사도 맞냐?’ ‘서울에 있는 교회에 부임해 와서 교회를 크게만 만들려는 욕망, 그 타락한 마음이 네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니냐?’ 저 스스로에게 먼저 적용해 봐야 합니다. 이것은 제가 늘 이겨내야 할 마음들입니다.
두 번째로 바울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불렀습니다. 앞에 있는 종이 하나님의 종이고 자기 자신을 낮출 때 사용한 개념이라면 이 ‘사도’라는 개념은 예수님이 보내셔서 그분이 하셨던 말씀과 행함을 전달하고 실행하는 살아있는 증인과도 같은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매우 담대하고 권위가 있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를 인식하면서 종으로서 섬기고 희생하고 낮아져야 하는 종으로 볼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함이나 열등감이 아니라, ‘나는 왜 종일까?’ 신세 한탄하는 게 아니라, 종이지만 자유하고 담대하고 그러면서도 자기 스스로를 위해 뭔가 주장할 게 없는 겸손한 종이라는 자기 인식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이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면서요. ‘어떻게 저렇게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나?’ ‘어떻게 공부를 저렇게 잘 할 수 있었나?’ 끝없이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느끼거나 반대로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종이지만, 진정한 자유가 뭔지를 알고 담대하고 존귀한 그리스도의 사도와 같은 사람들, 그러면서도 깨어진 심령을 가지고 연약한 사람들을 대할 줄 아는 그것이 바로 바울의 사도 됨이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이 말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이력이나 기득권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그것을 가지고 과시하는 경우는 결단코 교회 안에서 없어져야 할 것들입니다. 바울은 ‘내가 옛날에 무엇을 했고, 어떤 교회를 세웠으며, 얼마나 열심히 수고했다’라고 전혀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딱 두 가지.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의 사도! 이것만 가지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바울이 너무 멋지고 부럽습니다. 왜 부러운지 아세요? 우리가 바울의 이런 자기소개를 들으면서도 결코 그를 무시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지금 하나님과 예수님을 자기 자신과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섬기는 분은 바로 이분들입니다.’라고 자기를 소개한 것이기 때문이죠. ‘나의 주인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시고, 나를 보내신 이는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이십니다.’ 이러는 거죠.
가끔 사극 같은 것을 보면 벼슬이 아주 높은 정승대감이 나옵니다. 영의정, 좌의정 이런 분들이죠. 그 대감댁에 일하는 하인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때 말을 타고 관복을 입은 어떤 사람이 대문을 열고 딱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면 하인들의 반응이 바로 막 엎드려서 절하고 그럽니까? 그러지 않습니다. 우리 주인이 정승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을 타고 들어온 관리를 보고서 감동하거나 머리를 숙이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관리가 말에서 내리더니 품에 넣어 두었던 두루마리를 쫙 펼치더니 “어명이요~”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됩니까? 거기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면서 어명을 받게 됩니다. 왜 그렇죠? 말을 타고 온 이 관리가 중요한 게 아니고 이 관리보다 이 집의 주인인 정승보다 훨씬 더 높은 임금의 명령을 갖고 왔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에게 ‘교회의 리더는 누구여야 합니까?’라고 물어보신다면 바로 이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저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기 자신이 대단하거나 훌륭하거나 어떤 이력을 쌓았거나 인정받을 만한 어떤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며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당당하게 서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교회 안에서나 목사지 교회 밖에서는 ‘아저씨’입니다. 제 딸을 데리고 병원에 갔더니 저랑 나이도 별로 차이나지 않아 보이는 간호사 선생님이 ‘아버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저는 누구를 부르는 건가? 했어요. 오히려 사춘기 애들이 보면 잔소리 많은 ‘꼰대’ 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강단에서 말씀을 증거할 때는 하나님의 종이요, 또 예수 그리스도의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펼쳐 읽고 나누는 중이라는 것입니다.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다 친구이고 또 언니이고 동생일 수도 있어요. 오빠일 수도 있고요. 형이고 누나일 수 있습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하게 서로가 함께 지어져 가는 존재들이라는 것이죠. 저를 비롯해서 다들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속한 자리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면 그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이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하름교회가 그런 말씀의 권위가 살아있는 공동체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자, 이렇듯 자기를 소개한 바울은 이제 자기가 가지게 된 이 지위를 가지고 해야 될 역할이 어떤 역할인지 자기의 사명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는데요. 그가 왜 사도로 부름을 받았을까요? 어떤 일을 하라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을까요? 세 가지가 나오는데요. 1절부터 보세요.
