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헛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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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dout
오늘 하루도 지켜주시고, 은혜로 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
능력과 믿음의 담대함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앞에 나오며,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과
주실 은혜를 사모하는 심령으로 귀한 예물 드리는 손길들 있습니다.
감사헌금, 일천번제, 00헌금, 00헌금을 올리오니
받으시고, 만복을 내려 주시옵소서.
드릴 것이 차고 넘치게 부어 주시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성령의 지혜로 깨닫게하시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믿음도 부어주소서.
부족한 종이 말씀을 대언할 때, 나의 연약함은 감추시고
하나님의 지혜만 나타나게 하옵소서.
말씀을 사모하여 주 앞에 나온 우리 영혼을 불쌍히 여기사
성령으로 기름부어 주시고, 내일을 살아갈 새 힘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렇게 일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모든 말씀 오늘도 살아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
전도서 1장 1~11절 말씀입니다.
전도서 1:1–11 NKRV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4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8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할렐루야.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성전에 모인
성도님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됩니다.
헛된 인생 살지 마세요.
오늘은 전도서 1장 1~11절 말씀을 통해
“모든 것이 헛되도다”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부터 전도서를 나누려고 합니다.
사람은 살면서 인생의 연륜이란 것이 쌓입니다.
그래서 10대의 묵상이 다르고, 30대의 묵상이 다르고,
50대, 70대의 묵상이 다릅니다.
세월이 갈수록 점점더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고,
삶을 대하는 자세가 조금 더 숙연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도 다양한 지혜서가 있습니다.
잠언이 청년의 책이라면, 중년에게는 욥기,
장년, 황혼을 위한 지혜서에는 전도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전도서의 저자.
모든 것을 가지고 누렸던 사람의 첫 마디가 ‘헛됨’입니다.
과연 전도서에는 어떤 지혜와 삶의 깊이가 담겨 있을까요?
우리가 말씀을 살펴보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깊은 메시지를 통해서 삶을 돌아보고 더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지혜로운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 1절은 저자에 대해서 소개합니다.
전도서 1:1 NKRV
1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
저자는 자신을 ‘예루살렘의 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서는 솔로몬이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별히 자신을 ‘예루살렘의 왕’으로 소개하는 것은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자리, 왕의 영화와 권세와
부귀를 누린 사람이 하는 말이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으로부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유산을 상속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지혜를 통해 무역을 활성화하여
나라를 더 많이 부강하게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왕권의 상징인 화려한 궁전을
13년동안 지어 완성하였습니다.
그리고 후궁이 700명, 첩이 300명이나 되었습니다.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렇다면 왜 전도서를 시작하는 서두에서
화려한 과거를 암시하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일까요?
그의 훈계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가르침이 되는 것은
바로 그가 누구보다 높은 곳에서 부러울 것 없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부와 명예와 쾌락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얻으려고 달려가는 삶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가장 실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입증하는 방법이
그 모든 것을 누렸던 사람의 입을 통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솔로몬은 또한 자신을 ‘전도자’라고 소개합니다.
전도자의 헬라어 ‘코헬렛’
‘불러모으다’라는 어원에서 파생된 뜻으로
‘백성들을 불러 모아 삶의 교훈을 주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실 솔로몬이 부귀영화를 누린 최고의 권력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젊은 시절 많은 신앙적, 윤리적 과오를 범했습니다.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무역을 강화하면서
많은 나라의 공주, 왕비와 정략결혼을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그 나라의 우상이 이스라엘에 들어오게 되었고,
백성들이 이방인과 결혼하고, 우상숭배를 하도록 조장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셨고,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갈라지게 되었습니다.
값진 교훈을 바탕으로 젊은 세대와 후손들이
자신과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전하는 일을
말년에 지상 최대의 과제로 삼았던 것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드러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허물은 숨기고 장점만을 내새우고 싶어하는 것이
사람의 본성적인 욕구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아이가 되어간다고’
인정받지 못하면 그렇게 서운해합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 붙잡아놓고, 내가 왕년에~ 라떼는 말이야~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며느리들이 시월드를 싫어하는 겁니다.
내가 며느리때는~ 내가 우리 아들을 키울 때는~
그런데 솔로몬은 나이가 들수록 인정받으려 하기보다
자신의 과오를 생각하며 모든 수고를 헛되다고 말하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께서 주신 전도자의 사명을 끝까지 완수하려는
영적 부담감, 자신을 내려놓는 희생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 역시 디모데전서 1장 13절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디모데전서 1:13 NKRV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바울은 자신의 실수와 부끄러움을 드러냄으로 하나님의 은혜,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 지를 나타내는 도구로 쓰임받았습니다.
