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Jesus phobia(부제: 나 주님이 더욱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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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으로 오신 예수님

고린도전서 15:22–25 NKRV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사랑합니다. 드림인 예배에 오신 여러분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중독에 대해서 아는가? 중독은 마치 이런 사람들이 중독에 걸린 것인지 모른다. “하루라도 널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하루 종일 네 생각만 해. 어떻게 하지? 너에게 중독된 것 같아. 책임져”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떤가? 하루라도 안보면 큰일날 것 같은 강박적인 느낌이 바로 들게 된다. 사전적인 의미는 ‘특정 행동이 건강과 사회생활에 해가 될 것임을 알면서도 반복적으로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는 집착적 강박’이라고 한다. 중독 중에 사회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중독은 알코올 중독, SNS 중독, 도박, 마약 중독이 대표적이다. 어느 심리학자가 말하길 중독이란 무언가에 ‘노예’가 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특히 여러분과 같은 10대들은 핸드폰에 중독이 아주 심각하다. 설교 시작한 지 얼마 안됐는데도 불구하고 지금도 핸드폰 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다. 나도 내가 SNS 중독자인가 싶어서 인스타그램을 비활성화를 한 학기 동안 진행해봤는데,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는 것을 보면 아주 뿌듯한 마음이 든다. 여러분도 한번 도전해보시라. 없으면 안될 것 같지만 막상 지워보면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오늘 말씀은 고린도교회의 이야기이다. 고린도 지방은 무역이 발달한 도시로 상업화가 급속도로 성장한 대도시이다. 도시가 발달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가? 사람들이 향락과 쾌락에 젖어서 특히 성적인 타락의 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게 된다. 고린도에는 사랑의 여신이라고 부르는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다. 그 신전에 여사제가 무려 1천 명 정도 있었다고 한다. 이 도시가 사람이 많아지고 부유해지며 핫플레이스가 되었던 이유는 그 여인들 덕분이라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여사제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갖는 것이 고린도의 도시 상황이었다. 그러니 세상의 문화에서 쉽게 쾌락의 길로 빠지기 쉬운 곳이 고린도였다. 그 가운데 사도 바울이 편지를 쓴 고린도 교회가 있었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문제 중에 하나는 부활을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부활에 대해서 길게 설명한다.
고린도전서 15:3–4 NKRV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여기서 내가 ‘받은 것’을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전하였다고 말한다. 복음이 전수되는 것이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바울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내고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받은 것이다. 바울이 받아서 전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다. 예수께서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사건은 “성경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여기서 “성경”은 구약을 말한다. 구약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셨다. 성경은 예수님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실 것을 이러한 십자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기에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건이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신 것을 직접 본 사람들이 많다. 바울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 사람들을 쭉 나열한다. 베드로, 열 두 제자, 오백여 명의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도 바울이다. 모두 부활을 직접 본 증인들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본 것은 아주 중요하다. 왜냐하면 사도의 자격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사도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맞는 말인가? 예수님을 실제로 직접 보지 못하면 사도의 자격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바울은 다메섹이라는 동네에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 중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바울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바울은 예수님의 부활이 성경을 성취하는 사건이며 부활의 증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말한 후에 부활이 없으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를 말한다. 바울은 가정법으로 “만일 ~없으면”을 사용해서 부활이 없었을 경우 기독교, 우리가 믿는 신앙에 일어날 일들을 말한다. 첫 번째로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가 다시 살지 못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 그리스도가 다시 살지 못했으면 복음 전도가 헛된 일이고 “너희 믿음도 헛된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렸다고 전하며 다녔기 때문에 바울은 거짓을 말하고 다니는 사람이 된다. 세 번째로 부활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네 번째로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 역시 다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다면 우리의 믿음이 헛되고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예수를 믿고 죽은 사람들도 망했을 것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기독교의 우리가 믿는 모든 신앙은 무너지게 된다. 마치 도미노 같은 현상처럼 일어날 것이다. 전도, 믿음, 죄 용서와 부활의 소망이 다 사라진다. 특히 바울은 부활과 우리의 믿음과의 관계를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이 아무 의미가 없는 헛된 것이 된다. 이것을 가지고 두 번이나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 믿음의 내용이다. 또한 우리도 마지막 때에 부활할 것을 믿는다. 따라서 부활은 우리 믿음의 목표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의 내용이 사라지게 되고 텅 비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믿음의 목표가 다 쓸모없어지게 되고, 믿음의 기반이 무너져 내리게 된다. 부활은 지금 이 세상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다. 이제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서 반드시 나타날 모습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믿음을 가지고 죽은 성도들을 향해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라고 표현한다. 죽은 사람을 잠잔다고 말한다. 잠든 사람은 다시 깨어나고 일어날 수 있다. 이처럼 죽은 성도들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의 삶뿐만 아니라 다가올 세상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이다. 첫 열매는 다음 열매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치 봄이 오면 제주도에 벚꽃이 먼저 활짝 피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한반도 아래 호남지방부터 서서히 충청도를 지나 서울까지 점점 꽃을 피울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면 서울까지 만개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먼저 부활하신 것은 그 주님이 부활하심을 믿는 성도들도 부활한다는 것이다. 다시 살아날 성도들은 영원히 살 것이다. 부활은 사망과 비교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오늘 읽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와 아담을 비교한다.
