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새벽기도회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5 viewsNotes
Transcript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앞에서 바울은 교회가 세상을 닮아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역설하고, 자신이나 아볼로는 그저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해 쓰임을 받은 사역자들일 뿐임을 가르쳤습니다.
이제 바울은 본격적으로 교회를 어떻게 세워나가야 하는가에 대한 가르침을 주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바울은 교회를 세워나가는 것을 성전을 세우는 건축에 비유하고 있는데, 오늘 다룰 본문, 10~15절에서는 헛된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으로 세워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의 개척자로서 터를 닦은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도 나름 바울은 자신이 “지혜로운 건축자”로서 터를 닦았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그가 그 터를 잘못 닦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사역은 다른 사역자들에게 맡겨졌음도 인정하고 있는데, 문제는 이때 어떻게 세울까를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우선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울 때 그 터를 예수 그리스도 위에 닦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기본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근거가 다른 것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인간관계라거나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 또는 그 모임으로 유인하는 다른 유인책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14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바울은 교회를 세움에 있어서 헛된 것과 영원한 것을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금, 은, 보석, 나무, 풀, 짚을 비유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들이 ‘불’로 시험을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곧 불에 타는 것과 불에 타지 않을 것을 구분하고 있는 셈인데, 불에 의해서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불타면 해를 받습니다.
바울은 상당히 의도적으로 금이나 은은 불타지 않고, 나무나 풀, 짚은 불탄다는 식의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이 금이나 은이어도 불타면 소용없고, 나무나 풀이어도 불타지 않으면 됩니다. 물론 상식적으로 볼 때 금, 은, 보석이 불타지 않는 재료라는 것은 당연합니다. 아마도 바울은 이를 많은 재물을 교회에 내놓음으로써 공적을 세우는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것이 불탄 경우에도 자신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을 밝히는 것으로 보면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아직 “젖이나 먹고 음식을 먹지 못하는”(3:2) 상황에 있음을 인식하고 있으며,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구원 자체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님을 명확히 해야할 필요를 느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바울은 자기가 행한 바 공적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바울은 헛된 것과 영원한 것을 대비시켜 영원한 것으로 교회를 세워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헛된 것으로 세울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보기에는 세상의 인간적 지혜는 모두 잠깐 반짝하는 헛된 것일 뿐, 영원한 것이 될 수 없었고, 교회를 세움에 있어서 당장은 그럴듯하게 보일 수 있을지 모르나 모두 “불에 탈” 것들에 불과했습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의 기틀 위에 세웠으니 그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으나 그동안 열심히 그 위에 세웠던 것이 다 무가치한 것으로 판명되고 말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각 사람이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로 바로 서고,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함을 나타냄으로써 교회는 세워져 갑니다. 그런데 가끔은 이와는 전혀 관계없는 세상적인 것으로 교회를 세우려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부유함이나 유명함을 과시하여 그것으로 교회를 든든히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조직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가진 재산이나 권력이나 유명세를 과시함으로써 강해질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 교회는 그런 방식으로 발전하거나 강해지지 않습니다. 만약 교회가 세상의 조직들이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면 2천 년의 역사를 갖지도 못하고 이방의 우상신들처럼, 수많은 세상적 모임들처럼 그 연한을 다하고 사라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헛된 것으로 세워진 모임은 곧 무너질 수밖에 없음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 위에 교회를 세워야 함을 기억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