그런 솔로몬이 이렇게 말합니다. 2절입니다.
전도서 1:2 NKRV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헛되다의 헬라어 ‘헤벨’의 의미는
‘숨, 입김, 안개, 이슬’ 등 잠깐 있다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역하면, 헛되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헛되다는 것을 5번이나 사용했다는 것은
강조를 넘어서 최상급의 표현입니다.
헛된 것들 중에 가장 헛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무수한 경험을 통해 느끼게 된 것은
다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인생이란 것이
너무나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꼭 솔로몬이 아니더라도 인생을 살다보면
세상 사는 것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모든 인생은
극한 허무에 한번쯤은 부딪치게 됩니다.
마치 죽음의 운명을 빗겨갈 수 없듯이 누구나 한번쯤은
본질적인 허무의 문제를 만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허무함을 세상의 허탄한 것들로
자기의 중심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불행의 출발점이란 사실을 잘 모릅니다.
어떤 이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어떤 이는 무수한 물질, 그리고 성공과 성취로,
심지어 어떤 이는 술과 막약으로
인생의 허무를 채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더 큰 탐욕과 집착,
헛된 욕망이 자리잡게 만들어
우리를 더욱 큰 불행과 비극으로 이끌어갈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허무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성경은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78편 33절에서 시인 아삽은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 78:33 NKRV
33 하나님이 그들의 날들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그들의 햇수를 두려움으로 보내게 하셨도다
하나님이 그들의 날들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을 헛되게 하셨습니다.
바울 역시 로마서 8장 20절에 모두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8:20 NKRV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피조물이 허무한 데는 자기 뜻이 아니라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 때문이다. 라고 말합니다.
굴복하게 하시는 이가 누구일까요?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인생을 허무하게 만드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본래 사람은 허무하게 창조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피조물 중에 가장 아름다고,
영화롭고, 존귀한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죄를 지음으로 생명의 하나님,
영생의 하나님, 삶의 근본이며, 진정한 의미와 목적이 되신 하나님과
분리되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생명이 없고, 삶의 진정한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린 인간은
당연히 허무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가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생의 허무를 극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죄를 해결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우리가 그분을 믿기만 하면, 우리의 죄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인생의 허무의 문제가 해결될 줄 믿습니다.
우리의 삶을 허무하게 만드는 죄의 권세를 무력화 시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전도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을까요?
첫째, 사람의 모든 수고가 헛됩니다.
전도서 1:3 NKRV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유익하다의 헬라어 ‘이트론’의 뜻은
‘남다, 남겨지다’라는 어원적 의미를 가집니다.
사람이 어떠한 수고를 한들 무엇이 유익한가?
즉 무엇이 남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항상 수고한 만큼 그 유익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공들여 대단한 것을 이루어도 곧 잊혀집니다.
어떨 때는 밤낮 고생하여 수고한 대가를
엉뚱한 사람이 누리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정말 나쁜 직장 상사들이 많지요.
설마 여러분~ 은 아닌줄 믿습니다.
이러니 얼마나 헛 된 인생들입니다.
수고와 노력만일까요?
우리의 생명도 세월 앞에 장사 없습니다.
나이가 들면, 힘이 쇄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사라집니다.
사회에서 이름도 잊혀지고, 영향력도 작아집니다.
더 많은 시간이 가면, 우리의 존재조차 사라집니다.
그러니 다 해냈다고 자만할 것도,
못했다고 자책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노력이
의미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른 삶의 자세라고 여러 곳에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모든 수고가 헛되다는 것은
바로 우리 영혼의 구원은 인간의 노력과 능력으로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 우리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오늘 전도서는 또 무엇이 헛되다고 말할까요?
둘째, 자연 만물이 모두 헛됩니다.
전도서 1:5–6 NKRV
5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6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영원합니다.
해가 뜨고 지는 것, 바람이 여기 저기로 부는 것.
그리고 7절의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것.
이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입니다.
그럼에도 자연 만물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변하지 않지만,
이것으로 우리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전도서 1:7 NKRV
7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아무리 강물이 많다 하여도 바다를 다 채울 수 없습니다.
