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07 금요기도회: 시편 37: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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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금요기도회 자리로 부르시고,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심에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나님. 저희에게 많은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주변에 아프신 분들, 어려움을 당하신 분들, 또 죄와 악인들로 인해 고통받아 신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 이러한 기도제목을 가지고 나아왔으니 저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깨달아 하나님으로 인해 어떠한 순간 속에서도 기뻐하는 저희가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그 복을 누리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한 주를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37:21-33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시편 37:21–33 NKRV
악인은 꾸고 갚지 아니하나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주는도다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하고 주의 저주를 받은 자들은 끊어지리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영원히 살리니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그들은 영원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서 영원히 살리로다 의인의 입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하며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금요기도회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오늘도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풍성한 교재를 누리시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오늘도 말씀을 두고 먼저 기도하면 좋겠는데요. 오늘 말씀은 새벽기도회에 있어서 시편 37편 말씀입니다. 새벽에는 악인들로 인해 불평하지말고 그들을 시기하지 말며 하나님을 의지할 것을 다윗이 말하였다면 이번에 다윗은 그러한 믿음 안에서 견디는 의인에게 하나님은 공급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함께 듣고 하나님의 공급과 보호를 받는 의인이 되길 소원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시편기자인 다윗은 지금까지 악인에 의해 의인이 고통받을 때 믿음 안에서 견디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본문에서는 의인이 받을 복들이 무엇인지 말하기 시작합니다. 21-26절을 한 단락으로 묶을 수 있는데요. 여기서 다윗은 마치 수미상관 구조로 의인의 한 가지 특징에 대한 묘사로 시작하고 끝냅니다. 바로 의인은 은혜를 베풀어준다는 겁니다.
21절에서 다윗은 의인과 악인의 차이점을 말하는데요. 그것은 악인은 꾸고 갚지 않지만, 의인은 은혜를 베푼다는 겁니다. 바로 악인은 탐욕스러워 빌린 것을 갚아야 함에도 갚지 않지만, 의인은 은혜를 베푸는 자라는 겁니다. 앞절인 19절에서 다윗은 의인은 “기근 날에도 풍족할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의인이 심지어 기근 날에도 풍족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풍족함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으로부터 먼저 은혜를 받은 의인은 은혜가 무엇인지 알기에 은혜를 베풉니다. 은혜가 무엇인지 아는 의인은 자신이 더 큰 복을 받기 위해 남을 돕는 것이 아니라 먼저 은혜받은 자로서 그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궁핍한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줍니다. 하지만 악인은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철저하게 자기 자신만을 생각하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빌린 것도 갚지 않는 탐욕스러운 자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것이 내 것을 떼어준다는 것으로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도 맞지만 내가 받는 것뿐만 아니라 내 것을 주는 것 또한 복입니다. 내가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도움을 베풀었을 때에 찾아오는 기쁨은 도움을 받을 때에는 느낄 수 없었던 기쁨입니다. 오히려 더 큰 기쁨일 때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남에게 은혜를 베풀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경험적으로 더 잘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은혜를 베푸는 것이 복입니다. 자기 자신만 아는 악인은 은혜를 베풀지 않으니 이 복을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은 정말로 큰 복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따스함을 느끼는 것은 돈을 주어도 느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의인의 특징에 대해서 묘사한 다윗은 이어서 그다음 구절에서 의인이 받을 복에 대해서 더 묘사합니다. 22절에서 다윗은 “주의 복을 받은 자들은 땅을 차지한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의인과 달리 악인은 땅에서 “끊어질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악인은 땅을 차지하고 그들 자신을 위해 독식하는 것처럼 보일진 몰라도 언젠가 하나님께서 이 악인들을 땅에서 제거시켜 결코 누리지 못하게 하실 겁니다.
