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과 므비보셋 / 삼하 19:24-30 / 151장 만왕의 왕 내 주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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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이렇게 저희들이 호흡할 수 있도록 산소보다 귀한 예배의 자리로 불러주시니 주님의 은혜를 찬양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한 주간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에, 여전히 공허함과 무력감과 허탈감에 빠져서 도대체 인생은 무엇인지 어찌 살아가야 하는지 방황하게 되고, 혹은 삶의 문제로 인하여 너무나도 지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빠지기도 하고,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흐르는 대로 살아갈 때가 많았음을 주께 자백합니다. 그러나 아버지, 다시금 눈을 들어 주를 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를 보호하여 주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심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지나치게 빠르게 가지 않게 하여 주시고, 또한 지나치게 느리게 가지 않게 하여 주시고, 언제나 우리의 보호의 전문가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삶을 걸어가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캠프에 간 담임목사님을 위하여 기도하오니,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진행되는 모든 일정 가운데 함께 하여 주셔서 지치지 않게 하여 주시고, 예수로 더욱 충만케 하여 주시고, 캠프를 통하여 우리 교회에 영적인 양식을 공급하는 목회자가 더욱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우리 환우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환우들을 치료하여 주시고, 우리 환우들은 치료 회복 그 다음 기도를 하게 하여 주셔서 예수님을 찬양하는 아름다운 성도가 더욱 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대한민국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진 나라임을 분명히 기억하며, 정말 당연하게 공산화되고, 복음의 문이 닫혀져서 가장 비침한 나라가 되었어야 했는데, 주님의 은혜로 이 나라가 세워졌습니다. 이것을 날마다 기억하며, 이 시대 복음이 사라져가서 위기이지만, 다시금 예수님을 찾는 대한민국으로 더욱 굳건하게 세워주시옵소서. 아버지, 이 시간에 말씀을 듣습니다. 말씀 가운데 찔림이 있게 하여 주시고, 그 찔림이 부정적인 반응이 아니라, 회개하는 반응으로 이어지게 하여 주셔서, 더욱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기도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감사드리며 구원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서론

하나님의 말씀은 19장 24-30절 사무엘하 의 말씀입니다. 같이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읽음) /// 오늘도 이렇게 6월6일 목요일 새벽예배에 나오신 우리 성도 여러분들을 가장 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월요일날 다윗과 바르실래를 살펴보았지요. 바르실래 본문은 선행을 하면 보답이 따라온다. 이런 교훈의 말씀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릴 의인, 영적 부자, 영적 바르실래로 만들어주셔서, 자연스럽게 선행의 열매들이 맺어진다 / 이렇게 설교하였습니다. // 이번에는 그 전에 있는 본문, 다윗과 므비보셋입니다. 이 므비보셋은 사울 집안의 자손입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 이 요난단의 아들 므비보셋입니다. 그는 다리 저는 자였습니다.
므비보셋은 19장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하여 다윗과 다윗의 백성들이 다 피난가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므비보셋의 종 시바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 시바라는 종이 므비보셋을 속이고, 다윗 왕께 가서 모함을 하였던 것이죠. 그렇게 므비보셋은 다윗이 피난갈 때에 함께 따라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다윗이 이제 왕권을 회복하고, 돌아올 때에 므비보셋을 만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다윗과 므비보셋의 대화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먼저 24절에 이 므비보셋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므비보셋은 어떤 마음으로 다윗 왕을 기다렸는지 돌려서 말해줍니다. 그의 저는 발을 꾸미지 않고, 수염도 깍지 않고 옷도 빨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므비보셋은 슬픈 마음으로, 애통하는 심정으로 다윗 왕을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제 다윗 왕이 함께 따라가지 않았던 므비보셋에게 묻습니다. 어찌하여 너는 나와 함께 가지 않았으냐.
므비보셋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나의 종, 시바가 나를 속이고, 왕께 모함하였습니다. 왕이시여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와 같으니 판단하여 주옵소서.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그러면서 므비보셋은 매우 중요한 논리를 펼치게 됩니다. 다윗 왕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중요한 논리를 펼치게 됩니다.