강물이 바다를 채울 수 없듯이 자연만물의 위대함
자연이 주는 음식과 풍성한 에너지, 하나님의 일반계시가
우리 인간의 마음을 다 채울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제아무리 많은 노력과 수고를 하여도
본성적으로 제한되었기 때문에 완전한 성취,
충족한 삶, 참 의미있는 삶을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간절히 원하는 걷을 얻기만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막상 원하는 것을 얻게 되면 기쁨과 행복은 잠시.
더 크고 높은 것에 마음을 두고, 그것을 탐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의미없고 특별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55장 2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사야 55:2 NKRV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세상의 그 어느것으로도 배부를 수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이 처한 삶의 현실입니다.
그리고 또 마지막으로 무엇이 헛되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셋째, 해 아래 새 것은 없습니다.
전도서 1:9–10 NKRV
9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10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새 것은 유한한 인생을 새롭게 할만한 것입니다.
그런데 죄로 인한 인생의 절대적 허무 앞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늘 유한성 속에 머물수 밖에 없습니다.
앞 다투어 산 신상도 산 즉시 중고가 됩니다.
요즘은 ‘분조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무슨 뜻인지 아세요? 분위기 좋은 카페.
벌써 세대가 지나니깐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유한의 한계 속에 살아갑니다.
여러분들도 요즘 ‘분조카’ 많이 찾아다니시지요?
정말 신박한 곳, 분위기 좋은 카페를 찾아 인증샷을 찍는 순간
곧 추억이 되고, 지나간 과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새로움을 추구하지만
시간의 한계 속에는 새로움이 없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달라져도, 내가 변하지 않는 한 세상은 그대로입니다.
어떤 이는 그래도 과학과 기술과 문명이 발달하면서
과거와 비교해볼 때 컴퓨터, 자동차, 티비, 편리한 가전제품,
핸드폰, 인공위성 등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허무함을 달래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허무를 느낄 시간조차 없이 우리의 인생을
즐겁고 의미있게 만들어준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정말 여러분의 삶에 허무함이 사라졌습니까?
완전한 만족과 기쁨으로 가득차 있습니까?
오히려 현실은 더 많은 사람들이 불만족과 불평, 원망과 초조,
강박과 불행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정신병이라고 하면 아주 특별한 사람만 해당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즘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정신병 하나쯤
달고 살아갑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생의 본질에서 허무함을 해결해 줄
‘새로운 것’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전도서 1:11 NKRV
11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
세상에서 아무리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잊혀질 수밖에 없습니다.
불과 1년 전에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들조차
쉽게 기억해내지 못하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하물며 수십년, 수백년 전의 일은 어떻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게 될지,
얼마나 오랫동안 기억될 것인지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의미한 인생 가운데 참으로 의미있고
기억될 인생, 기억될 만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사람들에게 기억되려 하기보다 하나님께 기억되는 삶.
하나님 앞에서 아릅답고 선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분을 의지하며 사는 삶을
영원히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영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서울제일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날에도 많지는 않지만 사람들에게 깊이 있게 박혀있는
역사적 영웅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세종대왕처럼 대대로 기억되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세상 가치로 볼 때 그들의 삶은 의미있다고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그들의 삶이 헛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그들도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앞에서 어떻게 기억되는지에 따라 그 인생이
멸망으로 이르게 될 수도, 구원을 성취하는
성공한 인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6:10 NKRV
10 하나님은 불의하지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고 있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하나님은 그분을 위하여 사랑으로 섬긴 것을
절대 잊지 않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영원히 기억되는 것입니다.
이시간 우리가 이 찬양을 고백하기 원합니다.
“세상이 당신을 모른다 하여도 주님은 그 이름 마음에 새겼네”
세상이 우리의 이름을 모른다 하여도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영혼의 문제와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뭣보다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인지
우리가 그것을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헛된 세상에서 헛되지 살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돈과 명예, 성공과 성취과 아니라 영원한 것을 아는 지혜입니다.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꿈
그 꿈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
그것이 우리의 참된 소망, 참된 의미가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 소망을 가지고 함께 찬양하기 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없는 인생의 무상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기억함으로 의미있는 삶을 살게 하소서
삶의 목적와 의미를 잃어버린 영혼들이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게 하소서
특별히 이번주일 창립기념예배와 팀별찬양축제를 통하여 장결자, 잃어버린 영혼들이 돌아오고, 새가족들이 정착하는 기회가 되게 하소서
몸과 마음이 아픈 영혼들을 치유하여 주소서.
각자의 기도제목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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