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나 바울이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2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
여러분, 여기에 어떤 표현이 나옵니까? ‘나 바울이 사도가 된 것은…’이라고 하는 표현이 1절 중반부에 나오고요. 2절에 무엇 무엇하기 위함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사이에 주님이 주신 명령이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가 무엇입니까? 1절 후반부에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라고 합니다. 또 두 번째로는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이라고 나오고요. 마지막 세 번째로는 2절 서두에 “영생의 소망”이라고 나옵니다. 믿음과 진리와 영생의 소망을 위해서 내가 너를 사도로 불렀다고 하시는 거죠.
바울은 첫 번째로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서 바울을 불렀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복음을 들려줘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라는 뜻도 되고, ‘믿음 있는 자들을 더 장성한 믿음으로 양육하기 위해서’라는 뜻도 됩니다.
여러분,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신다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복음을 전해서 이 믿음이 확산 되어지는 일을 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3절 합독
3 자기 때에 자기의 말씀을 전도로 나타내셨으니 이 전도는 우리 구주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내게 맡기신 것이라
여기서 전도는 우리가 아는 전도가 아닙니다. ‘케리그마(Kerygma, κῆρυγμα)’ 바로 ‘선포’입니다. 교회가 뭘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복음을 계속해서 들려주는 일 즉 말씀의 선교, 말씀의 선포를 해야 하는 거죠. 여러분 믿음이 어디서 나오는가 들음에서 난다고 말한다면, 누군가가 복음을 들려줘야 한다는 것이죠.
여러분, 우리가 복음을 누군가한테 들려줄 때 듣고 있는 사람의 영혼 가운데 성령께서 은혜로 찾아오시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복음의 말씀과 함께 성령이 역사하셔서 은혜를 베풀기 때문에 그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을 안에 모시며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게 교회가 해야 될 일이고 우리가 해야 될 일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성도답게 살아가는데도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믿음’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악한 마귀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우리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는 일들을 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도 알고 있고 또 ‘그분이 우리를 위해 가장 좋은 계획도 세우셨겠지’라고 생각도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알고 믿고 사랑하며 성도로 살아가는 과정속에서 계속해서 어떤 일을 경험하게 됩니까?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 잘 안 되는 일들을 경험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런 일들을 경험할 때마다 ‘내 믿음이 흔들리는구나’라고 자책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리더의 역할이 뭐냐고 말할 때, 교회 공동체 안에 이미 들어와 있지만, 이 믿음이 흔들리고 있는 상태의 사람이 있다면 믿음을 견고하게 붙잡아서 그로 하여금 믿음으로 계속해서 나아가게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의 영적인 리더가 해야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나도 흔들려 봤지만 믿음으로 살 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하름교회가 하늘 아래 아름다운 교회라는 정체성이 참 좋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주보 표지에 나온 것처럼 “이 땅을 품은”을 넣어 “이 땅을 품은 하늘 아래 아름다운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믿지 않는 불신자들, 진리의 길을 찾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 안에 믿음을 만들어내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또 교회를 오래 다녔지만, 믿음이 흔들리는 연약한 이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을 세워서 정말 영적으로 장성한 성도로 우뚝 설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바울은 이 믿음과 더불어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을 말하면서요. 2절에 이것은 “영생의 소망을 위함이라”라고 자신의 사명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이런 말입니다. 지금 바울의 사명은 그레데 교회에게 이 엄청난 영생에 관하여 가르치고 전하고 누리게 하고 동시에 이 영생을 주변에 믿지 않는 자들에게 전함으로 그들도 영생을 얻게 만드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 너무너무 좋은 영생이라고 하는 선물을 받았고 성도라면 누구나 다 이 영생을 누리고 있는데, 어떻게 이 영생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가 그 영생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게 만들려고 너희에게 이 편지를 썼다’는 것이죠.
