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 창세기 15:1-7)

정규설교(창세기)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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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5수요예배
제 목: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람
본 문: 창세기 15:1-7(구약 17쪽)
찬 송: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 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이르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린 자가 내 상속자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1. 도입
요즘 이유가 되고 있는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이 있습니다. (사진)
사건의 개요는 이러합니다.2023년 7월경 경북 예천의 수해 현장에서 실종자가 발생했습니다. 실종자 수색을 위해 해병대원들이 투입되었는데 그 중 채수근 상병이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 사건에 지휘계통에 위법한 사실이 있는지 수사하는 과정에서 외압 의혹이 불거지게 됩니다. 이 사건 두고 여야가 대립하며 공방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여당의 입장은 이미 공수처에서 수사하는데 한 사람의 죽음을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라 주장합니다. 야당에서는 법 앞에 공정한 수사를 위해서 특검이 반드시 필요하다 주장합니다. 하나의 사건인데도 각자 다른 주장으로 대해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양측의 주장을 하나하나 들어보면 각자의 주장이 나름의 설득력이 있습니다. 각자의 정치적 입장과 옳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사건만 의견 대립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사진)
교회에서도 여름철에 에어컨에 대한 민원이 많이 들어옵니다.
한편에서는 ‘너무 춥다 에어컨을 꺼달라’, 다른 한편에서는 ‘너무 덥다 에어컨을 켜 달라’ 말씀합니다. 그러면 추운 분들에게는 에어컨이 에어컨 바람이 약한 쪽에 앉으시거나 가벼운 겉옷을 챙겨오실 것을 권유 드립니다. 그리고 더위를 많이 느끼시는 분들에게는 에어컨 바람이 잘 오는 곳에 갈 수 있도록 권유합니다. 그런데도 민원은 여름철이 지나갈 때까지 계속됩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느끼고 선호하는 ’적정 온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선호하는 적정 온도는그날의 컨디션, 기분, 옷차림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도 마찬가지입니다.그날의 기분, 소속, 주어진 상황과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가룟 유다를 보십시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는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 나라 복음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 직접 보고 경험하고 심지어 을 예수님의 사역을 도왔습니다.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옳고, 그분의 사역이 참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의 마음가짐에 마귀가 예수임을 팔 생각을 넣어줍니다.
요13: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원수 된 자 마귀가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어주자 가룟 유다의 생각이 바뀝니다. 이전까지 예수님은 참된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생각이 들어오자 예수님이 팔아넘겨야 할 대상이 되었습니다. 옳음의 기준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옳음의 기준이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무엇인 옳은가?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것인가? 생각에 빠질 때 혼란스러워할 때가 있습니다. 혼란스러움을 넘어 가룟 유다는 죄책감과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인해 스스로 삶을 마감해 버립니다.(2초 쉬고)
그런데 여러분 우리 안에 혼란을 줄여줄 수 있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바뀌지 않는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제시하는 옳음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2. 본론
1) 변하지 않는 기준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따라 해 보겠습니다. 변하지 않는 기준은 하나님을 믿음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6절을 보시겠습니다.
창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그의 의로 여기고”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의롭다 여기십니다.
여기서 의롭다의 원어의 의미에는 ’의로움‘이란 의미와 함께 “올바름”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대해서 “너 참 의롭구나”, 이 말은 “너 참 올바르구나, 옳구나”라는 말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하나님은 아브람을 보시고 “옳다, 바르다”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바르다고 인정하시는 것은
그의 삶의 모든 순간이 정당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흠이 없기 때문도 아닙니다.
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 믿음을 보시고 ’넌 참 옳구나“ 선언하셨습니다. 하님의 옳음의 기준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옳다고 선언하신 아브람의 믿음은 구체적으로 어떤 믿음일까요?
아브람의 믿음은 구체적인 내용이 동반되는 믿음입니다.
서울 서초구역에 광고가 설치되어있는데, 복음을 전하는 광고입니다. (사진)
그 글귀를 읽어드리겠습니다.
사랑한다면 눈을 감아 보세요.
우리는 살면서 사랑한다는 말을 참 많이 듣고 많이 합니다.
어떤 사람을 생각하고 아낀다는 표현이 사랑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알고 계세요?
사랑보다 더 깊고 깊은 표현이 바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기도’라는 것을요.
정말 사랑하세요? 그러면 조용히 눈을 감고 하나님께 기도해보세요.
사랑한다는 한마디 말보다 더 많은 사랑이 돌아갈 겁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이 광고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사랑한다면, 그를 향한 ‘기도’라는 구체적인 내용이 있어야 함을 말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에는 구체적인 내용이 포함됩니다. 바로 ‘말씀에 설득됨’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을 따라 고향을 떠나왔습니다.
그가 고향을 떠나옴은 하나님의 말씀에 설득됨입니다.
하나님의 후사를 주시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자, 자신의 종 ‘엘리에셀’을 후사로 삶겠다고 하나님께 말씀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람에게 말씀합니다.
4절과 5절을 보시겠습니다.
창15: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창15: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으로 후사를 얻을 방법이 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아브람을 이끌어 별들을 보여주며 네 자손들이 이와 같이 되리라“말씀하실 때
그 말씀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설득되었습니다.
그 마음에 아브람의 생각와 경험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말씀에 설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설득되는 아브람의 이 믿음으로 보시고 바르다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말씀에 설득되는 것이 믿음입니다.
클럽 DJ에서 공무원이 된 박현진 형제가 있습니다.
