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06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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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s
Transcript

하늘고 교사 여러분들 반갑습니다. 오늘 이렇게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모여서 교제하게 되어 너무나도 좋습니다.
오늘 또 이렇게 귀한 시간을 저에게 허락해주어서 말씀을 나누게 되었는데요, 특별히 또 주제까지도 사랑이라고 정해주셨어요.
물론 정해주신 거기도 하지만, 저도 우리에게 참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사랑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올해 우리 하늘고 하임의 목표는 교제였죠? 사실 교제를 하는데 있어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일 것입니다.
여러분들 혹시 사랑 해보셨나요? 아마 사랑을 안해본 사람은 없을거에요. 사랑을 해본적이 없다면 아마도 우리는 그 사람을 사이코패스라고 부를거에요.
그렇다면 한번 물어봅시다. 사랑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면 우리 한번 성경은 사랑을 뭐라고 하고 있는지 본문을 보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사도 요한이 먼저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그래요 사랑하는 것 좋습니다. 그런데 그냥 밑도끝도 없이 사랑하라고 하지는 않겠죠? 뒤이어 그 이유가 등장합니다.
바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래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일까요? 사랑이라는 개념, 감정 그 모든 것 자체가 바로 하나님의 속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랑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 안에 속해있다는 것이 될 겁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8절에서 요한은 또 반대로 이야기를 하죠?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이죠.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해야하는 이유로서 요한이 가장 먼저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사랑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것, 즉 하나님이 곧 사랑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성도라면, 그래서 하나님과 연합하고 하나님의 자녀된 자라면, 하나님의 고유한 감정인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면에 이런 생각이 들 수 있어요. 그러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은 뭔가요?
그렇죠. 방금 이야기한대로라면, 사랑이라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어야 해요.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는 것 잘 알거에요.
세상의 사람들도 사랑을 합니다. 기독교 외적인 철학에서도 서양철학에서도 사랑을 이야기하고, 동양철학에서도 사단칠정을 통해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사실 우리의 삶만 보아도, 믿지 않는 분들과도 연애 잘 하잖아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대체 이건 뭐라고 봐야 하느냐.
우리는 이것을 하나님의 일반 은총적 영역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창조를 통해 나온 피조물이고, 또 우리가 사는 세상 역시도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입니다.
당연히 그 안에 제작자의 흔적, 즉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날 수밖에 없을 거에요.
그래서 우리 인간의 내면에는 기본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 안에 존재하는 사랑은 우리 기독교인들의 사랑과 다른 점이 존재합니다.
그것은 뭐냐, 조건적인 사랑이 대부분이라는 것이죠.
무슨 얘기에요? 사랑을 하지만, 그만큼의 사랑이 오지 않으면 사랑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연애를 할때도, 내가 이만큼 해주는데, 그만큼 안돌아오면, 사랑을 못느끼게 된다는거에요.
대부분의 연애 문제들이 여기서 생길 때가 많죠. 그런데 이런 사랑을, 기브 앤 테이크가 확실한 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요? 오히려 계약관계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을거에요.
그러면 왜 그런 사랑을 하고 있느냐. 바로 인간이 죄로 인해 타락했기 때문이겠죠. 본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순수한 사랑을 할 수가 있었는데, 죄로 인해 인간이 타락하면서 자꾸 사랑의 진정한 모습이 아니라 삐뚤어진 사랑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히려 이 사랑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심지어는 죄악된 모습으로 나타나기까지도 하게 됩니다.
제가 지난주 금요일에 삼일교회 금요기도회 말씀을 들으면서 되게 인상깊었던 부분이 있었는데, 그게 어떤 것이었냐면,
사람은 정말 뛰어난 재주가 있대요. 근데 그 재주가 뭐냐면, 하나님께서 만드신 너무나도 아름다운 것들을 죄악된 모습으로 변질시켜서 사용한다는 아주 놀라운 재주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랑이라는 것도 인간의 놀라운 재주로 죄가 되어버리게 되었죠. 사랑이라는 이유로 잘못된 일들을 행하는 경우들이 참 많은거에요.
몇년전에 아주 유행했던 드라마의 명대사도 있었죠.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
그렇죠. 원래 사랑이라는 것은 죄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타락한 죄성으로 인해 그 등장인물의 모습과 같이 사랑을 죄로 만들어버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놀라운 인간의 재주를 덮어버리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모습이 등장을 합니다. 바로 이어지는 9절과 10절 말씀에 등장합니다.
요한1서 4:9–10 NKRV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어떤 말씀이 등장하죠?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운 사랑이라는 가치를 죄로 변질시켜버린 사람들의 재주를 뛰어넘어 다시금 온전한 사랑으로 변화시키시기 위해 하나님은 한 존재를 보내셨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변질된 사랑으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더 크신 온전한 사랑으로서 덮어버리신 것입니다.
요한은 이것을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두번째 이유로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을 우리에게 보이시고 나타내셨다라는 겁니다.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버리시면서까지 우리의 잘못된 사랑을 고쳐내시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모습을 보이신 것이죠.
그래서 앞서 말했던 세상의 조건적인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차원이 다릅니다. 세상적 가치대로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주실 수가 없어요! 왜? 우리가 드릴 수 있는 게 없으니까.
세상에서 사랑을 받기 위해서, 하다못해 전화로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뭐가 되어야 해요? 고객이 되어야 한다는거에요.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달랐죠. 고객이 아니더라도, 아니 오히려 하나님께 해악만 끼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임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스스로 낮아지셔서 죽음의 자리까지 거하시는 너무나도 크신 사랑이었죠.
