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610새벽] 은혜의 하나님, 돌보시는 아버지를 붙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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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신경
찬송 543 어려운 일 당할 때
헌금명단호명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에게 하루라는 시간을 허락하시고 그 첫 시간을 주님께 기도로 나아오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신 그 시간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는 귀한 시간들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말세가 가까이옴을 볼수록 더욱 근신하고 깨어있을 수 있도록 붙들어 주시길 원합니다. 우리 원수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 다양한 방법으로 시도하겠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믿음을 붙들어주시고 택하신 백성들을 날마다 먹이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붙들도록 지켜 주시옵소서. 특별히 함께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는 새생명전도축제를 기억하시고, 먼저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은혜들을 전파하게 하시며, 만날 영혼들을 미리 예비시켜 주시어 귀한 복음의 말씀들이 그들의 심령 가운데 새겨지고 그들의 영혼에 큰 울림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잃어버린 양을 되찾는 기쁨으로 충만한 새생명전도축제가 되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드리는 예물들을 주님께서 흠향하시고 그 마음의 소원들을 주께서 아시오니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주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벧전 5:8-14 제가 새벽기도 때 벧전1 장을 설교하면서 베드로전서의 배경에 대해 설명드렸었다. 당시 로마의 네로 황제는 로마에 일어났던 대화재 사건을 그리스도인들의 소행이라고 누명을 씌웠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인에 대한 박해는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기 시작했고, 엄청난 박해과 시련이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아무런 소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암담한 현실을 만났다.
베드로는 이러한 박해를 직접 목격하면서 소아시아 지역으로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썼다. 비록 어려운 현실이지만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자고, 억울한 일들을 당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매사에 선을 행하자고, 그래서 그리스도를 향한 우리의 믿음이 더욱 성숙하게 하자고 편지를 쓴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러한 주제가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
먼저 8절을 보라. 베드로는 세상에서 유혹과 박해를 당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이 늘 긴장하고 깨어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1장 13절에서도 근신하라고 권면했고, 또 오늘 본문 8절에서도 근신하며 깨어있을 것을 말씀한다. 근신이라는 것은 방종한 생활 등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 삼가하는 자기 통제와 절제를 의미하고, 깨어 있다는 것은 마치 보초를 서는 군인이 정신을 차리고 경계를 서는 것처럼 게으름과 나태함에서 벗어나 늘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 베드로는 근신하고 깨어있으라 말하는가?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것이고, 세상의 마지막 날이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4 장을 통해 종말비유를 말씀하셨다. 그 날이 가까워올수록 많은 사람이 자칭 그리스도라고 할 것이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며,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날 것이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라고 하셨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일어나 교회를 핍박하며 서로를 미워하며 거짓 선지자들로 인해 많은 이들이 미혹을 당하게 되고,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게 될 것임을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마태복음 24:42 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라고 하셨다.
그리스도인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뭔가 사건 사고가 터진 상황에서 긴장을 유지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그러나 평안할 때에도 우리는 늘 긴장해야 한다. 우리는 늘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왜 그러한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가 바로 영적 전쟁터이기 때문이다. 전쟁터를 상상해보라. 지금 당장 적의 공격이 없다 하더라도 언제 기습을 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조금이라도 적군의 기미가 이상하면 바로 상부에 보고를 하고 그에 맞는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전쟁터에서 긴장을 놔버리는 것은 죽는 것과 같다.
특히 베드로의 이 편지를 받던 초대교회의 상황을 생각해보라. 저들은 제국의 박해 가운데 놓였다. 예수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끔찍한 고난과 박해를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함께 예배하는 지체들이 어느 순간 잡혀가서 안보이고, 옆 교회가 갑자기 폐쇄되었다는 소식들을 듣는다. 그러나 베드로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마귀가 그 모든 일의 배후에 있다고 말한다. 이 땅을 살아가는 신자들이 영적으로 긴장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영적 전쟁과 같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질 수 밖에 없다.