또한 다윗은 23-24절에서 의인들이 하나님 안에서 안전하다는 것을 상세히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의 발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신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의인의 모든 활동이 안전하고 확실해진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활동은 의로운 활동입니다. 왜냐하면 새벽에 살펴본 5절에서 의인은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이 목자가 되어 인도하시는 삶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다윗은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현실적인 말을 합니다. 24절입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바로 다윗은 죄로 인해, 혹은 악인들의 공격으로 인해 넘어진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의인들은 삶에서 죄와 악인들로 인해 넘어질 수 있습니다. 당장 우리의 삶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매번 똑바로 선 채로 걸어가면 참 좋겠지만, 매순간 우리를 죄와 악인들이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은 “길”, “넘어짐”, “엎드러짐”이라는 표현을 통해 삶의 경험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죄와 악인은 언제나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엎드러지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말하듯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손으로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악인에 의해 공격받아 어려움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시기 때문에 그 공격이 치명적이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계신다고 말한 다윗은 이어서 하나님께서 의인들에게 얼마나일관되게 공급하시는지 말합니다. 아마 이 시편은 다윗이 노년에 쓴 시편 같습니다. 노인이 된 다윗은 지난 과거들을 회상하면서 25절에서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것은 의인이 절대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은 아닙니다. 19절처럼 기근이 의인에게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손으로 붙드시며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또한 의인에게 베푸신 풍족함을 그의 자손에게까지 베푸심으로 자손도 결코 굶지 않도록 공급하십니다. 자녀를 가진 부모는 자신이 굶는 것보다 자녀가 굶는 것이 더 걱정되고 신경쓰일 겁니다. 자녀를 배부르게 만들어주고 싶고, 어느 때든지 굶지 않게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 부모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가장 잘 아십니다. 우리를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인 백성들이 굶지 않도록 공급하실 뿐만 아니라 그 백성의 자녀까지도 굶지 않도록 공급해주십니다.
다윗이 이러한 경험을 한 것은 아마 하나님을 예배한 뒤에 함께 나눠먹는 제물로 알았을 겁니다.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은 언제나 성막 혹은 성전에 가서 예배에 사용된 음식을 받고 먹을 수 있었습니다. 특히 화목제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의인이 그들의 밭에서 사람들에게 이삭을 줍도록 허락하라는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이 율법의 수혜를 받은 사람이 바로 룻입니다. 보아스의 밭에 간 룻은 떨어진 이삭을 주워 궁핍하였지만 그녀의 시어머니 나오미와 결코 굶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의인에게 어려움은 찾아올 수 있으나 결코 굶지 않도록 만드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율법은 결국 우리의 복을 위해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다윗은 자신이 직접 경험하였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의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노래하는 시편으로 기록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단락의 마지막인 26절에서도 “그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의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며 시작인 21절과 마찬가지로 의인은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는 자이며 그의 자손 또한 복을 받는 자임을 노래합니다. 시편 15:5은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아니하며”라고 말합니다. 바로 의인은 돈을 꾸어 주지만 이자를 받기 위해 꾸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의인 자신도 하나님으로부터 거저 받았기 때문입니다. 거저 받은 것을 거저 주는 것이 의인의 특징입니다. 참된 의인은 궁핍한 자들에게 빌려줄 때 전혀 이자를 받지 않을 겁니다.
또한 의인이 받은 복은 그의 자손에게까지 이어집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의 자손도 그가 하나님을 위해 한 것이 없음에도 은혜를 거저 받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의 자손도 복을 받길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매주 주일마다 듣는 십계명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자신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으시는 것을 겨우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시지만, 자신을 사랑하고 계명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무려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삼 사대와 천 대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우리의 자손이 복을 받길 원하시지 저주를 받길 원하시는 분이 아닌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러한 복을 받은 의인의 자손도 자신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의인이 되어 같은 방식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게 될 겁니다.
이렇게 우리는 21-26절에서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어떤 복을 주시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의인이 엎드러지지 않도록 보호하시고 굶지 않도록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앞에서 살펴봤다면 이제 다윗은 27-33절에서 하나님께서 의인을 악인과 같이 심판받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말합니다. 수요강론 때 목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분노의 심판은 하나님을 믿는 의인의 것이 아닙니다. 그 심판은 모두 악인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에서 의인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호하시는지 다윗은 말합니다.
