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과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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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과 구원은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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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성경구절

고린도전서 3:14–17 “어떤 사람이 만든 작품이 그대로 남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어떤 사람의 작품이 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불 속을 헤치고 나오듯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성령이 여러분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고린도전서 6:9–10불의한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음행을 하는 사람들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나, 간음을 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노릇을 하는 사람들이나, 동성애를 하는 사람들이나, 도둑질하는 사람들이나, 탐욕을 부리는 사람들이나, 술 취하는 사람들이나, 남을 중상하는 사람들이나, 남의 것을 약탈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27 “나는 내 몸을 쳐서 굴복시킵니다. 그것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하고 나서 도리어 나 스스로는 버림을 받는, 가련한 신세가 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1–24 ““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물러가라.’ ”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은총(은혜)과 인간으로서의 자유의지에 의한 순종(믿음; 순종이 포함된 살아 있는 믿음)으로 유지되어 구원을 이루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 말에 대하여 전통 장로교 칼빈주의 신앙을 가진 분들은 이단이라 비판하실 것 같네요. 하지만, 저의 기도 편지를 받아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저의 신앙의 삶속에서 제가 늘 고백하고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속에서 내 자신의 죄인됨을 회개하며 다시 십자가 은혜로 힘을 얻고 살아간다는 내용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음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늘 고백하지만,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구속 사역과 부활의 능력을 믿음으로 반드시 이루어 짐은 절대적 진리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또 다른 내용들이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엄청난 양의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 의무, 책임, 의로운 성령의 생각을선택할것을 강조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구원을 이루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성화(의와 거룩함으로 변화된 삶)의 모습이 있어야 함을 성경을 통해 명확히 깨닫게 됩니다.(이것은 칼빈주의,알미니안주의 모두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그러기에,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반드시 순종이라는 행위의 열매를 맺는 믿음임을 다시 한번 더 깨닫게 됩니다. 절대로 행위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 구원자(펠라기우스)에 대하여 공부해 보면 잘 알 것입니다.
성경속에 수없이 나오는 부르심의 내용에는 구원으로 부르심보다는 사명자로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아래에 단순하게 쓰임받는 그릇과 같은 사명자로서의 부르심일때가 많으며, 우리는 역사속 주님의 주권아래에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됩니다. 많은 성경부분에서 부르심이 사명자로 부르셨다고 이해하고 성경을 읽게 되면 많은 것들을 깨닫게 됩니다. (위의 4성경 구절에도 그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위의 개념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1. 튜립이론인 전적인 타락, 무조건적 선택(선택과 유기의 이중예정론)과 제한적 속제와 불가항력적 은혜와 긍극적 성도 견인에 대한 성경적 진실 유무를 조금씩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4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수많은 신앙인들이 논쟁을 하고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튜립이론은 성경적 공의의 하나님의 속성에 너무도 큰 모순이라 느껴집니다. 결국 신플라톤 사상인 숙명론, 운명론으로 우리의 삶을 이해하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양진영이 여전히 서로를 이단이라 비판하고 있지만, 우리는 교리가 우선이 아닌 성경의 전체적인 문맥과 내용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이해할려고 노력하는 것이 진리를 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공부한 신학교도 정통 칼빈주의를 가르치고 교육하던 학교였습니다. )
2.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구원파적인 구원론의 모순을 깨닫게 됩니다. (몇년적 나이로비에 있는 한인교회에서 성경 공부를 하면서 이 내용을 너무 강력하게 믿고 주장하시는 집사님이 계셨는데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전혀 들을 마음이 없다는 사실에 지금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저는 저의 지식과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늘 인정하며 비판과 비난을 듣고자 귀를 열어 놓는 마음으로 지냅니다. 왜냐하면 내 마음의 생각이 성령이 주시는 것이 아닌, 내 자아의 생각과 마귀의 유혹의 생각과 매우 유사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주변으로부터, 주로 가족으로부터 줏대가 없고 자기 주장과 소신이 없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기도 하지만.......)그래서, 늘 깨어 내 자신을 점검하며 기도하며 지금의 나의 삶은 구원의 과정에 있음을 알고, 사명자로서 하늘의 상을 위해 충실하기를 소망하지만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내가 찾고 이해한 내용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 글을 쓰면서도 무엇보다 먼저 내 자아를 부인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내 영광을 위한 삶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구원을 이루어가는 자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 저의 개인적 기도 제목입니다.
3. 구원론에 대하여 여전히 많은 논쟁은 있지만, 모든 사명자가 구원을 다 받는다는 것은 확실히 아닌 것이 명확합니다. 위의 바울과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사명과 구원은 동일하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바울처럼 늘 자신을 점검하고 돌아보아 겸손과 온유로 의와 거룩과 구원을 이루어 가는 자가 되기를 오늘도 기도하며 내 의지를 드려 성령님께 순종하며 성령의 은혜로 오늘의 삶을 또 살아내었다고 고백하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현실속에서는 내 의지를 드려 열심과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살아가지만 내 마음속 영은 모두 성령의 역사함으로 성령의 이끄심이라고 진심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자랑이 아닌 감사와 기쁨이 충만한 삶으로 채워가게 됨을 배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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