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으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안식일의 역할
일(work)은 적절한 조건 내에서는 선하다. 창세기 2장에서는 하나님을 식물을 심고 정원을 가꾸는 일꾼으로 묘사한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창조하시고, 만드시고, 채우시고 나서 모든 것을 ‘좋다’(선하다)고 여기셨다. 창세기 3장 이후부터 일이 수고로 변했다. 창조의 마지막 날에 나오는 짧은 두 문장(2:2–3)이 결국에는 이스라엘과 초대 교회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를 쉬시고 당신의 쉼을 ‘거룩하다’고 여기셨다. 우리 문화에서는 ‘거룩하다’라는 단어에 의미를 과도하게 부여한다. 아주 간단히 말하자면, 여기에서 ‘거룩하다’는 ‘따로 떼어놓다’와 같은 뜻이다.
안식은 일이 아니다. 안식일의 어원은 히브리어 샤바트(shabbat)로, 샤바트를 직역하면 ‘쉬거나 중단하다’라는 뜻이다. 이 안식일은 거룩하게 복을 받았으며, 특별한 목적을 위해 따로 떼어놓은 날이다(2:3).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후에 예언자들에게 계속해서 집중 포화를 받았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일의 기초이지, 창세기 3장에서 발생한 암과 같은 수고에 대응하기 위해 덧붙인 사항이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신약에서는 안식일이 폐지되기는커녕 예수님은 안식일이 인류를 위해 있다고 하시면서 새로운 방향으로 유대교의 태도를 전환시키신다(막 2:23–28). 유대교 지도자들은 안식일의 역할을 시행해야 하는 일종의 의무로 오해했지만, 예수님은 안식일이 창조에서 비롯되었으며, 그렇기에 우리와 우리 가축들과 종들을 위한 날임을 일깨우신다. 다시 말해서, 어떻게 해서 안식일이 우리 삶의 체계를 잡아 줄 뿐 아니라 사회와 정치의 체계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지를 지도자들에게 상기시키신다. 안식일의 양면을 보지 못하면 결국은 잘못되게 이해할 수밖에 없다.
창세기를 제쳐두더라도 안식일을 대충 다룰 수는 없다. 안식일은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서도 중심 역할을 해서, 안식일을 기준으로 일주일과 1년과 온갖 절기의 체계가 잡힌다. 안식년은 종살이의 최대 기한으로, 7년이 한 주기가 된다(신 15:12). 토지의 소유권 해제도 안식년 주기를 기반으로 한다(레 25:31). 전국적으로 지키는 안식일 덕분에 인권과 동물권이라고 알려진 권리의 전제 조건이 처음으로 생겼으며, 누구나 사회경제적인 지위와 관계없이 평등하게 매주 쉬게 되었다고 주장한 이들도 있다. 종과 나귀와 일꾼은 모두 일주일에 하루를 쉬라는 명령을 받았다. 안식일이 창조에 뿌리를 둔 (하나님이 직접 실행하신!) 관습이라는 사실은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어길 때마다 예언자들에게 꾸지람을 받는 근거가 되었다(느 13:18; 사 56:6; 렘 17:27). 예언자들은 안식일을 경외하는지를 보고 이스라엘을 판단했으며, 이 판단은 정의를 촉구하는 내용으로 이어지기도 했다(사 56:2; 렘 17:21–27 참조).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27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