먼저 다윗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신다는 것을 말하지 않고 27절에서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라며 명령합니다. 우리가 새벽에 살펴본 말씀에서는 “여호와를 신뢰하고 선을 행하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악을 떠나 선행하라고 명령합니다. 우리가 의 안에서 견디려면 악을 단호히 거부하고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선을 추구해야 합니다. 죄와 악인은 우리를 공격할 뿐 아니라 우리가 악을 저지르도록 충동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악행을 하는 것은 즐겁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변과 뉴스를 보십시오. 의도적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악행하는 자들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그것을 원했고 즐거워하기 때문에 저지른 겁니다. 우리에게도 죄와 악인은 악행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이며 즐거운 것이라며 충동질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단호히 그것을 거부하고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선을 추구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만일 그러한 하나님에 대한 신실함이 있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복은 27절 하반절이 말하는 것처럼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악인의 삶은 이 세상에서의 일시적인 삶이지만, 의인의 삶은 영생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의인에게 주어진 영생이라는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 복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고통받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고통은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에게 약속된 것은 영원한 삶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신에게 신실할 수 있도록 결코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지키고 살 수 있는 이유를 다윗은 이어서 말합니다. 바로 28절에서 “여호와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불의가 아닌 정의를 사랑하시고 그의 거룩한 백성인 성도를 버리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신실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의인은 영원히 보호를 받지만,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며, 22절과 마찬가지로 29절에서 의인은 땅을 차지하지만 악인은 땅에서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가 신실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는 겁니다. 30절에서 다윗은 “의인의 집은 지혜로우며 그의 혀는 정의를 말한다.”라고 말합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그분께 나의 삶을 드리는 것을 말하며, 정의는 하나님의 판단으로 올바른 결정들을 내리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오늘 본문에 따르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것이 지혜이며 먼저 은혜받은 자로 궁핍한 자를 돌보는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정의입니다. 하나님을 믿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정의가 있는 의인은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을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원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으며, 그가 원하기 때문에 궁핍한 자를 돌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증거들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며 하나님의 의를 어떠한 순간 속에서도 신실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또한 31절에서 다윗은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다.”라고 말합니다. 바로 율법이 의인의 마음에 있어 그들이 실족하지 않도록 보존한다고 말합니다. 의인은 율법을 알고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좋은 것들을 말하는 자입니다. 그렇기에 결코 실족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며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의인이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다윗은 다시 한번 반복하여 32-33절에서 “악인이 의인을 엿보아 살해할 기회를 찾으나 여호와는 그를 악인의 손에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하면서 의인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여기에서 다윗은 악인은 의인의 목숨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앞에서 다윗은 악인은 의인이 넘어지게 만든다고 하였지만, 여기에서 다윗은 의인을 해치거나 방해하는 것을 넘어서서 의인을 멸망시키는 자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이 악인들의 계획은 실패합니다. 왜냐하면 33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의인을 악인이 마음대로 하도록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의인을 재판 때에도 정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원수인 사탄은 참소하는 자입니다. 악인 중 악인인 사탄은 우리의 죄를 하나님께 고발하며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하는 자임을 말하려고 할 겁니다. 그러나 의인은 법정에 끌려간다고 하더라도 결코 유죄 판결을 받지 않고, 하나님께 정죄를 받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인을 사랑하시고 악인을 미워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의인을 구원하시고 세상에서 악인들을 제거하실 겁니다. 이것이 오늘 시편에서 다윗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시편에서 다윗은 의인이 되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을 받는 것인지를 말하였습니다. 의인이 되는 것조차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 의인의 삶을 이끌어가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의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삶입니다. 의인이 하나님의 의를 지키고 신실하게 살 수 있는 것도 그 마음에 율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신약에 살고 있는 우리는 더 큰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탄의 참소에도 정죄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공로 덕분입니다. 다윗은 명확하게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더라도 메시아로 인해 재판 때에도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완벽한 의를 지키신 그리스도가 있기에 우리는 결코 정죄받지 않습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도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시편에서 다윗이 말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공급하시고 보호하시는 복을 누리며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의를 지키며 신실하게 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참된 의인이신 그리스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결코 굶주리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먼저 거저주신 그리스도가 있기에 우리는 궁핍한 자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우리에게 승리하신 그리스도가 있기에 우리는 죄와 악인이 공격할지라도 영원히 보호를 받습니다. 그리스도가 있기에 우리는 정죄받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복의 출발은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참으로 그렇습니다. 삶에서 죄와 악인은 우리를 언제나 호시탐탐 노립니다. 그럴 때 우리는 낙망하고 힘들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지킬 수 없던 의를 완벽하게 지키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완전한 의인이 되어 결코 굶주리지 않고, 엎드러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의를 지키며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오히려 궁핍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는 자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시편 37편이 우리에게 주는 위로와 소망이며, 다윗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노래입니다. 살아가면서 다윗이 했던 이 노래가 우리의 노래가 되어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하는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의인에게 어떻게 공급하시고 보호하시는지를 노래하였습니다. 의인은 결코 굶지 않으며, 엎드러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의를 지킬 수 있고, 더 나아가 악인과 같이 심판받지 않습니다. 의인을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된 의인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를 의인으로 삼아주신 그리스도께 감사하며 우리도 오늘 다윗의 시편의 의인처럼 사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궁핍한 자를 돕고 하나님의 의를 지키는 삶이 얼마나 큰 복인지를 다윗과 같이 경험하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이 시간 같이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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