지금도 사탄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했다. 그런데 여러분, 사자는 자기가 동물의 왕이라고 해서 아무 짐승이나 먹잇감으로 삼지 않는다고 한다. 무리에서 홀로 동떨어져 배회하거나, 약하고 병들어 공격하기 쉬운 대상만을 사냥 목표로 삼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제 아무리 동물의 왕 사자라 할지라도, 반격을 당해서 자신도 상처 입을 가능성이 있는 동물에 대해서는 쉽사리 공격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탄도 그러하다. 늘 깨어 있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된 성도들을 타겟으로 삼기보다 나태해진 성도들, 경건생활을 게을리하는 성도들을 주된 목표로 삼는다. 따라서 근신하고 깨어있지 않으면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마귀의 활동을 감지할 수 없다. 죄인들의 욕망을 부추기며 유혹하고, 고난과 박해 가운데 타협하도록 만드는 배후에 마귀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고난은 울부짖는 마귀의 포효와도 같다. 박해는 마귀가 주는 두려움이다. 사탄은 신자들에게 두려움을 심어넣어 신자들로 하여금 믿음에서부터 추락하게 만들려고 한다. 인생 가운데 고난이 찾아오고, 기근이 찾아오고, 때로는 박해가 밀려올 때, 두려움에 짓눌려 그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이 때 마귀에 맞서는 태도는 믿음을 지키는 것이다. 어떠한 믿음인가?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날마다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다.
10-11절을 보라. 이 말씀은 베드로전서 전체의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교회가 고난과 박해 가운데 놓였지만, 그들을 부르신 분은 은혜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은혜로 그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오직 그 은혜로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다. 신자들은 지금 고난과 박해를 받고 있으나 장차 우리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영원한 영광을 얻게 될 것을 확신해야 한다. 신자들은 각자의 능력이나 학벌이나 재산을 통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완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자녀들의 고난을 아신다. 다만 그 고난을 아주 잠시 허락하실 뿐이다.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한 영광에 비하면 지금 당하는 고난은 아주 잠깐일 뿐이다. 10절을 보라. 여기서 은혜의 하나님께서 4가지 약속을 주신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들에게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온전하게 하실 것이고, 둘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굳건하게 하실 것이며, 셋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강하게 하실 것이고, 넷째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터를 견고하게 하실 것이다. 따라서 고난과 박해 가운데 있는 성도들은 내가 영원한 영광에 들어갈 수 있을지 불안해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겠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저는 여기서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 베드로는 어느 한 개인에게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 흩어진 그리스도인들, 교회에게 편지하고 있다. 물론 이 편지를 ‘나’라는 개인에게 적용할 수도 있겠지만 일차적으로 우리 공동체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인생을 살면서 믿음으로 인한 고난, 박해, 풍랑들이 밀려올 때, 고난받는 신자는 그 모든 풍랑 앞에서 나 홀로 고립되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지금 베드로의 편지를 받는 초대교회 성도들도 같은 고난을 받고 있다. 또한 9절을 보면 베드로는 세상에 흩어져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형제들’이라고 부르며, 편지의 수신자들과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을 한 가족으로 묶고 있다.
따라서 고난과 박해의 풍랑은 이 편지를 받고 있던 1차 수신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적용이 된다. 이는 고난 중에 있는 신자들은 서로 한 몸이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마치 2천년 전 초대교회 성도들이 고난과 박해를 받았던 것처럼, 그리고 9절처럼 고난과 박해 중에 있던 성도들의 믿음을 서로가 굳건하게 하여 마귀를 대적하였던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우리 주변에 고난과 박해를 당하는 지체들이 있다면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서 승리할 수 있음을 저들에게 권면하며 그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시길 바란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한 몸, 같은 지체로 부르신 이유는, 우리가 서로 연약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의 짐을 대신 짊어져주고, 고난과 박해 가운데 낙심하고 넘어진 자들을 서로 일으켜주며, 그 믿음을 굳건하게 세워주기 위함이다. 함께 낙심한 자들을 세워주고, 넘어진 자들을 일으켜주며, 상처입은 자들을 보듬어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공동체로 세워가는 이 자리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주기도문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자. 인생속 어려움, 고난, 박해 속에서도 돌보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게 붙들어 주옵소서. 또한 우리 지체들 가운데 고난과 박해의 때를 지나가는 형제들이 있다면 저들에게 나아가 그들의 믿음을 굳게 세워주는 우리 되게 하셔서, 말세의 때에 더욱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교회 공동체로 세워져가도록 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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