그는 힙합 그룹의 언타이트의 보컬로도 활동했습니다. 클럽 DJ로 활동하던 중 코로나가 오면서 한순간에 직장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실직으로 인해 상실감과 두려움이 찾아왔습니다. 쉼 없이 달려왔지만, 이력서에 쓸 내용은 고졸이라는 단 줄의 이력밖에 없었습니다. 대학교는 자퇴했고, 일반적인 일을 찾기 위해서 클럽 DJ의 이력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당시 감정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당시 인생을 헛산 것 같았어요.
무시했던 친구들은 직장에서 과장 등 직급을 가지고 잘 나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일반 사원도 못 들어갈 상황이었습니다.
상실감에 유서를 쓰고 살았습니다. 너무 죽고 싶었고 삶의 이유도 없었습니다.
나라는 존재가치가 없어진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서를 써놓고 되는대로 살자, 살다 가면 가는 거다.
유서에 내 오토바이는 누가 갖고, 통장 비밀번호는 무엇이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과거 음악 활동을 하던 모습을 보게 되었고 너무나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자신이 힘든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말했습니다.
”때가 된 것 같아, 하나님이 널 부르시는 것 같아“ 말해 주었습니다.
네가 지은 죗값보다 너의 고난보다 네가 받는 죗값이 약하다는 걸 알고,
너를 건지기 위해서 코로나가 온 것일 수도 있다.
잘 생각해 보고 이제 돌이키자.
친구의 말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목사님 설교를 찾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그냥 들었는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뭔가 마음속 응어리진 것이 해소되기 시작했습니다.
뭘 해도 불안하고 뭘 해도 두려움이 있었는데 말씀을 듣고 회복되어 갔습니다.
당시 자신을 결정적으로 뒤집었던 말씀을 소개합니다. 이사야 38장 17절 말씀입니다.
사38:17 보옵소서 내게 큰 고통을 더하신 것은 내게 평안을 주려 하심이라 주께서 내 영혼을 사랑하사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셨고 내 모든 죄를 주의 등 뒤에 던지셨나이다
이 말씀 한 구절에 가슴을 부여잡고 3개월간 펑펑 울며 회개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자신에게 찾아 은 고난과 고통은
평안을 주시기 위해 주신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자신을 너무 사랑하셔서 멸망의 구덩이에서 나를 건지시고
내 모든 죄를 등 뒤에 던지셔서 사하여 주었다고 믿어졌습니다.
또다시 클럽 DJ로 돌아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유혹도 있었지만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다시 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공무원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박현진 형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오자 하나님의 말씀에 설득되었습니다.
말씀에 설득되어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죄에 가까운 직업보다 건전한 직업을 택했습니다.
말씀에 설득되어 죄책감이 아니라, 은혜 안에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말씀에 설득되어 상처와 고난을 은혜로 해석했습니다.
나의 상처, 나의 아픔, 나의 억울함, 나의 고통, 나의 죄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구체적인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에 ‘설득’됨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자기 생각과 경험적 지식으로 살아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설득되어 살아갔습니다.
아브람의 삶은 말씀 위에 기초를 두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2) 아브람이 말씀에 설득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을 삶의 전부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따라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전부로 여겨야 한다.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아브람의 방패가 되시고, 지극히 큰 상급이 되어주신다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 자신을 약속하셨습니다.
1절의 ‘이 후에’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새번역 성경은 이 단어를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라고 번역합니다.앞에 네 왕들이 소돔 땅을 침략하여 소돔 사람들을 다 사로잡아 가고 재산도 빼앗아 갔습니다. 그때 소돔에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도 잡혀갔고 아브람이 그들을 쫓아가 되찾아 옵니다. 그 거리가 왕복 500킬로미터에 달합니다.
아브람이 돌아올 때 두 사람이 아브람을 맞으로 예루살렘 근처 ’기드론 골짜기‘라고 부르는 ’샤웨 골짜기‘에 나옵니다. 살렘 왕 멜기세덱은 아브람을 축복하고, 소돔 왕은 아브람에게 ”물질은 네가 갖고 사람만 돌려보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소돔 왕에게 아브람은 사람 뿐만 아니라 물질도 전부 돌려줍니다.
이유는 창세기 14장 23절에 나옵니다. 우리말 성경으로 읽어드리겠습니다.
창14:23 왕께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신발 끈 하나라도 받지 않겠습니다. 왕께서 ‘내가 아브람을 부자로 만들었다’라고 말하지 못하게 말입니다.
”소돔 왕 당신이 나를 부자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저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무엇인가 보이지 않는 이득을 취하고자 하는
또 다른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에게 참 승리는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요.
그의 삶을 복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이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물질보다 하나님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을 전부로 고백한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약속하셨습니다.
3. 결론
윤복희 씨가 부르고, 또 임재범 씨가 ‘나는 가수다’애서 부른 ‘여러분’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그 곡의 가사를 보면(사진, 자막)
네가 만약 괴로울 때면 내가 위로해 줄게,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 내가 눈물이 되리
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 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 너의 벗 되리라
나는 너의 영원한 형제야 나는 너의 친구야, 나는 너의 영원한 노래야 나는 너의 기쁨이야
여러분 사람이 주는 위로도 있지만, 사람이 주는 상처 또한 많습니다.
여러분 물질이 주는 기쁨도 있지만, 물질로 인해 겪는 마음 아픔도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위로, 우리의 영원한 등불, 우리의 영원한 벗은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아브람에게 하나님은 그가 슬퍼하며 울 때 함께 우시는 위로의 눈물이 되어주셨습니다.
그가 잘못된 선택들로 험한 인생의 길을 걸을 때 등불이 되어주셨습니다.
또한 쓸쓸하고 외로울 때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고,영원한 형제가 되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말씀에 설득되는 자에게 자신을 약속하십니다. 영원한 친구가 되어주십니다.
우리도 말씀에 설득되어 하나님으로 인한 위로와 기쁨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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