고린도전서 15:22 NKRV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사망이 왔다. 왜냐하면 죄의 삯, 결과는 사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해서 생명이 오게 되었다. “아담 안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가 서로 대조가 된다. 그러니까 아담에게 속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 속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속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사실이고 역사이며 나를 향하신 사건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생명과 부활이 있을 것을 확신한다. 그리스도는 다시 살아나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가 있다. 그 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도 다시 살아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것이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다. 사망의 권세가 완전히 없어지고 폐해지며 부활한 자들도 영원한 생명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믿는 자는 누구의 통치를 받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게 된다. 우리는 예수님을 왕이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요한계시록 17:14 NKRV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
유대인들은 다윗이 다스리던 왕조를 다시 세워서 다윗 때처럼 막강한 강대국으로 정치적인 자유를 가져다주는 메시아를 기다려왔다. 그래서 이스라엘 국기도 현재 가운데에 다윗의 별을 그리고 기다리는 것이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메시아에 대한 생각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자신이 고난 받을 것과 죽임을 당하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미리 예고하자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음을 말리는 장면이 마태복음 16장에 나타나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바울이 되기 전에,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울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기에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나라는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왕국이며 예수님께서 만왕의 왕으로 오심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못 박히셨을 때 십자가 위에 적힌 ‘유대인의 왕’이라는 문구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의 조롱하는 문구였지만, 하나님의 계획의 한 부분으로 영적인 왕국의 시작과 왕의 선포를 담고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26문을 질문에 답을 읽어주기 바란다.
Q26.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왕의 직분을 행하십니까?
A26. 그리스도께서 왕의 직분을 행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에게 복종케 하시고, 우리를 다스리시며 보호하시고, 자기와 우리의 모든 원수를 막아 이기는 것입니다.
왕이신 에수 그리스도는 만물이 복종한다. 만물을 주님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고, 주님을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다. 예수님은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이시기에 모든 만물이 주께로 나오고 다시 예수님께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 주님은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그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그 권세로 모든 사람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모든 사람을 다스리는 권세를 가지고 계신 분이시다. 예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 주신 영생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어느 누구도 그것을 뺴앗아갈 수 없도록 하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이 어둡고 죄악된 세상에서 건지시고 예수님의 나라로 이끌어가시는 분이시다. 그리하여 악을 쫒아내시고 정복하신 분이시고, 불의한 사람들을 심판하신다. 결국 악한 사람도, 의롭지 않은 사람도 결국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영원한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기에 우리는 복수할 필요도 미워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왕국은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음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면서 사탄 마귀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셨기에 현재 이 땅에는 악의 잔재만 남아있다. 그래서 여전히 아픔과 슬픔이 있지만, 예수님이 승천하시며 성령을 보내셔서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되었다. 이 땅에서 세상의 통치를 받고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이 땅에 완전히 죄악이 사라지는 그 날을 소망하며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은 이미 우리의 왕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다. 우리 왕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심으로 자신의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왕국이며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복은 영적인 복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어떤 하나님의 나라를 원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보기 소망한다.
오늘의 설교 제목은 ‘No Jesus phobia’이다. 풀어서 말하면 ‘예수 중독’이다. 사람들이 알콜중독, 마약중독, 약물중독, 도박중독에 빠지면 안절부절 못한다. 핸드폰이나 SNS에 빠져서 없으면 불안해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휴대폰과 관련해서 ‘노모포비아’라는 말이 있는데, ‘No mobile-phone phobia’의 줄임말이다. 핸드폰이 없을 때 초조해하거나 불안감을 느끼는 금단현상을 말한다. 요즘 휴대폰 가격이 비싸서 더욱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핸드폰 사용을 막거나 제지하면 예민해지고 짜증이 많아지는 모습이 곧 노모포비아 상태인 것이다.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사람은 기쁨 없이 살 수 없다. 그래서 영적인 기쁨이 없는 사람은 세속적인 쾌락에 중독된다”고 말했다. 여러분은 무엇에 미쳐살고 있는가?
6.25 전쟁 때 공산군에 체포되어서 총에 맞고 순교하신 손양원 목사님의 ‘예수 중독자’라는 시를 읽어보겠다.
예수중독자 - 손양원
나 예수중독자 되어야 하겠다.
술 중독자는 술로만 살다가
술로인해 죽게되는 것이고,
마약 중독자는 마약으로 살다가
마약으로 인해 죽게 되나니,
우리도 예수의 중독자 되어
예수로 살다가 예수로 죽자.
우리의 전 생활과 생명을
주님 위해 살면 주 같이 부활된다.
주의 종이니 주만 위해
일하는 자 되고 내 일 되지 않게 하자.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생명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기 소망한다. No Jesus phobia는 예수님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다. 말씀이 가까이 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면 괴로워하는 사람이 예수 중독자이다. “하루라도 예수님 만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하루 종일 예수님 생각만 해, 어려운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예수님에게 완전히 빠진 것 같아”라고 고백하기 바란다. 미국 사람은 미국의 법을 따른다. 한국 사람은 당연히 한국의 법을 따른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과 자녀된 우리는 누구의 말씀을 따라가겠는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과 말씀에 나의 삶을 전부를 드리며 지키는 삶이다. 날마다 말씀을 따라감으로 그리스도의 통치를 누리며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저와 여러분들이 주님의 거룩한 빛의 자녀, 성도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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