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방송설교-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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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대가

마태복음 5:9 “9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기의 자녀라고 부르실 것이다.”
이스라엘의 골다메이어라는 여성총리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한참 어려울 때 여성으로 총리가 되었습니다. 때마침 1973년 욤키푸르라고 불리는 속죄의 날이라는 큰 절기에 4차 중동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6일만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6일전쟁이라고도 불립니다.
이스라엘을 둘러싼 중동연합의 갑작스런 공격으로 이스라엘은 큰 고비를 격게 되지만 미국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승리했다라고도 어려운것이 이 전쟁으로 인해 너무도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전쟁중에 이스라엘군이 승리하고 있다는 보고를 듣게 됩니다. 그러나 골다수상은
싸움에서 적을 많이 죽인 것이 결코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보다 저 들판에 딸기꽃이 피어나는 것이 더 큰 기쁨입니다. 라고 말을 남겼습니다.
들판에 딸기꽃이 가득 핀다는 것은 그 땅에 어떤 전쟁도 재난도 없다는 증거가 됩니다.
오늘 말씀은 평화의 대해 묵상하게 합니다.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을 때 결코 평화롭게 있지 않았습니다. 어디선가 끊임없이 이 식민통치를 끝내기 위해 싸움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스라엘 안에서는 이 식만통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곳곳에서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 싸움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열심당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식민통치를 벗어나기 위해 곳곳에서 거칠게 싸우자며 선동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갈등은 두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갈등입니다. 이스라엘은 계속되는 식민의 삶이 정말 너무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평화의 메시아가 올것이라며 계속 격려해 주십니다.
스가랴 9:9–10 “9 도성 시온아, 크게 기뻐하여라. 도성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네 왕이 네게로 오신다. 그는 공의로우신 왕, 구원을 베푸시는 왕이시다. 그는 온순하셔서, 나귀 곧 나귀 새끼인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 10 “내가 에브라임에서 병거를 없애고, 예루살렘에서 군마를 없애며, 전쟁할 때에 쓰는 활도 꺾으려 한다. 그 왕은 이방 민족들에게 평화를 선포할 것이며, 그의 다스림이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유프라테스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를 것이다.”
이 약속을 어떻게 믿고 있어야 될지 지쳐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서 빨리 이 식민통치를 끝낼 힘이 있고 강력한 메시아가 오기를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이 시간이 점점 길어지므로 하나님과의 신뢰의 관계가 점점 약해져가기 시작합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과의 갈등입니다. 식민통치의 삶이 어떻게 행복하고 즐거울 수가 있겠습니까. 식민지의 삶이 시작되니까 가난하고 어려웠던 사람들 중에 기회를 틈타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서 신분을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서로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일제식민의 삶을 살았던 우리나라도 그러했습니다.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서 갑작스럽게 부를 축적하고 국민을 배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러한 것이 청산되지 못해서 갈등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갈등과 문제 중심 속에 예수님이 뛰어 들어 오셨습니다.
본회퍼 목사님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기꺼이 악한 사람들에게 뛰어 들어가서 그들로부터 고난을 받을 때 그때 그에게 평화가 거대해지는 순간이 된다라고 했습니다.
다시말하면 대가없이는 평화를 이룰 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세상속에 갈등과 문제속에 있는 우리 속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대가를 치러시고 기꺼이 우리에게 평화를 선물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의 방법을 배우지 않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문제가 드러나고 공동체가 썩어갈 때 오히려 침묵을 강조합니다.
사랑한다면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고 아프더라도 그 상처를 빨리 도려내고 새살이 돋아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고 아픔을 당하더라도 기꺼이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일로 인해 잠시 소란이 있을 수 있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평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평화를 이루는 사람은 갈등과 고통, 고난, 오해, 희생, 충돌의 산에 기꺼이 올라가는 사람입니다. 때로는 그 모든 것들을 감당해 내기도 하고 때로는 버림받기도 합니다.
가짜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은 어떠하냐면, 침묵합니다. 가식적인 모습으로 자신은 괜찮다며 웃으며 그 자리를 피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조용하자면 달랩니다.
토마스 아캠피스는
모든 사람이 평화를 원하지만 평화를 위해 노력을 감내하는 사람은 극 소수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 없이는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화평은 없습니다.
골로새서 1:20 “20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평화를 이루셔서,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을,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다, 자기와 기꺼이 화해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통해 하나님과의 평화의 관계를 만드셨고 그 일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일을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삼기 위해서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의 대가를 치러신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해 고통속에 고난속에 뛰어 드는 사람을 하나님은 주목하시고 자신의 자녀로 삼으셔서 그들을 보호하시고 돌보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삶을 산다는 것은 입체적인 하나님의 보호와 돌보심이 있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자녀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내버려 두지 않는 것처럼 앉으나 서나 바다끝에 있던지 벼랑끝에 있던지 어디에 있던지 하나님의 눈동자와 손길이 하나님의 자녀와 동행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큰 복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에서 이렇게 사는 자들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받고 교회가 비웃음을 받는 상황가운데 있습니까. 침묵하지 마십시오. 고난을 받더라도 잘못된 썩은 부위를 걷어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라고 하신 말씀은 하나님의 입장과 우리의 입장이 동일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조롱받고 있는데 우리가 침묵한다면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참된 평화를 위한 길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자녀로 삼으시고 끝까지 돌보고 지키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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