2 Samuel 19:28 NKRV
28 내 아버지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내게 아직 무슨 공의가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하니라
므비보셋은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알고, 논리를 펼칩니다. 왕이시여 저는 당신 앞에서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왕께서 나를 왕의 식탁에 두셨사오니, 제가 어찌 무슨 공의가 있어서 왕께 부르짖을 수 있겠습니까?
므비보셋은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았습니다. 나는 사울 집안 사람이다. 즉 나는 이미 죽어 마땅한 사람이다. 그런데 다윗이 나를 살려주셨다. 내가 어찌 왕께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은 므비보셋의 논리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므비보셋의 종 시바의 말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9절에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재산을 나누라 이렇게 명령합니다. 그 다음에 므비보셋의 말이 굉장히 인상 깊습니다.
2 Samuel 19:30 NKRV
30 므비보셋이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왕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그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하니라
므비보셋은 다윗의 명령에 조금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습니다. 므비보셋은 다윗 왕이 돌아오길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렸습니다. 그렇기에 재산을 반으로 나누라는 명령에 조금도 기분이 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큰 제안을 하죠. 저의 재산을 다 주겠습니다. 왕이 평안히 왕궁으로 돌아오셨사오니, 저는 이것으로 만족합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큰 중요한 진리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알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알았습니다. 나는 이미 죽은 사람이다. 자격 없는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이것을 명확히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다윗의 왕의 명령에 요즘말로 조금도 긁히지 않았습니다. 조금도 기분 나빠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람들에게 기분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의 말이나, 설교 시간에, 종종 기분이 언짢아지는 경험, 긁히는 경험, 기분 상하는 경험을 할 때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기분 나쁠 때가 있습니다. 차라리 욕을 해줬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각자마다 긁히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기분 나빠하는 포인트가 있습니다. 저는 기본적인 것도 모르냐. 이러한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힘들어집니다. 차라리 욕을 듣는 게 더 낫습니다. 이렇게 각자마다 연약한 부분들이 있죠.
그러나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금 제대로 알게 되면 우리는 사람들의 어떠한 말에도 쉽게 기분 상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자격없는 죄인입니다. 죽어 마땅한 죄인입니다. 벌레와 같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자격없는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아무 공로 없는 우리를 예수님께서 일으켜 세워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얼마나 큰 죄인인지 제대로 알게 되면 사람의 말에 쉽게 긁히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죠. 사람들이 공격할 때, 상처받지 않고, 오히려 그 공격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더욱 회개하고, 예수님께 나아가는 기회로 삼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좋은 교회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세상에는 수많은 교회들이 존재합니다. 정말 사이비같은 교회들도 있고, 사기 치는 교회들, 윤리적인 교회들 다양한 교회들이 존재합니다. 교회들 중에서 좋은 교회는 어떠한 교회일까요? 오늘 말씀에 비추어보면, 죄인 만들어주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것이죠. 교회 왔을 때, 예배 드릴 때 내가 정말 죄인이구나. 이렇게 생각이 들게 만들어주는 교회가 좋은 교회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알려주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죄인임을 알아야 예수님께 엎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을 제대로 알려주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선포하는 교회가 좋은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게 되면, 내가 얼마나 벌레와 같은 죄인인지 알게 되는 것이죠. 내가 누군지 제대로 알고, 예수님을 깊이 알면, 사람들의 말에 긁히지 않고, 들어야 할 것은 제대로 듣게 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예인교회는 정말 좋은 교회입니다. 죄인 만들어주는 교회이기 때문이죠. 예수를 선포하는 교회이기 때문이죠. 정말 좋은 교회입니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태신자들을 가짜 교회, 나쁜 교회, 거짓된 교회가 아니라, 좋은 교회, 의인 만들어주는 교회가 아니라 죄인 만들어주는 좋은 교회 우리 예인교회에 6월 16일날에 데려오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 이 시간 기도하실 때,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금 더 깊이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가 자격없는 죄인임을 기도 시간에 더욱 깊이 깨달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설교 시간에도 죄인이라는 진리 선포에 깊이 찔리게 하여 주시고, 마음 문을 닫는 게 아니라 오히려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께 마음 문을 활짝 열게 하여 주옵소서. 죄인임을 깊이 깨달아, 예수님의 은혜를 더 깊이 경험케 하여 주옵소서.
우리 이 시간 자유롭게 기도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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