우리는 그 사랑으로 인해 우리의 모든 변질된 ‘사랑’이라고 불렸던 계약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의 온전한 사랑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오로지 우리에게 부어졌죠. 10절에서 뭐라고 해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게 아니라고 하잖아요.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어느정도 사랑을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는 아무것도 안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냥 막 퍼부어주셨다는거에요.
요한은 그렇기에 11절에서 뭐라고 해요?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이 ‘마땅’하대요.
비록 우리가 서로의 모습이 온전치 못할 수 있습니다. 저 모습이 불편하고, 저 모습이 이상하고, 정말 사랑이 나오지 않는 그러한 순간들이 있겠죠. 우리가 지난 교사 모임때도 나눴지만.
하지만 그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이미 하나님 앞에 저런 모습이었는데, 큰 사랑을 받았잖아요.아니, 어쩌면 우리는 저 사람의 저 모습보다 더 안좋은 모습이었음에도 하나님께서 사랑을 주셨잖아요.
그러니 우리가 어떻게 다른 사람을 안 사랑할 수가 있겠어요. 그 모습을 안 품을 수가 있겠어요. 그것이 하나님 앞에 마땅한 것입니다.
마지막 12절 말씀을 한번 볼까요? 요한이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해야 하는 세번째 이유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요한1서 4:12 NKRV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요한이 제시하는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완성은 바로 그 사랑이 우리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완성이 됩니다.
심지어 요한은 그 사랑이 완성될 때 어떤 것까지 이루어지냐고 말하냐, 하나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고까지 말합니다.
어떻게 존재를 느낄 수 있느냐, 사실 하나님의 존재를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시고 너무도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부족한 피조물에게는 너무나도 넘치는 영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얼굴을 보고자 요청한 모세에게도 자신의 등만을 보이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모여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신대요? 우리 안에 거하신다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함께 모여서 정말 진정한 사랑, 조건적으로 맞아야 사랑을 주는 그러한 계약이 아니라, 정말 아무 조건이 없는, 순수한 하나님의 사랑을 행할 때에, 그 모습들을 통해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신다는 것입니다.
아마 이렇게만 들으면 직접적으로 잘 느껴지시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려운 이야기죠.
하지만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에게 너무나도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바로 교회 공동체이죠.
제가 여러번 교회 공동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었는데, 교회 공동체는 어떻게 이루어진다고 했었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용서 받았을 때, 우리는 예수님과 연합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가 사해지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받았죠. 그리고 그렇게 모든 믿는 자들이 예수님으로 연합이 될 때, 그것을 뭐라고 하는거에요? 교회라고 하는 것이죠.
그래서 흔히 예수님이 머리되신 교회 공동체라고 하는 것이, 예수님을 통해 모든 성도 한사람 한사람이 연합되었기에, 우리를 위해 큰 사랑을 행하신 예수님이 머리되시고, 우리도 그 사랑을 따라 각자가 하나의 지체로서, 누구는 손으로서, 누구는 발로서, 누구는 심장으로서, 누구는 장기로서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 모든 교회 공동체가 연합을 유지할 수 있는 매개체는 뭘까요? 바로 사랑입니다.
각 지체가 어딘가 부족함이 있고, 아픔이 있을 때, 다른 지체가 어떻게 해요? 그 부담을 떠안아주죠. 그 모든 것들은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그렇게 교회 공동체가 서로를 사랑함으로 하나의 몸이 되어 나아갈 때, 우리는 그 모습을 통해 진정한 하나님의 몸이 될 수가 있을 것이구요,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게 교회 공동체를 통해 완성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 공동체를 한번 볼까요? 우리 하늘고 하임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어쩌면 우리 하임공동체야 말로 이러한 모습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어쩌면 가장 조건적 사랑이 넘칠 수 있는 곳에서 어떠한 조건 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아끼는 모습들, 뿐만 아니라 힘들 때에는 정말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달려와 안아주는 모습들을 볼 때에, 정말 이것이야말로 교회 공동체의 모습이지 않나 생각이 됩니다.
물론 우리 공동체도 완벽하진 않죠. 분명히 부족한 모습들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건 그 부족함들을 제거하고 묻어두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함께 이겨내고자 한다는 것이 우리 공동체가 가진 세상과는 다른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냐, 바로 사랑의 확장일거에요.
사실 이정도로 오랫동안 유지되고 그 안에서 서로 사랑이 넘치고 하다보면 생길 수 있는 또다른 어려움은 그 공동체가 안으로는 너무나도 좋은데, 겉으로는 차가운 모습들이 생겨날 수가 있다는 것이죠.
굳이 비유하자면, 공동체가 겉바속촉이 될 수가 있다는 거에요. 겉바속촉은 먹을 때에는 좋지만, 공동체가 겉으로는 딱딱하고 안으로만 촉촉한 것은 문제가 있겠죠. 확장하지 못하고 그저 우리끼리만의 모습이 되어버릴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의 모습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향은 바깥으로 향하고 있어요.
우리의 이 촉촉함을 우리끼리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바깥에도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죠.
저번 설교때도 말한 것처럼 우리의 삶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충분히 전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안에서도, 또한 바깥으로도 주님의 온전한 사랑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면 분명히 세상의 조건적 사랑에 상처받고 지친 영혼들이 우리에게로 나아올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고, 그 온전한 사랑은 분명 그 영혼을 변화시킬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 공동체가 더욱 확장되어갈때, 저는 분명 우리 공동체가 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에 귀히 사용되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들도 느끼시겠지만, 앞으로의 세상은 아마 점점 악해지고 점점 힘들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세상이 그럴수록 우리 공동체의 모습은, 사랑은 더욱 더 귀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우리 안으로도 사랑을 전하고, 밖으로도 사랑을 드러낼 수 있는 우리 하임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찬양 : 사랑은 여기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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