자! 이렇게 바울은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자기의 정체성을 이야기했고 자기의 사명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바울이 이제 디도에게 본격적으로 명령을 하는데요. 사실 3절까지만 써도 됩니다. 그런데 4절에 뭐라고 말을 합니까? 4절 합독
4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여기서 핵심이 무엇입니까? 바로 디도를 ‘참 아들’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게 뭔가요? 지금 내가 설명했던 이 모든 것과 똑같은 정체성과 똑같은 사명으로 “같은 믿음을 따라” 너도 나와 같은 길을 걸어가 주기를 진심으로 부탁하는 것 아닙니까?
아시다시피 디도는 바울의 친아들이 아닙니다. 디모데와 더불어 믿음의 아들이라고 불리는 사제지간 같은 것이죠. 그런데 “참 아들 된 디도”에게 이 길을 함께 가자고 초청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디도는 그레데 출신 사역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도 역시 바울처럼 순회 사역자였을 뿐입니다. 그런 디도를 부르는 바울의 표현을 보십시오. ‘같은 믿음을 따라 나의 참 아들 된 디도’ 정말 친밀하고 따뜻한 관계임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적어도 디도는 바울을 대신해서 그레데 섬에 남겨 두어 자기 역할을 감당하게 할 만큼 믿을 만한 동역자였던 것입니다. 이런 동역자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모세에게 아론과 여호수아가 있었던 것처럼 바울에게는 디도와 디모데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오늘 우리 시대, 오늘 우리 하름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간절한 바람이시기도 합니다. 교회의 중요한 사명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을 일꾼들을 잘 세워 교회의 역사 곳곳에서 시대의 사명을 잘 감당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표현이 바로 ‘같은 믿음’입니다. 이 같은 믿음이라는 표현은 인간적인 정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적인 정만으로는 오래 사랑할 수 없고, 오래 참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의 심장으로 사랑하고 진정한 동역을 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바로 같은 믿음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복음에 대한 같은 고백, 같은 소망, 같은 사명과 같은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디도에게 이렇게 인사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구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자격 없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베푸시는 호의가 바로 ‘은혜’ 아닙니까?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누리는 진정한 가치는 바로 ‘평강’ 곧 ‘샬롬’입니다. 이것은 감정이나 심리적인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과의 관계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이죠. 은혜를 받은 자가 조건 없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사랑을 베푸는 공동체를 상상해 보십시오.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가 그 은혜로 화목하게 되어 누리던 평화를 이제는 다른 지체들과 더불어 누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다운 교회는 경영의 논리나 이해타산이 아니라 은혜의 원리가 지배하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다운 교회인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갈등과 반목이 아니라 경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평화를 추구하는 공동체가 바로 바울이 꿈꾸던 교회요. 오늘 이 하계동 땅을 품어야 할 하늘 아래 아름다운 교회인 우리 하름교회의 사명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믿음을 나누고 영생을 누리며 이 땅을 품고 그 영생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우리 하름교회 온 성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찬양 : 이런 교회 되게 하소서
❙합심기도
여러분, 말씀드렸죠? 교회는요. 은혜가 지배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나왔지만, 은혜가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 자리가 얼마나 힘든 자리입니까? 바울을 보세요.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의 사도, 믿음과 진리와 영생의 소망! 진짜 하나님의 사람이잖아요? 그 같은 믿음을 디도에게 그리고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부탁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시간 함께 기도할 때, 주님, 저에게도 바울과 같은 믿음을 주시길 원합니다. 세상의 종이 아닌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이곳 하계동에 세워진 우리 하름교회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을 위해 품고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되길 원합니다. 은혜가 지배하는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말씀의 은혜를 기억하면서 합심해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마침기도
사랑의 하나님, 교회가 복음을 제대로 담지 못해서, 복음은 정상적인데 교회를 이루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잘못되어서 교회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닌지요? 바울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참 아들 디도에게 교회를 부탁하는 것처럼 오늘 우리 하름교회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같은 믿음으로 교회를 부탁하는 줄로 믿습니다. 주님, 우리 하름교회가 말씀의 권위가 살아 있는 교회, 믿지 않는 자들,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품고 그들이 샬롬의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복음을 전하는 교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해타산이나 경영 논리가 아니라, 은혜가 지배하는 교회되게 하셔서 창립 70주년이 되는 이 해에 주님이 맡기신 이 땅 하계동에 하나님의 평강을 심어줄 수 있는 교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 드리며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결단의 찬양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축도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과 같은 믿음으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고자 다짐하는 우리 성도들 머리 머리 위에 지금부터 영원히 함께 계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